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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의 시선이 머무는 곳

아들과 바둑, 그리고 하사비스

“아빠는 바둑을 배우라고 하는데, 저는 무엇 때문에 바둑을 두는지 이해할 수 없었어요. 바둑은 왜 두는 거예요?” 몇 해 전 아들과 대화중에 들었던 말이다. 나는 아무 소리도 못하고 속으로 한숨만 쉬었다. 기억은 50년 세월을 훌쩍 뛰어넘는다.


코흘리개 시절 방학이면 성북구 하월곡동에 있는 친척집에서 지냈다. 나이가 열댓 살이 많은 고모와 삼촌들도 있었지만 나보다 어린 삼촌도 있었다. 매미소리가 요란하던 어느 여름날 대학교수인 할아버지와 대학생인 삼촌이 대청마루에서 바둑을 두었다. 나와 내 또래 삼촌은 아무것도 모르면서 바둑판을 구경했다.


“야, 야, 여기 한 수만 무르자, 거기가 아다리(註: 단수를 의미하는 일본어로 당시의 언어)인 걸 못 봤어. 그냥 따면 어떡해.” “아버지 무르는 게 어딨어요, 이것도 승분데. 아버지가 졌으니까 빨리 돈 주세요!” 아마 백 원이나 오백 원짜리 내기였는지 그분들은 물러달라니, 못 물러준다느니 하며 실랑이했다. 우리는 그렇게 바둑을 배웠다. 그분들이 바둑을 끝내면 바둑판은 나와 내 또래 삼촌의 차지였다. 어떻게 하면 상대편 모르게 아다리를 쳐서 따먹느냐 하는 것이 최대의 관심사이었다.


지금도 빛바랜 흑백사진처럼 기억 속에 한 폭의 풍경화가 되어 남아있는 광경이다. 대학에 다니면서 아마추어 고수가 된 나는 바둑을 둘 때마다 머리에 간직한 그 풍경화를 꺼내 들고 미소를 지었다. ‘나중에 아들이 생기면 바둑을 가르쳐서 그 풍경화 속에 주인공이 되리라!’ 유치원 시절부터 녀석에게 바둑을 가르쳤지만, 녀석은 좀처럼 배우려 들지 않았다. 나중에 학원까지 보냈으나 전혀 효과가 없었다. 초등학교 입학 기념으로 게임기를 사주었다. 고사리 같은 손을 조몰락거리며 ‘슈퍼마리오’라는 게임을 얼마나 잘하는지 옆에서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었다.


작년 3월 ‘데미스 하사비스(Demis Hassabis)’라는 인물이 개발한 알파고는 이세돌이라는 바둑천재를 4:1로 완파했다. 이세돌은 신안 비금도에서 5남매의 막내로 1983년 태어났다. 내 아들보다 세 살이 많다. 초등학교 교사로 아마추어 고수였던 부친이 심심풀이로 바둑을 가르쳤다. 5남매 모두 바둑에 재주가 있었지만 이세돌의 실력이 워낙 출중했다. 첫째 형도 프로기사고 둘째도 상당한 실력이었으나 막내를 이길 수 없게 되자 진로를 바꿔 서울대 컴퓨터공학과에 입학했다 하니 천재가족임에 틀림없다. 부친에게 5살에 바둑을 처음 배운 이세돌은 2년 뒤에 아버지의 실력을 능가했다.


하사비스는 1976년 영국 런던에서 그리스계 부친과 중국계 싱가포르인 모친 사이에서 태어났다. 2남 2녀의 장남이었던 그는 어려서부터 남달랐다. 체스, 컴퓨터와 게임을 끼고 살았는데 체스를 특히 잘 두어 신동으로 일찍부터 명성을 날렸다. 아버지와 삼촌이 두는 체스에 관심을 보인 후에 정신없이 체스에 빠져들었을 당시 그의 나이는 다섯 살이었다. 아버지로부터 체스를 배운 2주 후부터 아버지를 이겼으며 그해 말에 8세 미만 아동 체스대회에 출전해서 우승했다. 18세 이하 유소년 세계 체스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했을 때, 그의 나이는 13세였다.


이세돌이 한국 최고의 기사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조훈현과 이창호라는 걸출한 천재가 그보다 앞선 기록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최고의 기사로 인정하는 이유는 독창성에 있다. 지독스럽게(?) 평범한 수를 거부하고 남들이 두지 않는 독창적인 수를 찾아낸다. 이세돌의 성공 뒤에는 가족의 지원도 간과할 수 없다. 그의 재능을 일찌감치 알아본 부친은 9살의 아들을 서울로 유학을 보냈고 프로기사인 큰형은 그의 후견인으로 평생 뒷바라지했다.


하사비스는 장난감 가게를 운영하는 부친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장난감 속에서 살았다. 하사비스의 재능을 알아본 부친은 그가 게임을 하든, 컴퓨터 앞에서 시간을 보내든 상관하지 않았다. 남들보다 2년 빠른 나이인 15살에 고등학교를 졸업한 그가 대학을 선택하지 않고 게임회사에 간다고 했을 때도 반대하지 않았다는 것은, 한국에서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 아닐까 싶다. 그는 케임브리지 퀸스 칼리지 컴퓨터공학과에 입학했는데, 학교 측에서 어리다는 이유로 그를 입학시키지 않은 것도 한몫했겠지만. 개발자로 게임회사에 들어가서 그가 개발에 참여한 게임은 대박을 터트린다. 그리고 이때의 경험이 인공지능(AI: Artificial Intelligence)에 대해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었다.


케임브리지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하고 자신의 회사를 차렸던 하사비스는, 컴퓨터 지식만으로 인공지능을 구현하는데 한계를 느껴 회사를 닫은 후, 인지과학을 공부하기 위해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에 들어가 박사학위를 취득한다. 그곳에서 ‘딥마인드’의 공동창업자인 ‘셰인 레그’와 운명적으로 만나게 된다. 2010년 그들이 창업한 ‘딥마인드 테크놀로지’가 2014년 구글에 4억 불에 인수될 때 그가 제시한 세 가지 조건은, 연구 자율성 100% 보장과 영국에서 한 발짝도 옮길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인공지능을 위해 사내에 'AI 윤리 위원회'를 만들라는 것이었다.


2015년 하사비스는 스스로 학습하는 인공지능의 시험대상으로 그때까지 AI가 정복하지 못한 바둑을 결정하고 ‘알파고’라는 프로그램 개발에 착수한 지 1년도 안 되어, 개발 10년도 넘는 모든 프로그램에 승리할 뿐 아니라, 유럽에서 활약하는 프로기사에게도 이긴다. 그리고 작년 3월 세계적 바둑천재 이세돌에게까지 믿어지지 않는 패배를 안긴다. 유일한 승리인 4국에서도 중반까지는 알파고의 일방적 우세였다. 알파고 패배의 원인으로 신의 한 수라고 불리었던 78 수도 정확하게 응수했다면 별 것 아니었다는 점에서, 알파고의 버그(프로그램의 에러)로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파고가 계산착오를 일으킬 정도의 수를 찾아낸 이세돌은 대단했다.


이후 알파고는 인간과 둔 모든 대국에서 승리했다. 공식 대국이 아닌 인터넷 대국이었지만, 한국랭킹 1위인 박정환, 중국랭킹 1위이자 세계랭킹 1위인 커제까지 모든 대국에서 완벽한 승리를 거두었다. 이세돌에게 패한 4국이 알파고가 인간에게 패한 마지막 대국으로 기록될 가능성이 매우 커졌다. 지구 상에 현존하는 인물 중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이라고 평가받는 하사비스가, 인간의 뇌구조 이론을 컴퓨터에 접목시켜 개발한 알파고는, 지금 이 순간도 지치거나 지루해하지 않고 스스로 바둑을 두며 최선의 수를 찾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30년 전에 한국에 두 명의 컴퓨터 천재가 있었다. ‘V3’라는 컴퓨터 백신을 개발해 무료로 보급한 안철수(1962)와 ‘아래 아 한글’을 개발한 이찬진(1965)으로 서울대 의대와 기계공학과에 재학하는 학생이었다. 사회로 진출한 이들이 컴퓨터 회사를 차리긴 했으나, 이유가 어찌 됐건 나중에 진로를 바꿨다. 그들이 잘할 수 있는 분야에서 자리 잡지 못하고 무엇이 그들을 떠나게 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아이큐가 높다는 한국인들 중에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 래리 페이지, 데미스 하사비스 같은 인재가 나오지 않는 이유와 같지 않을까.


SKY 전자과를 졸업하고 의학전문대학원에 다니는 조카가 있다. 녀석의 말을 들어보면, 동급생 중에는 미국 아이비리그나 서울대, 카이스트를 졸업한 친구들이 많다고 한다. 기업에 들어가 월급쟁이로 사는 것보다 의사라는 직업의 장래가 밝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컴퓨터를 전공한 하사비스가 AI를 개발하기 위해 인지과학을 공부한 것처럼, 자신의 전공을 의학에 접목시키기 위해 공부하는 친구들도 있겠지만.


연년생으로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조카들이 컴퓨터 게임을 못하도록 아이들 엄마인 여동생은 외출할 때 케이블모뎀을 핸드백에 가지고 다녔다고 들었다. 부유층이 아니라 고가의 과외를 시키지는 못했지만 아이들 공부를 위해 최선을 다한 덕분에 아이들은 잘 커서 대기업에 다니고 있고 의사도 될 것이다. 그러나 확실한 것도 있다. 이러한 한국적 분위기에서는 결코 하사비스 같은 인물을 기대하기 힘들다는 사실이다.


대신 하사비스만큼이나 두뇌가 우수한 김기춘이나 우병우 같은 인물들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는 시류에 편승하여 사회나 국가의 지도자급 인물이 되어, 불법적으로 지역감정을 조장하고 반인륜적인 ‘블랙리스트’나 만들며, 국민을 분열시키고 편 가르기에 나서는 등 온갖 악행을 일삼았다. 스스로 계획하고 실행한 부도덕하고 나쁜 짓을 감추고 숨기기 위해 무능함으로 위장한 채, 지금도 거짓말을 태연하게 반복하고 있다. 자신의 천재적 재능을 개인의 출세와 영달에만 활용한 결과다.


이런 사람들이 모인 정부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사비스 같은 인재를 만 명 이상 양성해서 인공지능을 선도하는 일류국가를 만들겠다!”라고. 창조경제에 한마디 더 붙일지도 모른다. “AI를 활용한 창조경제”로.


(참고 서적: 하사비스처럼 알파고하라. 도서출판 타래, 유종민 지음)


<후기>

아들로부터 바둑을 왜 두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듣고 묘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나마 강제적으로 시키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는 안도감, 소박한 꿈마저도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절망감과 함께 녀석과 나의 운명이고 팔자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비록 부자지간이지만 각자의 그릇이 다르니 생긴 대로 살아야겠지요, 하하하.


어제부터 내린 비로 아침에 나가지 못했는데, 글을 쓰는 도중에 비가 그쳤으니 운동이나 하러 나가렵니다.


▼ 홍성담 화백의 그림으로 광주비엔날레에 전시가 거부되어, 2014년 8월 뉴욕타임스로부터 한국에 표현의 자유가 있느냐는 비판을 받았던 작품. 결국 홍성담 화백이 그림으로 표현했던 것은 실제였다는 것이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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