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민자의 시선이 머무는 곳

반동(反動)의 시대

살면서 옳다고 믿었던 것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릇된 것으로 판명되곤 한다. 훌륭한 스승이라고 알았던 분이 나중에 보니 위선자에 불과했다는 것, 어렸을 때 세상에서 가장 아는 것이 많다고 생각했던 부모님이 실상은 무지한 분들이었다고 깨닫게 된다. 긍정에 대한 부정이다. 그러나 그 또한 바뀐다. 무지한 부모였을지 모르지만 자식들을 위해 헌신했던 훌륭한 분들이었음을 다시 인식하며, 부정에 대한 부정을 하게 된다.


250년 전의 독일 철학자 헤겔은 '긍정에서 부정, 그리고 부정에 대한 부정'으로 이어지는 인식의 변화를 변증법 이론으로 설명했고, 이를 나중에 후학들이 정(正)반(反)합(合)이라는 용어로 정형화했다. 헤겔은 만물이 끊임없이 변화함으로써 발전한다고 믿었다. 흐르지 않는 물이 썩는 것은 시간이 문제일 뿐이다. 물을 흐르게 만드는 것, 만물이 변화하도록 만드는 힘은 바로 반동(反動, reaction)이다. 반동이 없으면 사회는 정체되고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하는 동력을 잃고 만다.


240여 년 전 미국의 독립선언서와 프랑스 대혁명으로 자유, 생명, 평등, 박애, 행복이 인류 최고의 가치로 등장했다. 인간성을 중심으로 지식, 이성, 합리, 도덕, 공정, 양심, 법과 원칙, 인류애, 양식을 존중하고 시장을 중심으로 한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발전시켜 온 게 사실이다. 강대국의 식민지배와 피지배인의 학살과 이데올로기 충돌이나 크고 작은 전쟁이 없던 것은 아니지만, 소위 문명국이라는 선진국에서는 그런 사조가 정(正)이었던 시대였다.


지금 우리는 반동의 시대에 살고 있다. 그것도 급격한 반동이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금년 2월 브렉시트가 시작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먼저 민주주의를 구가했고 근대철학과 교육의 발산지인 영국이, 자신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비이성적 선택을 했고 며칠 전에는 세계 최강국인 미국의 대선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타났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수시로 말을 바꾸고 거짓말까지 일삼으며 도덕심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도널드 트럼프가 세계에서 영향력이 가장 큰 위치를 차지한 것이다.


어떻게 이토록 비상식적인 일이 일어났을까?


유수의 여론조사기관이나 주요 매스컴들의 예측도 틀린 마당에 나 같은 일개 필부가 이를 분석하는 것이 가당찮은 일이라 하더라도, 미국에 살면서 가졌던 느낌을 바탕으로 트럼프에게 표를 준 사람들의 마음을 0.001%라도 이해해 보려는 시도가 아주 의미 없지는 않으리라.


먼저 지난 글에서 몇 번 인용했던 카펫클리너 이야기다. 포드 트럭에 카펫 클린 장비와 약품을 싣고 다니던 그 젊은 친구는 뉴저지에서 태어났다며 뉴저지 근처를 떠나 여행한 적이 없다고 했다. 세계 모든 나라의 사람들이 미국에 와서 살려고 애쓰는데, 자신이 뭐하러 다른 나라에 갈 필요가 있느냐는, '우물 안 개구리'식의 논리였다. 그의 무지가 미국 백인남성을 대변하는 것은 아닐지라도, 그가 카펫을 청소하러 다니면서 영어도 변변히 못하는 아시안이 좋은 집에 사는 것을 보고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매우 강하게 들었다.


미국에서 내가 다니던 성당은 '이스트오렌지'라는 흑인 동네에 있었다. 주중에는 얼씬도 않던 한국인들이 일요일이면 미사에 참석하러 몰려들었다. 두 명의 흑인경찰이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을 위해 교통을 정리했고, 양편 도로는 물론 건너편의 월그린 주차장까지 신형의 깨끗하고 좋은 차들로 가득 찼다. 그들이 타고 다니는 녹슬어서 한 귀퉁이 떨어져 나간 그런 차는 없었다. 그 동네에 사는 빈민층들이 어떤 생각을 할지가 걱정이 된 것은, 한국에서의 경험 때문이었다. 


1970~80년대 원자력 발전소를 짓던 곳은, 영광, 월성, 울진 같은 대부분 가난하고 외진 시골구석이었다. 대규모 공사가 벌어지면서 중산층 인구가 몰려들었다. 운동화는커녕 고무신을 신고 다니는 초등생 아이들이 몇 만 원짜리 나이키 운동화를 신은 급우들을 보고 가난한 부모에게 사달라고 졸랐다. 건설현장에서 허드레 일이나 하는 현지인들은 자가용을 타고 주말마다 놀러 다니는 직원들을 보고 위화감이 커질 대로 커졌고 사소한 일을 트집 잡아 데모하기를 일삼았다.


영주권이나 시민권에 애태우던 사람도 일단 획득하고 나면 기득권이 된다. 개구리가 올챙이 적 생각 못한다고 했던가. 불체자를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게 된다. 불체자들 때문에 자기 직업이, 생계가 위협받고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취임 2년 동안 불체자 전원을 추방하겠다든지, 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설치하겠다든지 - 이런 공약이 지켜질 리 없을뿐더러 결국 대선을 위한 말장난이었다는 말이 나오고 있지만, 기득권들은 드러내지도 못하고 그의 허황된 공약에 내심 환영했을지도 모른다.


모두가 극도의 이기심의 발로이며 돈 만을 좇는 삶의 결과다. 행복보다는 돈 만을 추구하는 삶은 이성과 합리, 도덕에 대한 긍정을 부정하게 만들었다. 법과 원칙, 공정과 평등에 대한 믿음을 파괴했고 그 결과, 중국산 제품에 대해 45%의 관세를 물리겠다느니, 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짓고 그 비용을 멕시코 정부에 물리겠다느니 하는 사탕발림 립서비스에 불과한 거짓말에 환호했다. TV 대선 토론을 다 본 것은 아니지만, 힐러리가 열심히 논리적 열변을 토할 때 트럼프가 가장 많이 한 말은 "Liar"이었다. 더 큰 거짓말쟁이가 작은 거짓말쟁이를 거짓말쟁이로 몰아 부쳤고 그게 통했다.


이 같은 세계적 조류에서 한국이 빠질 수는 없다. 트럼프가 지도하는 미국의 미래가 한국일지 모른다. 트럼프의 거짓 공약을 닮은 박근혜 대통령의 거짓은 국내정치 이야기라 생략하겠지만, 거짓말이 통하는 사회보다 위험한 사회는 없을 것이다. 현대사회의 기초가 된 루소의 사회계약론도 거짓이 통하는 사회에서는 한낱 무용지물에 지나지 않는다.


헤겔의 변증법에 의하며 다음에 올 단계는 '부정에 대한 부정'이다. 그때가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그 날이 오면 보다 성숙하고 발전한 사회의 모습을 볼 수 있으리라고 확신한다. 오늘날의 반동 현상도 인류가 발전해가는 하나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正과 反을 거쳐 合으로 가는 젊은이들이 있어 세상은 희망적이다. 대기업을 3년 만에 관두고 젤라또 가게에서 점원으로 일하며, 부정에 대한 부정을 좇는 젊은이.


돈보다는 행복한 직업을 찾기 위해 세 번이나 직장을 옮긴 젊은이는 결국 시인이라는 직업을 택했다. 부정에 대한 부정이었다.


▼ 이유가 어찌 되었든 반동이 판치는 세상이 되었다. 푸틴 밑에 있는 러시아 어는 '짜르'다.


▼ 우리 세대에는 이런 사람을 긍정으로 보았으나 그것은 틀린 삶이었다. 인생의 목표는 돈 추구가 아니다.


▼ 전쟁의 휴유증으로 고통받던 시절에 태어난 세대들은 패러다임을 바꾸지 않는 한, 보다 나은 세상으로 나아기기 힘들 것이다.


▼ 지난 7월 혼자 트럼프의 당선과 그 이유를 정확하게 예측했던, 식코의 감독 마이클 무어가 이번에는 3년 내에 트럼프가 탄핵이든 하야든 대통령 직에서 쫓겨날 것이라고 예언했다.


트럼프를 당선시킨 사람들




'이민자의 시선이 머무는 곳' 카테고리의 다른 글

Dynamic Korea  (0) 2016.12.06
아프면 아프다고 말하자!  (0) 2016.11.21
비정상 사람, 비정상 대통령  (0) 2016.10.30
행복과 전쟁  (0) 2016.09.27
성공적으로 나이 들기 (13)  (0) 2016.09.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