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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의 시선이 머무는 곳

성공적으로 나이 들기 (9)

"미래는 주춤주춤 다가오고, 현재는 쏜살 같이 지나간다. 그리고 지나간 과거는 언제나 아름답다."


우리 민족 최대의 명절인 추석이 바로 코 앞이다. 정부에서 과거에는 공식적으로 음력을 인정하지 않아서, 구정이나 추석 같은 명절이 연휴였던 기억이 별로 없다. 추석 당일만 휴일이었다. 일반 서민들은 양력으로 설을 쇠기 보다는 구정을 지냈고, 설날과 추석에는 어른들로부터 양말이나 내복, 옷 등을 특별 하사품으로 받았던 기억이 난다.


가래떡, 시루떡, 만두, 녹두 지지미 등 명절 음식을, 연탄가스 마셔가며 밤새도록 만들었던 기억은 아스라해졌지만, 그 기억들이 아름답게 회상되는 것도 지나간 과거인 탓이리라. 만약 요즘에 그렇게 하라고 시킨다면. '미쳤어?' 하면서 싸우자고 대들 사람이 한둘이 아닐 거다.


행복했던 어린 시절이 노년기에 미치는 영향은 성인발달연구에서도 핵심과제 가운데 하나였다. 연구를 진행하는 30년 이상의 기간에, 통념상 인정되었던 많은 가설들이 이 연구로 폐기되었다. 연구 이전에는 유년기가 노년기의 행복에 밀접한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 일반적 개념이었다. 훌륭한 부모 밑에서 행복한 유년기를 보낸 올리버 홈스도 건강하고 행복한 노후를 맞이했지만, 최악의 유년기를 경험한 앤서니 피렐리도 홈스 못지 않은 노년기를 가졌다.


그랜트 집단에서 바람직한 노년에 이른 사람과 최악의 노후를 맞이한 사람의 유년기에서 의미가 있는 차이를 발견하기 힘들었다. 물론 20대나 30대의 청년기에는 분명한 영향이 보였지만, 50세가 넘게 되면 어렸을 때의 신체건강, 형제의 유무, 나이 차이, 태어난 순서, 심지어 부모를 일찍 여읜 것에도 영향이 희미해져 갔다. 


'돈'은 만족스런 노년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다. 그러나 연구 대상 세 집단을 분석한 결과, '정신적인 풍요로움'이 훨씬 더 중요한 요인으로 나타났다. 어느 집단이든 화목한 가정, 형제 간의 돈독한 우애, 친구와의 우정, 건강한 정신과 성숙한 방어기제 같은 것들은 미래의 고소득을 예측 가능하게 하는 요소들이었던 반면에, 생활보호대상 가정이라거나 편부모 밑에서 성장한 것만으로는 미래의 소득을 추정하기가 어려웠다. 바꿔 말하면, 유년기의 긍정적인 요소가 부정적인 요소보다는 그 사람의 미래를 예견하는데 더 강력하게 작용했다는 의미다.


알코올 중독자 같이 비참한 노년기에 있는 사람들은, 그 원인을 자신의 불행했던 유년기 탓으로 돌리는 경향이 많았다. 하지만 연구결과는 그들의 주장과는 달랐다. 현재의 상태가 원인과 결과를 바꾸도록 과거의 기억까지 편집했던 것이다.


실제로 유년기의 환경적 요인이 신체건강에 영향을 끼친다는 증거는 분명했다. 그랜트 집단에서 불우한 유년기를 보낸 23명 중 33%가 53세에 고혈압, 당뇨병, 심장병 같은 만성질환을 앓았고 4명은 이미 사망했던 반면에, 행복했던 23명은 모두 생존했고 만성질환에 시달리는 사람도 2명뿐이었다. 재밌는 것은 이런 연관성이 끝까지 지속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연구 대상자들이 75세에 이르렀을 때는 연관성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것은 아무리 심한 상처도 세월이 흐르면 감쪽 같이 아물어서 흉터조차 사라지는 것과 흡사하다.


불행한 유년기를 보낸 이들에 대한 연구결과로, ①정신질환을 앓을 가능성이 훨씬 높았고 ②놀이를 통해 인생을 즐기는데 익숙하지 않았으며 ③자기감정은 물론 세상을 신뢰하지 않았고 ④평생 친구를 사귀지 못하는 이들도 있었다. 또 이들은 불의의 죽음(사고, 자살, 질병)을 당할 확률도 그랜트 그룹에서는 세 배, 이너시티 집단에서는 두 배가 높았다.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라는 말은 연구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 노년의 건강에 가장 악영향을 끼치는 우울증 외에 다른 요인으로, 알코올 중독, 흡연, 자기 방치, 만성질환, 불행한 유년기 등이 거론되지만, 어느 것이 주 원인이고 어느 것이 부수적인 것인지를 가려내는 것은 60여 년에 걸친 전향적(Prospective) 연구가 아니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우울증은 암과도 관련성이 컸다.


폐암과 위암은 담배와 술의 영향이 크지만, 우울증 환자에게도 흔히 발병했다. 같은 병을 앓더라도 우울증이 있으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병원에 자주 갔으며, 질병을 극복하는데도 허약했다. 특정한 암에 걸리거나, 좌뇌 쪽에 뇌졸증이 생기면 우울증이 온다는 것을 고려하면, 우울증이 신체질환의 원인인지 아니면 질병으로 인해 우울증이 생기는지 명확하게 구분하는 것은 어렵다.


기록으로 남아있는 문명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기원전 1700년 경 수메르 시대(메소포타미아 문명)가 있다. 이때 쓰인 점토판 문자를 해독했더니 '요즘 젊은이들은 너무 버릇이 없다'라는 내용이 나오더라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4천 년 전이나, 공맹시대에나, 우리가 젊었던 시절이나, 요즘이나 나이 든 사람이 생각하는 젊은이들은 버릇이 없었다. 따라서 지금 젊은 사람들을 탓한다면, 자신이 '꼰대짓(?)'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바로 증명하는 것이다.


이를 뒤집어 말하면 '우리가 어렸을 때는 부모를 공경하고 어른들을 존경했다'며 젊은이들에게 꼰대짓을 하는 것은, 과거를 단순히 미화하는 것뿐이다. 그때 젊었던 우리들도 버릇이 없기는 마찬가지였으니까. 이에 대한 사례가 나온다. 이너시티 집단의 67세된 대상자는, 부모로부터 어떤 교훈을 배웠는지 묻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 부모님은 수업준비를 해주고, 학교까지 바래다주기도 했어요. 우리 초등학교 때는 집에 가서 점심을 먹었는데, 엄마는 늘상 따뜻한 음식을 준비해 놓고 기다리셨지요. 이렇듯 엄마는 저희들을 자상하게 보살펴주셨죠. 그렇게 가난하지는 않았어요. 아마 중하층 정도는 되었을 겁니다. 정부에 피해를 줄 정도는 아니었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자유주의자들에게 불만이 많아요. 정치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는 싫지만, 급진 자유주의자는 특히 싫어합니다.


하지만 실제 기록에 의하면, 그는 한 살 되던 해에 아동학대방지협회의 보호를 받았고 구루병(비타민D 결핍증)을 앓았으며. 집은 지저분하게 어질러 있었다. 일곱 살 때 그의 어머니는 알코올 중독으로 보호시설에 수용된 적이 있었고, 열 살 되던 해에는 아이에게 점심을 굶기고 집안이 너무 엉망이어서 협회에서 다시 찾아가기도 했다. 열여섯 살 무렵에 찾아간 면담원에게 그의 부모는 정부 보조금이 너무 적다는 불평만 늘어 놓았다.


그는 어떤 이유에서건 자신의 과거를 재구성하고 있었다. 보편적 복지를 주장하는 정치인을 반대하기 위해 그랬을 수도있지 않았을까.


이렇게 과거를 편집하는 경향은 터먼 그룹에서도 나타났다. 78세의 터먼 여성들에게, 자신의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사회가 충분한 기회를 주었는지를 물었다. 절반인 39명이 그렇다고 답했으며, 실패한 사람들도 그 원인을 자기자신에게 돌렸다. 그러나 이 그룹의 여성들이 젊었을 때는 여성에 대한 차별이 매우 심했던 시절이었다.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하며 살았다고 증언한 여성의 경우도 기록에는 그렇지 않았다.


아이큐가 154였던 이 여성은 무엇이든 한 번 보거나 읽은 것은 무엇이든 기억해 낼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난 재능을 지녔고, 버클리 대학을 올A를 받고 졸업했지만 자신이 원하는 직업을 택하는 대신에 남편을 의과대학에 보내기 위해 병원에서 비서로 일했다. 나중에도 50불의 연금 때문에 스탠포드 대학에서 비서로 10년 동안이나 더 일했다. 그녀보다 야박한 대우를 받는 직원이 없을 정도였다.


78세나 된 지금에 와서 과거에 대한 불만이 현재나 미래의 삶에 도움이 될 리는 없다. 차라리 과거를 망각하고 사는 것이 수월하게 현재의 삶을 영위하는 방법일 수 있다. 과거의 재능을 묻어버리기 위해 선택적 건망증을 선택했을까. 그랬다면 그녀의 뛰어난 재능이 취할 수 있는 최고로 현명한 선택이었다.


"미래는 주춤주춤 다가오고, 현재는 쏜살 같이 지나간다. 그리고 지나간 과거는 언제나 아름답다."


<후기>

책을 읽으면서 얻은 교훈을 여러분들과 나누기 위해서 글을 쓰고 있습니다. 책의 내용을 그대로 전하기 보다는 제가 이해한 내용을 위주로 다른 내용을 섞어서 전개하기 때문에 주관적 해석이 있다는 것을 다시 말씀드립니다.


결핍(Privation)과 박탈감(Deprivation)은 다르다고 합니다. 태어날 때부터 장님으로 태어났다면 결핍이지만, 살면서 시력을 잃었다면 박탈된 것입니다. 누구의 고통이 더 클까요? 톨스토이는 "누군가를 열렬히 사랑할 수 있는 사람만이 크게 슬퍼할 수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사랑을 잃었다는 박탈감이 슬픔과 고통을 더 크게 했을 겁니다.


젊음을 박탈당했다고 생각하면 노년의 삶은 그만큼 황폐해집니다. 그러나 과거에 잃었던 사랑을 찾아간다고 생각하고, 시간이나 여유가 없어서 포기했던 취미나 시도하지 못했던 일을 다시 시작하는 기회라고 여긴다면 풍요로워질 겁니다. 인생 후반기에 이루어야 할 과제로, 베일런트 교수는 인생 전반부에서 사랑했던 모든 것들을 다시 찾아내어 그 사랑을 회복하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과거를 재구성하거나 편집함이 없이,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사랑할 수 있으면 더 좋겠지요. 쉽지 않은 일이라고요? 저도동의합니다. 성공적으로 나이 먹기가 어디 쉽겠습니까,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