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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의 시선이 머무는 곳

성공적으로 나이 들기 (8)

⑤ 의미의 수호자(Keeper of the Meaning)


베일런트 교수는, '다음 세대에게 과거의 전통을 물려주는 '의미의 수호자'가 되어 과거와 미래를 연결해 줄 수 있어야 한다'는 말로 이 단계를 설명했다. 생산성이라는 전(前) 단계와 다른 것은 보다 너그러워진다는 것이다. 어느 편에 치우치기보다는 반대측의 의견이나 입장도 수용하는 태도를 취하며, 공정한 자세를 취하려고 노력한다.


이렇듯 삶에 대해 냉정하고 공평한 자세를 취하려는 것이, 노인들이 고집만 세고 완고하다는 부정적 평가를 받는 원인을 제공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현상은 변증법적 작용과 반작용으로,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넘어 사회적 지평을 확장하는데 관심을 쏟다보면, 반작용 또한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베일런트 교수는 레이건과 링컨 대통령을 예로 들었다. 레이건 대통령이 구소련을 '악마의 제국'이라며 적대적 대응으로 일관했던 것에 비해, 링컨 대통령이 4년 동안 치열했던 남북전쟁에서 승리한 후 패전한 남쪽 사람들을 따뜻하게 포용했던 것은, 두 사람의 사회적 성숙도 차이라고 설명했다. 그의 논리는 박근혜, 이명박 정부의 대북 강경정책과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대북 포용정책을 비교하게 만들었다.


오늘도 북한 김정은 정권은 함경북도 풍계리에서 핵실험을 단행했고, 정부는 '北 핵실험, 묵과할 수없는 도발'이라며, 더 강력한 제재로 맞서겠다고 성명을 발표했다. '더 강력한 제재'가 아직도 남았는지 알 수 없으나, 강대강으로 맞서기만 하는 남북대결이 어떤 결말을 초래할지 두렵기만 하다. 이제 32살에 불과한 또라이 김정은을 상대하는 방법이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외에 다른 수단은 없는 걸까.


올림픽을 예로 든다면, 올림픽 조직위원이나 경기 심판이 '의미의 수호자'에 해당하고 각 나라의 선수 감독들이 생산성 단계에 해당한다. 체력이나 기술력은 떨어질지 몰라도 의미의 수호자로서 공정한 판단 능력은 더 뛰어나다는 설명이다. 자신의 자식을 키울 때보다 손주들을 돌볼 때가 더 현명해지고 이해심도 커진다. 비록 지팡이와 틀니에 의존한다고 하더라도.


통합(Integrity)


이 단계를 통해 '개인의 삶은 물론 세상의 평온과 조화로움을 추구해야 한다'고 베일런트 교수는 말한다. 에릭슨 교수는 '세상의 이치와 영적 통찰에 도달하는 경험'이라고 정의했다. 이런 경지를 '신(神)의 경지'로 인식하고 있는 나로서는 이해하는 것이 힘들었으나, 이 세상에 '나'라는 존재는 오직 하나뿐이며 한 번 태어나 한 번 죽는 존재라는 사실을 겸손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바로 통합이라는 부연설명은 쉬웠다.


즉, 나이가 들면서 신체적 정신적 기능이 쇠하다가, 기력을 다하는 순간에도 지혜는 남아 있으면서 바로 통합의 도구가 된다. 지혜 덕분에 우리는 죽음 앞에서도 초연해질 수도 있고, 배우고 성취해 가면서 어느 순간 통합을 경험하기도 한다. 나이를 먹는다고 모두가 경험하는 것은 아니다. 죽을 때까지 경험하지 못하는 사람도 많다.


이상의 여섯 단계가 에릭슨 교수가 '인간심리발달' 연구를 통해 확립한 이론이며, 베일런트 교수는 연구 대상자의 사례로 이 과정들을 실증하고 수정 보완했다. 단지, 문맥상 문장이나 부분적인 뜻을 이해하는데 어려운 번역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대학에서 국문학, 대학원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사람으로 정신분석이나 심리학과 거리가 먼 번역자가 책의 전체 내용에 대한 확실한 이해 없이 영어문구 자체를 한글로 옮겼던 탓일 거라고 추측했다.


다음은 연구 대상자들 중에서 대표적인 사례들을 엮어서 그들이 느끼는 행복과 불행을 엿보려고 한다. 그들에게서 배우는 교훈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지 간에, 성공적으로 나이 드는 과정에서 거울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책의 순서에는 상관없이 첫 번째 사례로 모든 조건이 완벽했던, 그랜트 집단의 올리버 홈스 판사를 선택했다.


사례 1. 완벽한 행복의 소유자 '올리버 홈스'


훌륭한 부모, 완벽한 배우자, 잘 성장해준 좋은 자녀를 둔 사람보다 더 행복한 사람이 있을까. 나는 평생 이런 조건을 가진 사람을 상상해 본 적조차 없다. 쇼윈도 너머의 마네킹을 쳐다보듯 이 사람의 인생을 들여다 보자.


아버지: 미국을 대표하는 정형외과 의사. 부인은 "동료의사들은 남편이 환자들에게 어떻게 그토록 친절한지 이해 못해요. 그는 병들어 고난에 처한 사람들에 대해 깊은 연민을 갖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그를 면담한 정신과의사 연구원은 이렇게 기록했다. "자기 가족에 대해 매우 분명하고 생생하게 설명해 주는 모습에 감동을 받았다."


어머니: "그녀가 친절하고 온화한 성품을 지닌 진지한 여성이라는 것에 감명받았다. 우리에게 장난을 거는 올리버의 어린 동생들을 금새 진정시켰다. 그녀는 현명하고 지적인 어머니였으며, 차분한 감성의 소유자였다."고 어머니를 면담한 연구원이 기록했다.


부모의 생활방식과 친척: 그들은 부유했지만 자신들을 위해 돈을 쓰는 일은 거의 없었다. 하인을 두지 않았으며 검소한 가재도구를 사용했다. 대신 자녀들에게 개인교습이나 음악레슨, 스케이팅을 배우게 하는데는 돈을 아끼지 않았다. 가족 중에 정신 계통 병을 앓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고모나 삼촌들도 간호사, 교사, YMCA 지도자로 일했다. 올리버가 하버드 법대를 졸업했을 때, 아버지는 그에게 캠브리지(하버드 대학이 위치한 보스턴 외곽 도시)에 집을 사주었다. 


올리버 홈스의 부인 세실리: 초등학교 3학년 때 처음 만났던 그들은 11학년까지 서로에게 관심이 없었다. 고등학교 학생회장이었던 올리버에게 세실리는 친구 이상이 아니었다. 그들이 사랑을 시작한 것은 대학 1학년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올리버가 입대하기 직전에 결혼했고 50년이 지난 뒤에도 여전히 행복한 결혼생활과 성공적인 노후를 보내고 있다.


자녀들: 1남 2녀를 두었다. 아들은 보스턴 시내 빈민가에서 목사로 일한다. 자녀들에게 배운 것이 있다면 무엇인지를 묻는 질문에 올리버는 이렇듯 겸손하게 대답했다. "주디로부터는 쾌활함을, 자넷에게는 창조성을, 마크로부터는 이타심을 배웠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그 아이들을 따라잡을 수 있다는 것은 아닙니다."


결혼하고 9년 뒤, 인터뷰에서 '가장 존경하는 인물'을 묻는 질문에, 올리버는 주저없이 세실리를 지목했다. "아름답고 지적이며 예술감각이 뛰어나요. 마음씨가 곱고 참을성이 많으며, 특별나게 합리적인 편은 아니지만 감수성과 상식을 잘 조합해서 직관적으로 문제에 접근합니다."라고 덧붙였다.


62세가 된 올리버는, "아이들의 엄마이자 내게는 연인입니다. 아내는 아낌없는 지지와 성원을 내게 보내주었어요. 모든 사람들이 나처럼 행복한 결혼생활을 누리기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77세에는 "죽을 날이 가까워질수록 아내를 더 깊이 사랑하게 된다."고 털어놓았다.


홈스 부부에게 서로의 어떤 점이 좋은지를 물었다. 올리버는 "나는 세실리의 사랑과 자신감, 판단을 믿어요. 그녀에게서 기쁨을 찾지요. 다른 누구보다도 아내와 함께 하는 시간이 즐거워요. 미래가 불투명하게 보일 때는 세실리에게 위로를 청합니다."라고 했으며, 세실리는 "올리버는 헌신적이며 나를 동등하게 대해 줘요. 아버지로서도 헌신적이지요. 우린 함께 즐거움을 나눠요."라고 답했다.


그들은 섬에 여름별장을 갖고 있었다. 여름에는 별장에서 함께 정원을 가꾸고 페인트칠을 하며 시간을 보내지만, 7,8월에는 아이들에게 양보하느라 가지 않는다고 했다. 올리버 부부는 자신의 부모와 세실리의 부모, 아이들과도 몇 블록 떨어지지 않는 가까운 곳에 살았는데, 당시 미국에서는 매우 보기 힘든 가정이었다.


<후기>

정체성을 20대로, 통합을 60대라고 말한 것은 책에서는 언급하지 않은 것으로, 제가 알기 쉽게 전하려는 목적으로 조작(?)한 것이니까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단지 통합의 시기를 60세에서 75세까지의 과정이라는 언급은 있습니다.


67명의 하버드 그룹을 50세와 75세에 조사한 바에 의하면, 대체적으로 이타주의와 유머가 증가했다고 합니다. 여기서 이타적이라는 것은 '다른 사람을 위해 자기가 해주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바라는 일을 해주는 것이다.'라고 정의했습니다.


올리버 홈스의 인생 엿보기에서 어떤 교훈을 얻으셨는지요? 책 144쪽에는 이렇게 기술하고 있습니다.

- 오래 지속해온 행복한 결혼생활과 노화 사이에는 공통적으로 인내와 희생, 성숙과 유머감각이 필요하다. 

그들도 싸움을 한 적이 있는데, 화가 난 세실리가 올리버에게 국자를 던졌다고 합니다. 그걸 낚아 챈 올리버가 '잡았다.(I got it)'고 소리쳤고, 세실리가 '잘했군.(Nice job)'하고 맞받아 서로 크게 웃고 끝냈답니다.


마지막으로 올리버 홈스는 '성공적인 나이 들기' 비결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생에 정답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더라도 소크라테스처럼 끝없이 진리를 탐구해라. 프로이트가 말했듯이, 일하고 사랑하라. 우리가 살아가는 지구를 사랑하고 돌봐라. 우울할 때가 아니면 절대로 지난 날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마라. 이겨내기 어려운 문제들이 의외로 쉽게 해결될 수 있다. 미래를 걱정하지 마라. 모든 것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78세까지도 복용하는 약이 없을 정도로 건강했으며, 80세까지 일주일에 40시간을 일한 올리버의 명언이었습니다. 눈을 감는 그 순간까지 우리 인생은 끝난 게 아닙니다,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