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민자의 시선이 머무는 곳

성공적으로 나이 들기 (6)

① 정체성(Identity)


정체성을 갖게 되면서 부모와 갈등을 겪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결혼해서 아이가 생기고 난 후에 발생한 어떤 사건으로 인해 옳다고만 여겼던 부모님(엄마)에게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더 이상 부모님에게 얽매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경제적인 도움까지 회피할 수는 없었다.


성인발달연구 대상자들 중에 쉰살이 되었어도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한 이들은 부모에게 종속되어 살거나, 시설에 의존해서 삶을 이어갔으며, 친구관계도 끊어졌고, 일이나 사회생활, 취미 등 어느 곳에서도 성취감이나 즐거움을 느끼지 못했다.


이민 1세들은 2세들의 정체성 문제를 도외시하기 쉽다. 살기 좋은 나라에 데려다 놓았으니 무슨 불만이 있겠느냐는 지레짐작이 앞서고, 언어문제도 없지 않느냐는 일방통행식 사고도 곁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들 생각은 다르다. 극도로 예민한 10대 아이들이 백인들 틈에서 어눌한 발음으로 겪어야 하는 학교생활이 어떨지 생각하는 부모는 거의 없다. 내성적이었던 중학생 시절 신김치 뿐인 도시락 반찬이나, 깨진 안경을 쓰고, 빛바랜 교복을 입고 다니는 것도 그렇게 창피했다. 그런데 아이들이 피부색이 다르다고, 혹은 마늘 냄새 난다는 근본적인 문제로 따돌림을 당한다면.


어제 일요일 낮에 우연히 TV에서 어떤 방송을 봤다. 전세계에 흩어져 사는 한인 2세 젊은이들이 모여, 통일을 주제로 퍼포먼스를 벌이는 프로였다. 독일, 덴마크, 호주, 볼리비아, 미국에서 왔으며 혼혈부터 2세들까지 다양했다. 볼리비아에서 태어난 젊은이는 자원입대하고 한국국적을 회복했다. 보스턴에서 온 10대 후반의 여자아이가 이렇게 말하는 걸 들었다. "저는 한국에 처음 왔어요. 그런데 너무 편하고 좋아요. 여기는 다 한국사람이잖아요. 위축될 필요가 없어서 너무 좋아요."


우리는 한국에서 젊음을 보냈다. 이민을 선택했을 때는 백인들 틈에 살 것을 각오했기에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런 선택을 한 우리 시각으로 보면, 아이들이 겪는 정체성 문제는 보이지 않는다. 그들에겐 자신이 선택한 삶이라기 보다는 부모에 의해 강요된 (자기들 생각에) 정상에서 이탈된 삶일 뿐이다. 다행인 것은 대부분의 2세들이 (다른 친구의 부모에 비해) 고생하는 부모들을 실망시키지 않으려고 반듯하게 성장한다. 물론 그렇지 않은 아이들도 있지만.


② 친밀감(Intimacy)


정체성 확립을 통해 가족으로부터 독립한 갓 성인이 된 이들이 깨닫는 것은, 세상에는 '나'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존재하는 무수한 '나'를 경험하며 타인과 적극적 친밀감을 쌓아간다. 남성연구대상자들은 대부분 아내를 통해 친밀감을 경험했다. 그랜트 집단의 동성애자는 2%뿐이었고, 이너시티 집단은 선정 때부터 동성애자를 제외시켰다. 터먼 그룹의 미혼여성들 중에 동성친구와 친밀감을 유지하는 경우는 있었다.


친밀감은 '자전거 타기'와 같아서 한 번 생긴 친밀감은, 특별히 노력하지 않아도 유지할 수 있다. 연구에서는 인간도 결국 대를 잇기 위해 짝을 찾는다는 점에서는 다른 동물과 비슷하다고 보았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가족으로부터 독립한 후에는 다른 사람들과 친분을 쌓아간다. 그중에서도 특별한 친분이 있다. 이성이다.


하지만 거의 100년 전, 미국에서 태어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로서 현재의 시간과 한국인의 시각으로는 모순이 많다. 우리 부모들은 얼굴도 본 적이 없는 사람들과 혼인해서 평생을 살았다. 카페를 통해 만난 내 또래의 어떤 분은, 아이를 갖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고 결혼했다고 들었다. 대를 잇겠다는 사명감은 없었지만, 친밀감은 필요했다는 의미다. 이런 추세는 잘 사는 선진국에서 점점 심해져서 한국이건 미국이건 요즘 젊은이들은, 'DINKs(Double Income No Kid)'라고 불리며 '무자식(No Kid)'이 점점 추세가 되어가는 느낌마저 든다.


이의 부작용으로 한국은 서울의 초·중·고등학생 수가 1989년에 비해 23년만인 2012년에는 절반으로 줄었다.(참고자료) 또한 2년 후인 2018년부터 '고령사회(65세 이상 인구 14%)'로 진입하고, 거기서 8년 후인 2026년부터 '초고령사회(20%)'에 들어서는 급격한 변화를 겪게 된다. 반면에 미국은 이미 작년에 고령사회로 접어들었으나, 21년 후인 2036년에야 초고령사회로 들어선다. 우리 카페에 손주 자랑을 하는 분들은 복 받은 분들이다. 부러워하는 분들이 적지 않다.


내 부모님은 중매로 만났다. 아버지의 이종사촌 동생과 엄마의 큰 오빠가 아는 사이였다. 혈혈단신으로 월남하여 막노동으로 어렵게 혼자 사는 이종사촌 형님이 안타까웠을 것이고, 전쟁으로 20대의 나이에 청상과부가 된 막내 여동생이 애처로웠을 것이다. 부모님을 소개한 두 분은 사고와 병으로 일찍 세상을 떠났다. 그렇게 부부가 되었어도 평생을 같이 할 수 있었던 것은 의무감과 자식들 때문이었을 거라고 추측한다. 내가 보기에도 부모님에게 친밀감이란 없었다.


친밀감은 '사랑'이라는 감정의 결과물이다. 사랑으로 맺어진 현대인들이 의무감으로 맺어진 전 세대보다 이혼이 훨씬 흔한 원인이 궁금하다. 친밀감이 의무감보다 지속되기 힘든 것일까. 자식이 없는 의무감은 아무 것도 아닐까. 캘리포니아에 살 때 참여했던 산악회는 이혼한 40대 남녀들이 주축이었다. 불륜의 냄새가 짙었으나 겉보기에는 좋은 직장에 다니고 신수가 꽤 괜찮게 보이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가진 수많은 사연들을 비전문가인 내가 어찌 짐작이나 할 수 있으랴!


③ 직업적 안정(Career Consolidation)


'Career Consolidation'을 '직업적 안정'이라는 게 맞는지 의심부터 간다. 영어가 짧은 내게도 어휘가 풍기는 뉴앙스가 사뭇 다르다. 영어에 뛰어난 분의 도움이 있었으면 좋겠다.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성인으로 독립적인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직업은 필수적이다. 짐작하다시피 그랜트 그룹의 대부분은 의사나 변호사와 같은 엘리트 직업(심지어 케네디 대통령까지)을 갖는다.


에릭슨은 이 단계를 말할 때, 자기 정체성(취미)과 직업 정체성(보상)을 명확히 구별하지 않았으나, 베일런트는 만족, 보상, 역량과 헌신이라는 네 가지 기준이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아내와 엄마'나 '남편과 아빠'의 역할도 엄연한 직업인 것이다. 네 가지 모두 따라오기 때문이다.


자신의 직업을 공고히 하려는 노력이 이기적으로 보일 수는 있다. 허나 그런 이기심조차 없는 사람이라면 '자아'마저 상실하기 쉽다고 보았다. 베일런트는 예로 입센의 소설 '인형의 집'을 들었다. 아내와 엄마의 역할만 고집하는 남편과 자식을 버리고 달아났기에, 노라는 자아를 찾을 수 있었다. 베일런트는 '인형의 집(직업을 상징하는 메타포)'을 탈출하는 이기심이 있었기에, 자신의 딸에게 정신적 조언자가 되겠다는 희망을 품을 수 있었다는 해석을 했다.


사회 초년생 시절, '청기와 장수'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옛날 '청기와 장수'들은 기와 굽는 방법을 아무에게도 안 가르쳐주었다고 한다. 자기 직업을 지키겠다는 '직업의 공고화' 정신이었을 것이다. 특히 이런 일은 기능직 직원들에게 흔했다. 예를 들어 전화 단자함의 순서를 혼자만 아는 노트에 적어두고 아무에게도 알려주지 않았다. 전화에 문제가 생겼을 때 이에 대한 정보가 없으면 고치는데 애를 먹는 것은 당연했다.


아들이 새 직장을 시작한 것도 3달이 넘었다. 수습기간 중에 여러 부서를 돌아다니면 일을 배웠는데, 선임자들이 잘 가르쳐주지 않는다고 한다. 매니저가 일의 내용을 알려주라고 해도 담당자들이 꿈쩍하지 않는다는 거다. 덕분에 시간이 많아져서 어깨 너머로 본 것을 스스로 공부하며 터득하기도 하면서 재미있게(?) 보낸다는 전언을 들었다.


1983년 미국연수를 다녀온 나는, 회사에 진 빚(?)을 갚기 위해 어떻게든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을 후배직원들에게 전달하려고 애썼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4~5개월에 불과한 연수교육에서 배운 것보다는 돌아온 이후, 압박감 때문에 스스로 공부해서 깨친 것이 더 많았다. 그때 내게 OJT(On-the-Job Training) 교육을 받았던 친구들 중에는 나를 '사부'로 호칭하며 두고두고 고마움을 표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나중에는 직장에서 속절없이 강퇴 당하는 계기가 되었을 수도 있다.


직장생활을 시작하여 10년 이상 열심히 일했다면, 30대 중반부터는 일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쌓이고, 직책도 맡으면서 어느 누구보다 자기 분야에 전문가가 되어 있을 시기다. 그러나 적성에 맞지 않는 직업을 선택했다거나, 게을러서 일에 흥미를 붙이기 힘들어 자신의 직업을 공고히 하지 못했다면 어떻게 처신해야 할까. '청기와 장수'가 되어 기와 굽는 방법을 철저히 숨기거나, 소속된 조직에 아부나 하면서 비굴하게 처신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후기>

책의 내용에 지난 세월을 대입해보면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 많았습니다. 어렴풋이 추상적으로 알고 있어서 새벽 안개속에 희미하게 보이 실체를 대낮 햇빛에서 보는 느낌이었습니다. 학문의 기능이란 이런 것이겠지요. 글을 작성하면서 읽은 책의 내용을 스스로 정리하는 의미도 있습니다. 또한 베일런트 교수의 연구는 아니지만, 내가 경험했던 것과 주변상황을 맞춰보는 것은 또 다른 재밋거리입니다.


그리고 이런 것은 학교에서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생에서 만나는 고난과 시험은 영어단어를 몇 개 더 외운다거나 미적방정식을 푼다고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제가 만약 학교에서, 아니 학교가 아니더라도 이런 삶의 지혜를 보다 일찍 어디선가 배웠더라면 훨씬 지혜롭게 고난을 극복했을 것이고, 보다 가치 있게 인생을 살았을 거라며 스스로에게 위안을 주었습니다,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