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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의 시선이 머무는 곳

성공적으로 나이 들기 (4)

모던 재즈에 심취했던 젊은이가 있었다. 50세 이후에 클래식을 더 좋아하게 된 그는, 모던 로큰롤에 빠진 자식들이 못마땅했다. 자신은 달라진 것이 없고, 요즘 젊은이들의 음악적 취향이 자신들과는 달리 저급해졌다고 폄하했다. 하지만 그랜트 그룹에 속한 그의 옛 인터뷰 기록을 조사해보니 변한 사람은 바로 '그'였다. 로큰롤을 좋아하는 자식들도 그의 나이가 되면 클래식에 빠질 가능성이 다분하다.


이 짤막한 사례에 교훈이 있다. 그랜트 그룹은 내 선친과 비슷한 연령대다. 물론 아버지는 하버드는커녕 국민학교조차 나오지 못한 분이니 사례를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 "아새끼래, 민하게 구누만. 노래 같은 걸 들으라우. 그거이 괴함이지 노래네!" 비틀즈나 딥퍼플을 듣는 나를 이해하지 못하셨다. 내 아이들이 20대에 즐겨 들었던 랩을 나 역시 이해하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였고, 떼로 나와서 부르는 '소녀시대'나 '슈퍼주니어'도 이해하기 힘들었다. 아니, 그보다 훨씬 이전 '서태지와 아이들'부터 유행가 듣는 것을 포기했다. 차라리 아버지가 즐겨 들었던 '두만가~앙♪ 푸우른 무~울에♬'가 훨씬 좋았다.


아버지가 맞았던 것도, 내가 틀린 것도, 내 아이들이 저급한 것도 아니다.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틀린 것은 아니다. 내가 '서태지' 음악을 마음에 들지 않은다고 해서 서태지가 천재라는 것까지 부인할 수는 없다.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내가 그만큼 음악에 관심이 없다는 뜻이고, 관심이 없으니까 이해하려는 의지도 없어서 공부하고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컴퓨터에 관련되면 문제가 달라진다. 그 분야에 이해하지 못하는 새로운 기술이 나오면 나는 이해될 때까지 인터넷을 뒤진다.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도 좋을 만큼 관심이 많기 때문이다.


사람은 변한다. 변한다는 것은 생각이 바뀐다는 의미다. 생각이 바뀌면 사람은 변한다. 그리고 생각을 바꾸는 것은 처한 환경이 변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환경은 사람을 변하게 만든다는 게, 지난 십 수 년 간 경험으로 터득한 지론이다. 그런 지론을 극적으로 뒷받침해주는(Endorsement) 책을 만났으니 물 만난 고기처럼 즐겁다. 가능만 하다면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전부 외워버리고 싶다는 욕심마저 생긴다. 젊은 노인(Young Old)의 초입에 진입했으니 고령 노인까지 20년 동안 삶의 지침서로 삼아도 좋을 것 같다.


내가 '환경'이라고 생각했던 것을, 성인발달연구에서는 '시간'으로 보았다. '환경'을 바꾸는 가장 보편적이고 큰 요인이 '시간'임은 분명하다. 책을 읽어보니 나를 바꾼 것, 역시 환경이 아니라 시간이었다. 지난 글 말미에, 25세의 소원은 자신에 대한 것이 92%나 되는데 반해, 60세가 되면 그 소망이 자신에 대한 것은 축소되고 가족과 사회, 나아가서 인류에 대한 것으로 영역이 확대된다는 통계를 제시했다. 지난 글 'Google News 사용하기'에서 밝혔듯이, '세상 돌아가는 일'에 지독한 근시였던 사람이 시사나 뉴스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 실패한 이민자로 제주로 돌아와 할 일이 없는 탓에, 다시 말해서 환경이 바뀌어서 그런 줄 알았는데, 책을 읽어보니 그게 아니고 그런 시간이 내게 온 것뿐이었다.


지난 5월 제주를 방문한 '실콘짱'님과 격론을 벌인 적이 있다. '헬조선'을 옹호하는 '실꼰짱'의 주장을, 나는 반대 논리로 맞서며 강하게 부인했다. 당시 전개했던 내 논리는 이랬다.


- KBS에서 방영한 '지옥고(지하방, 옥탑방, 고시원에 사는 청춘을 의미함)'라는 프로그램을 봐라. 고향에서 살면 자기 집에서 아무 불편 없이 살 수 있는 젊은이들이 서울에 올라와 스스로 고생을 사서 하는 거다. 자기들이 좋아서 하는 일인데, 어떻게 '헬조선'이라고 할 자격이 되는가.


- 금오도에서 만난 '금오도'님 설명에 의하면, 7~80 노인들도 방풍나물 채취로 하루에 몇 십 만원을 번다고 하더라. 고기잡이 어선에서는 먹여주고 재워주고 한 달에 200만 원 이상 주어도 일할 사람이 없어서 선원은 동남아 사람들뿐이라고 하더라. 요즘은 고기잡이 어선도 자동화가 되어 노동도 예전처럼 힘들지 않다더라. 서울의 편의점에서 최저임금을 받고 스스로 택한 고생을 하며 '헬조선' 운운할 게 아니라, 금오도 같은 곳에 가서 나물을 채취하던가 어선을 타던가 하면 되지 않느냐?


- 20대 젊은이들인 내 조카아이들을 보면 얼마나 밝고 명랑하게 사는지 모른다. 'SKY' 출신이 아닌 조카아이도 대기업에 취직해서 일 년에 두 번 해외여행을 다니고 주말마다 놀러 다니기 바쁜데, 무슨 말도 안 되는 '헬조선'이냐? 내가 그 나이 때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다.


우리의 논쟁은 서로의 논리 일부만 수용하는 선에서 결론 없이 끝났지만, 이해가 부족한 부분이 무엇인지 알게는 해주었다. 내가 부족했던 점은 인간의 욕망에 대한 이해였다는 걸 깨닫게 된 것은 '실콘짱'이 떠난 후에 두고두고 그때의 논쟁을 되씹었기 때문이다. 특히, 20대의 욕망을 간과했다. 우리는 정보에 취약한 세대에 살았다. 가족과 이웃, 그리고 친구에게 듣는 정보가 전부였다. 따라서 상대적 박탈감도 덜했고, 무엇보다 가족과 친구와의 친밀감은 모든 부족함을 상쇄했다. 즉, 눈높이가 내가 살았던 경험과 기준에 맞춰있어서 다른 위치에 있는 사람을 볼 수 없었고 이해도 부족했다.


그들의 눈높이에 기준을 두면 모든 것이 달라 보인다. 먼저 세상이 변했다. 해체 중에 있는 가정은 더 이상 상실감을 보상하지 못하고, 끼리끼리 어울리는 친구들은 허무와 좌절감의 깊이만 더하는데, 인터넷 발달로 모든 정보는 낱낱이 공개되어 있다. 20대의 욕망은 누구에게도 지고 싶지 않다는 거다. 20대의 뜨거운 피는 부족한 자신의 실력과 능력을 쉽게 인정하기 보다는 사회의 탓으로 돌리기 쉽다. 정치인이나 재벌 등 기득권자들이 저지르는 반칙과 부정은 그들에게 더 이상 좋은 핑계거리가 될 수 없다. 서울에 있는 대학이든, 지방의 이름 없는 대학을 나왔든 같은 대학 졸업자 아닌가.


이런 사회가 된 책임은 어디에 있을까. 단연코 정부다. 짧은 시간에 고도 산업화 사회를 추구하면서 가정은 해체되었고,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 경쟁에 낙오된 사람들을 양산했으며, 외고, 과학고, 자사고 등 특목고를 만들어 끼리끼리 어울리게 제도화해 놓았다. '승자독식(Winner takes all)' 구조를 만들어놓고 온갖 과실은 다 차지하면서, 정부는 공장에서 나오는 불량품을 폐기처분하듯 부산물인 낙오자들을 버려두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1970년대 백 개도 안 되는 대학을, 졸업자를 흡수할 어떤 방안도 없이 400개까지 늘리고, 등록금은 자율화하다시피 마구잡이로 올려놓고는 학자금을 무분별하게 대출 받게 해서, 수많은 젊은이들을 필요도 없는 상품(학위)을 사도록 유도해서 빚쟁이로 만들어 놓은 책임 말이다.


벗을 수 없는 정장차림을 하게하고, 금오도에 가서 방풍나물을 채취하고 고기잡이 어선에 올라 그물을 거두라고 하면 어느 누가 기꺼이 나설까. 더군다나 혈기왕성한 20대라면 죽으면 죽었지 하지 않을 것이다. 정장(대학졸업장)을 사주신 부모님에게 죄송스러워, 차라리 자살하는 것이 치욕에서 벗어나는 길인지도 모른다. 오세훈 전 서울 시장이 '동남아 저개발국에 가봐라'거나, 박 대통령이 8·15경축사에서 '헬조선'을 빗대어, “세계가 부러워하는 우리나라를 살기 힘든 곳으로 비하하는 신조어들이 확산되고 있다”고 한 것은, 그야말로 아무 의식이 없는 '승자(Winner)'의 무책임한 독백에 지나지 않는다.


이해(Understanding)는 위(Over)에 있으면 절대로 불가능하다. 아래(Under)에 서(Stand)있을 때만 가능하다.


<후기>

책을 읽은 소감을 쓴다는 게 엉뚱하게 흘러갔습니다만, 책과 전혀 관계 없는 내용은 아니기에 그냥 게시합니다. 원래 쓰려고 했던 '성인이 발달(변)해 가는 과정'은 다음 번으로 미루겠습니다. 책이 전하려고 하는 메시지는 공감이 가지만, 사회과학 분야의 책이 그렇듯이 이해하기가 쉽지 않아서 몇 번 씩 읽어야만 전하려는 뜻을 겨우 파악하는 정도입니다. 또 번역한 책이라 잘못된 부분이 많아 이해를 더욱 어렵게 합니다. 제가 적당히 고치기도 하면서, 가급적 쉽게 전달하고자 하는 노력을 가상(?)하게 봐주시기 바랍니다.


성인이 변해가는 과정으로서, 일리가 충분한 여섯 단계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① 정체성(Identity) ②친밀감(Intimacy) ③직업적 안정(Career Consolidation) ④생산성(Generativity) ⑤의미의 수호자(Keeper of the meaning) ⑥통합(Integrity)의 단계입니다. 제가 이걸 미리 말씀드리는 것은, 도대체 이 번역이 맞느냐는 의문 때문입니다. 특히 네 번째 생산성이라는 번역은 너무 이상합니다. 책에서도 문맥상 도저히 맞는 어휘가 아닙니다.


원어로 읽을 수 있는 정도의 독해력이 아쉽기만 합니다. 이래서 젊었을 때, 더 열심히 공부하지 않은 후회가 밀려옵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아주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평생 간직할 책으로 생각해서 오늘 주문도 할 생각입니다. 책장수로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