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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의 시선이 머무는 곳

성공적으로 나이 들기 (5)

('Aging Well'을 한글로 어떻게 바꿀까 고민하다가, '성공적으로 나이 들기'가 가장 적합한 것 같아 바꾸었습니다. '잘 나이 먹기'로 직역하면 아무래도 이상한 듯해서 원제목을 사용했었는데, 영어 사용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50이 넘어 60대로 접어들거나 이미 접어든 사람에게 '성공적으로 늙어가기'보다 중요한 것은 없을 겁니다. 나이 드는 것도 억울한데, 최소한 '꼰대' 소리는 듣지 말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성장기의 성격이나 배움의 깊이 같은 사회 초년생들에게 중요하게 작용했던 요소들은, 나이가 들어가면서는 영향력이 차츰 줄어들어, 노후의 성공여부에는 관계가 없어진다. 예를 들어, 어린 시절 내성적이고 소심했던 겁쟁이나 외향적이고 용감했던 사람이나 6~70대가 되면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물론 젊었을 때 성공하기에는 외향적인 성격이 유리하다.


노후에까지 영향을 끼치는 젊었을 때의 경험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 운동의 영향: 젊은 시절에 했던 규칙적인 운동은 노년의 신체적 건강보다 정신건강에 더 긍정적이다. 우울증은 신체건강에 특히 악영향을 주는 요인으로 밝혀졌다. 예를 들어, 50세에 우울증을 경험한 사람들은 노후에 만성질환을 앓게 되는 경우가 많았고, 63세 이전에 사망할 가능성이 70% 이상이었다. 또한 같은 질환을 앓더라도 비관론자가 낙관론자보다 상대적 고통이 심했다. 젊은 시절에 운동을 했던 사람은 중년에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줄어들고, 노년에도 낙관론자가 되기 쉬웠다.


- 전쟁의 영향: 연구 대상자의 80% 이상이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 격렬한 전투를 경험한 사람일수록 신체적 질병에 더 잘 걸렸고 일찍 사망했다. 최근에 제주에 사는 지인이 69세에 담도암으로 사망했다. 이분은 군복무 시절 사격훈련장에서 오발로 전우가 사망하는 바람에 남한산성(육군 교도소)에 가야했는데, 이를 피하기 위해 (영화 '실미도'와 비슷한) 특수부대를 지원하는 바람에 끔찍한 훈련과정을 겪었다. 이런 트라우마가 있는 분들은 오래 살지 못한다는 게 일반적이다. 나중에 정부를 상대로 고소를 해서 억대의 보상을 받기는 했다. 한국전쟁 기간에 혹독한 시련을 겪었던 내 선친은 63세에 돌아가셨다.


- 인간관계의 영향: '행복하고 건강한 노후를 결정짓는 결정적 요인은 학식이나 많은 재산이 아니라 사회적 인간관계'라는 것이 베일런트 교수의 주장이다. '성숙한 방어기제' 다음으로 노후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라고 한다. 40년 넘게 진행한 연구를 통해 배운 것이 무엇인지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교수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라는 사실이다'라고 답했다. 친척이나 친구, 사제관계에서도 돈독한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지만, 65세까지 만족한 삶을 살았던 연구 대상자들의 93%가 형제자매간의 우애가 특별했다는 것은 그만큼 더 중요하다는 증거다.


나이 듦이 쇠퇴가 아니라 발전이라는 개념을 최초로 정립한 사회과학자, 에릭 에릭슨(Erik Erikson, 1902~1994)은 "50세 이후의 삶은 아래쪽으로 향하는 내리막길이 아니라 바깥으로 뻗어나가는 길이다."라고 말했다. 나이가 들수록 사회적 지평이 확장된다는 것이다. 오랜 세월을 살아오면서 남성이나 여성 모두, 보다 '외향적'이고, '자기 확신'이 강해지며, '다정한 성격'을 지니게 된다고 한다. 한마디로 사교능력의 향상을 보여준다. 베일런트 교수는 버클리 대학 에릭슨 교수의 이론을 자신이 실증했다며 그의 연구를 인용했다.


연구는 어디까지나 연구다. 통계적으로 그런 경향이라는 것이지 모두에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공식적으로 세계 최장수 인간으로 기록된, 122년을 산 프랑스 잔 칼망(1875~1997) 할머니는 117세까지 96동안 담배를 피웠다. 흡연에 대한 연구가 수명을 단축한다는 사실적 통계에 반해, 프랑스 할머니나 처칠 수상은 그런 통계에서 벗어난 셈이다. 이런 예외는 얼마든지 있다.


이 이론에 '나'를 대입해 보았다. 학창시절 내성적(introverted) 성격이었던 것이 외향적(extroverted)으로 변한 것만은 분명하다. 하지만 다정한 성격으로 변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아이들로부터 듣는 평가는 '아빠가 예전에 비해 많이 달라졌다'라는 것이다. '달라졌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예전'에 어땠는지 확인하면 된다. '예전'에 부하직원이 하는 보고를 오래 들으려 하지 않았다. '자초지종'을 설명하려 들면, '자초지종'은 빼고 결과부터 말하라고 강요했고, 결과를 들으면 문제만 파악하려 했고 논리적 측면만 따지려 들었지 과정은 생략했다. 나를 싫어하는 측은 차갑다거나 냉정하다고 평했고, 좋게 평하는 사람들은 추진력이나 배짱을 들먹였다.


'예전'에는 아무리 슬픈 영화나 드라마를 봐도 무덤덤했다. 돈 벌어 먹고 살자는 행위로 치부했다. 강자에게는 한없이 움츠러들었고, 약자들은 능력이자 운명 탓이라고 여겼다. 지금은 조금 달라졌다. 슬픈 내용의 드라마가 아니더라도 인간적인 장면에는 눈가가 쉬 젖어든다. '태극기 휘날리며'의 장동건이나, '너는 내 운명'에서 보여준 황정민의 열연에 가슴이 뭉클해진다. 강자의 갑질이나 옳지 못한 행실에 분노가 치밀어 어떤 형태로든 저항하고 싶어서 방법을 찾아보기도 하고, 자살의 원인인 우울증보다는 우울증의 원인을 제공하고 방치한 사회로 비난의 화살을 돌리고 싶어진다. 이런 것이 '다정'을 뜻하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자기 확신'이라는 용어가 제대로 번역된 단어인지 의심스럽다. 'Generativity'를 '생산성'이라고 번역한 것만큼이나 잘못된 것 같은데, 책에는 영어 병기가 없어서 알 수 없다. 글자 그대로 'Self Conviction'이나 'Self Confidence'라면 문제가 있을 것 같다. 노인의 '자기 확신'은 고집이나 다름없고, 이는 곧바로 '꼰대'와 연결되기 때문에, 긍정적 효과보다는 부정적 측면이 더 부각되는 느낌이다. '귀가 부드러워진다'는 이순(耳順)은, '남의 말을 들을 줄 안다'는 의미로 해석하면 서로 충돌한다.


'Generativity'의 경우 적당한 우리말이 없다. 억지로 번역하자면 생산성이 가장 가까운 단어지만, 'Productivity'와는 전혀 다른 뜻이다. 위키피디아에서 찾아본 의미는 꽤 복잡했다. 내가 이해한 바로는 '연륜의 지혜가 창출하는 생산성'이다. 가방끈이 길지 않거나, 지능지수가 높지 않더라도, 나이가 들면 대부분 나름의 지혜가 생긴다. 학창시절에는 책을 읽어도 액면 그대로 이해할 뿐이지만, 50대 이후에 책을 읽으면 자신의 경험을 반추해서 저자가 생각하지 못한 이론을 만든다던가, 전혀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올 수도 있다. 즉, 이런 일련의 과정을 에릭슨은 'Generativity'라고 정의했다.


이처럼 '자기 확신'도 억지로 번역한 결과일 것이라고 추측해서 여기서는 언급을 피하려고 한다.


에릭슨은 성인의 발달과정을 여섯 단계(Stage)로 설명했다. 베일런트는 단계보다는 과제(Task)라는 단어가 더 적합하다며 사용했지만, ① 정체성(Identity) ②친밀감(Intimacy) ③직업적 안정(Career Consolidation) ④생산성(Generativity) ⑤의미의 수호자(Keeper of the meaning) ⑥통합(Integrity)으로 각 단계가 주는 의미가 그럴 듯하다.


첫 번째 단계가 정체성(Identity)의 확립이다. 사람이 엄마의 자궁에서 나오는 것으로 생명이 시작되듯이, 유아에서 성인으로의 탈바꿈은 정체성으로부터 출발한다. 정체성은 부모로부터 경제적인 독립뿐 아니라 정치적 견해, 취미, 가치관, 취향을 포함한 사고의 독립을 뜻한다. 가족 중심의 가치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가치를 갖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정체성의 측면에 오늘날의 한국사회를 대입하면 많은 문제점이 노출된다. 자식들의 직장이나 결혼생활에 개입하는 '헬리콥터 부모'들은 자식들의 정체성을 방해하여 결과적으로 자식에게 불행을 초래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자식들이 50이 되고 60이 될 경우에 혼란을 야기할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만의 문제도 아니다. 중국은 한국보다 더 심각하다.


내 경우를 돌이켜봐도 이점에서는 문제가 명확하다. 젊은 시절 나는 무엇을 결정하든 부모님을 염두에 두지 않으면 안 되었다. 내 의지대로 살지 못했고 그 결과가 좋았다고 할 수는 없었다.


<후기>

책의 내용을 완전히 이해하지 않고는 글을 전개할 수가 없습니다. 이해되지 않거나 모르는 단어를 하나하나 찾아가며 읽느라고 시간이 많이 걸리지만, 내용만큼은 심오하고 뛰어난 교훈이 많아서 읽는 분들에게 어떻게든 전달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딱딱한 내용을 재미있게 만들려고 우리 세대의 실제 일어난 일과도 연결시키며 쓰는 사유입니다.


이왕 시작한 일이니 몇 편이 되었든 끝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스웠던 에피소드는 책을 인터넷으로 주문했는데, 단 몇 천원이라도 싼 책을 클릭했더니 그게 종이책이 아니고 전자책이었습니다. 인터넷을 잘 안다고 하는 사람도 이렇게 실수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퀴즈를 하나 내겠습니다. 50대를 지천명(知天命), 60대를 이순(耳順)이라고 하는 것은 다들 압니다. 그러면 2,500년 전 공자님이 언급한 70대의 별칭은 무엇일까요? 구글로 찾아보지 마시고 답하시기 바랍니다,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