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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의 시선이 머무는 곳

가장 살기 좋은 곳

가장 살기 좋은 곳이 있다면 어떤 곳일까?


언제든 따먹을 수 있는 달고 향기로운 열매가 달린 나무들이 있고, 맑은 바다에는 낚싯줄만 드리우면 고기가 잡히고, 어느 곳과 견줘도 될 만한 뛰어난 경치가 있고, 트래픽은커녕 공해나 범죄도 없으며, 추위와 더위도 없는 곳이라면 어떨까?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어 쫓겨난 에덴과 같은 곳 말이다.


2주 전에 KBS 인간극장에서 ‘남태평양의 그 남자’를 여름특집이라는 명목으로 재방영했다. 3년 전 뉴저지에서 감동으로 보았던 프로였지만, 다시 보아도 또 다른 감동으로 다가왔다. 에덴을 연상케 하는 남태평양의 섬나라 미크로네시아에 사는 쉰 살(지금은 53살)의 김도헌 씨 이야기다.(관련글 보기)


그곳의 원주민 여인과 결혼해서 현지의 한국의 해양연구소에서 계약직원으로 일하는 그는 먹고 사는 문제나, 아이들 교육 걱정도, 경쟁사회의 치열함도 없이 낙원이나 다름없어 보이는 곳에서 산다. 그곳에서는 라면 같은 가공음식이 가장 인기 있는 식품이다. 온통 자연에서 얻어진 식재료 밖에 없는 탓이다. 가공음식의 홍수 속에서 자연을 그리워하는 현대인과는 반대되는 삶이다. 자신이 소유하지 못한 것에 더 큰 가치를 두는 인간의 욕망을 증명하는 것 같다.


지금은 카페 이름으로 ‘역이민’을 선택한 것도 후회된다. 한국으로 돌아온 이후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분들에게 내 경험을 공유하겠다는 생각이 앞선 탓이었다. 카페 이름을 바꿀 수 있다면 ‘이민1세대의 쉼터’라든가, ‘이민자들의 공감카페’ 라는 식의 다른 이름이 더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역이민해서 한국에 거주하든, 아이들이 사는 이민지에서 그냥 살든지, 사는 곳이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믿음 때문이다.


이런 생각도 이민과 삼민을 거치고, 미국 동부와 서부에서 살아보고 우여곡절 끝에 한국으로 돌아와, 역이민 카페를 만들어 글을 쓰기 위해 많은 글을 읽고, 많은 사람들과 교감하며 얻은 결과다. 바꿔 말하자면, 서당 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이제는 돗자리(?)를 펴도 될 만큼 되었다, 하하하.


미국이 좋으니, 한국은 살 곳이 못 된다느니 따지는 것을 보면 미소가 지어진다. 어린애에게 아빠가 좋아, 엄마가 더 좋아? 하고 묻는 것과 별로 달라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런 질문을 하고 이런 토픽이 이어지는 것에서 인간의 부질없는 욕심(?)이 엿보인다. 불행해지는 지름길은 남과 비교하는 것이라고 한다. 미국에 살면서 한국의 정든 음식과 언어의 편안함을 그리워하고, 한국에 살면서 깨끗한 자연이나 서늘한 여름이나 따뜻한 겨울을 부러워하는 것만큼 부질없는 짓은 없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쓰지 않는다면 빈자와 차이가 없고, 건강이 넘쳐흘러도 온종일 침대에서 잠이나 잔다면 환자와 다를 것이 없으며, 세상에서 가장 살기 좋은 곳에 살아도 즐기지 않으면 북한에서 사는 것이나 같을 것이다. 남극이나 북극 또는 북한과 같은 극단적이 사회가 아니라면 장소보다는 중요한 것은 즐기겠다는 의지와 자세다. 미국이나 캐나다에서는 그곳의 좋은 점을 즐기면 되고, 한국에서는 한국에서의 장점을 누리는 것이 중요하며 그런 방향으로 논제를 설정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현명하다. 


이민을 했든 안 했든 모든 사람이 공통적으로 추구하는 최종 목표는 ‘행복’이라는데 이의를 달 사람은 없을 거다. 문제는 행복을 만족을 통해서 얻으려고 한다는 것이다. 만족하려들면 남과 비교하기 쉽다. 자기보다 더 좋은 조건을 가진 사람을 보면 만족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미크로네시아 사람들이 쉽게 주변에서 얻는 싱싱한 해산물이나 신선한 열대과일보다 라면을 더 선호하는 이유와 다를 게 없다. 아니, 미크로네시아 사람들을 들먹일 필요도 없다. 50년 전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그때는 모두 유기농뿐이었던) 우리 농산물보다 라면을 더 좋아했으니까.


2,500여 년 전에 살았던 그리스 철학자가 간파했다는 ‘행복을 위한 5가지 조건’에 실마리가 있지 않을까? 


첫째, 먹고 입고 살기에 조금은 부족한 듯한 재산.

둘째, 모든 사람이 칭찬하기엔 조금은 부족한 외모.

셋째, 자신이 생각하는 것의 절반밖에 인정받지 못하는 명예.

넷째, 남과 힘을 겨루었을 때 한 사람에게는 이기고 두 사람에게는 질 정도의 체력.

다섯째, 연설했을 때 듣는 사람의 절반 정도가 박수를 칠 수 있는 말솜씨.


인류의 선각자 플라톤의 통찰이 2,500년 동안 변하지 않았다면, 그래서 행복의 조건이 만족한 수준이 아니라 조금은 부족하고 모자라야 한다면, 나는 행복할 수 있는 모든 조건을 다 갖추었다. 기상 측정 이래 전례 없는 무더위와 열대야와 상관없이 행복할 수 있는 이유는 수없이 많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곳에 살고 있더라도 만족을 추구하며, 더 나은 곳을 찾으려는 당신은 불행할 수밖에 없는 모든 조건을 가졌다. 세상에서 가장 살기 좋은 곳은, 당신이 지금 숨 쉬고 있는 그 장소다. 왜? 지금은 당신의 일생에서 오직 이 순간뿐이기 때문이다.


<후기>

인간극장 '남태평양의 그 남자' 스크린 샷으로 후기를 대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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