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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의 시선이 머무는 곳

잡담한설(雜談閑說) - 13

● 인간이 미래에 더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을 잃었을 때, 오히려 더 행복해질 수 있을까? 그렇다는 이론을 일본사회의 젊은이들을 예로 들어 설명한 책이 있다. 

“오늘의 젊은이들은 ‘내일이 더 나아질 것이다’라는 생각을 믿지 않는다. 그들의 눈앞에 펼쳐져 있는 것은 그저 끝나지 않는 일상일 뿐이다. 그래서 지금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인간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었을 때 비로소 행복해질 수 있다.”고 한다. (관련기사 보기)


● 한국은 OECD 국가 중에서 불명예스러운 기록은 다 갖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중에서도 안타까운 것은 '2015 더 나은 삶 지수(Better Life Index 2015)'에서 11개 세부평가부문 가운데 '사회적 연계(Social Connections)' 부문이다. 사회적 연계란 어려움을 닥쳤을 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친구나 친척, 이웃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을 말하는데, 한국은 72%에 그쳐 OECD 34개 국가와 함께 러시아와 브라질을 포함한 조사에서 최하위를 기록했다. OECD 평균은 88%였다.


단일민족임을 자랑으로 알고 살아온 것을 생각하면 기가 막히는 사실이다. 그만큼 가족과 이웃의 해체가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는 이유는 '돈'일 것이다. 돈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가족이나 이웃이 끼어들 틈이 없는 것이다.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 가족 중에도 그런 사람이 있으니까.


이밖에도 저임금 노동자 비율(24.5%), 연간 노동시간(2,261시간), 10만 명당 산재 사망자(30.8명), 성별 임금 격차(38%) 등도 1위의 영광(?)을 누리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최악은 자살률과 노인빈곤율, 이혼율 등 가족해체에 따른 결과들이다. 이중에서 자살률은 압도적인 1위다.


그러면 OECD에서 벗어나면 어떻게 될까? 한국은 3위로 쳐져서 영광(?)을 다른 두 나라에 넘겨야 한다. 그런데 그 두 나라 중에서 하나가 바로 북한이다. 인구 10만 명당 자살인구가 한국(28.9명)보다 10명이나 많다(38.5명). 전세계에서 우리 민족으로 태어나면 자살할 확률이 가장 높은 셈이다. 1위는 남 아메리타의 인구 80만의 작은 나라, 가이아나(44.2명)다. (관련기사보기)


● 성도착증에 걸린 사회


어제 오후부터 오늘까지 뉴스를 장식한 사건이 부장판사의 성매매 사건이다.(관련기사보기) 그는 대법원 내 법관 동기 중에서도 선두에 있는 장래가 촉망되며, 행실이 젊잖고 수줍은 사람이라고 뉴스는 전한다. 판사출신 최유정 변호사, 검사 출신 홍만표 변호사, 전 지검장 진경준, 청와대 민정수석 우병우에 이은 법조계 인사들의 파행이다.


딱 2년 전인 2014년 8월에는 현직 제주 지검장인 김수창 씨가 지나가는 여고생에게 '바바리맨' 행위로 '공연음란행위'로 체포되는 일도 있었다. 그는 체포된 후 자신이 아니라고 거짓말을 하다가 CCTV 영상을 보여준 뒤에야 인정하기도 했으나, 이번 사건의 주인공인 부장판사는 8월 2일 자정 무렵 성매매 현장에서 단속되어 체포되었으니 오리발 내밀 기회조차 없었다. 단지, 직업을 묻는 단속 경찰관에게 무직이라고 했다고 한다.


나도 한때는 주체하기 곤란할 만큼 욕망이 왕성했던 남자였다. 총각시절에는 물론이고 나이가 훨씬 들어서도, 어떤 이성을 만나면 만지고 싶고 아랫도리에 힘이 들어가기도 했으나, 욕정을 억누를 수 있었던 것은 이성의 힘이었다. 어느 누구라도 내가 싫어하는 행동을 내게 하면 싫어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이 싫어하는 짓도 하지 말아야한다는 신념이 있었기에, 젊은 시절 룸살롱에 드나들어도 대부분(?) 노래만 부르고 끝났다. - 믿거나 말거나.


하물며 판·검사들은 누구보다도 정직과 준법이 우선되어야 할 직업인들이다. 누가 억지로 시킨 것도 아니고, 스스로 노력하고 원해서 그런 직업을 찾아간 사람들이다. 사리사욕을 위해 거짓과 위선을 일삼고, 누구나 갖는 욕정 하나 컨트롤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타인을 심판하겠다고 어떻게 잣대를 들이댈 수 있을까?


얼마전에는 전도가 유망한 야구선수가 주택골목가에 세워둔 차 속에서 속된 말로 '딸딸이'를 치다가 지나가는 여고생의 신고로 구속되었고, 최근에는 개그맨과 유명 연예인들이 성폭행이라는 죄목으로 고발되어 요란한 기사거리가 되기도 했다. 이런 현상에 사회와 언론의 책임은 없을까?


▼ 몇 달 전에 인터넷으로 신문을 보다가 어이가 없어서 갈무리 해두었다. 어떻게 '강간'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첫번째 기사로 뽑을 수가 있을까? '강간을 막는 최고의 방법은?'이라니! 울거나 빌지 말라니! 아무리 내용이 그렇다고 해서 제목을 이렇듯 선정적으로 뽑아도 괜찮은 것일까? 이런 신문을 보고 문제 삼지 않는 사회는 과연 건강한 것일까?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시간에 주요 언론이 이지경이라면, 지금 한국사회는 온통 '성도착증'에 걸렸다는 증거다.



 세상에서 가장 말이 안 통하는 사람이 누굴까? 이런 질문을 한국인에게 했다면, 불행하게도 '아버지'라는 대답이 나올 확률이 50%가 넘는다. 오늘 아침에 'Seamaker'님의 글을 읽었지만, 나와 내 아버지가 그랬고 내 아들도 나와 그 비슷한 사이일 거라고 생각한다.('말 안 통하는 아버지'에 대한 신문기사보기)


엊그제 8월 2일로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지 29년이 되었다. 내가 철이 없었을 때는 무능하고 못마땅한 아버지였고, 내가 직장생활을 한 후에는 나를 어려워했던 아버지였다. 2월이었던 내 약혼식 때 아버지가 입은 옷을 보고 깜짝 놀랐었다. 아버지는 내 옷을 입으셨다. 입을 옷이 없다는 것을 식구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챙기지 않은 것이었다. 가끔 그 장면이 떠오를 때면 눈앞이 뿌애진다. 그만큼 아버지는 우리 가족에게 존재감이 없었다.


그 아버지를 이해하고 아버지를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아프게 된 것은 얼마 돼지 않았다. 아마도 내 인생이 꼬이면서부터인 것 같다. 내 인생이 아무리 꼬였다해도 아버지에 비하면 '새발의 피'일 뿐이다. 일본 식민지와 한국전쟁을 온몸으로 겪어야 했던 아버지와 비교할 수는 없다. 아무리 이민, 삼민을 하고, 자식들을 미국에 두고 제주로 돌아와 살지만, 처자식과 부모님을 고향에 두고 단신 월남한 아버지 고생의 100분의 1도 안 된다.


이제는 이해한다. 아버지가 젊었을 때, 왜 그렇게 인사불성이 되도록 술을 마셨는지. 돌이킬 기회가 사라진 이제야 아버지의 모습이 자주에 머릿속에 그려진다, 나를 보며 흡족해하시며 웃으시던 그 주름진 얼굴이, 거칠대로 거치러진 그 손이, 굳은 살이 박힐 대로 박힌 그 못생긴 발이! 그럴 때마다 가슴이 왜 이토록 먹먹해지는지는 것은 죄책감 때문이리라.


아들아, 네게 부탁 하나 남긴다. 넌, 내 나이가 되었을 때 절대 그러지 말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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