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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사는 이야기

건강과 단식(최종 결과편)

(관심 있는 분들을 위해서 가급적 자세히 적은 것으로, 다소 긴 글이고 불필요한 내용이 많으니 관심 없는 분들은 읽을 필요가 없습니다. 보잘 것 없는 내용에 비해 자료를 합치고 용어를 정리하느라 시간은 많이 걸린 글입니다.)


식이요법 10일


원래는 식이요법 기간을 보름으로 계획했었으나, 열흘로 끝낸 것은 더위 탓이 컸다. 더위를 피해 도서관에 다니다 보니 점심을 먹으러 집에 오기에도 그렇고, 사먹을 수도 곤란하다는 문제가 생겼다. 또 열흘이면 충분하지 않느냐는 이기적인 타협도 한몫했다.


식이요법 기간에는 인스턴트나 동물성 음식은 철저히 피했다. 된장국과 나물, 콩자반, 김치가 대부분이었다. 후반부에 두어 번 먹은 계란말이 정도가 유일한 동물성 단백질이었다. 3분도 안 걸리는 분량이었지만, 가급적 오래 씹어 삼켜서 15분 이상 걸리게 했다.


그랬는데도 체중은 계속 늘어서 3Kg 가까이 불었다. 내게는 'Set Point' 이론이 적용되는 모양이다. 지난 금요일 '간헐적 단식'을 해서 체중을 다시 75Kg으로 되돌렸다.


2차 회복식 마지막 날에 보았던 혈뇨는 저녁에 그치더니, 이튿날이자 식이요법 첫날에 다시 보였다. '혈뇨'와 '단식'이라는 두개의 검색어로 구글링을 하니까, 단식 후 혈뇨는 '명현반응'이라는 용어가 검색되었다. 명현현상 또는 명현반응은 몸이 치료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이상 현상이라는 것이다. 역시 '믿거나 말거나'지만 좋은 쪽으로 생각하고 더 이상 걱정하지 않기로 했고, 혈뇨는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7월 한 달 동안 단식과정을 거치면서 술은커녕 커피나 주스까지 피해서 그런지 몰라도, 식이요법 중에는 소변을 보는 횟수가 줄어서 평소에 절반수준에 불과했다. 원래 소변을 자주 보는 편이고 수면 중에도 소변을 보러 일어나곤 했는데, 낮에는 줄었던 소변이 수면 중에는 늘어서 자다가 두어 번 깬 날도 있었다. 단식이나 회복식 중에 소변을 자주 볼 수밖에 없었던 것은, 허기를 견디느라 물을 자주 마셨기 때문일 것이다.


7월 21일부터 시작한 식이요법은 이런 과정을 거쳐서 7월 31일 오후에 끝내고, 저녁에는 닭고기 조림을 먹는 등 평소와 다름없는 음식을 먹었다.


혈액검사 결과


8월 1일 저녁부터 물 한 모금 마시지 않은 채, 다음날 아침 건강진단을 받았던 '한마음 병원'을 찾았다. 사전에 전화로 알아보니, 의료보험에서 시행하는 '정기건강검진'은 1차와 2차 진단만 취급하고 그 외의 진료는 일반병원을 찾아 외래환자로 접수하라고 안내했다.


'내분비 대사 내과'의 전문의는 내 기록을 훑어보더니, 꽤 위험한 수준이라며 몇 가지 질문을 하고는 혈액검사를 처방했다. 그는 건강진단 시에 하는 혈액검사의 '공복혈당'은 계산(Calculate)한 간접결과 수치로 정확하지 않다며 이 정도면 정밀검사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간호사는 검사결과를 보러 오후 3시 이후에 다시 오라고 했다.


접수창구에 가서 예상보다 많은 진료비 58,000원을 낸 후, '혈액검사실'로 가서 새끼 손가락만한 유리관 세 개를 채웠다. 그리고 결과를 듣기 위해 만난 의사가 말했다.


"결과가 나쁘지 않습니다. 저희 의사들은 'HbA1c' 6.5%부터 당뇨로 보고 약을 처방하는데, 선생님은 6.4%입니다. 약은 처방하지 않겠습니다. 앞으로도 건강관리 잘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GOT, GPT가 많이 좋아졌어요. 간 기능은 이렇게 빨리 좋아지지 않는 게 보통인데. 술을 안 드셨나요?"


"예, 지난 한달 동안 술을 전혀 마시지 않았습니다. 5일 동안 단식을 했거든요. 술을 끊어야 하나요?" 언제나 그 놈의 '끊지 못하는(?)' 술 욕심이 문제다.


"아닙니다. 많이만 마시지 않으면 괜찮습니다.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는 상관없습니다. 물론 폭음은 삼가야겠지요." 

휴, 다행이다!


▼ 2012, 2014, 2016년 건강진단의 혈액검사 수치다. 관심사는 당뇨병을 나타내는 '공복혈당'과 '콜레스테롤' 수치다. 2016-2차는 1차 검진 수치가 너무 높게 나와 재검진을 받은 것이고, 단식을 끝내고 8월2일에 받은 정밀혈액 검사 결과가 제일 우측에 있다.


- 참고1: 남성 11~63, 여성 8~35          - 참고2: 남성 64~77, 여성 36~45    

- 참고3: 남성 13~16.5, 여성 12~15.5    - 참고4: 남성 12~12.9, 여성 10~11.9

- 정상범위: 의학계에서 정상이라고 공인하는 범위.

- 경계수준: 약을 복용하거나 치료를 요하지는 않지만, 평소에 주의와 관리를 필요로 하는 수준.


위의 표에 나타난 수치로 단식의 효과를 분석하면 이렇다.


○ 공복혈당: 가장 큰 관심사이며 단식을 결심하게 된 원인이다. 단식을 통해서 크게 개선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2016년 1차와 2차 사이에 지리산 둘레길을 다녀왔다. 1차 검진 일주일 전에는 폭식과 연이은 음주가 있었던 것 같고 2차 검진 시에는 새벽 운동 후에 갈증이 나서 무심결에 마셨던 물이 영향을 주었는지는 모르겠다.


○ 총콜레스테롤: 역시 개선되어 정상범위 내에 겨우 들었다. 금년 3월에 했던 1차 검진의 결과는 거의 약을 먹어야 할 수준이었다.


○ HDL-콜레스테롤: 건강에 나름 자신이 있었던 내가 2012년 한국에서 처음 받아본 검진에서 유일하게 문제가 있던 항목이었다. 인터넷을 통해서 우유와 계란이 HDL-콜레스테롤에 좋다는 것을 알고 먹기 시작해서 조금씩 좋아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전에는 우유와 계란을 거의 먹지 않았다. 게다가 캘리포니아에 계시는 회원분이 감사하게도, HDL에 좋다는 '프로폴리스'를 보내주셔서 복용했었다. 아마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단식 후 이 결과가 나빠진 것은 동물성 식품을 먹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 LDL-콜레스테롤: 공복혈당과 함께 단식의 효과를 가장 크게 보여준다. 계속 나빠지던 상황에서 정상수준으로 돌아왔다.


○ 중성지방: 단식 후 오히려 나빠진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유는 모르겠다.


○ 혈압: 가장 뚜렷한 효과를 보인 항목으로 단식 후 크게 낮아졌다.


○ 기타 수치에는 관심이 없어서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나, 혹 관심이 있는 분들이 있으면 단식 전후 결과를 참고하시라고 게시했다. 단, 의사가 지적한 SGOT, SGPT 수치가 좋아진 것은 단식보다는 금주(禁酒)의 영향이 더 컸을 거라고 생각한다.


단식경험의 결론


생전 처음 본격적으로 해본 단식은 비록 극적인 개선효과는 없었지만, 몸의 생리학적 지표상 건강에는 충분히 긍정적 효과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향후 다시 시도한다면 보다 긴 기간을 단식원에 가서 해볼 것이다.


과학자들은 현생인류의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가 20만 년 전에 출현한 것으로 추측한다. 유라시아 대륙에 흩어져 살던 선진(?) 인류의 일부가 안정적인 농경이나 가축 유목으로 정착한 것은 불과 1만 년 전으로 그 이전까지의 인류는 수렵과 채취가 생계수단이었다. 아메리카, 호주 및 아프리카 대부분의 인류는 최근까지도 그랬다. 


이것의 의미는 인간은, 수렵과 채취가 어려웠던 많은 시간 동안 굶주렸으며, 굶주리는 생활에 알맞도록 진화했다는 뜻이다. 즉, 음식이 있을 때 먹어서 남는 에너지를 지방으로 비축하는 능력이 뛰어날 때 생존 가능성이 높았다는 것이 진화생리학자의 논리다. 일일 일식을 하던 인간이 두 끼를 시작한 것도 일만 년 밖에 안 되었고, 세끼가 정착된 것은 17세기 산업혁명 이후다.


현대의 선진국들은 먹거리로 넘쳐난다. 미국의 식품 생산량은 일인당 하루에 5천 kcal 이상 섭취할 수 있는 양이라고 한다. 적정량의 두 배를 훨씬 초과한다. 미국에 사는 동안 만났던 엄청난 양의 음식들은 저렴하기까지 했다. 각종 소다 캔들, 맥주와 위스키, 16온스, 24온스짜리 스테이크, 두 시간이나 계속되는 식사시간, 각종 디저트와 달디 단 음식들. 제주에서 단순한 생활을 하면서 그런 기름진 음식을 피할 수 있는 것도 좋은 일이다.


미국처럼은 아니지만 한국도 음식은 넘친다. 골목마다 음식점이고, 온통 밀감 밭이었던 주변에 지어지는 새 건물도 제일 먼저 음식점이 들어선다. 한국에서는 TV에서 하루 종일 먹방 프로그램을 방영한다. 어디 가면 맛있는 음식이 있고, 어떻게 하면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는가에 사람들의 시선과 관심이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백종원'이라는 요리사업가는 최고 인기스타가 되어, 안 나오는 방송국이 없을 정도다.


굶주리는데 알맞게 설계된 인간이, 위장이 비워질 사이가 없이 채워 넣는 모순 속에서 살게 된 것이다. 배가 고프지 않은데도 끼니 때가 되었다는 핑계 하나로 음식 앞에 앉았던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배가 잔뜩 부른데도 아깝다는 이유로, 더 비용이 들지 않는다는 미련함으로, 스트레스를 먹어서 풀려는 엉뚱함으로, 사람을 만난다는 핑계로, 달콤한 미각에 현혹되어 우적우적 목구멍으로 음식을 쑤셔 넣었던 기억들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


단식을 하면서 허기로 괴로움을 느낄 때는, 그토록 어리석었던 기억을 떠올리며 죄책감을 다소나마 달래는 속죄의 기회로 삼았다. 그것은 매일 나쁜 생각과 그릇된 욕망으로 죄를 저지르면서, 연중행사로 신부에게 고해성사를 하고 용서를 구했다고 믿는 어리석음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끼니와 상관없이 배고픔을 느낄 때만 먹고, 가급적 덜 먹고, 많이 움직이는 것도 은퇴자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 아닐까?


<후기>

이 결과 보고서를 마지막으로 제 스스로 '마루타'가 되었던 단식에 대한 글을 모두 마칩니다. 인터넷을 아무리 뒤져도 너무 요약되거나 추상적인 글들만 있어서, 단식에 관심이 있는 분들에게 최대한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상세히 기록하려고 애를 썼습니다만, 모자란 능력 탓에 부족한 부분도 많을 것입니다.


혹 그런 분들이 있다면, 댓글이나 쪽지로 질문을 주시면 제가 경험하고 알고 있는 한도 내에서 답변을 드리겠습니다. 이번 시리즈가 필요한 분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만족하겠습니다.


▼ 혈액검사 결과표. 의사에게 부탁해서 받은 것이나, 의학지식이 없어서 필요한 것만 발췌했습니다.


▼ 아래는 2012, 14, 16년에 받은 건강진단의 '건강위험 평가서'입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뇌졸증이나 협심증, 심근경색, 치매의 위험도가 높아지고 있으며, 건강위험도에 있어서는 '안전'과 '경계'는 적어지고 위험 항목이 많아짐을 보입니다. 이 결과를 100% 믿는 것은 아니지만, 얼마든지 참고는 될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 건강진단을 해보지 않은 분들을 위해서 첨부했습니다. 의학지식이 없더라도 누구나 알기 쉽게 작성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2014년도는 2012년도 비해 '혈관성 치매' 위험도가 높아졌고, 건강신호등에서도 적색신호가 하나에서 셋으로 늘었습니다.



▼ 금년에는 위험도가 전부 중등으로 되었으며, 건강신호등은 적색이 넷으로 되었다. 서서히 죽음과 가까워진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죽는 것은 무섭지 않으나 뇌졸증이나 치매만큼은 정말 두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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