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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사는 이야기

도서관에서 펼쳐보는 상상의 나래

무더위가 절정이다. 엘니뇨의 영향으로 역사상 기록적인 더위가 예상된다는 협박성 장기 일기예보가 위협만이기를 바라면서도, 작년보다는 낫지 않느냐는 느낌이 있었는데 며칠 전부터 바뀌고 말았다. 새벽에도 26~28℃ 부근으로 열대야가 이어져서 매일 하던 운동을 쉰 것도 4일째다. 더위가 어느 정도 가실 때까지는 더 멈추어야 할 것 같다.


제주의 여름기온은 육지보다 낮은 것이 보통인데, 엘니뇨 현상이 통상적인 개념마저 깨트렸는지 연일 땡볕에 33~35℃를 오르내리는 한낮 기온을 보인다. 어지간하면 자유롭고 편한 집을 벗어나 글을 쓰거나 책을 읽으려고 도서관을 찾지 않았었으니, 요 며칠 도서관을 찾는 것은 더위에 항복하고 도서관으로 피서를 빙자한 피난인 셈이다.


집에서 10분이면 충분한 제주도서관을 마다하고 –그래봤자 5분 더 걸리는- 우당도서관을 찾는 것은, 이곳에만 있는 ‘디지털열람실’ 이용환경 때문이다. 제주도서관의 디지털열람실은 그곳에 설치된 컴퓨터를 이용하는 곳으로 일일 최대 4시간까지만 허용되는데 반해, 이곳은 자신의 노트북 컴퓨터를 가져와서 사용하기 때문에 아침 6시부터 저녁 6시까지 있을 수 있다.


나 같은 은퇴자들에게는 불필요해 보이는 노트북을 작년에 구입한 것도 이렇듯 여름에 도서관에서 써먹기 위한 것이었다. 처음에는 새 노트북을 들고 당당하게 도서관의 성인 열람실을 찾아, 조용하고 정숙한 분위기에서 글도 쓰고 독서도 하려고 생각했다. 언젠가 한창 자판을 두드리는 중에 한 칸 건너 앉아있던 아가씨가 조용히 내게 오더니 비밀쪽지(?)를 전해주는 것이 아닌가.


젊었을 때조차도 누구에게 먼저 데이트 신청을 받아본 적이 없으니 예순 살이 넘은 주제에 데이트 신청이 아닌 것은 분명할 진데도, 뭔 일인가 싶어 둘로 접은 노란 쪽지를 편 순간 나는 할 말을 잃고 자판 두드리는 일을 멈춰야 했다. 그 이후로는 책을 대출하는 일이 아니면 도서관에 갈 일은 없었다.


‘노트북 사용 중이신 거 같은데, 키보드를 치실 때마다 책상이 울리고 소음이 발생하여 공부하는데 방해가 됩니다. 키보드를 조금만 살살 쳐주세요. 아니면 2층에 노트북 사용하는 곳이 따로 있습니다.’ 이 쪽지를 접한 나는 기분이 나쁘다기보다는 오히려 감동을 살짝 받았다. 이 얼마나 상대를 배려하는 사려 깊은 행동인가! 만약 그 청년이 내게 다가와서 어깨를 건드리고 말로 했다면 기분이 상했을 지도 모른다. 이런 청년들이 많아진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훨씬 더 밝아질 것이 확실하다.


우당도서관의 디지털열람실은 그런 염려가 없다. 노트북 전원을 꽂도록 책상마다 콘센트가 마련되어있고, 느리다는 결점은 있지만 와이파이로 인터넷 연결도 쉽다. 인터넷이 느린 원인은 이곳 이용자의 대부분인 청년들이 노트북으로 인터넷 강의를 듣기 때문으로 보인다. 나처럼 글을 쓰거나, 한가하게 인터넷 서핑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한여름에 시원하고 쾌적한 곳에서 귀에 이어폰을 꽂고 김광석을 들으며 신문이나 보고 책이나 읽고 있으니, 무더위에 이보다 편한 개팔자는 없다. 오늘은 두 권의 책을 빌렸다. 소설가 김연수의 산문집 ‘소설가의 일’과 김형수의 ‘삶은 언제 예술이 되는가.’라는 책이다. 이 책을 소개받은 곳도 노무현 정부에서 장관을 지냈던 유시민이 쓴 책에서다. 글을 좀 더 잘 쓰고 싶다는 욕심(?)에서 읽고 있지만, 글에 대한 공부는 하면 할수록 제대로 된 글을 쓰려면 부족해도 너무 부족하다는 깨달음뿐이다. 그저 내 수준에서는 인터넷 카페 정도에 올리는 에세이가 딱 어울리며, 시나 소설 같은 수준의 글은 언감생심이라는 생각에 절망을 느낀다.


독서를 하면서도 집중을 하지 못하고 자꾸 다른 생각으로 방해를 받는 통에 진도를 빨리할 수가 없다. 읽다가 무엇을 읽었는지 생각이 나지 않아 앞장으로 되넘기기를 수없이 반복한다. 나보다 더 일찍 와서 제일 구석진 곳에 앉은 내 앞의 여자아이는 고3이나 재수생으로 보인다. 쌓아놓은 책들 중에서, ‘이과생을 위한 수능에 꼭 필요한 수학Ⅰ 수학Ⅱ’라는 제목을 보며, 순간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여러 시간 동안 같은 자세로 인해 생긴 지루함을 달래본다. 상상은 자유 아니던가!


- 그래, 나도 그런 때가 있었어. 이렇게 좋은 공립 도서관은 아니었어. 어깨 넓이만한 공간이 주어지는 사설 독서실이었지. 화장실에서 찬물로 세수하거나 허벅지를 꼬집으며 졸음을 쫓았고 밤을 새우며 공부도 했었어. 그때는 머리도 꽤나 괜찮던 편이었지.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참고서만으로 공부해서 미적분을 풀었고, 웬만한 것들은 두어 번 보면 외워졌으니까.


- 그런데 지금은? 찬물로 세수는커녕 옆에서 바스락 소리만 나도 잠이 달아나 버려. 외우기는커녕 영어도 아니고 한글로 된 책을 보는데도 머리에 남는 게 없어서 몇 번씩 다시 읽어야 해. 왜 이렇게 된 거니? 어쩌다가 이렇게 망가진 거니? 그때는 왜 이렇게 될 줄 몰랐던 거니? 그렇게도 세상을 몰랐으면서 어떻게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처럼 잘난 척을 했었던 거니?


- 지금 깨달은 것을 그때 이미 알았다면 어떻게 했을까? 졸음을 쫓기 위해 저녁도 덜 먹어가며, 그 여드름투성이의 경기고등학교 학생만큼 열심히 공부했을까? 그래서 서울 대학교에 합격했을까? 더 좋은 직장을 얻고 더 빨리 출세해서 크게 성공했을까? 아니다, 아마 아닐 거다.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 알았다면 문학을 공부하고 싶었을 지도 모른다. 더 잘 쓰기 위해, 더 적은 숫자의 단어나 더 짧은 글로서 세상살이와 인간의 갈등을 더 잘 표현하기 위해. 귀천(歸天)의 시인 천상병님처럼 말이다.


지금은 결혼해서 잘 살고 있는 딸아이를 오래 전 나무랄 때, 아이가 처절하게 했던 말이 떠오른다. “아빠, 제발 냅 둬! 시행착오를 경험한 아빠가 우리에게 교훈을 주려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냐. 그러나 아빠가 잘못하고 실수하고 살았던 것처럼, 나도 그렇게 살 거야. 아빠하고 똑같은 잘못도 저지르고 실수하면서 그렇게 살 거란 말야. 그러니까 내버려 둬. 아빠 인생이 아빠 것이듯, 나는 내 인생을 살 거니까!”


그래 네 말이 정답이다. 그렇게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며 사는 게 인생사다. 세상의 평범한 모든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렇게 사는 게 진리다. 내가 앞에 자리한 청년이 다시 된다고 해도 별로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았을 거다. 그래도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해 살았다고 생각하니까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래 그뿐이다.


▼ 내가 제주도서관 열람실에서 받았던 포스트잇. 그때의 감동이 쪽지를 지금까지 간직하게 만들었다. 글씨도 마음 씀씀이처럼 이쁘다.



▼ 천상병 시인의 귀천. 이렇듯 단어 몇 개로 '죽음'을 이처럼 승화시키는 글을 쓸 수가 있을까? 감동 외에는 달리 할 말이 없다.


▼ 이동원이 부른 노래 '귀천'


<후기>
오늘 읽은 글 중에서 공감이 갔던 글로 후기를 대신합니다. 참, 저는 인생2막을 글쟁이로 생각하는 사람인 탓이며, 다른 분과는 상관이 없는 내용입니다.


- 제일 일찍 쓴 문장이 가장 안 좋은 문장이다. 여러 번 고칠수록 문장은 더 좋아진다.

- 글을 쓴다는 것은, ‘쓴다. → 생각한다. → 다시 쓴다.’의 과정이다.

- 누구나 자신이 쓴 초고를 보면 구토증세를 느끼는데 그건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

- 창작의 80%는 ‘아, 잘못 썼구나!’라는 걸 깨닫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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