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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사는 이야기

건강과 단식 (10)

관심과 실행


인간은 환경에 지배를 받는 동물이라는 것이 일반적이다. 환경이 변하고 조건이 바뀌면 생각이나 믿음도 변할 수 있다. 시민들이 민주나 인권, 자유에 눈을 뜨려면 최소한 소득이 5천불을 넘어야 하고, 건강에 관심을 가지려면 만 불이 넘어야 한다는 것이다.


5천불이 안 되는 국가에서는 먹고 살기에 급급해서 시민들은 독재자가 독재를 하든 말든 상관하지 않고, 최소 만 불이 넘어야 자신과 가족의 건강을 돌아볼 여유가 생긴다는 의미다. 우리가 살았던 6, 70년대를 되돌아보면 틀린 말은 아니다. 70년대 유신독재에 저항한 것은 일부 계층의 지식인들과 종교인이 전부였으니까.


보통사람으로서 민주주의를 논하고 건강에 대한 담론을 하는 것도, 우리 자신들이 똑똑하거나 특출 나서가 아니라 그런 시대를 살기 때문이다. 50대가 넘으면 ‘건처재사우’에서도 보듯이 ‘건강’이 모든 것에 우선한다고 쉽게 말하지만, 실생활에서 말만큼 건강에 관심을 갖고 노력하는 분들을 별로 많지 않다.


이상을 느껴 병원에 가니까, 당뇨라고 하더라, 혹은 혈압이 높다고 하더라, 그러면서 의사가 많이 걸으라고 하더라, TV를 보니까 걷는 게 좋다더라, 그래서 요즘은 열심히 걷고 있고, 걸으니까 확실히 좋아지는 것 같다는 게 보통 사람들이 하는 말이다.


몸에 이상을 느끼기 전에는 걷지 않았다는 것이 바로 ‘환경에 지배받는 동물’이라는 의미다. 지금도 믿고 있는 사길이 있다. 미국에 살 때 건강을 해칠 만큼 심각한 스트레스에 1년 이상 노출된 적이 있었으나, 당뇨나 혈압 같은 질병 없이 그 시간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운동이었다는 거다. 잠이 안 오는 새벽이나 괴로운 시간에는 나가서 뛰었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지켜온 것은, 건강을 위해 하루 24시간 중에 한 시간, 일주일에 5일 이상 투자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먹고 마시는 문제에 대해서 소홀했던 것도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었을 거다. 그러나 한국에서 세 번째 건강진단을 받고, 그 결과 수치를 보고 나서 그 ‘믿었던 구석’이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건강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면 그만큼 관심도 가져야 하고, 아무 실행 없이 관심만으로 끝낸다면 그것은 걱정일 뿐 관심이 아니다.


1차 회복식 4일째


새벽에 체조 후 초등학교까지 걸었다. 평소처럼 운동장에 도착하여 가볍게 뛰었으나 댓 바퀴를 돌자 기운이 없어서 뛸 수가 없어서 계속 걸었다. 40분 정도 걷다 들어왔다. 이상하게 어제 죽까지 먹었는데도 변의가 전혀 없는 대신, 공복감은 무척 심해서 견디기 힘들었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계속 물을 들이키는 것뿐이었다.


어제보다 양이 조금 많아진 죽으로 이른 점심과 저녁을 먹었다. 반찬은 마찬가지로 배추만 넣어 끓인 된장국이었다. 점심과 저녁 사이는 물론이고, 저녁을 먹은 이후에도 허기가 몰려왔으나 어제보다는 견딜 만했다. 그리고 단식 후 처음으로 이발소에 들리기 위해 외출을 했다. 무엇보다도 그동안 더부룩해진 수염을 깎고 싶었다.


1차 회복식 5일째 – 마지막 날


오늘도 변의가 없다는 게 신기했다. 미음을 먹고도 변을 보았는데, 이틀 동안 죽을 먹었는데 나오는 게 없는 거다. 평소라면 아침에 일어나서 움직이면 5분도 안 돼 배변감을 느끼는 게 보통인데 말이다. 어제와 같이 학교 운동장으로 갔다. 달라진 것은 가볍게 뛰어서 갔고, 가서도 10바퀴는 뛰었다는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20바퀴 뛴 것보다 더 힘들었고 땀은 그만큼 흘렸다.


어제와 같이 점심을 먹기 전까지는 심한 공복감이 왔다. 어제와 다른 것은 밥공기를 가득 채운 죽과, 두부를 넣은 된장국을 먹었는데 포만감을 느꼈고 상당시간 공복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체중은 전날과 같았다.


2차 회복식 1일차


3일째 변의가 전혀 없었다. 혹시나 해서 변기에 앉아보았으나 허사였다. 지난 수 십 년간 한 번도 없었던 경험이었다. 오늘은 거의 평소와 같은 모습으로 운동을 했다. 운동량만 약간 줄였을 뿐이었다. 내일부터는 정상생활로 돌아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주 만에 처음으로 밥을 먹었다. 단지, 평소 식사량의 절반이지만 오늘부터는 세끼를 먹는다. 수저를 들기 전에 밥을 한참 쳐다보았다. 반 정도를 채운 현미 공기밥에 씻은 김치, 콩자반, 김, 된장국으로 맛있게 식사했다. 천천히 씹어서 삼켰고 20분 정도의 식사시간을 가졌다.


외출도 했다. 오후에는 도치형님 댁을 찾아가서 형님이 새로 장만한 스마트폰 사용법을 가르쳐 드렸다. 형수님이 내주신 매실효소 주스와 사과 몇 쪽을 먹었다. 몸은 정상 컨디션으로 거의 돌아왔고 허기도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


먹고 싶은 것에 대한 생각이 많아졌다. 자장면도 그리웠고, 무엇보다 수육이나 보쌈에 소주 한잔 생각이 간절했다. 이제 완전히 살아났나 보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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