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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사는 이야기

잠 못 이루는 밤에

어제는 시리아와의 월드컵 예선전이 끝나고 나서 잠을 청했다. 90분 내내 이어지는 답답한 경기를 본 탓도 있겠지만, 10시 이전에 취침하는 나로서는 잘 시간을 놓친 탓에 쉬 잠들지 못했다. 게다가 잠이 들만 하면 왜~앵하는 모기 소리가 귓전을 맴돌았다. 이미 물렸는지 발가락 근방이 가려웠다. 할 수 없이 불을 켜고 모기 사냥에 나섰다.


모기채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전기 충격 모기채. AA 배터리 두 개가 들어가는 이 모기채는 한국살이의 필수품이다. 모기만 발견하면 백발백중이다. 전통적인 파리채로 잡다가는 벽지나 천정에 피가 번져 얼룩이 남는다. 아주 가끔이지만 지네 같은 벌레를 잡을 때도 유용하다.


흡혈로 통통해진 모기가 하얀 색 천정에 붙어 있으니 눈길 위에 떨어진 동백꽃처럼 눈에 확 들어왔다. 전기충격 모기채를 갖다대니 '딱'하는 소리와 함께 '통모기(?)'가 되었다. 녀석이 격렬한 고통(?) 속에 죽어가는 모습이, 내 본성 안에 자리한 잔인성을 자극하여 통쾌한 쾌감마저 준다. 방을 한바퀴 둘러 한 마리를 더 사냥하고 침대에 누웠으나 쉽게 잠이 올 것 같지는 않다.


어디로 어떻게 들어왔을까? 방문은 닫혀있고 창에는 방충망이 빈틈없이 쳐있어서 들어올 곳이라고는 없어 보이는데도, 모기가 있으니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나중에 모기를 잡으러 한 번 더 깨는 바람에 잠은 완전히 설치고 말았다. 열대야가 한참일 때는 별로 안 보이던 모기가 설쳐대는 것을 보니, 바야흐로 모기의 계절이 도래한 모양이다. 최근 지카 바이러스로 사람들의 관심을 집중시키는 모기는 세상에서 인간에게 가장 위험한 동물이라고 한다. 한국에서 모기가 위험한 이유는 일본뇌염 때문이다.



모기로 인해 죽는 사람이 연간 70만 명을 넘고, 2차적인 피해까지 포함하면 200만 명에 이른다는 주장까지 있다. 모기 다음으로 사람에게 위험한 동물이 바로 '인간'이라는 것은 아이러니다.


모기로 방해받은 잠을 못 이루는 사이, 기억은 과거로 향한다. 어렸을 때 나를 모기로부터 보호해 준 것은 모기장이었다. 저녁을 먹고 하품이 나오기 시작하면 모기장을 꺼내 벽에 걸린 못에다 네 귀퉁이를 걸었다. 내게는 모기장과 함께 연상되는 여동생이 있다. 어느 여름날 아침에 깼더니 모기장 안에 갓 태어난 동생이 울고 있었다.


생활이 나아지면서 모기장 대신에 모기약을 뿌렸다. 지금도 생각난다. 짙은 브라운 색 병에 든 약품을 물에 타서 분무기에 넣고 뿜어댔던 일을. 지금은 발암물질로 알려져 사용이 금지된 DDT였을 거다. 즉 독약을 타서 뿌렸던 것이다.


영화 '친구'로 유명한 장면도 우리에게는 익숙하다. 1960년대 서울에서는 여름이면 보건소에 나온 차량이 DDT 분무연기를 뿜어대며 골목을 돌았고, 아무 것도 모르는 우리 꼬맹이들은 그 연기를 쫓아다니며 즐거워했다.


그렇게 독약을 마시며 살았어도, 술 드시고 귀가한 아버지가 단칸방에서 담배를 뻑뻑 피워 잠자는 아이들에게 간접흡연을 시켰어도, 우리는 아이도 만들고 환갑이 지나도록 건강하게 잘 사고 있다. 그리고 가장 안전했던 것은 5~60년 전에 사용했던 바로 '모기장'이었다.


분무기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어릴 때 사용하던 분무기. 모습만 비슷할 뿐으로 당시에는 양철로 만들어진 둔탁한 생김새였다. 이통에 독약(DDT)을 넣고 물에 희석시켜 사용했다. 


모기살충제 스프레이가 있지만 잘 사용하지 않는다. '내츄럴 허브향'이라며 사용을 유혹해도 그 냄새가 싫을 뿐만 아니라, 너무 유식해진(?) 덕분에 화학제품 사용하기가 찜찜한 탓이 더 크다. 우리는 화학제품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 화장실만 해도 얼마나 많은 프라스틱 통이 있는지 모른다. 샴푸부터 곰팡이 제거제, 살균제, 찌든 때 제거제, 방향제까지, 지금 들어가서 세어 보니 10개가 넘는다. 주방에는 아마 더 많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이 마케팅 효과다. TV나 매스컴을 보면 사람을 불안하게 만드는 것으로 채워져있다. 위생이 불량하고, 계절에 따른 피부는 어떻고, 식품관리의 허술함, 식중독의 위험, 다이어트 경고, 모발관리 부실 등등 온갖 협박과 위협 속에 살고 있다. 왜 그럴까? TV와 같은 매체를 먹여 살리는 것이 광고주들이기 때문은 아닐까? 광고는 더 가관이다. 현미경 효과까지 그래픽으로 조작해서 침대와 이부자리에 얼마나 많은 진드기와 세균이 살고 있는지를 공포스럽게 보여준다. 수도관 내부가 얼마나 더러운지 자기들 멋대로 그래픽으로 조작해 보여주며 정수기를 사용하라고 협박한다. 가습기 내부가 얼마나 세균이 살기 좋은 장소인지 알려주는데 정성을 다한다.


그들은 가습기 대신에 수건을 적셔 걸어두라고 권하고, 수도관 관리를 잘하라고 수도국에 압력을 가하고, 이부자리는 햇볕에 말려서 털어주면 된다고 말하는 대신, 자기들 제품을 구입해서 사용하라고 강요한다. 그들의 공갈에 가까운 협박에 넘어간 사람들은 잠자는 동안에조차 화학성분을 호흡하고, 가습기 살균제의 독성을 흡입하고, 정수기 내부에서 떨어져 나간 중금속 물질을 마시며 서서히 죽어간다.


그들의 말이 사실이라면 지난 70년대 그토록 비위생적인 군대 내무생활 때 우리는 다 죽어야 했다. 3년 동안 한 번도 빨지 않은 모포와 매트를 사용하고도 괜찮았으며, 젖은 수건을 내무반에 걸어 너는 것으로 건조한 겨울을 아무 일 없이 보냈으며, 연병장의 오래된 펌프물을 마시고도 아무 일이 없었다. 제주로 돌아온 이후에는 그런 제품을 쓸 일이 없다. 세수비누 하나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두 해결한다. 시간이 많으니 면도 크림도 사용할 일이 없어, 미국에서 가져온 면도크림 두 통이 그대로 남아있다.


잠이 안 온다고 억지로 누워 있을 필요는 없다. 아무 때나 잘 수 있다는 것 또한 은퇴자의 특권 아닌가. 침대에서 태블릿을 켰다. 어느 신문에 이런 기사가 눈에 확 들어왔다. 시민·기자 7명 ‘4박5일 체험’, 생활화학제품의 역습이라는 제목이었다.


아,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구나! 가장 안전했던 것은 그 옛날의 모기장이었다. 지금 가장 안전하게 살아가는 방법은 프라스틱에서 멀어지는 것이다. 딱딱한 세수비누 한 가지로 면도부터 화장실의 모든 것을 해결하고, 1회용 사용을 최대한 줄이고, 가급적 불편하게 사는 것이야말로 건강하게 성공적으로 나이 드는 방법일런지 모른다.


<후기>

어제 시리아와의 일전은 아주 답답한 흐름이었습니다. 시리아 골키퍼의 슈퍼 세이브가 있기도 했으나 - 그의 시간끌기는 비난 받아 마땅했어도 - 한국선수들에게서는 악착 같은 모습이 안 보였습니다. 홈 경기임에도 내전 중인 자기 나라에서 치루지 못하고 제3국에서 열린 경기에서 시리아는 정말 악바리처럼 뛰어다닌 것에 반해, 우리 선수들은 부자 나라에서 온 귀공자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어제 본 어처구니 없었던 일입니다. 보통 때처럼 새벽에 초등학교 운동장을 뛰는데 어느 곳을 지날 때마다, 시큼한 냄새가 났습니다. 나중에 가까이 가보니 어떤 몰상식한 인간들이 학교 안 정자에서 술을 마시고 그대로 둔 것이었습니다. 누군지 모르니 개ㅅ끼들 하고 욕이나 해주는 수밖에 없더군요. 모기 같은 해충은 곤충 세계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 초등학생들이 이것을 보면 어른들을 어떻게 생각할까요? 한국에서 산다는 것은 이런 몰지각한 인간들을 피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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