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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의 시선이 머무는 곳/내가 경험한 이민생활

LA 에서의 1년 - 그 첫번째 이야기

(2010년 9월, 미국을 떠나 귀국을 생각하며 고민할 때 기록한 글입니다. 미주중앙일보 블로그에 썼었는데 의외로 많은 사람에게 관심을 받았었습니다.)

 

정확하게 1년 2개월이 지났다.

집사람이 외로워하는 곳을 떠나 이곳 LA를 향해 출발한 것이 작년 7월 1일이었으니까.

그리고 하루 15시간의 3일 운전 끝에 July 4th 새벽 1시가쯤 되어 미리 얻어놓은 아파트에 들어섰다.

 

2008년 12월 말 예상하지 못한 채, 실직을 한 후에도 그리 크게 걱정 하지는 않았었다.

몇몇 아는 사람들이 있어, '형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많이 드릴 수는 없어도 일하시도록 하는데는 문제없습니다' 하는 친구도 있었고, 그깟것 눈높이만 낮춘다면 충분히 비빌 곳은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상황은 생각했던 것처럼 녹녹하지 않았다. 당시 신문과 방송에서 매시간마다 떠들어대던 경제위기 탓에 위기감이 커진 탓인지는 몰라도, 큰소리 치던 주위사람들은 하나 둘 말을 바꾸기 시작했고, 더 이상 그곳에 살 이유를 찾지 못했던 터에 LA 사는 지인이 새로 사업을 시작했으니 도와달라는 말에 주저없이 살던 집을 정리하고 미국의 East Coast에서 West Coast로 거의 이민에 가까운 이주를 결정했다.

 

그 사업이란 것은 도무지 말이 되지 않는 것이란 것을 깨닫기까지는 3개월이 채 걸리지도 않았다. 처음 이야기 한 것은 거의 거짓말 수준으로 하나도 지켜지지 않았고, 계속되는 적자는 전혀 개선될 기미가 없었다. 결국 7개월도 안되어, 그 친구의 말만 믿고 덥썩 돈을 내어준 어리석음만 탓하며, 더 큰 돈을 잃지 않은 것에 안도하면서 발을 뺄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한때는 10만불에 가까운 연봉을 받았었는데, 3만불 정도야 못받겠냐는 생각이 내심에 있었던 것 같다. 그런 생각으로 신문광고를 보고 몇군데 이력서를 냈고, Job Interview라는 것을 했지만 곧 부질없는 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동안 한 일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90년대 이후로는 거의 매니저급으로 살아왔다. 즉, 실무보다는 밑에 사람을 두고 사람들을 관리하고 일을 계획하고 지시하는 일만을 해 온 것이다. 10년 이상을 관리자로만 살아왔으니 실무를 담당할 사람들을 뽑는 곳에 내가 적당한 사람일리가 없다.

 

경제적이고 효율적인 시스템을 계획하고 구축하는 일을 했지만, 시스템을 직접 만지지는 않았다. 어떤 솔루션이 필요한지는 알지만, 그 솔루션을 직접 구현하고 취급하지는 않았으니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을 수 밖에 없었다. 남들보다 항상 앞서 승진을 했고, 팀이나 부서관리를 잘 한다는 말을 많이 들어왔지만 조직을 떠나니 그런 것들은 아무런 쓸모없는 약점이었다.

 

아무리 눈높이를 낮춘다고 해도 내가 수십년 일했던 분야에서는 일자리를 구하기는 힘들다는 결론을 얻기는 쉬웠다. 그것도 내 나와바리도 아니고, 낯선 LA가 아닌가? 기계나 토목 건축을 전공했다면 전공을 쉽게 살릴 수도 있으리라. 그런 것들은 20년 전이나 30년전에 사용되던 테크놀러지가 지금도 사용되니까.

 

하루가 다르게 신기술이 쏟아져 나오는 전자나 통신의 분야에서는 옛날 지식은 그야말로 쓰레기나 다름이 없다.

봉급이 30만원이던 시절에 300만원짜리 부품들을 수리했었지만, 지금은 인건비는 10배가 넘고 부품은 100배나 1000배로 떨어졌다. 교체만 있을뿐 수리의 의미는 전혀 없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러나 일은 필요했다. 쉰 넷의 나이에 은퇴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최소 10년은 더 일해야만 그래도 약간은 여유있는 은퇴를 맞이할 것 아닌가?

평생을 봉급장이로 살아왔으니 사업하기에도 겁이 났다.

 

날 속인다는 것을 생각할 수 없는 사람에게 속다시피해서 몇푼 안되는 노후자금이 축났는데, 덥썩 돈을 넣었다가 잘못되면 정말 홈리스가 되는 것은 순간일 것이다.

 

돈 안드는 사업이 무엇일까?

테크니션이 되는 길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되었다.

 

무엇을 배울까?

에어컨 기술이 생각났다.

미국에 처음 왔을 때 겨울에 집을 샀는데, 여름에 에어컨이 안되어 바가지를 썻던 기억이 생생했던 것이다.

때 마침, 에어컨을 가르친다는 광고가 눈에 띄었다.

 

<후기>

아직, 뚜렷한 직업이 없습니다.

다행스런 것은, 우리 부부가 다 건강하고 아이들이 다 커서 돈 들어갈 곳이 없다는 것, 아직은 실업수당을 받아 생활하기에 그리 까먹지 않고도 생활이 가능하다는 것 등 아주 나쁜 상태는 아니지만 편한 마음일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이리저리 좌충우돌 해보았지만, 뜻과는 다르게 마음에 상처를 입기만 합니다.

혹 이글이 저와 처지가 비슷한 다른 분들에게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써보려고 합니다.

시간이 되는 대로 후속편을 계속 올리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