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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의 시선이 머무는 곳/내가 경험한 이민생활

LA 에서의 1년 - 세번째 이야기

(2010년 9월)

 

이야기의 요점만 정리하면 이렇다.

 

Single House 세입자 A씨는 집주인인 B씨에게 에어컨이 동작하지 않는다고 불평을 했고, 집주인은 친분이 있는 발 넓은 보험 아줌마 C씨에게 에어컨 수리하는 사람을 소개해달라고 부탁을 했다. C씨는 에어컨 수리하는 D씨에게 무엇이 문제인지 점검할 것을 의뢰했다. D씨가 가서 보니 컨트롤러라고 불리는 전기회로 기판이 고장이 난 것으로 판단을 해서 C씨에게 이것을 교체해야 하며 $350 ~ $400 정도의 수리비가 든다고 알려주었다. C씨는 D씨에게 이것저것을 물었다.

 

에어컨 전체를 교체하면 얼마인지($3,500), 미국회사에 맡기면 얼마인지($5,000), 소개비는 받을 수 있는지 등등.

며칠 후, D씨는 C씨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 집주인에게는 에어컨 전체를 교체해야한다고 이야기 해두었다. 전체를 교체하는데 $4,700이 든다고 했으니까 교체한 후 $4,700을 받아라.

 

- 돈을 받은 후, 그 차액에 소개비를 얹어 내게 돌려주어라.

 

- 교체한 장비는 일단 내 집으로 옮겨라.

 

집주인 B씨는 4백 불이면 고칠 수 있는 멀쩡한 기계를 열 배가 넘는 $4,700을 주고 새것으로 교체했음은 물론이고, C씨는 자기를 믿고 부탁한 고객을 속여 차액 $1,200에 커미션과 중고장비 판매액까지 챙겼다.

내가 곁에서 본 이 팩트에 내가 알지 못하는 Hidden Story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C씨가 D씨에게 입단속을 시킨 것을 보면 악마나 저지를 법한 일이었다.

 

Store Manager라는 J씨는 같은 민족인 것이 자랑스러울 정도로 덩치도 훤칠하고 인상도 좋아서, 같이 이야기하는 사람을 즐겁게 하는 그런 친구였다. 우리에게 일을 의뢰했지만 Management Office에서 보안상의 이유로 까다롭게 굴어, 일을 하지 못하고 돌아가는 우리에게 미안했는지, 스타벅스 커피를 시켜 마시면서 선 채로 잠시 대화를 했다.

 

- LA에 와서 깜짝 놀랐습니다. 어떻게 음식점에서 음식을 다 세일을 해요?

 

○ 이곳에 온지 얼마 안 됐어요?

 

- 예 지난 2월에 와서 혼자 있다가, 지난 4월에야 가족이 다 이사 왔습니다.

 

 어디에서

 

- 동부요.

 

 동부 어디

 

- 뉴저지

 

어! 뉴저지. 나도 거기 살다가 이곳에 온지 1년도 안되는데.

 

마치 고향사람을 만난 것처럼, 반갑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팔리세이드 팍에서 살았다는 등, 뉴욕 맨해튼 매장에 있었는데 사장이 서부에 새로운 매장을 오픈하면서 매니저로 배치를 받았다는 등, 동부에서는 히스패닉 직원과도 가족처럼 잘 지내는데 이곳에서는 뻑하면 쑤한다는 등, 동부에 비해 너무 살벌하다는 등, 재미가 없다는 등.

 

나도 내가 아는 대로 주절주절 읊었다.

그래도 이곳은 날씨가 좋지 않으냐? 주변에 라스베이거스나 그랜드캐년처럼 가볼 곳이 많지 않느냐? 경쟁이 심하니까 물가도 싸고 사먹는 사람은 좋지 않느냐?

 

더 살아봐야 좋은 걸 알겠지만, 음식까지 세일하는 건 너무한 것 같다는 그 친구의 마지막 말이 이동하는 차 속에서 오랫동안 뇌리에 남았다.

 

불황으로 주머니가 가벼워진 한국 사람들을 고객으로 하니까 수요를 창출하는 측면은 있겠지.

햄버거보다도 싼 $5.99에 점심을 먹을 수 있다면 맥도날드보다는 한국 음식점을 찾을 테니까.

하지만, 과당경쟁은 나만 죽는 것이 아니고, 남도 죽이는 게 아닐까?

 

지난 5월, 작은 놈 대학 졸업식 때문에 다시 찾은 뉴저지에는 가격의 변화가 없었다.

삼겹살도 일인분에 $21.99, 주물럭이나 등심도 그 비슷한 수준으로 내가 그곳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수 년 전과 같았다.

그래서 그 곳에서는 점심이나 같이 하자는 말을 쉽게 하지 못했었다. 런치 스페셜도 $10 안팎이었으니 둘이서 점심이라도 하려면 최소 $25은 놓고 나와야 했었으니까. 그것도 히스패닉이 만드는 별로 맛도 없는 음식에.

 

$9.99에 무한정 고기 집이나, 한 그릇 시키면 한 그릇 공짜로 준다거나, $5.99짜리의 맛있는 점심은 상상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 음식을 다 세일할 수가 있느냐는 Store Manager J씨가 한 말이 작업차로 이동하는 동안 내내 상념에 젖게 했다.

 

이민 20년째로 나보다 두 살이 많은 동서와 식사를 같이 할 때가 가끔 있다.

그 날도 동서네 집 뒷마당에서 삼겹살을 구우면서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 요즘은 미국에 살 이유를 못 느껴요. 그래도 지난날에는 하루 나가면 못 벌어도 $500은 벌었거든. 천불까지 버는 날도 많았고. 요즘같이 일이 없으면 뭣 때문에 이곳에 살아, 한국에 가서 살지. 이 집을 팔아 20만 불만 손에 잡히면, 아이들은 이곳에 저희들끼리 살라고 하고 당장 한국으로 돌아가서 어디 강원도 같은 시골에 내 손으로 집짓고 살겠어요.

 

동서는 소위 핸디맨이었다. 목수와 페인트가 주특기로, 지붕부터 마루까지 웬만한 일은 다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불황으로 건설경기가 죽으면서 갑자기 일이 없어지자, 궁리 끝에 2~3년 전에 최고가 대비 반값 가까이 떨어진, 폐허에 가까운 은행 담보 집을 사서 1년이 넘게 고쳤다. 안방을 늘리고 안방 화장실과 함께 안방용으로 조그만 Deck을 만들고, 게라지 옆에 세를 줄 수 있는 방과 부엌 그리고 화장실을 고치고 만들었다.

또 마당에는 보기 좋게 정자 비슷하게 쉴 수 있는 작은 공간도 만들었다.

 

그걸 거의 혼자 다 했는데, 어떻게 혼자 할 수 있었는지 의심이 들 정도다. 내가 도와 준 것이라고는 전기배선을 할 때와 벽과 페인팅 작업 때 주말 며칠뿐이었다. - 하긴 그 때는 나도 지인과 말도 되지 않는 사업(?)을 할 때니까.

 

사람 좋은 동서는 건축회사에 일당을 받고 페인트 일을 하고 있다. 시간당 $19.00로 나쁜 편은 아니지만, 그것도 작업 차부터 모든 장비를 갖추고 있고 경험이 많아 일을 찾은 모양으로 보였다. 그러나 그나마도 지금 하는 일만 끝나면 일이 없어서 관둬야할 것 같다고 걱정을 한다.

 

그 동서의 누님은 American Dream을 이룬 부자다. 부동산으로 돈을 벌었고, 비즈니스를 셋업해서 얼마간 장사를 하다 되파는 일로 돈을 모았다. 그 누님 되는 분이 최근에 또 빈 가게를 찾아 새로운 비즈니스를 셋업 한다고 한다.

동서가 $18,000을 이야기했다고 한다.

 

그 돈으로 그 비즈니스에 맞는 인테리어를 해주겠다는 거다. 누님은 다른 업자가 $12,000 견적을 냈으니 그 가격에 하라고 했다고 한다. 동서는 고민했다. 별로 남지도 않는 그 돈에 할지 말지를.

 

이틀 후, 누님으로부터 다시 연락 온 것은 또 다른 업자가 $6,000에 견적을 냈다는 거다.

동서는 미련 없이 그 업자에게 일을 주라고 했다고 한다.

 

2~30년 전에 이곳에 오신 분들에게는, 'American Dream' 이니 'Land of Opportunity' 라는 말이 실감날 때가 있었나 보다. 동서도 그랬다고 한다. 주말이면 골프 치러 다니고, 매번 내기도 했으며, 주중에도 2~3백 불 버는 일이면 차라리 골프를 쳤다고 한다. 천 불이 넘는 골프채도 대여섯 번을 넘게 바꿨다고 하니까.

 

한국 같으면 목수가, 페인트공이 골프를? 어림도 없는 이야기니까 'Dream come true'가 아닐 수 없다. 자기 누님이 렌트하는 집들을 관리만 해주면 투자용으로 사놓은 집을 거저 살 수 있었으니 집을 살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다고 한다.

영원할 것만 같았던 American Dream은 말 그대로 春夢이었으며 그 꿈에서 깨어나고 보니 살 곳이 못된다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깨어날 때를 생각해서 꿈속에서 더 현명하게 처신했던 많은 분들은 지금도 여유를 갖고 인생과 이곳의 화창한 날씨를 즐기고 있겠지만, 그렇지 못했던 분들이 지금 그 대가를 톡톡히 치루고 있는 것은 아닐까.

 

미국에 온지 몇 해 되지 않았던 1999년에 구역회에 참석한 적이 있었는데, Newark에서 리쿼를 하는 K씨는 월급쟁이인 내게 이런 말을 했었다.

 

- 장형, 미국에서는 사업을 해야 합니다. 회사에 다녀서는 돈을 못 벌어요. American Dream을 이루려면 작아도 내 사업을 해야 한다 이겁니다. 나는 돈 세는 게 지겨워요. 매일같이 하루에 한 두 시간씩 돈을 세어 봐요. 돈 냄새가 얼마나 지독한지.

 

나보다 두어 살 많았던 K씨가 그렇게 이야기했던 것이 다음 구역회 때문에 집에 가보니 이해가 되었다.

대궐 같은 집에 노부모님을 모시고 Dream같이 살고 있었다. 당시로는 보기 드문 100인치짜리 프로젝션 TV까지 있었으니까.

 

<후기>

LA에 살면서 느낀 점을 경험한 Fact에 기초해서 쓰고 있습니다.

 

‘한심하게 사는 놈’이라고 심술궂은 댓글을 다는 분도 있고, ‘용기를 내세요.' 또는 '힘내세요.’하고 위로를 하는 댓글도 있지만, 욕을 먹기위해서나 위로를 받기위해서 쓰는 글은 아니고, 저와 같은 처지에 계시는 분에게 공감할 수 있는 경험을 나누기 위해서 쓰고 있습니다.

 

간접경험도 경험일 수 있으니, 저처럼 이런 저런 잡을 찾는 분들에게 참고나마 된다면 보람이라고 믿으니까요.

만약 제가 이런 글을 미리 읽고 에어컨을 배우기 시작했다면 그렇게 실망도 하지 않을 수 있었을 테니까요.

다른 분들도 경험들을 좀 올려주시면 저 같은 사람들은 도움이 되겠지요.

 

어떤 분이 ‘천사들의 도시’에 온 것을 환영한다고 했는데, 위와같은 제 경험에 의하면 ‘천사들의 도시’보다는 ‘속임수가 판을 치는 살벌한 도시’나 ‘너 죽고 나 죽자 식의 지독한 경쟁의 도시’가 더 적절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하긴, 경쟁도 실력이니까 할 말은 없습니다만, 가격경쟁만 하다보면 결국 일자리는 자꾸 줄어들고, 돈 있고 힘 있는 사람 또는 규모 있는 비즈니스만 살아나겠지요.

 

보기 좋고 훌륭한 모습으로 멋있게 늙어가며 사시는 분들도 많이 봅니다.

70이 넘어서도 현역으로 일하시며 부부가 함께 왕복 10시간이 넘는 주말산행을 하는 선배님, 77세의 연세에도 카트를 손수 끄시면서 골프를 즐기시고 신앙생활 속에서 행복하게 사시는 선배님도 계십니다.

 

‘Land of Opportunity'라면, 이 땅에서는 일하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일자리가 있어야 하지만, 앞으로 그 기회는 점점 더 줄어들 것으로 생각합니다. 내가 일했던 회사는 미국에서 더 이상 사람을 뽑으려하지 않습니다. 미국에서 한 사람 쓸 월급이면 중국에서는 열 사람을 쓰니까요. 그것도 좋은 대학을 나온 훨씬 똑똑한 사람으로. 미국에서 탄생한 인터넷 테크놀러지가 중국에서도 미국에 있는 것처럼 일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지요.

 

애플에서 만든 iPad, iPhone 들과 마이크로소프트에서 만드는 프로그램들은 미국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도나 중국에서 생산되는 것을 아십니까?

 

델이나 HP같은 회사에 Tech Support 전화를 하면 미국에서 받는 것이 아니라 인도에서 인도 기술자가 전화를 받습니다. 경영자는 이익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법이니까, 같은 인력이면 당연히 싼 임금을 찾아 해외로 눈을 돌립니다. 그 결과 미국에서는 일자리가 줄어들어 인구 7사람 중에 1사람 꼴로 빈곤층이라지만, 백만장자는 더 늘어나고 있는 것이지요. 

 

이만 줄입니다.

 

행복하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