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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사는 이야기

건강과 단식 (7)

숙변


숙변에 대해 처음 들은 것은 월악산에서 조우한 할머니로부터였다. 다음에는 단학선원에 대해 알아볼 요량으로 처음 들렸을 때, 보조사범이었던 젊은 청년에게 들었다. 그는 내게 누우라고 하더니 내 아랫배를 양손의 손가락으로 눌러본 후에 하는 말이, 배에 숙변이 가득 차서 딱딱하다며 단전호흡을 하면 숙변이 저절로 나온다고 설명했다.


4~5개월 열심히 단전호흡을 수련했으나 운이 없었는지 숙변이 나오는 체험을 하지 못했다. 다만, 같은 수련생으로부터 체험을 들었다. 그의 설명에 의하면 어느 날 사무실에서 갑자기 변의가 느껴져 엄청난 양의 변을 봤다고 했다. 자신의 뱃속에 그만큼이나 들어있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의 양으로 변기를 가득 채웠다고 했다.


단전호흡 수련과정에는 기마자세를 한 후, 아랫배를 주먹으로 치는 훈련을 많이 한다. 많게는 하루에 자세를 바꿔가며 5~600번 넘게 치기도 한다. 그들의 설명에 의하면 숙변은 만병의 근원이라고 한다. 배출되지 않고 장에 눌어붙어있는 주로 단백질 음식물의 찌꺼기는 부패하면서 독소를 배출하여 피를 탁하게 만들고, 알러지와 같은 질병을 일으킨다는 게 그들의 주장이었다. 역시 ‘믿거나 말거나’다.


내가 처음으로 숙변 비슷한 것을 본 것은 미국에서다. 70년대 말에 이민 오신 친구 어머님이 ‘제7일안식일’ 교회 신자이신데, 이분이 낱개로 포장된 분말을 보내주셨다. 밥 대신 라면 스프만한 분말을 3일인가 4일인가 먹는 것으로 포장에는 몇째 날에 먹으라는 표시가 있었다. 그것을 지시대로 먹으며 굶었더니 마지막 날에, 짙은 쑥색의 꽤 많은 양의 변을 보았다.


본단식 4일째


예비단식을 시작하면서 식사량을 반으로 줄인 것이 지난 일요일이었으니 토요일인 오늘이 일주일째다. 어젯밤이 본단식 3일째 밤인데 아랫배가 살살 아파서 잠을 이루지 못했다. 새벽녘에 잠깐 잠들었다가 일어나 체조를 한 후 마그밀을 먹지는 않았으나 화장실에서 변은 보았다. 역시 액체뿐인 설사였다.


해가 뜨기 전에 걷기라도 할 요량으로 밖으로 나갔다. 기운이 원체 없어서 뛰기에는 자신이 없어서 40분 정도를 걷고 들어왔다. 하루 종일 기운이 없어 침대에 누워서 TV를 보거나 잠을 청했다. 아랫배가 살살 아파왔는데 그 강도가 점점 심해졌다. 그래도 참을 만했다. 3일째가 가장 힘들다더니 내겐 틀린 말이었다.


어제도 힘들었으나 오늘은 더 힘들었다. 인터넷으로 조사했을 때는 이렇게 힘들다는 이야기는 없었는데, 나는 왜 이럴까? 단식하기에는 나이가 들어서 일까, 아니면 잘못한 무엇이 있는 걸까. 아랫배에서는 계속 꼬르륵거리는 소리와 함께 통증이 밀려왔다. 화장실에서 쏟아내면 통증도 가실 것 같은 기분이었으나, 변기에 앉으면 가스만 간혹 나올 뿐이었다. 기운이 없어서 힘을 쓸 수도 없었다.


힘들어하는 나를 보고 집사람이 내일부터 미음을 먹으라고 권했으나, 이왕에 시작한 것이니 끝까지 가보자는 생각에 거절했다. 몸에 미열이 있는 것도 느껴지고, 기운이 없으며 배는 아팠지만, 먹은 것도 없는데 나오는 트림과 방귀가 이상했다. 두 번의 냉·온욕을 했으며 밤에는 억지로 잠을 청했다.


본단식 5일째


단식의 마지막 날인 동시에 가장 힘든 날이었다. 앉아있을 수도 없고 누워있는 것도 힘들었다. 간밤에 잠도 시원치 않았으며 체조를 하는 것조차 기운이 없어 겨우 끝내고는 지쳐 쓰러졌다.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것은 물론이고, 앉아서 TV를 보는 것도 힘들었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침대에 누워 음악을 듣는 것이 유일했다.


하루 종일 변도 나오지 않았다. 약간 변의가 있어서 변기에 앉더라도 마찬가지로 나오는 것은 없었다. 뱃속에 있는 더부룩한 것을 쏟아내면 다 해결될 것 같은 기분이었지만, 마음과 몸은 따로 놀았다. 음악을 들으며 자다 깨다를 반복하며, 단식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며 독하게 마음먹고 버텼다.


밤에는 잠이 오지 않았다. 낮잠을 잔 것도 원인이겠지만, 배가 아파서 잠들기가 더욱 힘들었고 밤새 괴로웠다. 이러다 무슨 일이 나는 것이 아닌지 하는 생각마저 들어서 새벽 두 시에 일어나 인터넷을 뒤졌다. 배가 아픈 경우는 예비단식을 잘못해서 장에 음식물 찌꺼기가 남아 있을 때 생기는 현상이라는 설명이 있었다.


이런 현상을 방지하려면 본단식을 시작하기 전에 관장을 하거나, 단식 중에 매일 된장 찜질을 아랫배에 하라고 했다. 단식원에 들어가면 이런 프로그램을 매일 시행할 뿐만 아니라, 혈압과 체온, 맥박을 아침저녁으로 측정해서 건강관리를 한다는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사람은 한 달 가량 단식으로는 결코 죽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새벽 4시에 포르투갈과 프랑스의 UEFA 결승전이 중계를 시작했다. 그걸 보다가 나도 모르게 깜박 잠이 들었다. 깨어보니 연장전이 중계되고 있었고 잠시 뒤에 ‘에데르’가 골을 넣는 역사적 장면을 볼 수 있었다.


배가 아팠거나 말거나, 어쨌든 계획한 대로 5일을 완전하게 굶고 아침을 맞았다. 시간으로 따지면 120시간 플러스 전날 저녁부터 자정까지와 본단식을 끝낸 후, 아침을 거르고 점심으로 미음을 먹기까지 계산하면 140시간 가까이 음식을 입에 대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단식은 준비일 뿐이고, 진정한 의미는 회복식에 있다고 하니 앞으로 5일도 쉽지는 않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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