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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사는 이야기

건강과 단식 (5)

체질과 ‘You are what you eat’


사상체질을 최초로 정립한 분으로 이제마(李濟馬, 1837~1900) 선생이 있다. 사람마다 타고난 체질이 다르므로 같은 병이라도 그 치료가 달라야 한다고 주장한 분이다. 누구에게 잘 들었다는 처방이 내게는 전혀 듣지 않았다. 구연산 요법이 그랬고, 야뇨증을 치료했다는 약도 내게는 전혀 듣지 않았다.


젊어서 몸에 두드러기가 나서 고생한 적이 있다. 동네 피부과를 한 달이나 다니며 주사도 맞고 처방약도 먹었지만 차도가 없었다. 의사의 요구사항도 많아서 라면이나 빵 같은 밀가루 음식은 물론 술도 먹지 말라고 했다. 결국 다른 병원으로 옮겼다. 의사는 대수롭지 않은 듯 주사도 없이 3일치 약만 주었다. 술은 괜찮은지 – 항상 이게 중요했으니까 – 물어보았다. 안 마시는 게 좋겠지만, 정 마시고 싶으면 마시라는 답을 들었다. 이틀 만에 두드러기는 씻은 듯 나았다.


지금은 고인이 되었지만, 2~30년 전 「八象체질 건강론」으로 유명했던 이명복 박사가 있다. 서울대 의대 해부학 교수로 정년퇴임한 그는, 의사이면서 수십 년 동안 앓았던 위장병을 침으로 고치고 한의학에 심취한 뒤, 이제마 선생의 사상체질을 공부하고 체질에 따라 먹는 음식과 함께 치료법도 달라져야 한다는 믿음을 갖게 되었다.


2호선 선릉역 근처에 ‘대림의원’을 열고 체질을 파악해주는 일을 했었다. 일명 「오링테스트」라 불리는 진단을 받으려면 전화를 하고 6개월 후에야 예약이 잡혔다. 이십 수년전 반년을 기다려 이명복 교수에게 5분도 안 걸려 ‘태음인 Ⅱ’로 진단을 받았다. 달랑 인쇄물 하나를 받고 나왔다. 거기에는 내 체질에 좋은 음식과 피해야 할 음식이 적혀 있었다. 소주나 위스키 등 독한 술이 괜찮고 맥주는 피하라고 되어 있었고, 모든 종류의 육류는 몸에 맞으나 갑각류 계통의 해산물과 일부 생선은 기피 대상이었다. (침고자료 1, 2)


지금도 잊히지 않는 게 있다. “원, 별 돌팔이 미친 영감을 다 보겠네! 무는 되고 배추는 먹지 말라면 김치도 먹지 말라는 거야! 쓸데없이 시간만 낭비했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는 중에 동승했던 아주머니가 혼자말로 투덜거렸다. 상스런 말이 전혀 어울려 보이지 않는 화려한 차림의 중년이었다.


이제마 선생의 ‘사상체질론’과 이명복 박사의 ‘팔상체질 건강론’이 진리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으나, 지난 세월을 돌이켜보면 전혀 근거가 없어 보이지는 않는다. 서양에도 비슷한 속담이 있다. ‘You are what you eat.’을 의역하면 ‘당신의 몸은 당신이 섭취한 음식물의 결정체’라고 할 수도 있다. 어디서 외상을 입지 않는 한, 저절로 우리 몸에 생기는 모든 병과 현상은 자신이 먹은 음식물에서 온다는 견해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체중과 과식


체질은 부모로부터 물려받는다. 혈압이 높았던 아버지의 체질을 여동생이 받아서 술과 담배를 입에 댄 적이 없으면서도 40대부터 고혈압 약을 복용하고 있다. 아이들 외가는 술을 전혀 입에 대지 못하는 체질인데 반해, 아이들이 술을 꽤 하는 걸 보면 내 체질을 받았다. 90세 이상 장수한 부모를 둔 분들이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을 자주 본다.


나는 맛있는 음식을 찾아다니는 미식가는 아니지만,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잘 먹고 많이 먹는 대식가에는 든다. 눈앞에 음식이 있으면 배고프지 않더라도 무의식적으로 손이 간다. 특히 술자리에서 심해서, 안주를 끊임없이 먹고 음식을 남기고 끝내면 개운치 않다. 어릴 때 음식을 남기면 혼났던 것이 버릇이 된 것 같다. 여럿이 함께 하는 술자리는 으레 과식과 폭식으로 이어졌다.


음식에 관한 한 참 잘못된 습관이나 문화 속에서 자랐다. 식사하면서 말하면 ‘복 달아난다.’고 했고, 천천히 먹으면 ‘깨작거린다.’는 지청구를 들었고, 그릇에 밥알이라도 붙어있으면 깨끗이 먹지 않았다고 혼났다. 고등학생 때 친구네 가서 식사해도 비슷한 광경이었다. 아무 말 없이 온 식구가 수저와 젓가락만 놀렸다. 당연히 식사시간은 대부분 5분을 넘지 않았다.


빨리 먹기의 극한은 군대에서다. 훈련소에서는 1~2분 안에 끝내야 하고, 자대에 가서도 졸병은 빨리 먹어야 혼나지 않았다. 게다가 항상 배가 고파서 식사 때마다 목구멍으로 최대한 쑤셔 넣기 바빴다. 군 생활 동안 10킬로나 살이 찐 것은 우연이 아니다. 빨리 먹는 습관은 사회에 나와서도 그대로 이어졌다. 신입사원 시절 점심시간 5분 전에 식당에 가면 식사를 끝내고 나와도 정오가 되지 않았다.


1983년 미국에 연수교육을 가서 미국인들과 같이 하는 식사가 마냥 불편했다. 음식을 먹으면서 웃고 떠들고 점심은 30분 이상, 저녁은 1시간도 모자랐다. 식당을 가득 메운 손님들 대부분 쉽게 일어서는 사람을 보기 힘들었다.


급하게 먹는 식사가 몸에 좋지 않다는 상식은 이제 일반화되었다. 빨리 먹으면 포만감을 못 느끼고 과식하기 쉬워 비만으로 가는 지름길이라는 거다. 위장에도 좋을 턱이 없다. 가족들과 대화를 즐기며 천천히 먹고 마시는 습관을 기르지 못한 것이 아쉽다. 태음인은 간이 크고 건강해서 알코올 분해를 잘하고, 육류 소화도 잘 되는 반면에 폐가 약하다고 한다. 살이 찔 수밖에 없는 체질에다가 빠른 식사로 과식까지 하니, 체중이 불지 않을 수 없다.


단순하고 느려터진 삶이 건강에도 좋다.


본단식 이틀째


전날은 너덧 시간 잔 게 전부였다. 뒤치락거리다 스마트폰을 보니 와이파이가 잡히지 않는 게 아닌가. 새벽에 네트워크를 점검하니 라우터(유무선 공유기)가 고장나 있었다. 전원이 들어오지 않았다. 포르투갈과 웨일즈의 준결승이 있다는 게 생각나 TV를 켰다. 전반전이 끝나는 것만 보고 학교 운동장으로 가서 평상시처럼 똑같이 운동했는데, 기운이 없어서 그런지 많이 힘들었다.


변은 여전히 설사가 나왔다. 오전에는 너무 허기져서 다소 견디기 힘들었다. 오후에는 아랫배가 살살 아팠다. 두어 시간 후에는 통증이 조금 줄었다. 뱃속에 무언가 있는 느낌이었다. 그것만 빼내면 될 것 같아 변기에 앉았지만 나오는 것은 없다. 기운이 없고, 졸릴 때는 침대에서 시간을 보냈다. 수시로 냉수와 온수를 번갈아 쓰며 샤워를 했고, 마그밀도 공복감이 심하게 올 때마다 먹었다. 오래하지는 못했지만 복부 마사지와 단식에 권장하는 체조도 했다.


저녁까지도 배가 살살 아팠다. 늦게 다시 설사가 나왔다. 액체만 나와서 항문 주위를 흘러내렸다. 견디기 힘들어 남은 3일이 멀게만 느껴져 과연 내가 마지막 목표까지 갈 수 있을지 의문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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