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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사는 이야기

건강과 단식 (3)

누구나 다 아는 쉬운 건강법


술, 담배를 멀리하고 적게 먹고 많이 움직이며(小食多行), 육식보다는 신선한 야채나 과일 위주로 식사하고 스트레스를 피하고 즐겁게 살면 된다. 병원에 가면 만나는 의사마다 하는 소리는 똑같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게 건강이라며 이구동성으로 말하고, 이의가 없으면서도 이를 지키는 게 쉽지 않은 것은 인간의 욕심 때문이다.


동물로서 인간의 3대 욕구는 식욕, 수면욕, 성욕이라고 한다. 이런 욕구와 함께 명예욕, 과시욕, 출세욕 등 온갖 욕망과 싸워가는 일련의 과정이 바로 인생이다. 식욕과 수면욕은 생명을 유지하는데 필수고, 성욕이 없으면 종족을 보존할 수 없다. 한참 클 때는 게걸스럽게 먹었고, 한창 공부할 때는 쏟아지는 잠과 싸워야 했으며, 사타구니에 거웃이 보이기 시작하면서는 성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주체할 수 없는 성욕구를 억눌러야 했다.


욕심껏 먹고, 자고 싶은 대로 자고, 욕구가 생길 때마다 아무와 성욕을 해소한다면 인간일 수가 없다. 욕망을 억누르고 욕심을 참아낼 수 있을 때 비로소 인간으로서 자격이 주어진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타의든 자의든 탐욕을 버릴 때 건강할 수 있다는 것과 상통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자비와 사랑을 강조하는 종교나, 일찍이 삶의 원리를 터득한 선각자들의 주장이나, 근간을 이루는 그 원리는 같다. 자비와 사랑이 없다면 욕망을 참아내기도 힘들다.


건강의 또 다른 요인은 의학을 포함한 지식이다. 의학정보가 일반화하지 않았을 때는 중풍이 왜 오는지도, ‘소갈병’이라고 불리던 당뇨의 원인도 몰라서 예방하거나 적절한 조치를 취할 수 없었다. 혈압과 같은 간단한 지식도 의사나 전문가의 전유물이어서 일반인들은 자세한 지식이 거의 없었다. 6~70년대 병원에 가보았던 사람은, 당시 의사들이 너무 도도해서 말조차 붙이기 힘들었던 경험이 대부분 있다.


30년 전에는 내 아버지를 포함해서 친구들의 아버님도 60대에 운명하는 경우가 꽤 많았다. 지금의 상식으로는 당시 부친이 협심증으로 세상을 떠난 이유가 명백하지만, 그때는 이해가 힘들어서 의사가 당장 입원해야 한다는 말에 의혹이 생기기도 했다. 콜레스테롤이니 공복혈당이라는 용어조차도 전혀 생소했던 시절이니 더 말이 필요 없다.


많은 처첩을 거느리고 마음대로 먹고 마시며, 욕구를 풀 수 있었던 조선의 27명의 왕의 평균수명이 – 16세에 작은 아버지에게 살해된 단종을 제외하더라도 - 40대 중반에 불과한 것은, 욕망을 억제하지 못한 탓이라는 짐작이 어렵지 않다. 절대 권력을 누렸던 북한의 김일성은 83살에 죽었고, 김정일도 70살밖에 살지 못했다. 현대의학의 도움을 받을 수 없었던 조선시대였다면 훨씬 일찍 죽어서 통일이 벌써 이루어졌을 것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그들이 그렇게 된 것은 마음껏 누릴 수 있는 환경에서 과도한 탐욕으로 그렇게 쉬운 건강법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이요, 조선의 왕들은 거기에다 현대의학의 도움을 받지 못해 일찍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175센티의 김정은 체중이 130킬로에 육박한다고 최신 뉴스는 전하고 있다. 제 맘대로 처먹고 마신 결과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건강을 결정하는 3대 요인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체질, ‘소식다행(小食多行)’의 절제과 건강에 대한 상식이라고 생각한다.


내 경우도 마찬가지다.


귀가 얇은 편인 나는 남의 말에 귀를 잘 기울인다. 아버지가 비교적 일찍 돌아가시고, 비염 때문에 고통을 겪어온 덕분에 평소 건강에 대한 지식이나 정보에 비교적 관심이 많았다. 지금까지 살면서 숱한 이야기를 듣고, 읽고, 보았으나, 대부분 약장사에 불과한 과장된 이야기거나, 일부 현상만 보고 전체를 판단하는 그럴듯한 편견들에 불과했다.


하지만 확실하다고 인정하는 두 사례가 있다. 하나는, 송파구 방이동에 살았을 때 집근처 약국 주인에게 들었다. 서울대 졸업장을 약국 내에 걸어놓고 있는 그는, 감기몸살 약을 지러 가면 증세를 물어보고 나서 쌍화탕만 주었다. “약 먹을 필요 없어요. 그냥 쉬시면 낫습니다.” 덩치가 꽤 좋았던 약사의 말이었다. 


“운동 하시고, 체중을 줄이세요. 알러지는 치료되기 힘든 증상입니다. 운동하면서 컨디션을 조절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약사에게 알러지 비염을 상담했을 때도 이렇게 말했다. 그 후로 30년 가까이 흘렀지만, 지나고 보니 그 약사의 말이 가장 정확한 처방이었다. 그 말을 믿지 않고 지금까지 세 번 – 이민 가기 전, 미국에서, 돌아와서 제주에서 – 이나 알러지 반응검사를 했으니, 참 미련하기 짝이 없다. 귀가 얇아 의사의 말에 현혹된 탓이다.


다음은 ‘제주아톰’님의 어록(?) 가운데 하나로, 올레길을 같이 걸으며 들었다. ‘이 세상 어느 곳도 완벽한 곳은 없다’와 함께, ‘건강에는 돈이 들지 않는다’라는 것이다. ‘어, 건강에는 돈이 들지 않는다고?’ 나이가 들면 해마다 보약도 먹고, 영양제도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내게는 다소 생경한 논리였다. 그러나 곰곰이 되씹어볼수록 진리라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소식다행(小食多行)’은 돈이 드는 일이 아니다. 스트레스 받지 않고 마음 편하게 하는 일에 비용은 필요 없다. 시간이든 능력이든 간에 가진 것을 사람과 나누고 베풀며 봉사하는 것도 금전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동네 학교 운동장에 가서 뛰는데 필요한 것은 운동화뿐이다. 미국에서도 천성이 게을러서 그런지 차를 운전해서 짐(Gym)에 가는 것이 귀찮아서 3개월 동안 회비만 냈던 적도 있다.


건강의 내 문제는 ‘술’이다. 여타 사람과 다르게 나는 혼자서도 술을 즐긴다. 술을 마시면 생각이 낭만적으로 변하며, 글도 더 잘 써진다. 저녁 무렵 ‘한 잔의 유혹’을 이겨내기 힘든 것이 간혹 과음이 되기도 한다. 일주일에 두 번으로 한정하고 있지만, 뜻하지 않았던 방문객이 있거나 사람을 만나는 일이 있으면 사나흘 연속 음주하기도 한다. 과음이라도 하면 곧바로 자는 버릇이 있어서 건강에는 더욱 나쁜 영향을 주었음에 틀림없다. 외로운 이민생활에서도 술이 유일한 낙이었다. 맥주보다는 보드카나 위스키가 더 맞았다.


운동도 술로 인한 폐해를 이겨낼 수 없었던 거다. 담배를 끊은 지는 27년이 됐으나, 이제는 술도 끊어야 할 때인 것 같다. 마음만 비워서는 안 된다. 몸도 비워야 한다. 몸을 비우는 과정이 단식이고, 단식의 모든 과정이 끝나는 다음 달 초까지는 어차피 술을 마실 수도 없다.


예비단식 3일


어제로 3일 간의 예비단식을 끝내고, 5일 간의 본 단식에 들어갔다. 예비단식은 식사의 양을 줄이는 과정이다. 첫 날은 평소 식사량의 절반인 반 공기로 세 끼를 때웠고, 둘째 날은 죽으로 한 공기, 셋째 날은 죽 반 공기로 식사를 끝냈다.


첫 날에 구충제를 먹었으며, 마그밀은 하루에 다섯 알을 허기가 느껴질 때마다 물과 함께 먹었다.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아 밀가루 같은 느낌이었다. 첫 날은 불면으로 두어 시간밖에 못 잤고, 둘째와 셋째 날은 비교적 잘 잤으며 공복감도 없었으나 오늘 새벽에는 허기가 몹시 느껴졌다. 지금은 공복감도 없고 컨디션도 좋다.


운동은 계속 했다. 다만, 오늘 아침에는 너무 더워서(약 27℃) 40분 동안 반 걷고 반은 뛰었다. 오후에는 인근 공원에 가서 한두 시간이라도 걸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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