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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사는 이야기

디어 마이 프렌즈

인터넷에서 드라마에 대한 평을 보고, ‘디어 마이 프렌즈’라는 드라마를 14회까지 다운 받아, 이틀에 걸쳐 몰아서 보았다. 드라마를 보고 눈물을 흘리는 경험을 모처럼 했다. TV 연속극이나 보고 바보 같이 울다니… 과거의 자신을 되돌아보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오만과 편견 – 같은 제목의 소설에서 인용 – 속에 갇혀서 강퍅했던 젊은 시절에는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들까지 드라마를 보지 못하게 하는 폭거를 저지르기도 했으니 말이다.


먼저 ‘노희경’이라는 시나리오 작가에게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꼰대들의 유쾌한 인생찬가'라는 부제에 걸맞게 우리 같은 구세대 인물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상황을 젊은이의 시각에서 관찰하고 이해하려는 시도, 세대 차이의 본질을 객관적으로 투시하려는 노력, 가까운 이웃에서 봄직한 개성이 뚜렷한 인물의 창조와 상황 전개는 고개가 저절로 끄떡여지며 공감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조희자 역(72세)의 김혜자, 문정아 역(72)의 나문희, 오충남 역(65)의 윤여정, 김석균 역(75)의 신구, 이성재 역(72)의 주현, 장난희 역(63)의 고두심, 이영원 역(63)의 박원숙 등 원로배우의 무르익을 대로 익은 원숙한 연기를 보는 것도 이 드라마에서 볼만한 구경거리다. 신선하고 영양가 만점인 재료와 양념(시나리오)을 오래도록 길들여진 엄마의 손맛(원로배우)으로 잘 버무려 만들어진 음식을 맛보는 느낌이었다.


드라마는 장난희의 딸, 박완 역(37세)으로 나오는 고현정의 시선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서울에서 벗어난 경기도 변두리의 국민학교 동창으로 오랜 세월 친구이자 선후배 관계로 인연의 끈을 이어가는 다섯 여인들의 인생과 현재 겪는 갈등이 드라마의 주된 내용이다. 아프더라도 죽게 생기지만 않으면 병원근처에도 가지 않았고, 항상 돈에 쪼들리며 없이 살았던 올드 타이머들의 인생이, 요즘 젊은이들에게는 이해하기 힘들 뿐만 아니라 궁색해 보이기까지 한다.


모든 역경과 그토록 힘들었던 과정을 이겨낼 수 있었던 원동력은 자식이었지만, 그 자식들은 더 이상 부모가 필요 없으니 간섭하지 말고 내버려 두라고 주장한다. 그래도 자식에게 집착하는 부모가 있는가 하면, 치매가 걸리면 스스로 요양원에 찾아 갈지언정 자식에게 코딱지만 한 피해도 주기 싫어하는 부모도 있다. 내 생각을 반영한 듯한 그 장면에서 눈시울이 젖고 말았다. 남의 손을 빌어야만 살 수 있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면 스스로 안락사를 택하겠다는 생각을 오래 전부터 했었기 때문이다. 제발 그렇게 되기를 지금 이 순간에도 희망한다.


나 자신을 포함한 우리 세대 대부분이 그런 것처럼, 지나간 과거를 놓지 못하고 과거의 타성과 아집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노인(김석균 역의 신구)도 보인다. 그는 과거의 기억 속에서 반성과 회개의 실마리를 찾는다. 작가는 극중 김석균을 통해 아집으로 똘똘 뭉친, 이 시대의 수많은 ‘꼰대’들에게 해법을 제시하려 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이번 토요일 16회를 마지막으로 이 드라마는 끝난다. 작가가 마지막으로 전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사뭇 궁금해진다.


마지막으로 이 드라마를 보면서 김수현 씨의 최근 방영중인 드라마 ‘그래, 그런거야’와 비교했다. 통속적이든 말든, 개인적으로 김수현 씨의 천재적인 ‘언어감각’과 강렬한 메시지, 개성이 강한 성격 창조, 물 흐르는 듯 자연스럽고 이해가 쉬운 줄거리 등을 무척 좋아해서 그의 작품이라면 대부분 찾아보거나 읽었다. 그러나 최근의 몇 작품은 억지 줄거리와 평범하고 진부한 내용과 이 사람 저 사람으로 옮겨다니는 반복적인 대화로 어떤 한계를 보는 느낌이었지만 실체는 불분명했는데, ‘디어 마이 프렌즈’를 보면서 확실해졌다.


그것은 나이였다. 43년생의 김수현 씨와 66년생의 노희경 씨는 23세살의 나이차가 있다. 이제는 더 이상 신선한 창작이 나올 수 없는 것이다. 맨날 비슷한 배경을 가진 가정이 드라마의 소재다. (요즘에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 3대가 함께 사는 행복한 가정, 의사나 변호사인 주인공, 성공한 자식을 둔 부모, 중산층(실제로는 상류층에 가까운)이 겪는 사소한 일상이 전부다. 시청률이 나올 수 없다. 이번 드라마 ‘그래, 그런거야’도 60부 예정에서 54부작으로 줄이는 이유도, 올림픽 때문이라는 방송사의 주장과는 다르게 시청률에 있음에 분명하다. 


물론 이것은 순전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과거의 영광에 집착하는 꼰대의 아집이나 독선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그럴까? ‘디어 마이 프렌즈’는 펄펄 뛰는 싱싱한 생선을 막 잡아 뜬 회를 맛보는 느낌이다. 어쩔 수 없다, 인정하는 수밖에. 나이가 들면, 누구나 그런거지, 뭐! ‘그래, 그러거야!’


▼ 노희경 작가의 '디어 마이 프렌즈'

▼ 김수현 씨의 '그래, 그런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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