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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사는 이야기

건강과 단식 (2)

포도단식과 실패 경험


단식에 대해 전혀 몰랐던 내가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었다. 아주 오랜 전 총무로서 직장 동문회 산행을 준비하러 충주 월악산에 사전답사를 갔던 적이 있다. 월악산도 설악산, 관악산, 치악산, 운악산처럼 ‘악(岳)’자가 들어가는 산으로 쉬운 산은 아니다. 힘들게 정상에 오르면 평평한 능선이 이어지고, ‘영봉’이라고 불리는 작고 험한 봉우리가 능선 위에 불쑥 솟아 있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영봉 아래에서 음식을 먹고 있었다. 사전답사라 집사람을 대동했던 나는 힘들어 하는 집사람을 그곳에 두고 3~40분 걸려 혼자 영봉에 올라갔다 왔더니, 집사람은 여남은 명의 무리 속 어느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자그마하고 곱게 생긴 할머니가 씨알이 굵은 포도를 드시며 하는 말이 흥미로웠다. 그날 들었던 내용을 소개하면 이렇다.


- 올해로 내가 예순 아홉 살인데 환갑 때부터 9년째 해마다 포도 단식을 하고 있어요. 보름 동안 매끼에 포도 200그램만 먹어요. 200그램이래야 포도 반송이보다 약간 많은 건데, 껍질과 씨까지 하나도 뱉지 않고 다 씹어 먹습니다. 보름 정도 그렇게 하면 반드시 시커먼 숙변이 나와요. 그러고 나면 잠도 잘 오고 매사가 얼마나 편한지 몰라요.


- 지금도 열흘째 단식 중인데 여기까지 올라왔어요. 단식을 하고 나면 얼마나 몸이 가볍고 좋은지, 훨씬 젊은 사람들보다 더 쉽게 올라왔어요. 해가 바뀌면 단식이 하고 싶어서 포도가 나오는 9월이 기다려질 정도예요. 원래 몸이 약해서 병을 달고 살았어요. 변비도 있어서 피부가 검고 거칠었지요. 그런데 지금 내 피부를 보세요! 누가 70살 노인이라고 하겠어요.


“아유, 할머니, 정말 피부가 애기 같으세요!” 하면서 집사람은 할머니의 손과 얼굴을 만지며 추임새를 넣었고, 무지한 내 눈에도 할머니의 피부는 희고 뽀얗게 보였다. 이 대화는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다. 우연히 만난 젊은이들에게 고운 할머니가 사실을 말하지 않을 이유가 없을 테니까.


서른 살이 넘으면서 꾸준히 새벽이나 휴일에 조깅을 하고 있었기에 건강에는 나름 자신이 있었으나 문제는 체중이었다. 대학 때까지 171센티의 키에 60킬로 이하이었던 체중이, 군대에서 10킬로, 결혼하고 나서 10킬로 늘고 나서는 좀처럼 80킬로 이하로 떨어지지 않았다. 과체중이 분명했으나, 체질적으로 하체가 단단하고 두터워서 그런 거라고 제법 그럴 듯한 구실을 찾아내 자위하며 걱정하지는 않았다.


대학 때는 28인치 바지도 헐렁했던 허리 사이즈는 어느덧 34인치 바지도 맞지 않을 정도로 불었다. 스트레스 탓인지는 몰라도 항상 신경이 예민해져서, 부스럭 소리만 나도 잠을 이루지 못했고 피곤하다는 느낌을 늘 달고 살았다. 계절마다 찾아오는 알러지 비염도 견디기 힘들었다. 비염을 상담했던 약사가 체중을 줄여보라는 충고를 해주었다.


할머니와의 대화를 떠올리고 무턱대고 포도 단식을 시도했지만 참담한 실패로 끝났다. 사전 정보나 준비 없이 무조건 굶고 포도만 200그램 먹으며 시작한 단식은 사흘 만에 심한 몸살을 불렀다. 사흘째는 배가 너무 고파서 견디기 힘들었다. 출근도 못하고 끙끙 앓고 난 후, 집 근처 음식점에 먹었던 ‘만두전골’이 얼마나 감동적(?)이었던지 지금까지도 애호하는 음식이 되었다.


술과 운동


술을 좋아한다는 죄(?) 때문에 운동을 게을리 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한국에서는 주로 집 주변에서 뛰었고, 휴일에는 산에 간다거나 운동을 해서 땀을 많이 흘리려고 애썼다. 1980대 후반에 이상구 박사의 ‘엔돌핀’ 강의가 방송을 타면서 건강에 대한 관심이 일반인들에게도 높아졌는데 그 영향도 있었다.


“저는 오래 살고 싶어서가 아니라 술 때문에 건강하고 싶은데, 술을 못 먹으니 죽겠습니다.” 일 년에 한두 번 만나 술잔을 나누는 친구는 질병으로 인해 그 좋아하는 술을 참으며, 내가 소주 한 병을 비우는 것을 부러운 듯 바라보며 한 말이었다. 그 친구는 중앙아시아에서 20년을 살다가, 뇌졸중(중풍)에 걸린 부친 때문에 제주로 돌아와 산다. 그의 말을 들으며 생각했다. ‘죽는 날까지 술을 즐기려면, 더 열심히 운동해야겠구나!’. 하하하…


이유가 술이 되었든, 건강이 되었든 간에, 운동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사람은 없다. 그러나 운동이 결코 쉬운 것은 아니기에 어느 정도가 적당한지가 문제다. ‘신바람 건강법’으로 유명한 황수관 교수 – 그런데 이 양반은 68세에 패혈증으로 사망했다. - 에 의하면, 일주일에 4~5회가 적당하며, 그 강도는 이마에 땀이 맺힐 정도로 30분 이상이면 된다는 거다. 생리학 박사가 하는 주장을 비전문가가 반박할 수는 없다. 1~2회는 효과가 별로고, 3회부터 5회까지 효과가 급증하며, 6~7회는 효과의 증가가 크지 않다는 설명이었다.


“아빠, 우리는 일주일에 4일 짐(Gym)에 간다. 평일에 새벽 4시 반에 일어나는 것도 그렇지만, 운동하는 게 얼마나 힘들어. 그래도 하고나면 잘했다는 느낌이 드니까 힘들어도 참고 가게 돼. 오빠(남편)도 힘들겠지만, 같이 하니까 서로 도움이 되어서 좋아. 그런데 운동하다 보면 옆 사람과 저절로 경쟁하게 돼서 더 힘들어지는 거야.” 며칠 전에 통화하면서 딸에게 들었던 말이다.


맞다, 그렇게 힘든 게 운동이다. 어제는 새벽 5시에도 25도가 넘었지만, 맨손체조와 스트레칭을 한 후 운동화를 신고 뛰러 나갔다. 땀으로 온몸이 흠뻑 젖어 돌아오는 길에, 마주 오던 70대 전후로 보이는 노인이 제주 사투리로 물었다. “몇 살이나 됐수까? 막 뛰고 그렇게 운동했수까? 대단하우다.” 매일 하는 뜀박질이지만, 할 때마다 정강이에 아픔을 느끼며 힘이 든다. 그러나 이제는 운동만으로는 한계를 느낀다. 30년에 가까운 운동이 지금의 상태에 도움이 안 되었다고는 할 수 없겠으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함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시도한 단식이었다.


단식준비


4가지 아이템을 준비했는데, 그 목적과 용도는 다음과 같다. 인터넷 조사를 통해 알게 된 것들이다.


- 마그밀(Magmil): 제산 완화 위장제로 ‘수산화마그네슘’이 주성분이다. 수분을 흡수하여 변의 배출을 쉽게 한다. 개인적인 소견으로는 분비된 위산을 중화시켜 허기를 줄이는 역할도 있는 것 같다. 마그밀의 영향인지는 몰라도, 먹기 시작한지 3일째는 설사가 나왔다. 처방전이 필요 없으며 200정에 7천원으로 아주 싸다.


- 감잎차: 비타민과 무기질이 풍부하다고 알려져 있어, 단식 중에 혹 부족할 수 있는 최소한의 비타민과 무기질을 공급하기 위한 것이다. 40개의 티백이 4천원.


- 죽염: 단식 중에 3그램 정도 섭취하고, 단식 중 치약 대용으로 쓰기 위한 것으로 250g에 5천원.


- 구충제: 내장에 회충이 있을 경우, 음식물 공급이 중단되어 벌레가 내장 벽에 상처를 주는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것으로, 두 정에 8백원.


이렇게 준비하고 음식물 섭취를 줄이는 3일간의 감식과정을 시작했다.


▼ 아이들이 짐에서 찍은 사진(맨 아래 중앙). 아이들 페이스북에서 가져왔다.


▼ 짐에서 운동하는 다른 쌍둥이와 함께 찍었다. 아이들 페이스북에서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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