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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사는 이야기

건강과 단식 (1)

지난 주말로 TV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가 16회를 끝으로 종영했다. 극중 70대 조희자는 자신이 치매에 걸린 것을 알고 스스로 요양원을 찾아들어가고, 60대 장난희는 간암수술을 받는다. 한국인이 치매에 걸릴 확률이 얼마나 되는지는 알 수 없으나 모든 사망원인의 3분의 1이 암이라고 하니, 확률적으로 보면 60대 이상에서는 암, 70대 이상에서는 치매가 인생 최대의 장애물이다.


고통 속에서 서서히 죽음을 맞게 되는 암도 무섭지만, 인간성을 말살한다는 점에서는 치매가 더 비참하고 치명적이다. 치매의 원인도 많고 그 증상도 다 다르지만, 내가 경험했던 – 실제로 경험한 것은 아니다. 미국에서 몇 번 다녀갔을 뿐이니까 - 모친의 치매는 어떤 수를 쓰더라도 저런 죽음이 돼서는 절대 안 된다는 생각을 갖게 했다. 그런 이유로 나는 암이나 죽음보다도 치매가 정말 두렵다. 언젠가 독일 간호사에 대한 다큐멘터리 프로에서는 젊어서 독일에 갔다가, 나이가 들어 치매에 걸린 분이 그렇게 잘하던 독일어를 하나도 기억하지 못하고 한국어만 한다는 것도 있었다.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말이지만, 특히 5~60대로 접어들면 무엇보다 중요한 게 건강이다. 한국에 오기 전에 미주 중앙일보 블로그에 글을 쓸 때, ‘건처재사우’가 나의 닉(Nick)이었다. 50대에 들어서면 건강, 처(wife), 재산, 사(事, 일), 친구 순으로 중요하다는 기사를 신문에서 읽었던 것이다. 고(故) 법정스님이나 김수환 추기경 말씀대로 어차피 피할 수 없는 길이라면, 몇 년 더 사는 것이 대수로울 수는 없다. 하지만, 건강에 문제가 있어서 하고 싶고 먹고 싶은 것도 마음대로 못하고, 남의 힘을 빌려서 살아야한다면 그건 간단한 일이 아니다. 


지난주에는 삼성그룹의 이건희 씨가 사망했다는 소문에 증권시장이 출렁거렸고, 이에 경찰이 소문의 진원지를 수사한다고 뉴스가 전한다. 한국의 최고 부자인 이건희 씨는 재작년 5월 뇌졸중으로 쓰러져 심폐호흡으로 되살아난 후, 2년 넘게 사회활동을 전혀 못하고 병상에 있다. 그의 건강상태가 삼성의 후계구도와 관련되어 철저하게 베일에 가려져 있으나, 한국최고의 시설을 가진 병원에서 생명연장 장치에 의지해 호흡과 맥박만 유지한 채 병상에 있을 거라는 짐작은 어렵지 않다.


1942년생이니까 불과 70대 초반에 그렇게 된 것이다. 그가 가진 많은 재산도 건강에는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현실에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아니다, 차라리 돈이 없었다면 행복한 죽음을 맞이했을 수도 있다. 그가 가진 돈은 이미 인간으로서 의미를 상실한 채, 죽지도 못하게 만들고 있으니 오히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평범한 사람이었으면 고통 속의 삶을 편안하게 놓고 영원한 안식에 들었을 것 아닌가! 어디선가 읽었던 기사에 의하면, 가사상태에 있는 환자 본인은 극심한 고통을 느끼지만 표현할 수가 없어서 지옥 속에서 지내는 거와 다름없다고 한다.


대부분 5~60대인 우리 카페에도 건강에 문제가 있는 분들이 많다. 내게 생활의 불편함을 주는 야뇨증, 불면증, 알러지 비염을 비롯해서 당뇨와 고혈압, 만성 두통, 고지혈증, 비만 등 크건 작건 한두 가지 문제가 없는 분들이 거의 없다. 심한 분들 중에는 운 좋게 간이식을 받은 분도 계시고, 투석을 하며 신장이식순서를 기다리는 분도 있다. 치매에 걸린 부모님이 조금씩 나빠지는 것을 고통스럽게 지켜보는 분도 있으나,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인생의 과정일 뿐이다. 이달 18일이 되면 우리 모두의 벗이었던 로렌스님이 대장암으로 운명한지 1년이 된다. 작년 6월 19일, ‘회원 여러분, 사랑합니다.’라는 글을 마지막으로 남긴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1년이 지났다. 병중에도 7월 4일까지는 매일 방문했던 흔적이 있어 마음이 아팠다.


모든 포유동물은 주어진 수명의 20~25%에 이를 때 육체적인 정점에 이르고, 그 이후 점점 쇠퇴하는 노화의 과정을 겪다가 죽음에 이른다고 한다. 노화의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따르는 것이 건강악화다. 몇 년 일찍 가더라도 사는 날까지 건강한 몸과 온전한 정신을 유지하고 싶은 것이 모든 이들의 바람이겠으나, 인생이란 것이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겠기에 나이가 들수록 건강에 특별한 관심이 필요하다.


한국으로 돌아온 후 4년 전 처음으로 건강검진을 하고는 매2년 마다 금년까지 3번을 했다. 술 먹는 것만 제외하면 특별히 건강을 해칠 일을 하지 않았다는 생각에 건강에 이상이 있으리라는 생각 없이 진단을 받았다. 처음에는 별 문제는 없어 보였다. HDL 콜레스테롤이 정상치 이하로 낮았고, 공복혈당이 약간 높았으며 체질량지수가 27.5로 체중을 줄이라는 소견이 있었다. 콜레스테롤이 무엇이고 콜레스테롤에는 나쁜 콜레스테롤인 LDL과 좋은 콜레스테롤인 HDL이 있다는 것과 그 역할에 대해서도 이때 인터넷 조사를 통해 알았다.


평소 건강에 자신하는 사람들이 으레 그랬듯이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까짓 거, 열심히 운동하면 되겠지.’ 나이가 들어 새벽잠도 별로 없겠다, 새벽마다 근처 학교 운동장을 뛰었다. 틈틈이 한라산도 오르고 많이 걸었다. 그래도 유일한 낙인 술을 끊기는 쉽지 않았으나, 가끔 찾아오는 불면 외에는 별 문제 없이 살았다. 운동장 12바퀴에서 20바퀴로 운동량도 늘렸다. 그러고 나서 자신감 있게 건강진단을 받았으나, 결과는 예상과는 달리 실망스러웠다.


이상지질혈증과 함께 당뇨병 질환이 의심된다며 2차 검진을 요구했다. 공복혈당(131mg/dL)과 LDL 콜레스테롤(174mg/dL)이 경계치를 넘어 위험수준이었다. ‘시골농부’님과는 다르게 중성지방은 정상이었고, 혈압과 간이나 신장 수치도 정상이었다. 문제는 탁해진 피였다. LDL이 높고 HDL이 낮다는 것은 피에 혈전이 많다는 것을 의미했다. 혈전은 뇌졸중이나 협심증의 원인이 되며 치매의 가능성도 높인다는 게 일반적 상식이다. 3년 전에 불현 듯 찾아왔던 반쪽 저림 현상도 우연이 아닌 것이다.(관련글보기)


‘디어 마이 프렌즈’에서 조희자의 치매증상을 보며 잊고 있었던 엄마의 죽음을 떠올렸다. 그것은 미리 막을 수만 있으면 무슨 일이 있어도 막아야 하는 불행이었다. 죽는 게 무서운 것이 아니라 모친이 그랬던 것처럼 모든 기억과 함께 인간의 존엄을 잃어버리는 것이 두려웠다. 강력한 특단의 대책이 필요했다. 단식을 생각해냈다. 작년에 한국을 방문했던 ‘청하’님은 그 짧은 시간을 쪼개 단식원에 들어갔고, 그 경험이 무척 좋았다고 피력했었다.


그래, 단식을 해보자! 며칠에 걸쳐 인터넷으로 단식을 검색하고 구체적인 방법을 검색했다.


<후기>

많은 응원과 격려에 대한 보답으로 일일이 답글을 다는 대신, 건강과 단식을 소재로 삼아 글을 써보려고 합니다. ‘청하’님이 했던 것처럼 단식원에 들어갈까도 생각했지만, 인터넷을 뒤져 조사해보니 집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였습니다. 일단 식단을 짜서 집사람에게 주고 협조를 구했습니다.


예비단식 3일, 본 단식 5일, 1차 회복식 5일, 2차 회복식 5일, 식이요법 15일 등 총 33일간의 장정으로 어제 7월 2일에 시작해서 다음달 4일에 끝납니다. 제가 스스로 ‘마루타’가 되어 직접 체험하는 과정을 전하고, 끝난 후에는 건강진단을 다시 받아 어디가 어떻게 좋아졌는지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관심 있는 분들만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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