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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의 시선이 머무는 곳

외국인이 본 한국의 직장문화

이글은 며칠 전에 어떤 분이 소개한 글로, 한국에서 16년 넘게 직장생활을 한 제게는 내용이 무척 인상적이라 번역해 보았습니다. 짧은 영어라도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해 가급적 의역을 했으니, 실수가 있더라도 너그럽게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글을 이해하는 것과 번역하는 것은 또 달라서 아침부터 지금까지 6시간이나 걸렸습니다. 차라리 글을 쓰는 게 쉬울 것 같네요.


처음 이 글을 접하고 며칠 동안 머리에서 글의 내용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공감이 가기도 했지만 어느 부분에 있어서는 너희들도 별 차이가 없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몇 번을 읽어보고 깨달은 것은, 글쓴이가 한국을 무척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애정이 없으면 관심도 없고, 관심이 없으면 이런 내용의 글을 쓸 수 없겠지요. 원본 글이 보고 싶은 분은 링크를 클릭하시면 됩니다. 글쓴이의 블로그도 있는데 재밌는 내용이 많으니 들려보시기 바랍니다.

 

글을 쓴 사람은 ‘Michael Kocken’이라는 이름의 호주 청년이고, 글이 작성된 시간은 2014314일입니다. 원제는 Seven Reasons Why Korea Has Worst Productivity in the OECD입니다.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흥미있는 글을 소개해준 'US123'님에게 감사드리며, 차후 몇 회에 걸쳐 저의 미국과 한국에서의 경험에 입각해서 내용을 분석해보고자 합니다.


OECD 국가 중에서 한국이 가장 생산성이 낮은 7가지 이유

 

최근 잡지에 실린 기사에 의하면 OECD 국가 중에서 한국은 노동 생산성이 최악인 곳으로 이름이 났다. 저성장 기간 동안에도 악명 높은 초과근무가 지난 2~3년 동안 널리 논란이 되었으나, 이런 뉴스는 현재 한국에서 일하고 있거나 과거에 한국에서 일한 적이 있는 외국인에게는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

 

도대체 왜 한국의 회사와 노동자들은 그토록 생산성이 낮을까? 가장 큰 이유 가운데 하나는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시간 관리를 잘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나는 동화 홀딩스라는 회사의 글로벌 인사 담당자로, 두 명뿐인 외국인 직원 중에 한국어를 구사하는 유일한 직원으로 1년간 서울에서 근무하면서 한국의 직장문화에 흠뻑 빠져들었다. 그리고 그것은 한국회사에 만연한 시간관리 문제를 자세히 관찰하게 만들었다. 이런 경험에 근거해서, 나는 OECD에서 한국이 왜 최악의 생산성을 보이는지 7가지 이유를 도출할 수 있었다.

 

1. 융통성이 없는 계급구조

 

한국회사들은 상의하달식 엄격한 조직으로 유명하다. 심지어 어떤 전문가들은 주식회사 한국을 군사조직으로 비교하기도 하는데, 군대복무의 영향으로 회사 전반에 독재적이고 권위적인 지도력이 그렇게 만든다고 한다.

 

이런 엄격한 조직은 군인이 상급자에게 하듯, 회사 고위층에게 불필요한 보고서를 끊임없이 작성하게 만드는 부작용이 발생한다. 팀들은 매주 부서장에게 보고하고도, 심지어는 정기적으로 이사회까지 보고하는 일이 생긴다. 또 어떤 임원이 무엇에 대해 알고 싶어 한다면, 그것이 업무와 관계가 있든 말든, 팀장은 빠른 시간 내에 보고서를 준비해야 한다. 게다가 팀장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이든 당장 중지하고 임원이 지시한 일을 최우선 순위로 며칠을 지내야한다.

 

수시로 생기는 이런 보고서는 회사 내에 전략적 업무나 작업도 없음을 뜻한다. 대신에 회사는 마치 소방서가 수시로 발생하는 화재에 대비하는 것처럼 예상하지 못한 문제에 즉각적으로 대응하기 위하여 항상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내가 전 직장에서 경험한 것에 의하면 업무보고와 감사가 끊임없이 돌아가는 회전목마와 같아서, 팀장은 시간 대부분을 CEO에게 보고하는 파워포인트를 작성하는데 사용하며 그런 일에 쓰이는 시간낭비를 한탄하곤 했다.

 

2. 소통의 문제

 

정기적인 음주와 사교를 강조하는 문화에도 불구하고 한국 회사들은 솔직하고 효과가 있는 직접적인 소통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는다. 팀과 부서 자체는 비교적 잘 돌아가지만, 점심을 같이 하고 일과 후에는 회식자리에 어울리는 분위기는 회사 내에 파벌을 만드는 부작용을 초래한다. 그 결과 부서가 다른 팀들은 서로 적이 되고, 부서 간 연대감은 존재하지 않으며, 회사 내의 조직들은 서로 의심하며 경쟁적으로 된다. 빈약한 소통은 항상 빈약한 성과를 낳고, 부서 사이에 좋지 않은 관계로 실적은 더욱 나빠진다.

 

영어구사도 한국 회사에서는 중요한 이슈다. 영어를 어렵게 여기는 많은 한국인들은 회사에서 사용하지도 않는 영어의 필요성에 의문을 갖는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외국인 업무 파트너와 대화하는 수단이나, 이메일을 작성하기 위해서만 영어를 사용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들은 인터넷 상에 존재하는 유용한 지식의 원천이 영어로 되어있고, 극히 일부분만이 한국어로 번역되었다는 사실을 간과한다. 외국인들은 구글링으로 수많은 정보를 간단하게 획득하는 이점이 있는데 반해, 한국인들은 네이버와 같은 일부 포털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서치엔진으로 극히 제한된 한국어 정보만 이용한다.

 

3. 이동전화와 온라인 소통

 

한국은 전 세계 비즈니스에서 가장 빠른 인터넷과 LTE(: 빠른 속도의 이동통신기술, Long Term Evolution) 확산을 제공하는 엄청난 초고속 광대역 네트워크에 모두가 연결된 사회다. 그러나 온라인 소통이나 전화 메시지는 일터에서 심각한 이슈가 되기도 한다. 회사 건물 내 어느 사무실에 가봐도 도서관처럼 조용하고, 모든 사람들이 컴퓨터로 열심히 무언가 하고 있어서 다들 일하는데 열중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화면을 들여다보면 그들 대부분은 카카오톡 컴퓨터 버전이나, Microsoft, LYNC, Nateon과 같은 온라인 메시지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직원들이 동료들과 일에 대한 채팅을 하는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은 그냥 시간낭비일 뿐이다.


한국사회에서 사무실에서 말한다는 것은 일하는 것이 아니라 잡담하는 것으로 보기 때문에, 때로는 옆자리에 앉은 사람과 말할 필요가 있을 때도 온라인 메시지를 보내지 않으면 안 된다. 온라인만이 아니라 스마트폰도 문제다. 직원들은 매 10분마다 메시지를 체크하며, 단순히 사적인 통화를 하기 위해 사무실을 벗어나기도 한다.

 

최근에 시행된 여론조사에 의하면, 직장인 706명의 응답자 가운데 61% 이상이 사내에 개인적인 장소를 갖고 있으며, 4분의 1은 그 장소가 화장실이라고 답했다. 또한 거의 45% 가까이는 쉬는 동안 전화기를 이용해서 게임, SMS, 인터넷과통화를 한다고 답했다. 서울에서 회사빌딩 화장실에 들어가면, 카톡을 하는 소리나 폭죽이 터지는 게임 음()을 듣게 된다.

 

4. 숙취로 인한 과도한 휴식

 

한국회사들이 일과 후 직원들의 회식을 장려하고 비용까지 지불하는 것은, 그것이 직원들에게 충성심과 개인 유대감을 개선시킨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음날 회사에 출근해야 (그것도 제 시간에) 한다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다 하더라도 부서에 있어서 친밀감이 일 잘하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이고, 숙취로 인한 폐해는 아무 것도 아니라고 여기는 것은 놀랍기만 하다.

 

다음날 벌게진 눈으로 억지로 출근한 직원들은 빙빙 돌고 골 때리는 상태에서, 적당한 휴식을 취해 전날 밤 숙취에서 회복되지 않고는 제대로 일할 수 있는 상태가 될 수 없다.

 

흡연도 생산성에 영향을 주는 주요한 이슈다. 나는 노동자들이 스트레칭과 리프레시를 할 수 있도록 주기적인 휴식이 필요하다는 개념에 적극 지지하지만, 흡연을 위해 자리를 비우는 시간이 일과 중에 평균 1시간일 정도로 너무 커서, 비흡연자들은 상대적으로 손해를 본다고 생각한다. 결과적으로 비흡연자들은 매일 서너 잔의 커피를 마시며 쉬는 것으로 흡연자들을 따라 잡는다. 앞서 인용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응답자의 거의 절반이 하루에 서너 차례 휴식을 위해 자리를 벗어나며, 1회당 평균 13분을 소비한다고 한다.

 

5. 핵심을 벗어난 서류양식

 

한국회사에서 일하는 동안 내가 알게 된 것의 하나는, 동료들이 작성하는 데는 반나절 밖에 안 걸리는 파워포인트 보고서를 그래프, 플로 차트, 이미지 등으로 덧칠해 예쁜 모양으로 만들기 위해 2~3일을 보낸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일종의 인정을 받기 위한 것이지만, 비공식 미팅이나 채팅으로 하면 10분도 걸리지 않는 간단한 보고서를 단지 꾸미는데어처구니없는 시간을 소비하는 것이다.

 

좋은 인상을 남기고 싶은 마음은 ‘Yes Man’의 형태로 어느 부서나 팀에서도 존재한다. 상사에게 깊은 인상을 주어 특권을 누리고 싶은 직원들은 자신의 의견이나 솔직한 피드백 보다는 충성과 복종을 나타낸다. 충성의 표시가 거짓이라 하더라도, 진정한 소통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지시받은 일에 대해 완전한 이해도 하지 않은 채, ‘왜(Why)또는 어떻게(How)’ 라는 간단한 질문도 없이, 윗사람에게 무조건 알겠습니다!’만 맹목적으로 반복하는 동료들을 자주 목격했는데, 결과적으로 그것은 일을 지시하는 사람에 대한 호응일 뿐이었다. (일에 대한 찬성이 아니고.)

 

6. 나이만 많고 준비는 덜 된 대학 졸업생

 

극도로 경쟁이 심한 취업에도 불구하고, 대졸 신입들은 일에 대한 준비가 안 돼 있어서 연구하고 보고하는 능력이 떨어진다. 이것은 시험 위주인 교육 시스템의 부작용으로 실제 응용이라는 측면에서 턱없이 부족하다. 많은 젊은이들이 강제적인 몇 개의 자원봉사 활동만 하고 어떤 경험도 없는 상태로 직장으로 온다.

 

동아일보와 취업 사이트에서 실시한 최근 조사에 의하면, 한국에서 신입사원의 평균 연령이 남성 33.2(2008년엔 27.3), 여성 28.6세라는 것은 정말 놀랍다. 남자의 경우 군사 의무복무 2년을 감안해서 대학기간을 서구사회와 비교하더라도, 취업에 필수라고 간주되는 자격증과 면허 취득 공부에 여러 해를 보냈다는 것을 뜻한다.

 

이런 과정이 만들어 내는 것은 그동안 노력과 비용에 대한 비현실적인 기대치와 어떤 경력도 없는 서른 몇 살의 노동력뿐이다. 비슷한 나이의 서구 지원자들은 10년에 가까운 정도의 실 경력을 이미 거쳤는데, 그런 차이를 대치할 수 있는 교육이란 있을 수 없다. 작년에 ‘사람인(Saramin)’이라는 취업 웹사이트는 신입사원 10명 중에 3명이라는 놀라운 숫자가 취업 첫 해에 사직할 정도로 직장생활에 환멸을 느낀다는 사실을 밝혔는데, 이는 회사 내 역할이 그들의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것뿐만 아니라 대졸자들이 직장의 현실에 깜깜하다는 또 다른 의미기도 하다.

 

7. 바쁜 것처럼 보이는 기술

 

한국인들은 사회적 상황 속에서 또는 사업상 바쁘다는 인상을 주려고 열심이다. 아마 당신은 한국에서 한가하다고 말하는 한국인을 거의 만날 수 없을 것이다. 그들에게 바쁘다는 것은 바람직한 상태이고 명예로운 표식이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은 바쁘다는 인상을 주기 위해 OECD 상대국 어느 나라보다도 늦게, 훨씬 더 늦게 사무실에 남아있는다. 불행히도 사무실에 오래 있다고 해서 생산성이 향상되는 것은 아니며, 한국인 동료들이 직장에서 매우 바쁘다고 주장하더라도 대부분은 지나치게 과장할 뿐이라는 것이 현실인데, 그것은 시간에 대한 파킨슨 법칙이 맞다는 것을 증거한다.

 

파킨슨 법칙이란, ‘주어진 업무는 주어진 시간을 다 채워서 끝낸다.’고 일반적으로 언급하는 격언이다. 한국인들은 일이 있든 없든 오버타임을 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데, 이것은 다시 사회적 압력, 충성심, (위로부터의) 인정에 대한 또 다른 시험이 된다. 그러니 자연적으로 생기는 일은 파킨슨 법칙의 적용이다. 어차피 밤 10시나 11시까지 있어야 하는데 뭐 하러 5시까지 일을 끝내겠는가?

 

이러한 생각이 한국 내에서 비생산적인 직장문화를 극복하는데 있어서 가장 큰 장애라고 믿는다. 한국인들은 그들이 그렇게까지 바쁘지 않다 - 그렇다고 게으르지도 않다 - 는 사실에 대해 스스로에게 솔직해져야 한다. 업무에 초점을 집중해서 제 시간에 일을 마치고, 정시에 퇴근하는 것이야말로 게으른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이런 개념이 한국의 직장에서 널리 인식되고 강화될 필요가 있다.

 

나는 한국회사들이 다루어야 할 이슈들이 무엇이고, 한국이 낮은 생산성을 갖는 이유에 대해 다소나마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란다. 물론 이것이 한국직장 내 환경에서의 개인적인 경험에 근거한 주관적인 견해이기는 하지만, OECD 평가의 밑바닥 견해를 의아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이해력을 제공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서술한 많은 이슈들이 한국에만 특정되는 것도 아니고, 서구사회에도 똑같이 꽤 존재하는 것도 알지만, 국민적 심리 속에 각인된 깊숙한 역사적 문화적 측면 때문에 한국에서는 더욱 크게 확대될 수 있다는 것이다. 희망은 다음 세대에 있다. 그들이 이런 지속하기에 힘든 업무 관행에 염증을 낼 것이고, 미래를 바꾸기 위해 회사의 독단적 행태를 몰아내려고 투쟁할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처음 마이클의 글을 접한 느낌은 다소 감동적인 동시에 의문이 들었다. 한국의 회사에서 겨우 1년 정도의 경험밖에 없는 친구가 어떻게 한국이 가진 문제점을 이렇게 적확하게 체계적으로 끄집어낼 수 있었을까. 가급적 글쓴이의 의도를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 모르는 단어를 찾아가며 몇 번을 정독하고, – 불어에서 온 Penchant 같은 단어, 나중에 번역할 때는 적절한 한국말이 생각나지 않아 사전을 많이 뒤졌지만 - 그 친구의 블로그를 찾아가 다른 글도 읽었다.


마이클이 이런 글을 쓸 수 있었던 것은 ‘한국에 대한 애정’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한국에 관심이 없었다면 ‘연세대학교 한국어학당’을 다니며 한국말을 배우지도 않았겠지만, 그런 관심이 한국사회에 존재하는 비합리성과 비효율성을 안타깝게 만들었을 것이고, 글을 쓰게 된 원인이 됐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다시 말하면 글이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비난이 아니라 비판이라고 생각했다. 비난과 비판의 차이는 애정과 관심의 유무다.


부족한 점도 눈에 띄었다. 이왕이면 한국사회의 장점도 기술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전쟁의 폐허에서 60년 만에 선진국으로 발돋움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단점만 있고 장점이 없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한국사회에는 이런 비능률적인 단점들이 많이 있지만 이러이러한 장점들이 있어서 오늘날의 한국이 존재한다는 내용을 첨가했다면 보다 완벽한 글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었다. 그리고 그 아쉬움은 한국과 미국에서 직장생활을 해본 내 몫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으로 연결되었고, 그것이 지금 글을 쓰게 만들었다.


지금까지 살면서 깨달은 것 중의 하나는 모든 사물에 양지와 음지가 존재하듯, 그 어떤 일에도 장·단점이 함께 있다는 것이다. 단점은 장점인 동시에, 장점은 단점이 되기도 한다. 내가 경험한 한국회사의 가장 큰 장점은 '목표지향의지'다. 조직에서 어떤 목표가 설정되고 구성원에게 임무가 주어지면 어떤 수단과 방법을 써서라도 달성하고야 만다. IMF를 극복하는데 도움이 되었다는 – 한국에 돌아와서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도 알았지만 - ‘금모으기’가 좋은 예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유사한 사례를 발견할 수 없다고 한다. 남의 기술을 훔치든, 설계도를 베끼든, 밤을 새워 공부하든, 목적달성에 필요한 일이라면 어떤 짓(?)도 서슴치 않았다. 그것이 설령 불법적인 일이더라도.


1980년대 초 내가 다니던 회사에서는, 토요다 자동차의 기술혁신 방식인 ‘분임토의’를 흉내 내어 직원들의 창의적(?) 아이디어를 짜낸 적이 있었다. 모방이나 흉내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미국회사에 연수 갔을 때는 밤늦게 남아 그들의 도면에 있는 - 무슨 의미가 있다는 착각으로 - 아무 의미 없는 낙서까지도 베꼈다. 일본에 출장 가서 VTR, 세탁기, 냉장고, 에어컨, 마이크로 오븐, 전기밥솥을 사다가 분해하고 조립하며 – 성능을 따라가지는 못하지만 – 비슷한 제품을 만들어냈다.


먼저 글의 1번 항목, ‘융통성 없는 계급구조’가 음지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의 한국을 이끈 양지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물론 개인적으로 이런 문화를 좋아하지 않으며, 개인주의를 말살하고 창의력 또한 기대할 수 없는 척결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믿지만, 그 효과를 무시만 하는 것도 옳다고 할 수는 없다. 문제는 이런 문화는 이제 없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후진국이나 개발도상국 시절이면 모를까, 선진국에서는 사회발전의 걸림돌일 뿐만 아니라 사회를 후퇴시키고 발전을 더디게 하는 구시대 유물임에 틀림없으니까.


7번, ‘바쁜 것처럼 보이는 기술’에 있어서는 미국인들도 다를 게 없다고 생각에 웃음이 났다. 왜냐면 이것을 읽는 순간 어떤 이름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Laura Graham’이라는 전 직장 매니저다. 이슈가 있어서 다른 매니저의 방에 들르게 되면, ‘Are you busy? I need a talk.’이라고 먼저 묻는 게 통상적인 예의다. 이 여자에게 듣는 대답은 매번 같았다. ‘crazy busy’라거나 ‘terribly busy’, ‘I don’t know where I’m coming or going’이었다. 이 여자가 하는 일은 별 것도 아니었다. 수 십 명에 달하는 인력을 진행되는 프로젝트에 맞춰 적당히 배치하는 것으로, 예전 매니저가 담당했을 때는 일부분의 업무였다. 그러나 박사학위까지 갖고 있었던 이 여자는 언제나 바쁘다고 했다. 누가 봐도 과장이었다.


이 여자를 잊지 못하는 사연이 있다. 내 부탁으로 채용된 딸이 그 밑에서 일하기도 했지만, 2008년 모친상을 당했을 때 100불이라는 거금(?)의 부조금을 받았기 때문이다. 미국인들이 한국인의 풍습을 안다고 해도 10불이나 20불이 보통이었다. 한참 나중에 딸이 그 회사를 떠날 때, 딸에게 백 불 정도의 가치가 있는 것을 선물하라고 했더니 아이가 이렇게 말했었다. “아빠 그냥 둬도 돼. 자기 남편과 함께 박사학위를 가졌다고 얼마나 자랑하는데!” 그녀는 ‘AT&T’에 다니다 레이오프 되었던 사람이었다. 이 사람 하나를 보고 모두를 평가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내가 경험한 다른 미국인 직원들도 대체적으로 비슷했다고 기억된다.


▼ 10년 전 회사의 연말파티에서 로라 그래험과 함께. 마이클의 '바쁜 척한다'는 글을 보고 이 여자가 생각나 옛날 사진파일을 뒤져 찾아냈다. 이때만 해도 제주로 돌아와 산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게 인생이다. 때로는 예상하지 못하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이다.



내가 회사생활을 할 때의 개인 처세술의 하나는, ‘빨리 해치우고 잊어버리는 것’이었다. 아둔한 머리는 한꺼번에 여러 가지 일을 머리에 저장하고 있기에 힘들었으므로, 우선순위에 따라 처리하고, 끝낸 일은 머리에서 지워버리는 것이 내게는 최선이었다. 또한 업무의 성격상 항상 봐야할 매뉴얼이 있었고,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새로운 기술이 있어서 일을 질질 끌고 있을 수가 없었다. ‘파킨슨 법칙’은 솔직히 말해 생소했다. 물론 과장이 된 후에는 퇴근하지 못하고 부장 눈치를 심하게(?) 보았지만 직원 시절에는 일이 없으면 바로 퇴근했다. 일이 없는 직원을 붙잡고 있지도 않았다. 따라서 마이클이 지적한 7번의 내용은 - 내 경험에 근거해서는 - 동의할 수 없다.


그것에 반해 5번, ‘핵심을 벗어난 서류양식’은 120% 동의한다. 한국의 직장에서 지긋지긋하게 경험했고, 미국의 직장에서는 이런 일에 시간과 노력을 낭비하는 일이 없어서 행복했었으니까. 서류의 내용을 만드는 일은 크게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본격적인 일은 내용보다는 서류를 멋있게 보이도록 꾸미는 일이었다. 단어나 문장의 선택, 한자 혼용, 글자 크기와 배치, 표지의 디자인을 멋지게 하느라고 밤을 새웠다. 30년 전에는 높은 사람에게 보고하는 보고서에, ‘하드드라이브’를 어떻게 쉬운 한글로 표기하느냐를 놓고 몇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언젠가 옛날 직장의 동료를 만나서, 아직도 서류를 그런 식으로 작성하는지 물어보았던 적이 있다. 그는 오히려 옛날이 좋았다고 했다. 그 이유가 재미있었다. 옛날에는 워드프로세서의 기능도 단순했고 흑백프린터만 있었지만, 지금은 글자 모양이나 크기, 색깔까지 원하는 대로 정할 수 있어서 미대에서 디자인을 전공한 사람이 필요할 지경까지 이르렀다며 웃었다. 기막힌 일이 아닐 수 없다.


사실 이 문제는 1번, ‘융통성 없는 계급구조’와 관계가 깊다. 박정희, 전두환 정권으로 이어지는 군사문화는 30년에 가깝도록 사회전반에 널리 확산되어 있어서, ‘ㅈ으로 밤송이를 까라면 까!’라는 폭력적인 언어를 부장으로부터 들었던 기억까지 있다. 개인적인 견해로는 ‘전문성의 결여’라고 판단한다. 군사정권 하에서는 ★을 달고 퇴역한 사람들이, 그리고 최근에는 낙선한 정치인이나 고급관료출신 퇴직자들이 낙하산을 타고 투입되는 탓에 전문적 지식이 모자란 사람들이 높은 자리에 앉아 내용보다는 형식에 치중하게 되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달랐다. 위에 있는 사람일수록 전문적이고 아는 것이 많아서 형식적인 것에 연연하지 않을 수 있었고, 실질적인 내용과 효율을 더 중요시했다. 한국 같으면 보고서 만드느라 몇 시간 혹은 며칠이 걸릴 일도 이메일이나 전화, 팩스로 끝냈다. 그런 면에서는 한국은 생산성이 높을 수가 없는 문화다. 게다가 전문적인 지식이 결여된 사람일수록 자신의 지시에 ‘토’를 다는 까칠한 – 그러나 제대로 일하는 – 부하보다는 ‘Yes-man’을 좋아하기 마련이다.


다른 원인도 있다. 한국은 비밀이 많은 사회, 즉 투명하지 않다는 것이다. 뇌물이 오가고 리베이트가 비밀리에 거래되는 사회에서 ‘Yes-man’처럼 좋은 부하는 없다. (작금 한국에서 뉴스가 되고 있는 ‘국민의 당’ 김수민 비례대표의원이 아주 좋은 예다.) 따라서 사람의 능력보다는 ‘충성도’가 인재를 평가하는 보다 중요한 요소로 종종 취급된다. 상식에 어긋난 지시나 무리한 업무지시에도 무조건적인 충성을 보이는 사람이 중용되는 이유다. (새누리당 유승민 의원이 청와대와 대척되는 이유도 같다고 짐작한다.) 따라서 사람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신의 맹목적인 충성심을 나타내야 하는 절대적 필요가 있다.


그런 충성심은 어떤 것일까? 윗사람에게는 간단한 질문조차 하지 않는 것, ‘Yes, Sir!’만 반복하는 것, 아무 것도 아닌 보고서조차도 멋들어지게 만드는 것, 윗사람이 퇴근할 때까지 자리를 지키는 것, 회식자리에서 윗사람이 올 때까지 자리에 앉지 않는 것, 일의 능률보다는 윗사람의 비위를 맞추는 것, 바꿔 말하면 내용보다 형식이 아닐까?


그런데 이제는 변할 때가 되지 않은 것인가? 2~30년 전의 직장문화가 아직 그대로라는 것이 신기하다. 다른 나라의 10년이 1년에 해당할 만큼 급변하는 한국이 아닌가 말이다.

6번 항목, '나이만 많고 준비는 부족한 대학생'에 대한 분석은 다소 충격이었다. 신입사원의 평균연령이 남자 33.2세, 여자 28.6세라는 통계는 우리 세대에는 없던 현상으로, 결혼과 출산이 늦어지고 때로는 포기하기까지 하는 국가차원의 새로운 문제거리임에 틀림없다.


우리 세대는 대략 만 25세면 대학졸업과 군복무를 마치고 사회에 진출할 수 있었다. 10%도 채 안 되는 대졸자를 제외한 90% 이상의 공고나 상고, 전문학교를 나오는 사람은 훨씬 이른 나이에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따라서 58세가 공식적인 정년이라도 30년 이상 현역으로 일할 수 있지만, 지금이라면 60세로 늘어난 정년을 적용해도 30년이 채 못 된다는 결론이다.


늦은 사회진출은 사람들의 평균적인 인생 로드맵에 있어서 결혼, 출산, 육아시기를 늦춤으로써 인생의 질을 떨어뜨리는 원인이 될 수밖에 없다. 왜 이렇게 사회진출이 늦어질까? 바늘구멍 같은 취업의 관문을 뚫기 위해 ‘스펙쌓기’로 이어지고, 실무에는 별 도움이 안 되는 – 약간은 도움이 되겠지만 – 소위 ‘5종 세트(학벌, 학점, 토익, 해외연수, 자격증)’, ‘8종 세트(5종 플러스 공모전 입상, 면접 PT, 성형시술 또는 토익 외 공인영어시험 점수)’ 운운하며 헛된 스펙을 쌓느라 비용과 시간을 낭비하기 때문이다.


써먹지도 못할 지식을 습득하느라 아까운 청춘(시간)과 비용을 낭비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짓이 또 있을까? 마이클의 블로그에 나오는 글이다. 동료가 승진을 위해 회사에서 요구하는 영어시험(IELTS, the International English Language Testing System) 때문에 고민하는 것을 보고, 영어 원어민으로서의 자부심에 농담 삼아 놀렸다고 한다. 너도 절대 만점 받지 못할 거라는 말에 시험을 치렀는데 80점을 겨우 받았다고 했다. 영어구사가 한참 뒤진 한국인 동료의 점수가 더 높았음은 물론이다.


오래전 ‘코오롱 정보통신’과 함께 ‘인천공항’의 자동관제시스템 입찰 제안서를 만드느라 미국출장을 함께 한 적이 있었다. 내 영어도 한심하지만 코오롱 차장의 영어는 정말 형편없었다. 동사는 무조건 ‘Be(is)’ 이었고 모든 단어의 뒤에는 ‘ser(저)’를 붙였다. 그래도 아쉬운 미국 측 엔지니어들은 거의 알아들었다.


3년 전 아들 녀석이 삼성전자에 다닐 때의 일이다. 삼성전자는 현재 취업준비생들에게 가장 인기가 있는 한국에서 최고로 잘 나가는 직장이다. 잘은 몰라도 삼성에 입사하려면 토익점수는 900점이 넘어야 할 것이다. 한국에서 엔지니어들이 댈러스에 있는 미국본사로 출장을 왔다. 뉴저지에서는 백인직원이 회의에 참석하도록 사전조율이 되어있었지만, 한국 측 직원들이 영어로 하는 회의에 부담을 느껴 한국말을 하는 직원으로 바꿔달라고 요구하는 바람에 졸지에 가게 되었다고 몹시 투덜거리는 녀석을 보았다.


이런 예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한국에서는 영어실력이 아니라 영어시험기술을 배운다는 것이다. 정작 필요한 것은 영어로 듣고, 말하고, 읽고, 쓰는 것이지, 시험을 잘 보는 기술은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는데도 말이다. 한국인의 목표지향의지는 영어시험과 같은 스펙쌓기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되어, 공장에서 찍어내는 제품처럼 스펙도 학원에서 마구 찍어내고 있다. 사무실에서는 구글링도 못하는 영어실력이면서.


얼마 전에 본 뉴스다. 박 대통령이 아프리카와 프랑스 순방을 가면서 통역사를 구하는 광고를 청와대에서 이렇게 냈다고 한다. ‘용모가 뛰어난 여성’ 이게 무슨 막말인가. ‘용모가 단정한 분’을 잘못 기술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통역과 용모가 무슨 관계가 있을까. 언어실력이 좀 쳐지더라도 얼굴이 예쁘면 뽑겠다는 것인가. 용모 지상주의가 얼마나 만연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가 아닐 수 없다. 서울 강남의 그 많은 성형외과가 번창하고 있는 것도 이유가 있었다.


이력서에 단 한 줄을 채우기 위해 필요도 없는 자격증을 따려고 학원에 다니고, 공모전에 응모하느라 몇 년 씩 청춘을 보내고 있다. 너무나도 안타까운 일이다. 소방서나 주민 센터, 구청에서 일하는 사람에게 토익이 무슨 필요가 있을까. 지난주 토요일 9급 지방 공무원 시험에 20만 명이 몰렸다는 뉴스가 기막힐 따름이다. 이번 주에는 서울시 9급 공무원 시험이 있다고 한다. 우리 세대에는 고졸이 보던 시험이었다. 심지어 대기업에서 비효율적 현장경험을 경험한 사람들까지 공무원 시험으로 몰린다니 무언가 크게 잘못되었다.


직장생활을 해본 사람들은 다 안다. 사무실이 항상 바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 혹은 온종일, 어떤 때는 며칠씩 아무런 할 일이 없을 때도 있다. 이럴 때 관리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실무교육(OJT)을 시키기도 하고, 과제를 주어 세미나도 열고, 업무개선을 위해 아이디어 회의를 진행하기도 한다. 미국에서 들었던 이야기다. 어떤 네일가게 주인은 종업원들이 쉬는 꼴을 보지 못해서, 손님이 없을 때는 유리창을 닦으라고 시키기도 하고, 아침에 청소한 바닥을 다시 걸레질하게 한다고 한다. 이런 주인이 운영하는 가게가 잘 될 리가 없다. 종업원이 행복해야 가게도 잘 된다.


회사도 마찬가지다. 일이 있어서 야근을 하는 것이야 모두 이해한다. 할 일도 없는데 야근을 시킨다면 미친 짓일 뿐 아니라 회사를 망치는 짓이다. 아들에게 들은 바에 의하면 미국의 LG전자가 그랬다. LG전자가 모바일 부분에서 최근 적자가 500억이 넘어 구조조정을 한다는 소식은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이 아니다. 심지어 20대 국회에서는 6시 퇴근을 법으로 정하려는 움직임까지 있다고 한다. 얼마나 회사에서 직원들을 붙잡고 있으면 이런 법까지 생각해냈을까.


한국생활에서 놀라운 것 중의 하나가 인터넷과 모바일 환경이다. 제주의 인터넷이 10MBps 속도까지 나온다. 작년에는 절반 수준이었다. TV 다큐나 영화를 다운 받는데 몇 분이면 끝난다. 모바일도 월 3천원이면 거의 모든 곳에서 와이파이를 이용할 수 있어서, 이것을 주로 이용하면 스마트폰 요금도 월 만 원이면 충분하다. 마이클이 지적한 3번 항목, ‘이동전화와 온라인 소통’의 문제제기는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공(公)과 사(私)의 구분’이 애매모호한 한국사회의 특징이기 때문이다.


마이클은 자신의 블로그에서 호주로 돌아가서도 한국을 잊지 못하게 하는 좋은 점 다섯 가지를 들었는데, 그 첫 번째가 ‘정(情)’이었다. ‘정’은 우리 민족에게 가장 큰 장점이지만, 공과 사의 구분을 불분명하게 만드는 단점이기도 하다. 지난날을 돌이켜보면 나도 이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사람이다. 근무시간에 사적인 통화를 몇 십 분 씩 하고, 찾아온 친구를 사무실에서 만나 잡담을 나누기도 했다. 상사의 경조사에는 마치 내 일처럼 거들었으며, 2008년 모친상을 당했을 때는 한국지사에 있는 직원들이 모두 찾아와 거들었고, 몇몇 젊은이들은 끝까지 남아 관을 짊어지는 수고까지 아끼지 않았었다.


한국인의 회식문화도 이와 관계가 없지는 않을 것 같다. 미국에서 골프회동을 생각해보자. 한국 사람끼리 어울리는 골프에서, 미국인들처럼 18홀에서 아웃하면서 ‘Very nice to play with you!’하고 ‘쿨’하게 각자의 차로 가는 경우가 얼마나 있을까. 대부분 식사하러 가거나 맥주라도 마신다. 그래서 내기가 빠질 수 없는지는 모르겠지만. 회사생활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동료들과 그냥 헤어지려면 무언가 빠진 것 같은 허전함이 있다. 그런 것이 며칠 거듭되면서 회식이라는 일정이 잡힌다. 물론 일이 많아 야근을 시키고서도 그냥 보내면, 과장이나 부장으로서 무능한 보스가 된다.


무엇이든 장점은 단점이 되기도 하고, 단점은 장점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 지난날을 통한 경험이었다. 요점은 어떻게 장점은 극대화하고 단점은 최소화 시킬 수 있느냐는 것이다. 경험에 근거해서 생각해보면 그것은 관리자의 능력이고 경영층의 숙제이기도 했다. 그래서 사람이 중요하고, 경영은 결국 인사(人事)고 인사가 곧 만사(萬事)라고 하지 않던가!

“한국에서 이상했던 것 중의 하나가 사원을 채용하는 방식입니다. 미국에서는 직원을 필요할 때 수시로 채용하는데 반해, 한국의 대기업에서는 신입사원 채용기간에 한 번에 수백 명을 채용한다는 겁니다. 그것도 그룹 전체의 직원을 한꺼번에 뽑는 것이 낯설었습니다. 미국에서는 필요할 때마다 수시로 뽑거든요.”


지난 번 ‘대화의 여운’이라는 글의 소재가 된 분으로부터 들었던 말이다. 그러고 보니 그랬다. 내가 근무했던 직장이야 전 직원이 이삼 백 명밖에 안 되는 작은 회사라 거기까지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업무가 늘어나서 인력충원이 필요해지면 보스로부터 승낙을 받아, 인사 담당자에게 이메일을 보내는 것으로 끝났다. 보스와 HR매니저에게는 ‘CC(Carbon Copy)’로 이메일 수신자에 추가했다. 인사담당은 ‘핫잡(Hotjob.com)’ 같은 구직 사이트에 구인광고를 내고 지원자의 이력서를 내게 보내주었다.


딸을 회사에 취직시킬 때도 그랬다. 큰 프로젝트 계약이 성사되어 다른 부서에서 직원들을 채용하고 있었기에, 아르바이트 하며 학교에 다니는 것을 힘들어 하던 아이를 추천할 수 있었다. 과정에서 약간의 문제가 있기는 했지만, 그것은 내 능력(?)으로 커버할 수 있었다. 아이가 일하는 부서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노우하우를 딸에게 전수했고, 성실하게 직장생활을 하며 경력을 쌓은 아이는 꽤 잘 풀려 지금의 전문가가 되었다. 미국에서 한 일 중에서 가장 잘한 일로 꼽는다.


미국도 한국처럼 연줄(Network)이 작용한다. 내가 딸에게 했던 것처럼, 혈연이나 학연도 필요하다. 이번에 아들이 2년 만에 재취업하는데도 그런 연줄이 작용했다고 들었다. 전 직장에서 내가 데리고 있던 사람 중에도 그런 친구가 있었다. 그런데 이게 한국과는 다르게 별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은, 오로지 능력에 따를 뿐이지 그것 때문에 특별하게 대우하지 않는다는 것에 있다. 시원찮거나 충분한 이유가 있으면 수습기간 중에 내보내면 된다.


공정한 인사정책 하에서 연줄을 통한 이런 추천제도는 오히려 바람직할 수도 있다. 적재적소에 성실하고 능력 있는 사람을 채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핫잡이나 신문구인광고를 통해서 들어온 수십 장의 이력서를 일일이 검토해서 스크린하는 시간과 노력을 줄일 수도 있다. 만약 자격이나 소양이 모자란 사람이 추천되었다면 추천한 사람에게 책임이 돌아가기 때문에 추천하는 사람도 자기 자식이라고 해서 쉽게 할 수도 없다. 또 내 딸처럼 애비의 체면을 생각해서 더 열심히 일한다면 서로 ‘윈-윈’ 하는 전략이 아닐 수 없다.


투명한 사회라면 얼마든지 가능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권장할만한 능률적인 일이다. 문제는 투명하지 않다는데 있으며, 투명하지 않게 만드는 요인에 1번 항목 ‘융통성이 없는 계급구조’나, 2번 항목 파벌을 만드는 소통의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마이클이 자신의 블로그에서도 언급했지만, 대한항공 창업자의 3세 조현아 씨가 일으킨 ‘땅콩회항’ 사건은 그런 사례로는 대표적이다. 아무런 자질이나 능력도 없으면서 사주(社主)의 자손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서비스 부문 부사장’ 자리를 꿰찬 그녀는 자신의 무능력을 권위로 감추고 과시하느라 그런 말도 안 되는 폭거를 저지른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번에 새로 뽑겠다는 친구말야, 생긴 게 뭐 그렇게 지저분해! 그래 가지고 일을 제대로 하겠어?’, ‘그 친구 고등학교밖에 안 나왔던데, 미국에 연수 보내서 괜찮겠어? 영어가 안 될 텐데, 사람이 그렇게 없어!’라거나, ‘겨우 과장이었던 주제에 누구 앞이라고 함부로 우기는 거야!’ 등은 내가 한국에서 ‘자동화 사업부장’이라는 직책을 수행하면서 사장에게 직접 들었던 말이다. 그분들은 모두 30년대 생으로 이제는 모두 뒷방 늙은이가 되었겠지만, 아직도 그런 식으로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이 윗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면 정말 끔찍하다. 자기들이 책임질 것도 아니면서 정작 책임질 사람에게 할 말은 결코 아니다.


한국의 직장문화를 언급하면서 ‘회식문화’를 빼놓을 수는 없다. 마이클도 2번과 4번 항목, ‘소통의 문제’와 ‘숙취로 인한 과도한 휴식’으로 이것을 다뤘다. 개인적으로도 음주와 함께 대화하는 것을 즐기는 취향으로 회식을 싫어하지는 않으니까, 이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또한 사무실이라는 딱딱한 조직을 가족 같은 부드러운 분위기로 만드는 긍정적인 측면도 크다고 본다. 하지만 그런 장점에도 불구하고, 회식문화는 척결해야 하는 첫 번째 대상으로 주장한다. 이에 따른 악습과 부패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한국에서의 회식과 음주는 사는 사람과 받는 사람으로 나뉜다.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 사는 사람은 아무 의도가 없을까? 또 받는 사람은 아무 대가를 치르지 않아도 될까? 그리고 그 돈은 어디서 나올까? 지극히 상식적인 이런 몇 가지 질문을 할 수만 있다면 답은 뻔하다. 이것 역시 군사정권에서 비롯된 한국사회에 팽배하는 ‘융통성 없는 계급사회’와 관련이 없을 수 없다. 조직에 맹목적으로 충성하고 두목은 회식이라는 은전을 베푸는 것이다. 역시 경험에 근거해서 이 문제를 풀어본다.


“부장님이 늦으시는 것 같은데, 우리 먼저 시켜 먹읍시다.” “에이, 왜 이래. 장 과장! 조금만 참아. 다 배고프지 안 고픈 사람이 어딨어?” 회식자리에서 흔히 있던 고참 과장과의 대화다. 영화에 나오는 조폭처럼 길게 늘어진 상을 사이에 두고 2~3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시장기를 참으며 음식을 앞에 두고 기다리는 모습이다. 이런 기억이 역겹도록 싫어서, 부장이 된 후에 내가 회식자리에 늦을 경우에는 먼저 식사하고 있으라고 신신당부를 했었다. 그러나 그들은 언제나 같은 모습으로 늦게 나타나는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내가 먼저 회식자리에 가는 것.


미국에서는 이런 것이 달랐다. 회사의 연말파티나 타운홀 미팅에도 사장이 제일 먼저 나왔다. 아이들 졸업식에 가보면 교장이 먼저 식장에 나와 졸업생을 기다렸다. 내가 경험한 한국은 당연히 반대다. 졸업식장에서 졸업생들은 교장을 기다렸고, 회사의 강당에서는 사장이 제일 늦게 나타났다. 오와 열을 맞춰 부동자세로 연병장에 서서 부대장이 나오길 기다리는 군대와 다를 것이 무엇인가. 부대장은 훈련이 끝나거나, 사단장 검열이 끝났을 때 돼지 몇 마리와 막걸리 몇 말을 풀어 부대원에게 회식을 베푼다. 고지를 향해 ‘돌격 앞으로’를 외치며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군사문화가 대한민국을 선진국의 반열에 올려놓는데 역할을 했다는 것을 부인하기는 힘들더라고, 국민들에게 행복을 주고 더 높은 이상을 위해서는 계속 가져가야 할 문화는 분명 아니다.


회식에 사용되는 돈은 또 어떤가. 지금은 어떻게 바뀌었는지 알 수 없지만, 과거에 그런 돈은 거의 불법적으로 만들어졌다. 허위로 출장을 끊고, 공사비를 부풀렸다. 그런 돈을 잘 만드는 부서장이 직원들에게 능력을 인정받았다. 모든 부정부패는 술자리에서 은밀히 이루어졌다. 술에 취해 흐물흐물하게 만들어놓은 후에, 사업 비밀을 알아내고 청탁과 함께 현금 봉투가 오갔다. 한국에서 골프를 치면 18홀 그린피도 비싸지만, 19번째 홀에서 드는 술값이 더 많이 나왔다. 


회식문화야말로 척결되어야 할 첫 번째 대상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군사문화의 유산으로 장점보다는 그 폐해가 훨씬 크다고 보기 때문이다.


<후기>

"L 사장요? 요즘은 안 보이니까 잘 몰라요. 옛날 한강 프로젝트를 할 때인데, 택도 없는 장비를 들고 와서 납품하겠다는 거에요. 일언지하에 딱 짤랐어요. 당신이 처장과 그렇게 친하면 처장에게 말해서 나를 짤라라. 내가 여기 있는 한, 죽어도 그 장비는 안 된다고 했죠. 그랬더니 다시는 나타나지 않더라구요." 지난 3월 옛날 동료들을 만나 산행을 끝내고 점심을 한 후, 산행을 하지 않았으면서 내게 점심을 사겠다고 청계산에 나타난 P사장으로부터 들었던 말입니다.


P사장은 30년 전에 제 부서에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옛 동료를 만나면 내가 알던 사람들에 대해 묻곤 했습니다. 그말을 들으며 이렇게 말했지요. "난 그때 자네처럼 그렇게 말할 배짱이 없었어. 소심해서 그런 말이나 청탁을 받으면 혼자 꿍꿍거렸으니까. 그래서 이민을 택한 건지도 몰라!"


마이클은 자신의 블로그에서 한국에서 직장생활의 어려움은 퇴근 후에 시작된다고 적었습니다. ‘소맥’을 잘 만들어야 하고, 다른 사람의 잔이 비워졌는지 파악하고, 두 손으로 술을 따르고, 눈치 보며 원샷하는 일이 외국인으로서 쉽지는 않았겠지요. 또 글에 의하면 그 친구는 저처럼 술이 세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아직 저는 소주 한 병으로는 양에 차지 않거든요, 하하하.


‘마이클 코켄’이라는 친구가 한국의 직장문화에 대한 글을 보면서 - 별로 좋은 회사가 아니라고 보입니다만 - 옛날 기억을 되살리는 기회로 삼았고, 거기에 제가 한국과 미국의 경험했던 직장생활을 보탠다면 혹시 한국의 문제점을 털끝만큼이나마 알리고 좋아질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주제넘은 생각으로 써 본 글이었습니다.


▼ 내가 가장 잘한 일 중의 하나로 생각하는 것이 딸을 취직시킨 것입니다. 10년 전 회사생활을 시작하고 연말파티에 처음 참석한 아이와 찍은 사진입니다. 벌써 FDA Regulatory 분야에서 10년 차의 경력을 갖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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