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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의 시선이 머무는 곳

2년만에 재취업한 아들

안녕하세요? 잘 지내시죠?


이제 한국도 날이 조금씩 풀리고 있겠네요. 늦었지만 생신 축하드립니다.

요즘 하는 거 없이 시간이 너무 빨리 가네요. 아직 좋은 소식은 없습니다. 가끔 Interview 보면서 지냅니다. 

어떤 일은 거절한 적도 있는데 잘한 건지 시간이 지나가면 다시 되돌아보게 됩니다.

그 외에는 별일 없이 잘 보내고 있습니다. 운동도 최소 3번 이상 2시간~3시간 매주 합니다.

혹시 미국에서 뭐 필요하신 거 있으시면 알려주세요. 생신 선물로 보내드릴게요. 

이상하게도 아직은 여유 있습니다. 돈을 알뜰하게 쓰는 건지는 모르겠는데 의외로 잘 버티네요. 

한국은 늦은 시간이니 주무시고 담에 연락주세요.

전 이제 운동하러 갑니다.


from 아들


지난 3월 아들이 보내온 메일이다. 전화는커녕 메일이라도 이렇게 소식 전하는 것에 무척 인색한 녀석이다. 어쩌다 이렇게 되어 버렸을까. 녀석이 대학에 가면 친구가 되어 같이 술도 마시고 인생에 대해 토론도 하고 싶었는데, 이제 며칠 있으면 서른 번째 생일을 맞는 녀석과 지금까지 그랬던 기억이 별로 없다. 모든 것은 녀석의 말에 귀 기울이고 경청하는 대신‘갑질(?)’로 일관했던 내 불찰 탓이다.


언제부턴가 녀석은 나를 피했다. 아니, 그렇게 느껴졌다. 전공 결정도 내 의견을 따르지 않았고 선배나 친구의 조언을 쫓았다.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않았고 물어보는 것도 불편한 듯 꺼렸다. 따라서 무엇을 하는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딸에게 듣는 것이 전부였다. 그나마도 딸아이의 대답은 언제나 시원치 않았다. “아빠, 걔는 스스로 알아서 하잖아. 좋은 일이 생기면 아빠에게 먼저 연락하겠지. 아빠가 안다고 변하는 것도 없는데, 왜 자꾸 물어! 그냥 내버려두면 잘될 거니까 걱정 붙들어 매.” 매번 이런 식이었다.


카톡으로만 연락을 하던 딸이 메시지를 남기더니 며칠 전에 전화를 했다. 꽤 잘 나가는 제약회사에 다니는 아이는 모처럼 아빠에게 수다를 떨었다.


“아빠, 새 프로젝트가 시작돼서 9월까지 정말 바쁘게 생겼어요. 프로젝트가 끝나야 휴가도 갈 수 있을 것 같아. 지난달에도 정말 바쁘게 보냈거든. 새벽 세시까지 일한 적도 있으니까. 매니저가 나보고 고생했다고 재택근무하면서 며칠 쉬라는데, 다른 사람들 눈치가 보여서 그럴 수가 있어야지. 어제까지 집에서 일하다가 금요일인 오늘 처음 출근하는 거야.”


딸아이는 내가 궁금한 제 동생에 대한 이야기를 좀처럼 꺼내지 않았다. 텍사스로 옮기는 회사를 그만둔 것이 재작년 7월이니까 아직 취직을 못했다면 벌써 2년째 노는 셈이었다. 뉴저지에 있는 LG전자와 삼성전자에서 일했었다. 스마트폰 개발 코디네이터로 일했으니 자기 전공과는 상관이 없는 셈이었다. LG를 관두고 다시는 한국계 회사에 취직하지 않겠다더니 결국 다시 들어간 곳이 삼성이었다. 그래도 삼성은 수당도 없이 오버타임을 시키는 LG보다 낫다는 것이 녀석의 평가였다. 추측이지만 유창한 한국어 실력이 취업한 요인이었으리라.


그 삼성이 경비절감을 이유로 영업부서를 제외한 전 부서가 텍사스 댈러스에 있는 HQ로 이전하면서 녀석은 사직했다. 내게 조언을 구하지도 않았지만, 다른 곳에 취업할 때까지 회사에 남기를 바랐던 내 바람을 저버렸다. 아마도 친구들이 있고 누이가 있는 뉴저지를 떠나기 싫었을 것이다. 모든 기득권을 포기하고 이민을 떠난 나와 비교할 때, 매사 소극적인 아들이 한국에 있었더라면 좋았을 거라고 생각하는 이유다.


“아빠, 회사는 세 달 후에 옮기지만 지금 사직서를 제출해야 회사에서 해고하는 것으로 해준데요. 실업수당을 타려면 할 수 없어서 그만 두겠다고 했어요.” 안타까워하는 내게 했던 말이다. 한창인 나이에 취직을 못하고 있으니 애비로서 그렇게 답답할 수가 없었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지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런 세월이 1년을 넘어 2년이 되어가고 있었고 '대기만성'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며 스스로 위안을 삼던 참이었다. 딸에게 동생 이야기가 나오기를 기대하며 결혼해서 사는 아이를 물었다.


“모르겠어. 결혼한 지 벌써 3년이 됐으니까 아이를 가지려고 하는 것은 같은데, 아이가 안 생기는 걸 어떡하겠어. 아빠가 걱정할 문제는 아닌 것 같은데.” 아이의 냉정한 말에 가슴이 시려온다. “이년아, 부모니까 걱정하지 애비가 아니면 걱정 하겠어! 그건 그렇고 너 좋다는 놈은 아직도 없어?” “그런가? 아빠니까 그럴 수도 있겠네, 헤헤헤”


요즘은 데이트 상대를 구하는 ‘스마트폰 앱’이 널리 알려졌다는 아이의 설명이, 그쪽에서 일했던 내게 쉽게 이해되었다. 앱에 가입해서 자기소개를 올려놓고 또 이성이 올린 소개를 보고 괜찮으면 ‘좋아요’를 누른다고 한다. 쌍방이 서로 ‘좋아요’를 표시하면 가상의 번호(Virtual number)가 주어지고 이 번호를 통해 서로 채팅을 하다가, 오프라인에서 만나고 싶으면 전화번호를 교환한다는 거다. 내가 아는 사람들 이름 몇 개를 열거하며, 다들 그렇게 만나서 결혼에 골인했다고 한다. “아빠, 나는 한국사람은 잘 안 보이더라. 중국계들만 연락이 오는 거야. 베트남계는 어때?”


회사에서 짤리기 전, ‘제프리 샴(Jeffrey Sham)’이라는 중국계 말레이인으로 어릴 때 미국으로 건너온 직원이 내 부서에 있었다. 베트남계 미국인과 결혼한 그가 자주 했던 말을 떠올렸다. “듀크, 나는 와이프와 결혼한 게 아니라, 와이프 집안 전체와 결혼한 것 같아! 그 집에 무슨 일이 생기면 그게 곧 내가 해결해야 하는 일이 되거든. 장모가 교통사고를 냈는데 정말 골치 아파 죽겠어.”


“헤헤, 아빠가 그렇게 말할 줄 알았어. 부정적일 거라고 생각했지. 그런데 만나보니까 매너는 참 좋더라. 미국에서 태어난 사람인데, 시블링(Sibling, 형제자매)이 10명이래. 그렇게 많은 사람은 처음 봤어. 한 번 만났는데 요즘 계속 연락 오거든. 내가 알아서 할 일이지, 뭐.” 말끝에 기회다 싶어 아들놈에 대해 물었다.


“참, 걔는 취직했어. 롱 아일랜드에 있는 회산데 자기 전공 찾았어. 아직 정직원은 아니고 프로젝트가 성공하면 정직원이 되는 조건으로 지난주부터 다니고 있어. 그리고 여자 친구도 생겼어. 집에도 오고 같이 식사도 했는데 착하게 생겼더라. 우리랑 비슷한 시기에 미국에 왔나보던데.” 버스로 맨해튼으로 가서 지하철로 갈아타고 출퇴근한다고 했다. HR(Human Resource, 인력지원)회사 소속이지만 휴가와 의료보험, 401K까지 베니핏이 있다고 딸아이가 대신 전했다.


휴, 다행이다. 이제야 조금이나마 마음이 놓인다.


<후기>

자식에 대한 이야기는 쉽게 하기 어렵습니다. 혹 아이에게 누가 될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아이비리그를 나와 좋은 직업을 가졌다면 자랑삼아 털어놓을 수도 있지만, 변변찮은 대학을 나와 어렵게 취직해서 힘들게 살아가는 아이의 이야기는 자랑거리가 되지 못합니다. 특히 남을 의식하는 우리 한국인들에게는 더 심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글을 쓰는 것은, 이민자의 모든 아이들이 다 공부를 잘하고 다 잘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극히 일부 성공한 1.5세나 2세들의 이야기만 한다면 모든 이민자의 자녀들이 전부 그렇다고 오해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래서 너도 나도 기꺼이 조기유학을 보내서 기러기 가족이 되고, 자녀들을 위해 교육이민을 택하는 지도 모릅니다.


물론 일부이기는 하지만, 잘못되는 경우도 아주 흔합니다. 미국은 마약을 쉽게 접할 수 있지 않습니까. 낯선 문화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잘못 풀리는 경우에는 한국과는 비교가 안 됩니다. 몇 년 전에 재산을 미리 상속받으려고 부모를 무참하게 살해한 친구도, 유학으로 미국에서 석사까지 받은 친구였습니다.


비록 좋은 대학을 나오지 못하고 주립대학에서 기계공학을 공부하며 5년 만에 겨우 졸업했지만, 저는 아들의 성실성 하나만큼은 믿습니다. 일단 취직을 했으니 그 아이와 같이 일하는 어떤 이도 만족할 것입니다. 한국으로 치면 ‘파견 계약직’인 셈인데, 미국은 한국과는 다르게 계약직은 정규직과 동등하거나 더 많은 보수를 받습니다. 약자를 보호하려는 정책이 한국과 미국이 그렇게 다릅니다. 따라서 미국에서는 꼭 필요한 자리라면 계약직을 한국처럼 오래 유지할 수는 없습니다.


한 아이는 한국 대기업의 미국지사에서 일합니다. 방위 산업에 납품하는 회사의 특성상 경영진은 한국인이고 영업과 고객은 미국인입니다. BA(Business Administration)부서에서 일하는 아이는 그 사이에서 인터페이스 역할을 합니다. 영어와 한국어에 능통하기에 가능한 일이겠지요. 경영진과 말할 때는 한국어를 쓰지만 나머지는 영어를 사용합니다. 1.5세를 잘 활용하면 양쪽 나라에서 서로 ‘윈-윈’하는 역할도 가능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지 못한 회사도 있는 것 같습니다.


“아빠, 한국회사는 왜 그래요? 백인 직원들에게는 잘 대해주면서 우리한테는 함부로 대해요. 어떤 때는 욕도 하고 책임도 떠 넘겨요. 6시 땡하고 퇴근하는 백인들에게는 아무 소리도 못하고 우리가 정시 퇴근하면 뭐라고 하는 거예요” LG전자에 다니던 아들에게 들었던 이야기입니다. 그 아이가 다시는 한국회사에 다니지 않겠다고 결심하게 된 배경이 되었죠. 자기들끼리 역 인종차별을 하고 있으니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글에서 말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간혹 자녀들의 결혼문제를 걱정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디지털 시대에 태어나 컴퓨터와 인터넷으로 무장한 아이들입니다. 스마트폰 하나로 데이트 상대도 구하고 결혼도 하는 세대라는 것입니다. 우리 구시대 사람들이 상상하지 못하는 일들이 그들에게는 가능하다는 것을 이해한다면, 그저 그들을 쳐다보고 응원하기만 하면 되지 않을까요.


그나저나 이 글을 아이들이 보지 않기를 바라면서 끝냅니다. 아이들에게 뭐 하러 그런 글을 썼느냐고 항의 받기는 싫으니까요,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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