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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의 시선이 머무는 곳

단점은 뭐죠?

“그럼, 나쁜 점은 뭐예요?”


지난 달 초 샌디에이고에서 오신 분들이 한국에 살면서 뭐가 좋은지 묻기에 평소 생각을 말씀드리고 나자, 듣고 있던 자매님이 곧바로 이렇게 되물었다. 글쎄다, 뭐가 나쁜 점일까. 순간적으로 머릿속을 회전시켰다.

“일단, 더럽고 지저분합니다. 제주만 해도 관광객들이 찾는 곳이나 사람이 많은 곳만 깨끗하고 청소가 되어있을 뿐이지, 변두리나 일반 동네 뒷골목은 온통 쓰레기가 널려있고 냄새도 납니다. 미국이나 캐나다에서 살다 온 분들이 보기에는 교통질서도 엉망이고, 타인을 배려할 줄 모르고, 예의도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말하면서 떠오르는 게 있었다. 제주에서 1년 정도 살았을까? 어떤 회원으로부터 연락을 받고 서귀포 남원에 갔었다. 대기업 임원으로 퇴임했다는 그분은 동생이 시애틀에 살아서 자주 미국에 갈뿐이고 이민자는 아니었다. 내가 갖고 간 경차를 보고, “어떻게 저런 차를 갖고 다니느냐?”고 말했다. 그분의 차는 ‘아우디’였다. 돌아오는 길에 집사람은 자존심이 상한 모양이었다. 이렇듯 외형과 체면을 중시하는 사람들이 많은 나라 아니던가. 한마디로 무례하다고도 할 수 있다. - 이분은 부인이 제주에 사는 것을 반대해 집을 팔고 떠났는데, 아직까지 그 집을 갖고 있었다면 두 배 이상 벌었을 것이다.


이분들처럼 한국으로 돌아와 살면서 좋은 점이나 나쁜 점을 묻는 분들이 있다. 무엇이나 입에 맞는 음식이나 적게 드는 생활비도 물론 좋은 점에 들지만,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내게는 뭐니 뭐니 해도 편한 ‘언어’다. 지난 서울 방문에서 ‘망고’님과 함께 만났던 O선생은 3년 전 뉴저지에서 뵌 분이다. 20년간이나 중부 뉴저지의 우체국에서 근무하고 있다는 그분은 그때 이렇게 말한 것이 기억난다.


- 일하고 일상생활 하는데 언어에서 오는 불편은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전화로 업무를 처리하는 것이 쉽지 않고, 사무실 천정 스피커를 통해 나오는 공지사항 같은 것은 잘 알아듣기 힘듭니다. 매번 다른 사람에게 물어볼 수도 없고, 전화를 사용하지 않을 수도 없어서 영어로 인한 괴로움이 작지 않습니다.


샌디에이고에서 온 분들이 생활비는 아닌 것 같다며 반박했을 때는 이렇게 대꾸했다.


- 물론 물가를 단순비교하면 한국이 훨씬 비쌉니다. 개스 값은 말할 것도 없고 마트에 가면 고기, 과일, 야채 등 모든 것이 비쌉니다. 하지만 이동거리를 감안하면 개스 값은 상대적으로 훨씬 싼 편입니다. 이동하는 거리가 움직였다 하면 한 시간 이상인 미국과는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제주에 사는 탓에 공항도 20분이면 되고 병원이나 마트, 자주 가는 도서관은 10분 이내 거리입니다. 게다가 대중교통이 편리해서 대중교통도 자주 이용하니까 한 달에 한두 번 주유로도 충분합니다.


- 또 세금이나 보험, 의료비 등 생존에 필수적인 비용이 적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미국 뉴저지에서는 2베드 2배쓰 작은 콘도인데도 3천 4,5백 불의 재산세를 냈는데, 한국에서는 3베드 2배쓰인 빌라에 100불 정도 냅니다. 의료보험 백 불, 화재보험 10불이니까 두 식구 사는데 장바구니 물가의 영향은 작다는 겁니다. 한국에서 돈이 많이 드는 이유는 교육비와 자식결혼자금인데 이민자인 우리들은 거기에서 자유로우니까요. 또 외식비는 미국에 비해 저렴하지요. 물론 골프 같은 취미생활을 한다면 다른 이야기겠지만.


그분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더 이상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이 논리에도 단서는 있다. 큰 병에 걸리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집사람은 세컨드 건강보험을 들고, 나이 때문에 할증이 붙는다는 말에 나는 포기하고 매일 새벽에 열심히 운동하는 이유다. 오늘도 운동장을 뛰었고, 금년 들어서는 12바퀴에서 20바퀴로 운동량을 늘렸다.


오늘 아침에는 28년 만에 서울 인구 천만 명이 무너졌다는 뉴스가 났다. 인구가 주는 원인은 전세난이라고 한다. 나이가 들어 서울에 사는 사람들을 개인적으로 잘 이해하지 못한다. 자식이나 친구, 친지가 있고 모든 연고가 있다는 이유도 있겠지만, 여유가 있는 은퇴자들이 서울이나 강남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에 체면도 있을 거라고 추측만 한다. 은퇴한 사람들이 여유를 찾아 서울 주택을 처분하고 지방 소도시로 이주한다면, 모든 사람들에게 좋은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까닭이다.


“미국 같이 개인이 총을 갖고 다니는 나라에서 어떻게 살아요? 나는 미국에 가본 적도 없지만, 매일 총기사고가 나는 그런 나라에 가고 싶은 마음도 없습니다.” 지난 ‘지리산둘레길’ 여행에서 만났던 Y선생에게 들었던 말이다. - 하긴 오늘도 UCLA에서 총기사고가 났다는 뉴스가 났다. - 매스컴이 전하는 극히 일부인 기사로 미국이라는 거대한 숲을 판단하는 오류다. 미국의 총기문제가 작다는 것이 아니라, Y선생이 생각하는 것처럼 일반인들이 두려움을 느낄 정도는 분명 아닐 것이다.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안전하고 평화로운 일상생활을 누린다.


미국에 살면서 한국을 보는 시각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물가가 많이 비싸고, ‘안전불감’으로 인한 사고가 매일처럼 발생하고, 중국인들이 제주도 땅을 싹쓸이하고, 구태 정치인들과 부패 공무원이 재벌과 짝짜꿍이 되어 나라를 말아먹고, 청년실업으로 미래가 암담하고, 노인빈곤과 자살률이 세계 최고수준이고, 북한이 미사일을 쏘고, 저출산 문제가 어떻고 해도, 내가 주위에서 보는 한국은 20대 젊은이들이 해외로 여행 다니고, 주말이면 제주행 항공기가 만원이고, 고속도로가 주차장이 되고, 모든 공원과 축제에 사람들이 넘치고, 맛집을 찾아다니는 평화롭고 살기 좋은 나라일 뿐이다.


- 이곳에 자주 보이는 분들은 이민에 성공하신 분들이 너무 많네요. 확실한 직업군으로 현지의 주류 사회에 진입한 분들도 적지 않고요. 이런 분들은 구태여 역이민이 필요치 않아 보이네요. 잘 기반을 닦아놓은 현지에서 행복하게 사시며 모국에 나들이 가듯 다니면 될 것 같네요. 그러나 이곳에서 눈팅으로 일관하는 오랜 세월 타국의 이민자로서 눈물 젖은 빵을 먹으며 애환을 겪다가 노후 준비도 제대로 못한 그 수많은 퇴역 1세대 이민자에게도 포커스를 맞추어 보고 싶네요, 고국에서 잘 사시던 분들의 힘들어하던 모습 여전히 못 잊죠.


얼마 전에 어떤 분이 ‘한줄 메모장’에 남긴 글이다. 오래도록 기억에서 떠나지 않았다. 나는 이분에게 쪽지를 보냈었다.


- 카페에 올리신 한줄 메모장의 내용에 공감합니다. 사실 처음 카페를 만들 때, 선생께서 말씀하신 취지를 생각했습니다만, 지금 이 카페에서 활동하는 회원 분들은 형편이 넉넉하신 분들이 많습니다. 아이들이 살고 있는 이민국에서 반, 한국에서 반 이렇게 지내려고 계획하는 분들입니다. 넉넉하지 않은 이민1세대들이 적은 돈으로 고국에서 어떻게 여생을 보낼 수 있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싶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꾸준히 그런 글을 올리면 보고 도움을 받는 분들은 분명히 있습니다. 그런 분들은 주로 글을 게시하지도 않아서 눈에 뜨지 않을 뿐입니다. 감사합니다.


글의 소재나 글감을 좋고 자랑할 만한 일에서 찾지 않고, 가급적 실생활에서 느끼는 어려움이나 갈등에서 찾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후기>

다이내믹 코리아답게 이번 주에도 대단한 사건들이 계속되었습니다. 지하철 2호선 구의역에서는 금년에 공고를 졸업한 19살 청년이 혼자 스크린 도어를 수리하다가 진입하는 차량에 사망하는 사고가 있었으며, 공무원 시험에 연이어 떨어지자 삶의 희망을 잃고 아파트 20층에서 뛰어내린 20대 청년이, 퇴근하는 공무원에게 떨어져 둘 다 사망하는 사건까지 발생했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퇴근하는 공무원 옆에 만삭의 부인과 6살 난 아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로또에 당첨되는 확률은 벼락에 맞아죽을 확률보다 훨씬 적다고 하는데, 자살하는 사람에게 맞아죽을 확률은 로또에 당첨되는 확률에 비할 바가 아닐 것입니다.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사건이지만 분명히 현실에서 일어났습니다.


19살 청년의 죽음에 슬퍼하는 수많은 이삼십 대 청년들이 붙였다는 포스트잇을 보면서 이 사회의 희망도 함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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