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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의 시선이 머무는 곳

잡담한설(雜談閑說) - 10

건강과 광고효과


고인이 된 최진실 씨의 뛰어난 연기가 돋보였던 ‘장밋빛 인생’이라는 연속극을 미국에서 살 때 보았다. 이혼하고 연기인으로 컴백한 뒤에 혼신을 다했는지는 몰라도, 억척스런 가정주부 역의 그녀의 리얼한 연기는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극중의 그녀가 암으로 죽어갈 무렵, 남편 역의 손현주는 엉터리 약장수에 속아 맹물을 암치료 명약으로 믿고 적지 않은 돈을 주고 구입한다. 이런 일이 드라마에만 있을까?


오래전 한국에서 직장에 다닐 때의 일이다. 출근길 회사입구 앞에서 사람들이 찌라시를 나눠주고 있었다. 무심코 받아들고 사무실에서 보니 ‘알러지 치료에 특효’가 있다는 광고이었다. 거기에 적힌 증세는 마치 나를 두고 하는 듯했고 약효는 틀림없어 보였다. 해마다 4~5월이 되면 알러지 비염으로 코가 막혀 고통 속에 지내야 했던 내게는 마치 구원의 메시지로까지 보였다. 즉각 전화해서 구입했고 정성을 기울여 몇 달을 먹었지만 아무 효과도 보지 못했다.


최근 한국에서는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피해가 뉴스의 중심에 있다. 5년 전, 처음 한국에 왔을 때도 이 문제로 시끄러웠었는데 어떻게 지나갔는지 기억에서 사라졌으나, 5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다시 이슈가 불거졌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엉터리 광고’에 현혹되었다는 것이다. 1994년 세계 최초로 ‘가습기 살균제’를 개발했다고 광고했었다고 한다. '세계최초'나 '인류최초'라는 단어를 극도로 좋아하는 한국인답다. 박테리아를 죽이는 화학물질을 공기 중으로 분무하여 호흡했으니 폐 세포가 성할 수가 없다. 전 세계에서 한국에서만 팔았다고 한다. 세계적인 대기업이나 국내 굴지의 기업에서 각종 매체에 ‘안전’을 내세워 대대적으로 광고했다는 것이 위의 예와 다를 뿐이다.


가장 가슴 아픈 일은 피해자의 대부분이 산모와 영아(嬰兒)들이라는 것이다. 피해자의 잘못이라면 자신의 가장 소중한 사람을 위해 무엇이라도 하고 싶었던 ‘갸륵한 정성’이었다. 아내가 임신하고, 아이가 태어나자 그들을 위해 가습기를 틀었고, 때마침 TV에서 나오는 광고를 믿고 살균제까지 구입한 것이, 결과적으로 소중한 사람들을 잃거나 평생 호흡기를 달고 살아야 하는 불구로 만들었다. 돈 버는 것이 목적인 기업에서는 경비절감을 내세워 안전검사에 소홀한 채 당신의 부인과 태아를 위해 살균제를 구입하라고 광고했고, 거기에 넘어간 사람들은 자신의 가장 소중한 사람을 위해 절대 사용하지 말아야 할 독약을 사용하고 말았다.


미국에서 사용했던 가습기가 떠오른다. 이맘때가 되면 알러지 때문에 코가 자주 막혀 항상 가습기를 사용했다. 한두 달이 지나 가습기 내부를 보면 새카만 때가 보여 찜찜한 느낌이 들곤 했다. 살균제를 구입해 사용한 사람들은 설거지도 하고 집안 청소도 하는 매우 가정적이고 자상한 사람이 틀림없다. 가습기를 청소하며 느꼈던 찜찜함이 광고에 현혹되는 원인이 되었을 테니까.


제주에는 가습기가 필요 없다. 습한 기후라 오히려 제습기가 필요하다. 따라서 알러지 때문에 코가 막히지도 않는다. 하지만 이런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습한 공기는 곰팡이를 부른다. 옷장에 장시간 처박힌 옷에서 하얗게 핀 곰팡이가 수시로 발견된다. 입어보지도 않고 세탁소로 가져가기 일쑤다. 단점은 없고 장점만 있는 세상사가 과연 있을까?


학문에 왕도가 없다?


‘There is no royal road in learning.’ 

우리 세대라면 누구나 학창시절에 한두 번쯤 책상머리 맡에 써놓았던 문구다. 충분하지는 않지만 어린 시절의 나도 이 격언 주는 의미를 믿고 공부했었다. 그러나 지금도 이 말의 의미가 통하는지는 의문이다. ‘대치동 엄마’의 활동상을 뉴스로 보고 들으면서, 또 강남 3구 출신의 아이들이 ‘SKY’에 대거 들어간다는 소식을 접하며, 요즘 세대는 이 격언을 책상머리에 붙여놓기는커녕 들어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무슨 값 비싼 보약이나 음식으로 건강을 지킬 수 있다고 믿지 않습니다.” ‘아톰’님과 올레길을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던 중 크게 공감했던 말의 하나다. 이를 다시 고쳐 말하면, 왕도(王道)는 학문에만 없는 것이 아니라 건강에도 없다는 것이다. ‘There is no royal road in your health.’ 담배는 끊어야 하고, 술은 일주일에 한두 번 적당히 마셔야 하고, 싱싱한 야채나 과일을 자주 먹고, 소식하며 많이 걷고 많이 움직여야지, 하고 싶은 것 다하고 먹고 마시고 싶은 것 다하면서 보약이나 영양제로 건강을 다스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대치동 엄마’처럼 학문도, 건강도 돈이나 요령으로 다스릴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고 또 효과까지도 있다는 것을 부인만 할 수도 없다. 문제는 이에 따른 부작용이 심각하다는 것이다. 학교에서는 주관식 문제를 출제할 수가 없다고 한다. 왜 우리 아이의 답이 틀렸느냐고 항의하는 부모들 때문이다. 단답형이나 사지선다형 문제만 출제하는 원인이다. 심지어는 군대에 간 아이가 훈련을 한다고 하면, 쫓아가서 군장을 대신 들어주거나 음식을 준비해 가서 먹여주기도 한다니, 내 좁은 소견으로는 훌륭한 인재가 도저히 나올 수 없을 것 같다. 나라는 물론 자식까지 망치는 짓이 아닌가 싶다.


에효, 나도 건강을 계속 유지하려면 술을 줄여야 하는데, 저녁만 되면 '한잔의 유혹'을 뿌리치기가 참 쉽지 않다.


교묘한 마케팅 수법


기업은 제품을 생산하고 팔아서 생존한다. 그러기 위해서 영업을 하고 마케팅 전략을 구사한다. 대부분 좋은 대학을 나온 명석한 두뇌의 사람들이 대기업에 모여 치밀한 전략을 마련한다. 이에 대한 교육을 받은 적도 없는 평범한 사람들은 이들이 동원하는 인간심리분석과 과학적 접근에 맞서 ‘백전백패’를 피할 수 없다.


행복하고 만족한 사람은 부족함을 느끼지 못한다. 부족함이 없는 사람에게는 어떤 물건도 팔 수가 없다. 무언가 판매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에게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게 만들어야 하고, 불행하다는 생각과 불만을 느끼게 해야 한다. 불행을 느끼게 하는 첩경은 남과 비교하게 만들어 경쟁을 시키고, 불필요한 걱정과 염려를 조성하는 것이다. 가습기 내부에 낀 때를 본 사람들에게 세균에 대한 걱정을 심어주고, 백세시대를 맞이하여 편안한 노후를 위해서는 10억 이상이 필요하며, 당신은 암에 걸려 죽을 거라고 협박에 가까운 위협을 한다.


사람의 몸속에는 체세포보다 많은 수의 박테리아가 살고 있다는 것과 그래서 세균과 함께 공존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말하지 않는다. 백세시대를 맞아 정부의 역할은 문제 삼지 않고, 장수(長壽)만이 지상과제이고 최고의 선(善)인 양 포장하며, 행복한 죽음에 대해서는 강조하지 않는다. 대신 이 물건을 가지면 만족을 느끼며 행복해질 수 있고, 이 비싼 영양제를 먹으면 건강해질 수 있다는 환상을 끊임없이 심어주며 마케팅을 한다. 심지어는 남을 이기기 위해서는 태어난 용모까지도 바꿔야 한다고 세뇌시키는 광고판을 번화한 거리마다 설치하여, 사람들이 스스로 불행해지기를 강요한다.


IT기술의 발달로 마케팅은 한층 교묘해지고 정교해졌다. ‘Daum’에서 우연히 보고 클릭했던 ‘블루투스 이어폰’을 사라고 계속 이어폰 광고가 뜬다. 그들과의 싸움에서 패한 나는, 오늘도 그들의 전리품을 이곳저곳에서 찾아내어 내다 버리며 쓴웃음을 짓는다.


‘아, 쓰지도 않는 저놈의 물건을 볼 때마다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던가!’


미국에서부터 끌고 왔던 홈씨어터를 비롯한 패전(?) 전리품들을 이제야 버린다.


<후기>

계절의 여왕이라는 5월답게 기막힌 날씨가 이어집니다. 저로서는 오랜만에 글을 올립니다. 5월 한 달은 카페를 쳐다보지 않으려고 했는데, 운영진 카톡회의를 하는 바람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지난 며칠 사색을 통해, 자신의 수준을 깨닫는 계기는 되었습니다.

저는 내일 목요일 서울에 가서 주말에 있는 친지의 결혼식에 참석하고 월요일에 돌아옵니다. 혹 저를 보시기 원하는 분이 있으면 쪽지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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