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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의 시선이 머무는 곳

잡담한설(雜談閑說) - 9

오늘 아침까지도 추적추적 내리는 비에 기온이 떨어진 것 같다. 방에서도 써늘한 기운이 느껴져 걸칠 옷이 필요할 정도다. ‘왜냐고 묻지 않는 삶’을 읽고 책을 언제까지 내겠다는 계획과 목표를 버렸다. 공연히 그런 가당치않은 목표를 설정해놓고 스스로를 철창 속에 가두고 동아줄에 묶여 자신을 학대할 필요는 없다.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온 것으로 충분하다. 항상 할 일이 있어야 했고, 남보다 뒤쳐지는 것을 용서하지 않았으며, 걸음조차 빨리 걸으려고 애쓰며 살지 않았던가!


그놈의 되지 못한 버릇이 문제다. 금년 안에 책 두 권을 내겠다는 가소로운 목표, 그것도 부끄럽지 않은 꽤 쓸 만한 내용으로 채우겠다는 분에 넘치는 생각으로 계속 압박감과 스트레스에 시달려야 했다. 참으로 부질없는 생각이었다. 은퇴의 가장 큰 장점은 자유다. 스스로 만든 감옥 속에 자신을 가두고, 스스로 자유를 박탈당하는 짓을 하고 말았던 거다. 그 감옥에서 빠져나올 수 없도록 만드는 짓도 서슴지 않아서, 만나는 카페 분들마다 어떻게 하겠다고 말하고 다니기까지 했으니 어리석을 뿐이다. ‘No pain, no gain’이라고 했던가! 고민이 있었기에 깨달음도 얻었다.


지·옥·고와 청년 취업난


어제 뉴스에서 정부의 청년 취업대책의 일환으로 재산마련 지원책이 발표되는 것을 보았다. 중소기업에 취업하는 청년들에게만 주는 혜택으로 2년간 중소기업에 근무하면서 월 ₩125,000씩 3백만 원을 저축하면, 사용주가 3백, 정부에서 6백을 지원하여 천이백만 원의 목돈을 만들어준다는 것이다. 청년들이 얼마나 중소기업에서 일하기 싫어하면 이런 법까지 만들었을까 싶다.


지난 4월 16일 KBS에서 ‘지·옥·고, 청년들의 방’이라는 제목의 방송을 했다. 지하, 옥탑, 고시원에서 지내는 청년들의 궁핍한 삶을 보여주는 프로였다. 어느 대학에서 경제과를 졸업한 33살의 청년은 월 2백만 원을 벌어 학자금 융자를 갚고 생활하기 위해, 옥탑방에 거주하며 겨울의 추위를 이겨내는 방법으로 방안에 텐트를 치고 그 속에서 잤다.


어제의 뉴스와 KBS를 보면서, 금오도에서 ‘금오도’님으로부터 들은 이야기가 오버랩되었다. 젊은 사람이 별로 없다는 것, 어선에서 일하는 사람은 전부 외국인이라는 것, 3백만 원을 주는데도 젊은 사람은 힘든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 마을버스를 운전할 사람이 없어서 외지에서 초빙해 왔다는 것이다.


스스로 만든 감옥 속에 갇혀 사는 이들은 나만이 아닌 것 같다. 구상 시인의 ‘우음(偶吟)’이라는 시가 생각난다.


“나는 내가 지은 감옥 속에 갇혀 있다.

 너는 네가 만든 쇠사슬에 매여 있다.

 그는 그가 엮은 동아줄에 묶여 있다.

 우리는 저마다 스스로의 굴레에서 벗어났을 때

 그제사 세상이 바로 보이고 삶의 참된 기쁨도 맛본다.”


개저씨

(‘SBS 스페셜’에서 ‘개저씨’라는 프로를 보고)


우리가 어렸을 때는, 기성세대를 ‘꼰대’라고 비하하며 비아냥거렸다. 그 ‘꼰대’라는 속어가 요즘에는 더 속되게 ‘개저씨’로 바뀌어 부르는 모양이다. ‘꼰대’라고 불리는 것도 서러운데, ‘개저씨’까지 될 수는 없으니 젊은이들의 생각을 알아볼 필요가 있다.


우선 ‘개저씨’에 해당하는 연령대는 40대 중반에서 60대 중반까지 해당되는데, 아래의 체크 리스트에서 하나라도 해당한다면, 자신을 ‘개저씨’에 해당한다고 보면 된다.

▼ 이곳에 계시는 분들은 모두 ‘개저씨’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개저씨'가 되지 않기 위한 지침을 아래에 옮겨본다.

1. 나이를 묻지 마라.

2. 함부로 호구조사 하지 마라

3. 쓸모없는 무용담을 멈춰라

4. 당신의 부하직원이나 이웃은 당신의 자녀가 아니다.

5. 당신의 지위나 나이로 대우받으려 하지 마라.

6. 당신도 언제든지 ‘개저씨’가 될 수 있음을 명심하라.


지리산에서 만난 Y선생이 그랬다. 그는 통성명은 하지도 않은 채 대뜸 나이부터 물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했다.

“그러면 제가 형님입니다.”


건강과 백세인생


“앞으로는 모두 백세까지 살 테니까, 미리미리 조심하자는 겁니다.”


지난 달 여행을 떠나기 전에 받았던 ‘일반건강검진’의 결과를 돌아와서 보았다. 2년 전보다 결과가 안 좋아서 ‘2차 검진대상’이라고 적혀 있었다. 2차 검진을 받으러 갔다가 의사에게 들은 말이다. 2차 검진이라고 해서 대단한 건줄 알았으나, 혈액채취가 전부였다.


‘백세라니!’ 말만 들어도 끔찍하다. 지금부터 40년을 더 산다고? 농담이라도 그런 농담은 사양하고 싶다. 내 딸과 아들이 70살이 넘는 것을 보는 것은 고문일 것 같다. 1920년대 생이 요즘 운명한다면 명대로 살았다고 봐야 할 것이고, 1930년대 생이라면 아쉽기는 하지만 아주 서운하지는 않을 것이다. 1940년대 생이라면 아쉽고 1910년대 생이라면 대단하다고 축하할 일이다.


평소 건강에는 자신이 있어도 운동을 게을리 하지 않은 것은 오래 살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사는 날까지 건강하게 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치매나 뇌졸중 같은 병은 절대적으로 피하고 싶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런데도 건강검진 결과는 우울했다. 당뇨와 콜레스테롤이 의심된다며 2차검진을 요구했다. 특히 공복혈당수치 131과 ‘LDL 콜레스테롤 수치’ 174는 위험수준이었다. 그 두 개를 제외하면 다른 수치는 모두 정상이었다.


‘시골농부’님의 글을 보고 탄수화물이 문제임을 깨달았다. 밀가루 음식을 지나치게 좋아했던 것이다. 거기다가 술을 좋아했으니 더 할 말이 없다. 더군다나 최근에 방송된 ‘탄수화물의 경고’라는 MBC 방송을 보면 확실하다. 운동만으로는 안 되는 거였다. 먹는 걸 조절하는 수밖에 없다.


“야야, 너 안 돼! 그 정도면 병이야. 빵, 떡, 과자, 라면, 국수 같은 것 일절 먹지 마! 백세까지 살아야 되는 세상 아니니? 나는 그런 것 안 먹은 지 오래 됐어.”


엊그제 통화했던 고모에게 말했다가 되돌아온 충고다. 40년을 식품영양학 교수를 지내고 연구와 논문을 써낸 전문가의 조언인 셈이다.


“난 먹고 싶은 것 다 먹어. 의사가 먹지 말라는 것 다 지키면 먹을 게 어딨어! 그리고 먹고 싶은 것 참고 살 바에 뭐 하러 오래 살어. 난 일찍 죽더라도 먹고 싶은 것 다 먹고, 하고 싶은 것 다하고 살 거예요.”


이것은 도치형님의 말씀이다. 하하하, 누가 맞고 누가 틀릴까? 다 맞는 말이다. 단지 생각과 지향하는 바가 다를 뿐이다. 하긴, 김수환 추기경 말씀대로 10년, 20년 일찍 간다고 억울할 게 무언가.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길이잖는가.


갑자기 우리 카페에서 모든 분들의 친구였던 고(故) 문명길 형(로렌스님)이 부러워진다.


‘Tony Campolo’의 말이다.

“When you were born, you cried and everybody else was happy. The only question that matters is this - when you die, will you be happy when everybody else is crying?”


- 2016년 4월 28일 비오는 아침에, 제주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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