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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의 시선이 머무는 곳

이민자가 보는 자녀들의 결혼

지난 주말 친척의 딸 결혼식에 다녀왔다. 또 같은 날 대학친구의 딸 결혼식도 있어서 모처럼 친구도 만날 겸 찾아갔다가 인사만 나누고 돌아섰다. 결혼식 30분 전에 도착했는데도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간 결혼식장 입구는 꽤나 북적거렸고, 그들 사이에서 1년 전에 결혼한 친구의 아들과 며느리, 그리고 친구 부부가 일렬로 서서 하객들을 맞고 있었다.


친구인 혼주를 만나 축하인사를 건네려면 줄에서 기다려야 했다. 줄이 잘 빠지지 않았지만 일부러 그곳까지 갔으니 시간이 촉박하다는 핑계로 그냥 갈 수도 없었다. 겨우 다음 차례가 되어 처음 보는 친구의 아들과 며느리로 보이는 앞에 섰다. 혼주와 인사를 나누는 중년여성 셋이 얼마나 시간을 끄는지 친구의 아들 내외 앞에 뻘쭘하게 서 있게 된 것이다. 작년 초 동남아 여행을 갈 때 아들이 결혼한다는 이야기를 친구에게 들었고, 참석할 수 없던 나는 부조금만 보냈었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만났던 친구에게 들었다. 결혼하는 아들은 카이스트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현대자동차 중앙연구소에 과장으로 특채되었다고 했다. 1억5천정도의 연봉을 받는다고 친구는 말하며 며느리 감은 변호사지만 국책은행에 봉급쟁이로 있어 연봉이 많지 않다는 자랑을 자랑이 아닌 것처럼 덧붙였다. 대학시절 써클활동을 같이 하며 친하게 지냈던 친구는, 망막신경이 서서히 죽는 불치병에 걸려 시야가 좁아지다가 5~6년 전부터는 완전히 안 보이게 되었다. 장님이 된 친구는 자식들에게 짜증과 잔소리가 많아졌고, 자식들은 아버지 때문에 결혼하지 않겠다는 말을 공공연하게 했다는 말까지 들었다. 어쨌든 친구는 며느리를 보았고 이번에 사위까지 보게 되었으니 성공한 부모의 대열에 들어선 셈이다.


“축하한다. 그리고 ㅈ나게 부럽다.” 

“누구냐?” 

“내다, 이 자식아! 너 축하해주려고 제주에서 올라왔다.” 

“하하하, 멀리서 왔구나. 고맙다.”


10초도 걸리지 않는 이 짧은 대화를 하려고 여기까지 온 셈이다. 준비한 봉투를 접수대에 놓고 방명록에 이름을 적은 뒤에 서둘러 그곳을 빠져나왔다. 다음 결혼식은 세검정이다. 1시간 10분이 남았으나 강남에서 세검정까지 가려면 빠듯하다. 여름 같은 날씨에 지하철역까지 속보로 걸었더니 이마에 땀이 배었다. 광화문에서 마을버스로 갈아타고 식전(式前)에 겨우 도착해서 혼주와 인사를 나누었다. 신랑 측은 결혼당사자가 식장입구에서 부모와 함께 하객을 맞지만, 신부 측은 부모와 자식들만 하객을 맞는다. 나는 ‘가족석’이라는 명패가 있는 둥그런 테이블로 안내되었다. 말이 가족이지 신부와 6촌 관계인 나는, 그 아이를 어렸을 때 보았던 게 전부였다.


극도로 전문화되고 핵가족화 된 요즘 세상에서 4촌만 넘으면 친척도 아니다. 아니, 4촌은커녕 형제도 남남이 되는 세상 아니던가. 단지 이북에서 월남한 유일한 친척으로 어렸을 때부터 자주 어울렸고, 북(北)에 부모님과 처자식을 남기고 단신 월남한 내 부친은 그 어른들을 마치 부모 대하듯 했었다. 그런 인연이 없었다면 이곳에 앉아 있을 리가 없다. 중학교 입시에 떨어져 재수할 때 그 집에서 지냈었다. 당시 아리따운 여고생이던 고모는 아침마다 내 손을 잡고 버스정거장까지 걸어갔었다. 그 기억이 여기까지 오게 만들었다.


여러 결혼식 하객들이 동시에 들이닥친 뷔페식당은 북새통이었다. 열 명 정도 앉게 된 둥그런 식탁을 독차지하기가 힘들었다. 이곳저곳 끼어서 밥을 먹다가 옆자리가 비면 친척들을 불러들였다. 엇비슷하게 중고등학교를 다니고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 자주 만났던 친척들은 모두 늙어있었고, 사이에 끼어 앉은 젊은이들은 3세였다. ‘씨’구경을 한 셈이었다. 일본 식민지 시대에 육상선수로 전국체전에 참가했던 분의 자녀들이라 2세인 5남매는 체격이 무척 좋았다. ‘씨 도둑질’은 못한다고 했던가. 비슷한 배우자를 만난 3세는 무척 컸고, 그렇지 못한 배우자 사이에서 태어난 3세는 고만고만했다. 그렇지만 1세 모습이 3세들에게서 군데군데 보였다.


‘SKY’를 졸업하고 외국회사에 다닌다는 친구의 딸은 1986년생이고, 1984년생인 친척 딸은 1982년생을 만나 결혼했다. (말해주기 전에 자식들이 뭐하는지 묻는 것이 한국에서는 ‘실례’라고 해서 물어보지 않는다.) 대부분 30대 초반(여자)에서 중반(남자)이 결혼한다는 거다. 최근에 본 뉴스에 의하면 여성의 초혼 평균연령이 역사상 최초로 30세를 넘겼다고 한다. 급변하는 세상은 마치 쓰나미처럼 모든 인간사를 삼켜버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故) 김영삼 전 대통령의 부친은 불과 17세에 그를 낳았다고 한다. 27세에 단신 월남한 내 부친은 이미 5살과 3달 된 두 아들이 있었다. 우리 시절에는 여자가 25세만 넘어도 노처녀 취급을 받았다. 나는 만 28세에 결혼했다. 돌이켜보면 당시에는 주체하기 힘들만큼 성욕이 왕성했었다. 지금이야 오줌줄기가 봄에 내리는 보슬비(?)만도 못하지만, 20대에는 한여름에 내리는 소낙비보다 세서 땅바닥이 패이지 않았던가. 요즘 젊은이들은 그 왕성한 성욕을 어떻게 처리할까? 측은하기도 하고 애처롭기까지 하다. - 그들에게는 매우 심각한 문제일 텐데 이런 주제에 대한 토론이나 글은 본 기억이 없다.


내가 젊었을 때보다 세상이 훨씬 복잡해진 탓인지는 몰라도, 요즘 젊은이들은 더 현명하고 더 생각이 많아진 것 같다. 1984년생(띠) 같은 1985년생인 딸과 1986년생 아들이 아직 미혼이다. 남자인 아들은 그렇다 치고 애비 된 입장에서 딸은 걱정이 되기도 한다. 게다가 이민자 아닌가. 하지만 나와는 달리 딸아이는 태평이다.


“아빠, 걱정하지 마. 누가 나타나겠지. 안 나타나면 혼자 살면 되고. 뭐 하러 쓸데없이 마음에 안 드는 결혼을 해서 평생 고생하고 살아? 지금 얼마나 편하고 좋은데!”


다행히 용모가 밉상은 아니어서 그런지 쫓아다니는 녀석들이 있기는 했다. 직장에서 데이트를 신청하는 인도계나 중국계 혹은 미국인도 있었다고는 들었다. 그런데 아이는 외국인은 싫다고 했다. 인도계는 꽤나 열심이었던 것 같은데, 하도 쫓아다녀서 냄새가 나서 싫다는 말로 억지로 끝냈다고 말하며 환하게 웃었던 딸이다. 그 후 2세 젊은이를 만나 꽤나 열심히 사귀었으나, 또 헤어졌다고 전해들었다. 이번에는 ‘욱하는’ 성격이 핑계가 되었다. “내가 뭣 때문에 그런 성질을 평생 받으며 살아야 해?” 아이의 말에 더 이상 보탤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 그래, 너 참 똑똑하다. 원래 제정신으로는 힘든 게 결혼이다. 눈에 ‘콩깍지’가 씌어서 썩은 방귀냄새조차도 구수하게 맡아지고, ‘욱하는’ 성격마저도 사내답게 보일 정도가 되어야 결혼할 수 있는 거란다. 그리고 그렇게 만나야만 한평생 아옹다옹 다투면서도 행복을 느끼며 살 수 있는 거란다. 너는 연봉도 좋은 괜찮은 직장에 다니는데, 무슨 필요를 느끼겠니. 어떻게 살든 너만 행복하면 그만이다.


<후기>

오늘 어떤 분으로부터 쪽지를 받았습니다. ‘자식농사’ 메뉴에 게시판을 만들어 자식들 결혼을 위해 중매나 소개코너로 활용하자는 제안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현실성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카페를 개설한 후 꾸준히 시도해보았지만 거의 호응이 없었습니다. 지금까지 중매를 부탁하는 자식이나 돌싱의 소개서를 서너 건 받았지만, 그것으로 누굴 소개하기에는 풀(Pool)이 너무 작아 전혀 쓸모가 없었습니다. 쪽지를 주신 분에게 답을 대신해서 글을 썼습니다.


아이들 일은 아이들에게 맡겨두는 것이 최선입니다. 세상은 변했는데 우리 부모 된 마음은 변하지 않은 것이겠지요.


쓰잘데 없는 상상이지만, 만약 이민을 가지 않았었다면 내 아이들의 결혼식도 비슷하게 진행되었을 겁니다. 대부분 부모 때문에 온 하객들이었을 것이고, 결혼 당사자 보다는 부모의 행사가 되었겠지요. 3년 전에 결혼한 내 딸의 결혼식에 부모 때문에 온 내 쪽 하객들은 스무 명도 안 되었습니다.


지난 주말 동생 집에 있을 때입니다. 평소처럼 새벽에 일어나 소파에서 인터넷 신문을 보고 있는데, 의대생인 스물 댓 살의 조카가 화장실에서 소변을 보는 소리가 마치 폭포소리 같았습니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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