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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나은 세상을 위하여

대화의 여운(餘韻) - 끝

Plan B


연휴가 시작되는 토요일 오전이라 그런지, 아니면 비가 오는 탓인지는 몰라도 커피숍의 손님은 우리가 유일했고 첫손님인 듯했다. 가게 주인은 몰라도 대화하기에는 이렇게 한갓지고 여유로운 장소가 좋다. 대화 중에 다른 손님이 들어왔다. 중년의 남자 둘, 여인 하나. 그들이 나가고 실내에는 다시 우리가 유일한 손님이 되었지만, 대화는 계속되었다.


주로 내가 묻고 그가 대답했다. 이제부터 그가 물었다. 출장 중에 어렵게 시간을 내서 나를 찾은 이유다.


“저도 장 선생님처럼 나중에는 한국으로 돌아와 살아야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은퇴지로 제주는 어떠세요? 미세먼지도 그렇고 저는 제주가 좋을 듯싶은데.”


5년 전 제주의 인구는 53만이었다. 지금은 65만이다. 불과 5년 사이에 20% 이상의 인구가 유입되었다. 이제 전과 같이 한가한 곳이 아니다. 신호등 하나 없던 곳에 대여섯 개의 신호등이 생겼고, 두어 번 신호를 받아야 겨우 지날 수 있는 곳도 많아졌다. 20분도 안 걸렸던 공항이 이제 30분도 충분하지 않다. 병원과 쇼핑 등 편리한 점도 많지만 시끄럽고 번잡해서 은퇴지로 좋다고 말하기는 힘들 것 같다. 그리고 급속도로 변하는 한국에서 미리 은퇴지를 생각해 둘 필요가 있을까 라고 답했다.


지리산 둘레길이나 여수 인근을 돌아보았지만, 한국은 살기 좋은 곳이 많다. 말도 다르고 모든 것이 낯선 미국에서도 수 십 년을 살았는데, 한국의 어느 곳에 살든 무에 문제가 될까. 여수는 말할 것도 없고, 경남 산청도 좋고, 남원이나 구례 같은 전라도도 내겐 좋게만 보였다. 어디에 사느냐 보다는 어떻게 살 것인지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2~3년 전부터 갑자기 미세먼지가 가장 큰 이슈로 등장했다. 비록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수도권만 아니면 문제가 될까 싶다. 6~70년대를 살았던 사람은 다 기억한다. 겨울에 눈이 내려 미끄러우면 연탄재를 깨서 뿌렸다. 봄이 되어 땅이 마르면 연탄재는 먼지가 되어 날렸고, 그 속에서 우리들은 ‘술래잡기’를 하고 ‘땅따먹기’ 놀이를 했다. 그뿐인가? 모든 가정에서 학교에서 석탄을 땠다. 연탄가스를 마셔서 일어나다 쓰러지는 일도 종종 있었다. 서울의 거의 모든 시내버스와 트럭은 시커먼 매연을 뿜었다. 그렇게 살았어도 아무 문제가 없었다. 그때 지금과 같은 과학이 있어서 미세먼지를 측정했다면 대단했을 것이 틀림없다.


그에게 나이를 물었다. 45살일 무렵, 나는 어땠지? 그때는 무서운 게 없었다. 새로운 기술이 나오면 공부하면 되었고, 사람들이 꺼리는 일은 내가 배워서 하면 되었다. 명퇴나 조퇴를 당하고 힘들게 사는 사람들을 보면 이해하지 못했고 비웃기조차 했다. 모두가 내가 잘나서 그런 줄 착각하고 살았다. 내가 생각하고 행하는 모든 것이 옳다고 믿었기에, 아이들에게 엄격했고 스스로 정한 기준에서 벗어나는 것을 참지 못했다. 그리고 조금씩 옛날과 같지 않음도 느꼈지만 걱정할 정도는 아니었다.


“Happiest time in your life!”라고 그에게 말해주었다. 중년의 시작을 보통 45살로 본다. 사주(四柱)에서도 마지막 주(柱)가 시작되는 나이다. 문제만 없다면 육체적으로도 어느 정도 젊음을 유지하고 있으며, 경험도 제법 풍부해져서 회사에서는 능력을 발휘할 수 있어서 정신적으로 가장 성숙된 시기이기도 하다. 아이들도 유아기를 벗어나 청소년기에 들어 친구가 될 수도 있다. 그런데 이제부터 새로운 문제가 시작된다. 점점 기억력이 떨어지고 얼마 안 있으면 노안도 온다.


“인생에서 가장 행복할 때입니다. 제가 이민생활을 실패한 가장 큰 이유는 플랜B가 없었다는 겁니다. 특히 우리처럼 테크놀로지에 종사하는 사람은 절대적으로 플랜B가 필요합니다. 언제 어떻게 직장에서 떨어져 나갈지 모릅니다. 한 때는 공부하고 노력하는 것만큼은 누구에게 지지 않는다고 착각했던 적이 있었어요. 노안이 오고 기억력이 떨어진다는 것을 간과한 겁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제 경우에는 노안이 오면서 매사에 자신이 없어졌습니다. 작은 글씨를 오래 볼 수도 없고, 안경을 썼다 벗었다 하면서 장비를 다루는 일이 불편하기만 했어요.”


“게다가 젊은 사람들을 따라가는 것이 버겁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기 시작했지요. 젊고 똑똑한 사람들이 새로운 기술을 습득하는 속도를 쫓아갈 수 없었지요.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 점점 많아지더군요. 결국 부하직원들을 관리하는 일에 전념할 수밖에 없게 되었지요. 그런데 관리자는 첫 번째 구조조정 대상이 됩니다. 특히 2008년과 같은 경제위기 상황에서는 더 그렇습니다. 그런 상황이 또 다시 오지 말란 법도 없지요. 월급쟁이는 항상 플랜B를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플랜B를 어떻게 준비하느냐? 가장 좋은 것은 취미를 살리는 것입니다. 요리에 관심이 있으면 평소 요리를 배워둔다든가, 연장이나 공구 다루는 것을 좋아하면 그쪽 기술을 평소에 관심을 두고 자격증(Certificates)을 따두는 겁니다. 또 와이프를 이용하는 것도 좋습니다. 부업을 한다든가 아니면 역시 취미를 살려 자격증을 취득하는 거지요. 제 경우에는 예순 살만 되면 회사에서 잡더라도 관두겠다는 자가당착으로 B플랜을 고려하지 않았어요. 그러다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태에서 50대 중반에 레이오프 되니까 화도 나고 당황하는 바람에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고 이민지에서의 생존에 실패한 경우입니다. 스스로 현명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지나고 보니, 세상에 가장 멍청한 인간이 바로 나였습니다.”


“회사에 너무 충성하지 마세요, 하하하. 그만 두고 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희생하면서까지 충성했던 어리석음만 두고두고 남습니다. 더 이상 이용가치가 없다고 판단되면 냉정하게 버리는 게 회사라는 조직입니다. 이런 말이 있지 않습니까? ‘회사는 관두지 않을 만큼만 주고, 종업원은 짤리지 않을 만큼만 일한다’고. 그게 회삽니다. 그저 짤리지 않을 만큼만 하세요.”


“그리고 진짜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부인을 많이 사랑해주고 될 수 있으면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세요. 할 수만 있으면 부인에게 ‘사랑한다.’, ‘미안하다.’, ‘고생이 많다.’, ‘고맙다.’라는 표현을 자주 하세요. 힘 떨어지고 능력이 사라졌을 때 하는 것보다 지금 하는 것이 몇 배의 효과가 있으니까요. 나중에 하면 효과가 없습니다, 하하하. 무엇보다 본인의 행복에 집중하라는 겁니다. 행복의 출발은 가족 아니겠습니까? 아, 중요한 팁이라고요? 그러면 제가 커피 값은 충분히 한 것 같습니다, 하하하.”


대화란 그런 것이다. 상대가 열심히 들어주면 말하는 사람도 즐겁다. 이런 게 말의 힘이요, 대화의 시너지 효과다. 그는 나에게 젊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해줌으로써 최근 사회현상을 이해하게 도와주었고, 나는 그에게 그가 경험하지 못한 15년의 세월이 어떻다는 것을 알려줌으로써 서로 ‘윈-윈’하는 시간을 가졌다. 좋은 사람과의 대화는 아이디어도 준다. 플랜B에 대한 생각이 처음 대화를 시작할 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말하는 도중에 내 실패에 대한 기억을 떠올렸고, 플랜B가 없었다는데 생각이 미쳤다. 대화하면서 새롭게 깨닫는 것이다.


시간은 12시 반을 넘겨 대화를 시작하지도 세 시간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커피 잔이 비워진지도 한참이 되었다. 공항에서 동료를 만나기로 했다는 그의 말에 우리는 커피숍을 나섰다. 비는 그쳐 있었다. 공항까지 데려다주겠다는 제의를 거절하며 그는 버스 정거장으로 나는 주차장으로 향했다. 서울에 오면 꼭 연락을 달라는 말을 남겼다.


귀 기울이며 서로 경청하는 대화는 여운이 오래도록 남는다.


<후기>

미국으로 다시 돌아갈 생각은 없느냐고 묻기에, 만약 다시 돌아간다면 아이들이 이유일 거라고 말했습니다. 손주가 생겨서 봐달라고 하거나, 비즈니스를 시작해서 일손이 필요하다고 하면 돌아갈지도 모르지만 그런 이유가 없다면 돌아갈 생각은 없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세상 일에 아무 관심이 없었는데, 앞으로는 세상을 알아가고 이치를 깨닫는데 남은 시간을 사용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게 제게는 큰 즐거움이니까요.


여행도 미국보다는 동남아나 중국, 몽고, 중앙아시아가 저에게는 더 땡깁니다, 하하하. 

이번 글은 여기서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