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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나은 세상을 위하여

대화의 여운(餘韻) - 하나

말은 소통의 수단이며 모든 인간관계의 시작이다. 말을 통해서 대화를 나누며 의사를 소통하고, 소통을 통해서 타인을 알아가고 친구가 되기도 하며 적이 되기도 한다. 대화의 기본이 경청(Listening)이라는 말을, 회사 연수원 관리자 교육에서 처음 들었을 때는 잘 이해하지 못했다. 상대의 말을 귀담아 들은 후에야 대화다운 대화를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기까지 더 시간이 필요했다. 경청은 대화의 상대를 존중한다는 기본적인 예절이며, 예의가 지켜지는 대화는 언제나 즐겁고 여운은 오래 간다.


부모 자식 간의 대화, 사장과 종업원의 대화, 교수와 학생과의 대화가 어려운 것은 우월적 지위에 의한 일방적인 소통(One way speaking)이 되기 때문이다. 자식도 종업원도 학생도 하고픈 말이 많은데, ‘갑’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상대가 하는 말을 듣기보다 자신의 말을 들어주기를 ‘을’에게 강요한다. 부자(父子) 사이가 서먹해지고, 대화가 막힌 부부관계가 결국 법정으로 가고, 종업원이 사장을 피해 다니고, 학생이 강의시간 외에는 교수를 찾지 않는 것도 같은 이유일 거다. 권위주의는 소통과 대화단절의 첩경이다.


미국에서 이민자로 살면서 가장 힘들고 억울했던 일이 바로 일방적인 대화를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의사표현이 마음대로 되지 않으니 대화를 빨리 끝내고 싶다는 생각이 앞섰다. 크게 손해나지 않는 경우라면 다소 억울해도 참는 경우도 왕왕 생겼다. 시시콜콜 따지기에는 영어가 너무 짧았다. 점점 듣고 말하는 것에 자신을 잃었고 대화하는 자체가 위축되고 즐겁지 않았다. 이야기가 약간만 복잡해도 잘못 전달될까 두려워, 전화 대신 직접 찾아간 적이 얼마나 자주 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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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도 처음에는 그렇게 시작했다. LA에서 대화할 상대를 찾지 못한 나는, 못마땅한 내 처지에 대해 미주 중앙일보 블로그에 등록해서 글을 올렸고, 글을 쓰면서 상황을 정리할 수 있었다. - 지금은 이곳에 글을 게시하지 않는다. 너무 예의에 벗어난 댓글을 다는 사람들이 많아서인데 나뿐만이 아니라 그런 이유로 떠난 사람들이 꽤 많다. 여기서의 경험이 악성 댓글은 무슨 수를 쓰더라도 차단하겠다는 결심이 되었다. 그래도 한때는 '베스트 블로그'에 선정되는 광영(?)도 누려 50불 짜리 거금의 기프트 카드를 받기도 했다. 


글도 대화의 한 방법이라고 본다면, 바로 대화의 힘이요 효과가 아닐까. 내가 만났던 분들은 역이민 선배로서의 조언을 구한다기 보다는 자신의 말을 하고 싶어 했다. 영주권을 얼마나 힘들게 얻었는지, 영주권 사기를 당해서 얼마나 큰돈을 잃었는지, 영어 때문에 얼마나 힘든 일을 겪었는지를 토로했다. 그런 이야기를 몇 시간이고 들어주다 보면 말하는 분의 표정도 홀가분해지고, 듣는 나도 덩달아 위안을 얻게 되었다.


‘나와 같은 고통을 겪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보다 위안이 되는 게 있을까?’ 최근 한국의 인기 드라마 ‘또 오해영’에 나오는 대사다. 듣고 있는 내가 받는 위로가 같은 종류일지는 모르겠다. “내 이민의 고단함은 이분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구나!”라는 생각을 했으니까. 3년 전 뉴저지에서 만났던, 뉴욕 주 이타카(명문 코넬 대학이 있는 곳)에서 온 분이 그랬다. 팔팍에 있는 속초회집에서 장시간 대화를 끝낸 후의 그분 표정은, 우여곡절과 고생 끝에 정착할 수 있었다는 대화의 내용과는 다르게 무척 밝았다. 싫다고 손사래를 치는 내게 과일 한 박스를 기어이 내려놓고 떠났다. 뉴저지에 사는 아들도 만나고, 장도 보고, 나도 만날 겸 왔다는 그분은 대화로 시간을 너무 지체하는 바람에 새벽녘에나 이타카에 도착했을 것이다.


내가 그런 것처럼 이분도 절친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민의 경험을 공유하지 못하는 친구와의 소통에는, 경청하기가 힘들었을 테니 한계가 있었을지 모른다. 그랬기에 자신의 말을 이해해줄 수 있는 나 같은 사람이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그동안 카페에서 내가 쓴 글을 읽으며, ‘이 사람이라면 내 말을 듣고 그동안 얼마나 힘든 역경을 딛고 살아왔는지 이해할 수 있겠다.’고 생각해서 그랬을지 모른다.


미국에서 살 때도 미국인들과 대화할 기회는 많았다. 하지만 길게 끌고 갈 능력이 항상 부족했다. 샌프란시스코 사무소에 출장 갈 때 비행기 옆 좌석과 대화를 터도, 나는 이런 일하는데 넌 무슨 일로 먹고 사느냐? 또는 뭔 일로 비행기를 탔냐고 묻는 의례적인 말을 하고 나면 더 이상 이야깃거리가 바닥났다. 국내 정치나 경제 이야기는 내 지식이 짧고 한국에 대한 이야기는 옆 좌석이 아는 게 없었다. 말만 텄을 뿐 대여섯 시간이나 걸리는 비행시간 내내 오지도 않는 잠이나 청할 수밖에.


한국에 돌아와 살면서 달라졌다. 누구와 만나도 하고픈 말은 다할 수 있다. 전화도 문제없다. 웬만한 일처리는 전화로 끝낸다. 표현에 거침이 없으니 대화가 다시 즐거워졌다. 지리산 둘레길을 걷다가 우연히 만난 젊은이들이나 Y선생, C교장과 같은 생면부지의 사람들과 했던 대화가 이토록 오랫동안 여운이 남을 수 있던 것도 대화가 즐거웠기 때문일 것이다. 설악산에서의 ‘갈대’님이나 ‘실콘짱’과의 대화도 그렇고, ‘아톰’님과 올레길을 걸으며 했던 대화, ‘청하’님과 소주잔을 기울이며 나누었던 이야기도 쉽사리 잊히지 않는다. 여운이 오래 가기 때문이다.


지난 주 토요일에 만난 K와의 대화도 그랬다. 그는 우리 세대와 다음인 아이들 세대와 정확히 중간에 해당하는 연령이어서 대화하는 재미가 더 특별났다. 게다가 19살에 이민 가서 대학을 나왔고 하이테크 계통 미국회사에 다니다가 한국의 대기업에 스카웃되어 2년 동안 근무했으며 다시 또 2년을 연장했다는 그에게서, 생각해본 적이 없는 새로운 내용은 대화하는 시간을 즐겁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여운은 지금까지도 지속되어 많은 것을 생각하고 깨달으며 글감을 떠오르게 한다.


세상사는 재미란 그런 것이 아닐까. 서로 모르는 사람이 만나서 대화하며 공감대를 찾고, 배우고 깨달음을 교환하는 것이야말로 여러 ‘인생지락(人生至樂)’ 중에서도 으뜸일 거다. 어차피 다른 사람의 인생을 대신 살 수 없다면, 다른 사람의 경험과 생각을 공유하고 내 경험에서 얻은 교훈을 나누어줌으로써 인생은 더 풍부해질 것이 틀림없다. 책을 읽거나 여행을 통해서 얻는 즐거움도 비슷한 것일 테니까.


<후기>

한국에서 만나는 외국인들과 대화하는 것은, 미국에서 만나는 미국인들과 말하는 것처럼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보잘 것 없는 내 영어도 여기서는 그런대로 쓸 만한 모양입니다, 하하하. 시외버스에서 만난 중국계 호주 여인, 남대문 빈대떡 집에서 만난 소말리아 출신 젊은 미국인과 별 막힘없이 말할 수 있었던 것은 이곳이 한국이기 때문일 겁니다.


제가 만난 사람들 가운데, 영어를 가장 잘하는 분들에 속하는 ‘아톰’님도 처음 미군생활을 할 때는 완전 고문관이었다고 합니다. 좌향좌에 우향우를 하고 뒤 돌아갈 때 앞으로 가기도 했답니다. 심지어는 대대장의 전화를 잘못 전달해서 전 부대원을 연병장에 집합시키는 실수도 했다고 들었습니다. 사실 이런 고생담이 더 효과가 있고, 언어로 고생하는 분들에게 더 위안을 줄 수도 있을 겁니다.


참, 이 이야기는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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