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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나은 세상을 위하여

'AlphaGo'를 이긴 이세돌

이세돌과 알파고이 둔 두 번의 대국을 본 뒤, 이세돌이 한 번이라도 이길 수 있다면 이세돌의 승리라고 생각했다. 그만큼 알파고가 강력했다. 첫 번째 대국은 질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지만 두 번째 대국에서 바꿔치기에 대한 알파고의 계산이 너무나 빠르고 정확했기에 순간적으로 승패가 갈리는 것을 본 탓이었다. 그리고 세 번째 대국을 보며 알파고의 창의적인 수에 감탄이 저절로 나왔다. 이세돌의 얼굴에서도 지친 표정이 역력했다.


어제 네 번째 대국. 알파고가 다시 어떻게 이기는가를 보기 위해 정확히 1시부터 중계를 보기 시작했다. 두 번째 대국과 같이 진행되던 바둑을 이세돌이 비틀었다. 감정이 있을 리 없는 알파고는 그저 이기기 위한 수순을 진행했으나, 이세돌은 자신을 테스트를 하고 싶었는지 따라 두지 않았다. 천재성과 도발적 창의성이 돋보이는 순간이었다. 이세돌은 끈질기게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며 최선의 수를 두어 나갔다.


그러나 중반까지 누가 봐도 알파고의 우세였다. 상변에서 중앙에 이르는 큰 집을 확보한 흑이 유리해보였다. 그곳에 갇힌 백돌의 일부분이라도 살리지 못하는 한 이길 수 없는 형세였다. 이세돌은 흑의 약점은 전혀 건드리지 않으며 참고 또 참으며, 신중하게 나중을 도모했다. 그러다가 흑집의 삭감을 시도했다. 공격적인 알파고가 넓게 포위하며 공격할 걸로 예상했을까. 그러나 알파고는 공격 대신 자신의 집을 지켰다. 역시 이기는 방법을 찾아가고 있었다.


이제 승부는 끝난 것처럼 보였다. 이세돌은 흑진의 약점을 이용해서 수를 찾아내려고 한 수에 10분에서 20분씩 장고(長考)를 거듭했다. 그러나 알파고는 1~2분마다 돌을 놓았다. 사용 시간이 한 시간까지 벌어졌다. 결정적인 순간에 알파고의 실수가 나왔다. 인간으로 치자면 생각 없이 상대를 따라 둔 '덜컥수'라고 불릴만한 수였다.


아, 알파고의 인공지능은 완벽하지 않았다. 인간이라면 고수들의 대국에서 상대가 오랜 시간 고심 끝에 둔 수를 그렇게 빠르게 대응하지는 않는다. 상대의 숨겨진 의도를 찾아내 최선의 대응을 찾아낼 때까지 시간을 쓴다. 그러나 알파고는 상대의 의도를 읽어내지도 최선의 수를 찾아내지도 못한 채, 많이 남아있는 자신의 시간을 활용하지도 않고 덜컥수를 두고 말았고, 그것으로 승부는 끝이었다.


그 후부터 알파고는 몇 번의 최악의 수를 거듭했다. 바둑의 하수가 아니라 초보자도 하지 않을 실수를 서너 번 거듭했다. 이기는 계산이 나오지 않자 나타난 일종의 버그(컴퓨터 에러)로 보였다. PC용 바둑프로그램에서는 흔히 보이는 것들이었다. 결국 알파고는 화면에 'Resign'을 표시하며 항복했다.


제4국을 보면서 드는 생각들을 정리해 본다.


먼저 알파고는 이세돌과의 대국이 거듭될수록 수를 놓는 시간이 빨라졌다. 1국보다는 2국이, 2국보다는 3국이 더 빨라져서 4국에서는 5초도 걸리지 않는 수도 있었고 대부분 1~2분 이내로 두었다. 대국자 간의 소비시간도 1국보다는 2국에서, 2국보다는 3국에서 더 벌어졌다. 3국에서는 40분까지 벌어졌던 시간 차이가 4국에서는 한 시간까지 벌어졌다. 물론 정확히 측정한 것은 아니지만, 내가 보는 관점에서는 그랬다.


경적(輕適)도 학습의 결과였을까. 인생사도 그렇지만, 바둑에서도 경적은 필패다. 장치에 불과한 알파고가 인간의 감정으로 경적을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시간 사용은 분명히 그랬고, 결과적으로 가장 빨리 둔 4국에서 패했다. - 형세가 기운 뒤에 시간을 많이 쓰는 바람에 비슷해지기는 했지만, 그때는 이미 역전이 불가능해진 뒤였다.


이세돌의 포기를 모르는 불굴의 정신력은 높이 살 만했다. 혼신의 힘을 다한 세 번의 대국에서 패했기 때문에 주저앉을 수도 있었지만, 그는 장고를 거듭하며 최선의 수를 찾아냈다. 상대의 생각하지 않는 듯한 빠른 응수에 흔들릴 법도 했으나, 그는 냉정을 잃지 않았고 끝내 승리했다. - 바둑을 모르는 분들은 소파에 앉아서 하는 대국이 뭐 힘든 일이냐는 의문을 가질 수도 있지만, 프로기사들은 이런 중요한 대국을 두고나면 1~2킬로씩 체중이 준다고 한다. 일본에서 두어지는 이틀 대국은 3~4킬로씩 체중이 줄 만큼 힘든 노동이라는 거다.


이번 이벤트로 인간이 창조한 인공지능 가운데 최고인 알파고도 완전하지는 않다는 사실이 증명되었다. 알파고 측에서도 인정했듯이 이번 대국의 과정을 연구해서 결과를 반영시켜 더욱 발전시키겠지만, 아직은 인간의 독창성과 생각하는 힘을 당해내기는 힘들어 보인다. 특히 바둑 초보자도 범하지 않는 1선에 두는 초보적 실수를 반복한다는 것은 갈 길이 멀다는 것을 의미한다.


구글의 창업자 '세르게이 브린'이나 '에릭 슈미트'까지 한국을 방문하고, 수많은 외국기자들이 취재경쟁을 할 정도로 세계적 관심이 이번 이벤트에 컸던 만큼, 현대바둑의 종주국 일본이나 바둑의 원조국 중국이 아닌 한국에서 벌어진 것은 자랑거리에 틀림없으며, 그런 부담스런 관심들 앞에서도 주눅 들지 않고 꿋꿋한 모습으로 감정 없는 기계를 이겨낸 이세돌의 모습은 정말 아름다웠다.


그러기에 신안 비금도 출신의 바둑 천재 이세돌이 더욱 자랑스럽고 내일 벌어질 다음 대국이 더욱 관심이 간다.


▼ 알파고가 화면에 항복한다는 표시로 'AlphaGo resigns'라는 메시지를 띄웠다. 지금까지 알파고가 둔 500여 번의 대국에서 이번에 진 것이 두 번째 패배이며, 인간에게 당한 첫 패배로 기록되었다. 개발 과정에서 다른 프로그램에서 진 것이 지금까지 유일한 패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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