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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나은 세상을 위하여

Fair Game

2010년에 제작된 '페어게임'이라는 영화가 있다. 션 펜의 연기를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션 펜이 나온다는 이유로 선택한 영화지만, 2003년 소위 '플레임 사건(Plame Affair)'이라고 불렸던 실화를 영화화한 것으로 미국을 알아가는 재미까지 있었다. 플레임게이트(Plamegate) 혹은 CIA 누출 사건(CIA leak case) 등으로 불리기도 하는 플레임 사건은, 전직 외교관 출신인 조 윌슨의 아내인 발레리 플레임이 미국 중앙 정보국 CIA 요원인 것이 언론에 누설된 사건을 지칭하는데 이를 영화화한 것이다.

 

CIA의 비밀요원인 발레리는 이라크의 WMD(Weapon of Mass Destruction, 대량살상무기) 가운데 원자폭탄 제조 가능성을 밝히는 주요임무를 맡고 있었다. CIA는 아프리카 니제르에서 생산된 우라늄이 이라크로 비공식 루트로 수출이 되었는지 알아보기 위하여, 전직 외교관으로 니제르 대사로 일한 적이 있어 니제르 정부 주요인사들과 친분이 있는 발레리의 남편, 조 윌슨을 이용하기로 결정한다.

 

조 윌슨은 니제르로 파견되고, 그는 니제르에서 수백 톤에 달하는 우라늄이 비밀리에 비공식적으로 이라크로 수출되었다는 소문은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하고 돌아와 그대로 보고한다.

 

발레리 역시 이라크에는 원자폭탄을 제조할 시설이 없다는 결론을 내리지만, 전쟁을 원하는 강경파가 득실대는 백악관은 이라크에 원자폭탄을 포함하여 WMD가 있다는 것을 기정사실화 하여 언론에 흘려 이라크 침공에 유리한 여론을 조성한다.

 

미국 CIA에 해당하는 기관이 한국의 '국가정보원'일 것이다. 516 쿠테타 이후에 김종필씨가 미국의 CIA를 흉내내서 중앙정보부를 만들었다고 하는데, 창설하자마자 1963년 증권파동을 일으켜, 공화당 창단자금을 조성했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수많은 선량한 국민들이 피해를 보았고 그로 인한 자살자들도 적지 않았다고 하니, 한국의 CIA는 태생부터 '반국민적 기관'이었던 셈이다.

 

내 또래의 사람들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1970년대 중정은 무소불위의 기관이었다. 나찌의 게쉬파포처럼 박정희 유신독재시절의 친위부대이었다. 정권반대세력에 대해 '인혁당 사건', '민청학련 사건' 등을 조작하여 공권력의 폭력을 일삼았고, 무고한 시민들은 '간첩'이라는 누명을 쓰고 형장의 이슬이 되기도 했다.

 

여권을 받으려면 장충동의 중정에 가서 보안교육을 받아야 했고, '보안'이란 명분 아래 중정에서 '보안감사'를 나오면 모두가 벌벌 떨었다. 1980년대 중반 내가 일했던 원자력 발전소 건설현장에 당시 안기부 지방 분실에서 보안감사를 나온 적이 있었다. 사적(私的)인 팩스 한 장 보낸 것이 발각되어 징계를 받고, 높은 분들이 경질되기도 했을 만큼 그들의 권한은 막강했다.

 

2003년 3월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 침공을 끝내 강행하자, 조 윌슨은 자신의 조사결과를 뉴욕타임즈에 인터뷰 기사로 싣게 된다. 이에 딕 체니 부통령 실의 고위관리인 Scooter Libby(Chief of Staff to the Vice President of the United States, 사진)가 개입하게 된다. - 실제 이라크 침공에 있어 부시는 딕 체니의 꼭두각시이었다는 설이 있다.

File:Scooter Libby.jpg

 

스쿠터는 CIA를 움직여 발레리를 자리에서 물러나게 하고, 조 윌슨은 믿을 수 없는 형편없는 사람이라고 조작한다. CIA의 변변찮은 하급요원인 발레리가 자신의 남편을 사적으로 고용한 것이며, 이라크에 핵무기 개발 가능성이 없다는 그의 주장 역시 전혀 공신력이 없는 허구라는 것이었는데, 이 과정에서 그는 CIA 비밀요원을 공개해서는 안 된다는 연방법을 위반하게 된다.

 

연일 이어지는 이라크에서의 승전소식에 흥분하던 여론은 조 윌슨 부부를 매국노나 빨갱이 - 한국이었으면 종북으로 몰아부쳤겠지만 - 로 몰아세우는 등의 마녀사냥을 한다. 전직 CIA의 비밀요원이었던 발레리는 깊은 고뇌를 거쳐 가정과 남편을 지키기 위해 언론에 나서 진실을 밝힐 것을 결심한다.

 

예일대학 출신의 변호사이기도 한 스쿠터는 CIA 요원 누출사건으로 기소되어 2006년에 법원으로부터 2년 6개월의 징역과 25만불의 벌금, 석방 후 2년의 보호관찰과 400시간의 사회봉사 형을 선고받는다. 2007년 부시는 대통령의 권한으로 그를 감형시켜 징역살이에서 풀어주기는 하지만, 여론으로부터 '제 식구 봐주기' 라는 질타에 시달려야 했다.

 

국정원 요원들의 불법 선거개입으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민주당으로 정권이 넘어가는 것이 두려운 MB가 국정원과 국가보훈처, 사이버 사령부와 보안사 등 국가기관과 군을 총동원해서 종북몰이를 하고 여론을 호도시킨 명백한 부정선거 사건이다. 표적수사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았고, 공무원을 동원해서 민간인을 사찰했고, 4대강 사업으로 자신의 동료 - 토건족들에게 돈벌이를 제공하여 엄청난 국가부채를 남겼고, 대기업 중심의 경제성장으로 민생을 파탄시켰고, 국가 돈을 제 주머니 돈 처럼 사용했으며 (내곡동 사저), 미국의 FCC(Federal Communications Commission; 연방통신위원회)를 흉내내어 KCC(Korea Communications Commission; 한국방송통신위원회)를 만들어 방송과 언론을 불법으로 장악했던 장본인으로서 문재인씨가 당선되는 것이 얼마나 두려웠을까?

 

그 은공(?)을 잊지 못하는 탓인지는 몰라도, 지금 박근혜씨는 민주주의 국가의 대통령으로서 직분을 소홀하고 있다. 공정한 선거(Fair Game)는 민주주의의 기본이자 초석이다.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마음이 눈꼽만큼이라도 있다면, 전 정권하에서 벌어진 불법을 낱낱이 밝혀내고 처벌하면 그뿐이다. 그리고 나서 미안한 마음(?)이 남아 있다면, 부시가 스쿠터에게 했던 것처럼 대통령 권한으로 사면하면 된다. 그게 민주주의 국가의 대통령으로서 해야 하는 최소한의 의무가 아닐까?

 

지금처럼 정당하게 수사하려는 의지를 가진 검찰총장을 바꾸고, 수사책임자를 바꿔서 불법을 덮으려고만 하고, 국정원의 선거개입을 축소하기에 급급해서는 더 큰 저항에 부딪히게 되지 않을까? 그 참혹했던 유신시대의 긴급조치 시절에도 저항은 있었고, 전두환 정권의 서슬퍼런 공권력에도 민초들의 저항은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 때도 종북몰이는 있었고, 북한의 위협도 있었으니까! 지금 박창신 신부를 잡아 넣는다고 해고, 제2, 제3의 박창신 신부는 얼마든지 나올 테니까!

 

 

<후기>

구관이 명관이라고 했던가요? 오히려 MB가 낫었다는 생각까지 듭니다. 그래도 MB는 대통령 당선을 위해 표를 얻기 위해서 거짓말을 했다는 실토를 했으니까요. 지금의 대통령처럼 침묵만 지키고 있지는 않았었으니까요.

 

박창신 신부님의 강론 전문을 읽어 보았습니다. 제 상식으로는 강론 어느 곳에도 종북이라고 판단할 내용이 없었지만, 지금의 한국에서는 중세시대 마녀사냥식의 무조건적인 종북몰이가 한창입니다. 국정원 등 공권력의 불법선거개입을 철저히 규명하자는 것이고, 그것은 '공정한 선거'야말로 수많은 사람의 희생으로 지켜진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한 지고지순한 가치이기 때문이며, 가장 우선시되어야 할 양심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민주주의의 가치를 수호할 의지가 없는 대통령이야말로 민주국가에서는 퇴출되어야 마땅하지 않을까요?

 

현정권의 유일한 정권유지수단은 종북몰이 밖에 없는 듯 합니다. 국민의 관심사안은 제쳐두고 오로지 종북몰이에만 혈안이 되어 있는 것을 보면.

 

미국이나 한국이나 대중을 기만하여 정권에게 유리한 국면을 위해 사용하는 수법들은 많이 비슷합니다. 그래도 미국이 조금이라도 나아보이기는 합니다. 딕 체니의 사람까지도 처벌하는 것을 보면.

 

정치에는 관심이 전혀 없이 살아왔으나, 은퇴하여 돌아온 역이민자로 제주에 살면서 여유로운 시간을 세상읽기에 사용하다보니 너무나 뻔한 한국의 정치상황에, 영화를 보며 쓸데없는 훈수(?)를 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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