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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나은 세상을 위하여

비굴했던 내 인생

(2013년 9월 8일에 작성한 글)

 

- 일마야, 봉급이 얼메노? 본사에서 과장 노릇 하는 놈이 이따위 밖에 못하나? 뭐, 겨우 2~3억을 절감하겠다고? 네 봉급이 일년에 얼메나 되는데, 연봉 값도 못하면서 유지보수를 하겠다고? 한심한 놈 같으니라구! 부장 오라고 그래!


ㄱ소장실은 길다란 회의용 테이블이 입구에서 창쪽을 보았을 때 왼쪽에 위치하고, 테이블 오른쪽 창가에는 티크 색깔의 커다란 책상이, 그리고 그 앞에는 시커먼 가죽으로 된 소파가 티 테이블을 가운데 두고 위치하고 있었다.


당황한 나는 수화기를 드는 소장의 손을 두손으로 감싸 잡았다. 부장에게까지 불똥이 튀겨 견디기 힘든 상황이 오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 죄송합니다, 국장님! 부장님은 부르지 마십시오! 제가 다시 작성해 오겠습니다.


그러나 기어코 그는 ㄴ부장을 불렀고, 나는 꼬랑지 내린 비 맞은 강아지 꼴이 되어, 거북스럽기만한 ㄴ부장과 함께 머리를 조아린 채, ㄱ소장 앞에서 심한 갱상도 사투리가 섞인 훈시를 한참 동안 들어야 했다.


- 니들, 봉급이 얼메고? 니 둘이 아무리 적게 잡아도 일년에 5천은 될끼라, 그제? 그것 뿐인지 아나? 니들 비싼 강남땅에서 책상 차지하고 있제, 니들 복리후생하려고 사무직들 있어야제, 그라믄 니들 봉급에 최소 5배는 해야 안하나, 그제? 근데, 겨우 2~3억 절감하겠다고 자체유지보수를 한단 말이가? 에고, 이 병신들아! 이런 문둥이들 데리고 일 한다고, 내가 다 한심하다!


'찍' 소리도 못하고 고개를 조아리고 듣고 있던 ㄴ부장은 소장실을 나서자, 갑자기 근엄한 표정으로 바뀌어, 씹듯이 한 마디 내뱉었다. - 다시 작성해!


'△△설비 자체유지보수 기본계획'은 본사 담당과장인 내가 기안했지만, ㄴ부장의 검토를 거쳐 ㄱ소장의 최종결정으로 확정되었다.


25년도 훨씬 전이라 인건비가 아무리 싸다 하더라도, 설비 제작사도 아닌 조직에서 자체보수를 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86 아시아 게임과 88 올림픽을 치루면서 한국은 성장일로를 걷고 있었고, 모든 조직은 합리와 효율은 무시하고 자신의 몸집을 불리기에 여념이 없었다. 조직을 키워야 예산이 늘고 지위가 높아지며, 많은 직원들에게 인사권을 휘두를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콩고물'과 연관이 깊다.


나는 기본계획을 수정했다. 그리고 자체유지보수를 함으로써 2~3억의 예산절감이 아니라 200억에 가까운 기여를 할 수 있다고 '효과분석'을 과장했고, 흐믓한 미소를 띤 ㄱ소장으로부터 최종결재를 받을 수 있었슴은 물론이다. 양심을 속이고 조직이 - 아니다! 윗사람이 원하는 허위서류를 만들어 조직 속에 안주할 수 있었다.


뒤돌아보니 평생을 비굴하게 살았다. 심지어는 내 자신에게 불이익이 오는 것도 감수하며, 위에서 시키는대로 진실을 감추는데 일조하기도 했다. ('진실 바라보기 4편' 후기 참조, 2012년 7월 11일, 하고싶은 이야기) 그때, 용기를 내어 사실대로 진술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 고가평정을 나쁘게 받아 과장승진을 할 수 없었을 지도 모르겠다. 'What if?'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주장하시는 '아톰'님에게는 미안하지만.


- 야, 무조건 참아야 돼. 아니, 참으면 다 해결되는 거야. 벽에다 주먹질을 하면 네 주먹만 아파! 왜, 그걸 몰라! 그냥 너 자신을 솜으로 만들라구, 아니면 스폰지가 되거나. 스폰지에 때리면 때리는 놈만 지치지, 맞는 놈은 괜찮다는 걸 왜 모르니?


내 보스였던 ㄴ부장을 소위 '크게 들이받았던' 적이 있었다. ('성공한 사람들, 실패한 사람들 1편' 참조, 2011년 12월 11일, 하고싶은 이야기들) 당시, 이웃부서에 있던 대학선배가 해준 충고였다. 즉, 조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소위 '현명한 처세술'이었다. 때리면 맞고, 차면 채이고 둥굴둥굴 좋게 좋게 살아가라는 조언이었다. 그런 처세술 덕분인지 그 선배는 직원으로 갈 수 있는 최고위직까지 올라갔다가 퇴직해서는 자회사의 전무자리로 갔다.


나는 그 선배의 충고를 따르지 않았다. 조직으로부터의 일탈을 엿보았고, 기어이 이민이라는 쉽지 않은 선택을 마흔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했다. 사표를 내고자 했을 때 ㄴ부장이 했던 말은,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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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에 대한 국정조사가 아무런 성과가 없이 끝났지만, '권은희'라는 스타를 배출했다. 16명의 증인 가운데, 그녀 하나만 진실을 말하고 있었다. '미디어 오늘'에 따르면, 25일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서치뷰'의 휴대폰 실시간 공개조사를 실시한 결과를 보면, 적어도 국민의 40% 이상이 가장 신뢰가 가는 증언으로 '권은희 과장'을 꼽았다고 한다. 원세훈 12%, 김용판 9%의 신뢰도에 비하면 진실에 가장 가까운 증언이었다. 조직 속에서 둥굴둥굴 살아가기로 한 15명과 불이익을 감수하면서도 진실을 말하겠다는 단 한 명의 싸움이었다.

 

그렇다, 그것이 인생이고 세상이다. '15 대 1'의 싸움은 항상 있어 왔다.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천동설'을 뒤집을 때도 그랬고,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만들 때도 그랬다. 에이브러햄 링컨이 노예해방을 할 때도 반대자가 훨씬 많았다.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갑남을녀들은 15명 편에 들기가 십상이다. 그러나 세상을 밝히고 바꾸는 것은 그 한 명이다.


솔잎 먹기를 거부한 송충이에게 고난이 있었던 것처럼 그녀에게도 쉽지 않은 앞날이 있겠지만, 나처럼 굴욕감을 갖고 지난날을 회상하는 일만큼은 적어도 그녀에게는 없을 것이다.


그녀의 모습을 보고 비굴했던 내 지난 날을 회상해 보았다.

http://www.youtube.com/watch?v=a53IUjZ0oaA


<후기>

ㄱ소장:  뛰어난 두뇌와 처세로 승승장구 하다가, 정권이 바뀐 후 뇌물수수로 인한 '특정범죄 가중처벌법'으로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하였다. 41년생인 그분은 지금도 아들과 함께 사업을 하며, 수많은 지인들에게 최신 기술동향을 이메일로 전하며 활동한다고 한다. 아직도 세상에 미련이 많이 남은 것 같다. 그분이 현역일 때, 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기도 했지만, 그때 이룬 업적을 아직도 칭송하는 사람들이 많다.

 

ㄴ부장: 좋게 평가할만한 기억이 별로 없다. 능력에 비해 승진 욕심만 많았던 분으로 기억된다. 배울 게 별로 없었던 전형적인 권위주의형 보스로, 내게 당했던 일 때문에 지금도 내 이야기만 나오면 나뿐만 아니라 내가 나온 학교까지 싸잡아 욕을 한다고 전해들었다. - □□대학 나온 어떤 놈 때문에 망신 당했다는 거다. ^^

조그만 유지보수업체의 사장까지 지냈지만, 썩 잘 풀리지는 않았다는 말도 덧붙여서.


위에서 시키면 무조건 따라야 하는 시대에 살았습니다. 오죽하면 '(X으로 밤송이를) 까라면 까'라는 말을 공공연하게 했을까요?

 

일반회사도 그럴진대, 상명하복이 군대와 같은 경찰에서 어떻게 그런 인물이 나왔는지, 올드 타이머인 제게는 신기하기만 합니다. 앞으로 그런 인물이 점점 더 많이 나와 진실이 통하는 세상이 하루빨리 오기를 희망해 봅니다.


물론, 보고싶은 것만 보고 듣고싶은 것만 들어서는 밝은 세상이 오기가 힘들겠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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