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보다 나은 세상을 위하여

진실 바라보기 (8)

(2013년 1월 8일에 작성한 글)

 

- 저 카메라는 우리가 단 게 아닙니다. 우리는 저런 제품을 취급하고 있지도 않고, 취급한 적도 없습니다.

 

○ 아니, 무슨 소리예요? 한달 전에 블랙박스를 설치하러 왔을 때, 이곳에서 분명히 달았는데. 그렇다면 다른 사람이 달았겠지!

 

- 다른 사람이 어떻게 달아요? 우리 가게에서 취급하는 제품이 아닌데.

 

'모비스 카페'라는 자동차 악세서리 가게에서 지난 주에 있었던 이야기다.

지난번 차량 접촉사고 이후, 블랙박스를 달아줄 것을 학원원장에게 부탁했었다. 또 사고 나기 그 며칠 전에는 오르막 길에서 신호대기 중에 앞차가 뒤로 밀리더니, 내 차를 받을 뻔한 일이 있었다. 빵빵하고 크락션을 눌러서 겨우 사고를 면한 그 차에서 영감이 내리더니, 나보러 안전거리를 지키지 않았다고 오히려 큰소리를 쳤었다. 뚜껑이 열린 내가 흥분하는 바람에 진짜 큰 사고가 날뻔한 일까지 있었다.

 

차를 찾아 나오는 길에 보니, 블랙박스만 설치한 게 아니고 후방카메라까지 달려 있었다. 그런데 며칠 전에 후방카메라가 동작하지 않는 바람에 A/S를 받기 위해 다시 찾은 것이었다. 그런데 김과장이라고 불린 젊은 친구가 이곳에서 단 게 아니라고 극구 부인을 하고 있으니, 둘 중의 하나는 거짓말을 하고 있는 셈이고,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인 운전수에 불과한 나는 답답한 노릇이었다.

 

결론은 김과장도 나도 자신들이 아는 사실만 말한 것이었다. 사실을 주장한 것이지만, 진실은 아니었다. 진실은 원장남편과 악세서리 가게 주인과 아는 사이로, 원장남편이 갖고 있던 후방카메라를 아는 가게에 맡기고 블랙박스를 달 때, 같이 설치해주도록 부탁했던 것이었다. 그러니 컴퓨터 기록을 뒤져도 카메라는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사실 뒤에는 가려져 있는 진실은 따로 있었고, 그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원장남편과 모비스카페 사장 뿐이었다.

 

즉 겉으로 드러난 사실만으로는 진실은 알 수 없었던 것이다.

 

적지 않은 세월을 살면서 새삼 느끼는 것 중의 하나가 참 많은 선입관 속에서 살고 있다 라는 것이다. 어째서 그런 선입관을 갖게 된 것인지 분명치 않지만, 스스로의 잘못된 판단이나 자신의 선호에 따라 잘못 주입된 지식, 어렸을 때의 잘못된 믿음같은  뭐 그런 것들이 연관되어 그러지 않나 생각한다. 이러한 선입관은 사실보다도 더 진실과 멀어지게 만든다.

 

평소 자신이 생각하고 있던 것을 누가 이야기 해주면 '맞아, 역시 그랬어! 내 생각이 맞았어!' 하는 마음이 되고, 막연했던 생각은 순간 믿음으로 바뀌고 진실과는 멀어지게 된다. 선입관이 판단력을 흐리게 하여 진실을 가리고, 감성이 이성을 이기는 모순이 생긴다. 왼쪽으로 가르마를 탔던 사람이 오른쪽으로 가르마를 바꾸기는 쉽지 않다. 자신의 눈으로 뒤통수를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선입관을 없애기 위해서는 이해타산이 얽히지 않은 제3자의 시각으로 사물을 보는 것이 필요하다. 객관적인 기준에서 말할 수 있는 사람의 견해를 빌려오는 것도 한 방법이고, 과학에 의해 입증된 논리 또는 학계에서 인정받은 논문을 인용하기도 한다. 뉴스나 보도에 진실성을 더하기 위해 교수나 권위있는 학자들이 자주 등장하는 이유다.

 

학교에서도 글을 쓸 때는 6하 원칙(5W 1H)을 지키라고 그래서 가르친다. 그냥 누가 어떻게 이야기 하니까 그게 사실일 것이다 라고 이야기 하는 것은 주장일뿐 타당성이 없다. 아님 말고 식의 무책임한 이야기일 뿐이고, '우리 아빠가 니네 아빠보다 힘이 세다'고 서로 우기는 유치원 아이들의 유치한 말장난에 불과하다.

 

그런데 실제 세상에서 이런 유치한 이야기들이 통하는 것을 본다. 조현오 전 경찰청장이 그랬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뛰어내리기 전날 거액의 차명계좌가 발견되었다.'고 경찰 기동대 특강에서 발언한 것이다. 그 발언이 문제가 되자, 그런 이야기한 적이 없다고 발뺌을 했다가, 녹음한 것이 공개되자 믿을 만한 정부 당국자에게서 들은 내용이라고 우겼지만, 끝내 누구에게 들었는지는 함구했다.

 

노무현 측으로부터 사자명예훼손죄로 고발되어, 최근 불리해지자 "누가 뭐래도 서민의 애환을 가장 잘 이해했던 사람, 소외받은 이들을 대변했던 대통령"이라고 높게 평가하여 "(차명계좌 발언은) 두 번 다시 떠올리기 싫은 경험. (지금은) 도저히 해서는 안되는 얘기를 한 것에 대해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사죄하였다. 그러나 인사 청문회 당시 계속된 추긍에도 절대로 '차명계좌가 없다'라는 확실한 말을 하지 않았고, 계속하여 '말할 수 없는 부분, 부적벌한 발언'이라고만 말하며 마치 차명계좌가 있는데 발언이 시기상 적절하지 않았다라든가, 지금은 말을 할 수 있는 건이 아니다 정도로 넘어가려고 하는 늬앙스를 풍겼었다. (위키피디어 백과사전 '조현오'편 참조)

 

이런 사람이 법을 집행하는 경찰 총수에 있었다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지금도 김용판 서울 경찰청장 처럼 제2, 제3의 조현오가 계속 나오고 있고, 진실을 가리려는 시도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아님 말고 식의 보도로 유명한 조중동이 앞장을 서고 있다는 것을 알만한 사람은 다 알지만, 더 고급정보에 접근할 수 없는 대중들은 속을 수 밖에 없다.

 

진실을 밝히는 자유를 얻기 위해 자신의 기득권을 버린 사람이 있다. 표창원씨다. 그는 자신이 배운 것을 실천하기 위해, 자신이 추구하는 진실에 떳떳하기 위해 '경찰대학 교수'라는 직위를 버렸다. 평범한 보통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한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 의해 세상은 한 뼘이라도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것으로 믿는다.

 

진실은 밝혀지게 되어있다. 다만 시간이 필요할 뿐이다. 그렇게 밝혀진 진실만이 이 사회와 이 세상을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시켜왔다는 것을 역사가 가르쳐주고 있다. 그래서 진실의 힘을 믿는다.

 

<후기>

어느 분이 '위키피디아'의 권위를 폄하하는 것을 보고 어이가 없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위키피디아는 전세계 네티즌이 만드는 무료서비스로 객관적 검증이 되지 않은 사실은 절대로 실리지 않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야심적인 백과사전 프로젝트를 접게 만들 정도로 권위를 가졌는데, 자신의 생각과 다른 사실을 기록한다고 그것 조차 부정하는 분을 보고 정말 대단한 고집이라고 찬탄을 했지요.

 

무책임한 글을 올린다고 누가 뭐라 할 사람은 없는 카페지만, 그래도 인생의 연륜도 있는 지성인이라면, 글의 출처나 배경 정도는 밝히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하긴, 아무런 근거도 없는 이야기에 현혹되는 분도 없겠지만, 쓸데없이 혹시나 하는 노파심이 들었습니다. ㅎㅎㅎ

'보다 나은 세상을 위하여' 카테고리의 다른 글

Fair Game  (0) 2013.11.26
비굴했던 내 인생  (0) 2013.11.17
한국언론 이야기  (0) 2013.11.15
아직도 한심한 한국  (0) 2013.11.15
20년만에 경험하는 한국의 대선  (0) 2013.1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