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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나은 세상을 위하여

아직도 한심한 한국

(2012년 11월 27일에 쓴 글)

 

한국에 돌아와서 살면서 좋은 이야기, 밝은 이야기를 많이 올려야 하는데, 또 그런 사명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자꾸 우울하고 어두운 이야기만 전하는 것 같아 송구스럽다. 그러나 지난 며칠 여동생과 통화하면서 알게 된 이야기는 한국의 실상을 제대로 파악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에서 글로 옮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오빠, 내가 사는 아파트가 재개발 한다고 해서 가격이 엄청 올랐어. 6억이 넘어. 현대산업개발에서 재개발하는데 재개발이 끝나면 더 오를 거래. 난 44평 짜리를 신청했는데, 로얄층에 걸렸다. 막내 정한이가 군대 갔다 오면 입주하게 되니까 시간도 딱 맞아. 아이들이 없을 때, 줄여 살다가 아이들이 다 모이면 이사 가니까.


몇 년 전, 미국에서 전화한 동생은 신이 나 있었고, 동생의 이야기를 전해듣는 나도 퍽 즐거웠었다. 사내들만 있는 집에서 막내로 태어난 여동생은 늘 천덕꾸러기였다. 대학에 진학하지도 못했지만, 자기 엄마에게 배운대로 억척같이 살아서 25평 짜리 주공 아파트에서 살았고, 아이들도 다들 공부를 잘해서 사는 게 신나는 자랑스러운 동생이었다.


더군다나, 나는 그 동생에게 마음의 빚이 늘 있었다. 내가 거두었어야 할 치매 걸린 노모를 모셨던 것이었다.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는 노인을, 수험생인 아들들 틈에서 돌보았었다.


한 편으로는 걱정도 있었다. 한국의 부동산에 낀 거품이 언젠가는 꺼질텐데……, 차라리 팔 수 있으면 지금 파는 것이 나을 텐데……


- 오빠, 나 취직했어. 반도체 취급하는 공장인데, 분위기도 좋고 괜찮아. 내가 여기서 제일 연장자다, ㅎㅎㅎ. 사장도 나보다 몇 살 아래라 그런지, 다들 나한테 잘 한다. 집에서 가까워. 운동삼아 걸어다니는데 뭘. 120만 원 밖에 안 되지만, 4대 보험 다 되고. 아이들 대학졸업 때까지는 뭐든 해야 하니까. 시간도 잘 가고 일도 힘들지 않아, 재미있어!


동생에게 듣는 이야기는 항상 신나는 일이었다. 큰 놈이 올 에이를 받아왔고, 그래서 전액 장학금을 받았다는 이야기, 작은 놈은 교환학생으로 선발되어 미국 조지타운 대학에서 6개월 수학하게 되었다는 이야기 등등. 시련이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제부되는 친구가 사업을 한다고 벌렸다가 1년 만에 1억을 까먹기도 했으니까.


'그래 네가 예쁘게 사니까, 네가 그렇게 믿는 하느님이 보기에 좋으셨나 보다, 그래서 네게 복을 주시는가 보다!' 고 생각하며, 같이 즐거워했다.


- 오빠, 나 요즘 엄청 바빠. 나중에 전화해 줄게.


한동안 연락이 뜸해서, 전화했더니 전화 건너편에서 들리는 동생의 목소리가 지쳐있었다. 그리고 지난 일요일 그 사연을 대충 듣고 난 후, 화가 났다. 아이구, 한심한 한국, 너 아직도 갈 길이 멀구나!


내년 4월 입주 예정인 재개발 중인 아파트의 입주 분담금이 확정되었다고 한다. 원래 5천여 만 원이었던 분담금이, 지난 몇 년 동안 아무 말 없다가 입주 6개월여 앞두고 2억 3천만 원으로 뛰었다고 한다. 100% 인상도 아니고, 원래 계약에서 500% 가까이 인상이 된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지 이해가 되지도 않지만, 사실이라면 서민의 생계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 아닐 수 없다. 그것도 국내 굴지의 대기업 아닌가!


다니던 회사는 지난 봄과 여름에 그렇게 바쁘다고 했다. 토요일에도 일하고, 저녁에도 일감이 있어서 오버타임을 해야 한다는 거다. 그런데 연말에 일감이 줄어, 10여 명을 권고사직 형태로 퇴사시켰다고 했다. 동생은 아파트 입주자 대표가 되어 건설사와 싸우느라고 바빠서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하던 중에, 회사로부터 연락이 왔다고 한다. 4개월 동안 실업수당을 받는데, 그 차액을 줄테니까 공장에 나와달라는 거다. 이 제안을 받아들이면 4개월 후에 다시 복직시켜 준다는 꼼수였다. 즉, 120만 원 주는 노임을 실업수당 90만 원을 받고, 30만 원을 주고 일을 시키겠다는 꼼수인 것이다.


20여 년 전의 일이 생각났다. YS정부에서 전두환, 노태우의 비자금 문제를 크게 매스컴에서 떠들던 때였다. 모회사에 장비를 납품하기 위해 트럭에 실어 전국으로 실어보냈다. 모회사 발주부서의 검수까지 끝내고 납품절차만 남았었다. 납품서류를 가지고 선탑했었던 직원에게 전화가 왔다.


- 부장님, 창고에서 경비가 문을 안 열어 줍니다. 담배값이라도 달라는 거예요. 대통령이 수억 원씩 받아먹는 세상인데, 몇 억 원 짜리 장비를 납품하면서, 몇 만 원은 내놓아야 할 것 아니냐는 거지요. 안 들여보내겠다는데 어떻게 하지요?


ㅎㅎㅎ, 웃음 밖에 안 나왔다. 트럭은 시간이 돈인데, 싸우는 비용이 더 든다는 판단이 쉽게 섰다. 대통령을 따라하겠다는 그들에게 5만 원씩 집어주었다.


20여 년이 지났지만, 변한 게 없다. 대한민국의 리더 MB가 꼼수를 부리니, 온 동네가 다 따라하고 있다.


아이고, 대한민국아! 너 아직 멀었다. 갈 길이 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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