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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나은 세상을 위하여

뇌물의 기술

(2012년 11월 14일에 작성한 글)

 

한국의 뉴스에서 자주 등장하는 것 중의 하나가 뇌물 이야기다. 최근에는 현직 부장검사가 희대의 사기꾼 조희팔에게 거액을 받은 혐의로 시끄럽다. 경찰의 수사에서 단서가 포착되어 검사, 그것도 현직 부장검사를 수사하게 되었는데 검찰에서 검찰의 명예에 관련된 사건을 경찰에 맡길 수 없다며 가로치기를 해가는 바람에 경찰과 검찰에서 동시에 수사를 진행하고 있는 것이 세간의 이야기 거리로 회자되고 있는 것이다.


그것뿐이 아니다. 한 달 전에는 제주 시청의 건축민원부서의 말단 직원이 수 억원의 뇌물을 받고 인허가나 변경 등의 민원을 처리한 것이 들통이 나기도 했고, 여수군청의 회계과 말단 직원이 수 년에 걸쳐 수십억 원을 횡령한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또 오늘 아침 신문에는 용산구청 주택과 직원이었던 사람이 부정을 저질러 징역을 살고 나왔는데, 또 다른 뇌물수수가 발각되어 다시 사법처리가 된다는 기사가 실렸다.  (http://news.hankooki.com/lpage/society/201211/h2012111402341521950.htm)


이민을 떠날 때, 돈을 송금하기 위해서는 세무서로부터 '자산증명확인서'를 받아야 했다. 즉 모든 세금을 다 지불한 순수자산임을 증명해서 확인서를 받은 후, 은행에 갖다주어야 돈을 송금할 수 있었다. 당시 분당에 살았으므로 성남세무서가 관할이었다. 아파트를 팔고 계약금을 받은 상태에서 이삿짐까지 부쳤다. 남은 것은 아파트와 자동차 뿐이었는데, 자동차는 누구에게 주기로 했으니 이제 남은 일은 잔금 받고 아파트 키를 넘긴 후, 다음 날 은행에서 송금을 하고 비행기를 타면 그만이었다.


성남세무서를 찾아가자 문제가 발생했다. 잔금을 받은 다음에 오라는 것이었다. 계약서만으로는 확인서를 해줄 수 없다는 게 그 이유다. 비행기 스케쥴을 이야기하며 사정했으나 담당자는 막무가내였다. 그러면서도 마지막에 여운을 남기는 것을 잊지 않았다. 뇌물을 달라는 것이었다. 사업부장을 하면서 터득한 눈치로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바로 알아채렸다.


모회사에 시스템을 납품하는 자회사 사업부장으로 가장 까다로운 부서가 원가를 조사하는 부서였다. 예산을 가진 발주부서가 공사금액을 산정해서 설계서를 작성했어도, 계약하기 직전에 가격을 다시 한 번 깎는 것이 그들이 하는 일이었다. 육계장을 만들어 납품한다고 한다면, 쌀알이 몇 개, 고사리가 얼마, 소고기가 몇 그램, 고춧가루가 얼마나 들어갔는지 계산하는 식이었다. 요리사의 실력이나 맛은 자기들이 알 바 아니라는 투였다. 음식이 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펜대를 휘두르며 '갑'으로서 '을'에게 횡포를 일삼았다. 이들에게 뇌물을 주고, 일식집과 요정 그리고 룸살롱을 드나드는 이유다.


뇌물은 평상시에 전해야 효과가 난다. 내가 아쉬울 때 주는 것은 받는 사람도 부담이 갈 뿐만 아니라, 비용도 더 든다. '뇌물의 기술'이다. 평상시라고 해서 아무 때나 주는 것은 아니다. 모회사에 갈 때 마다 시간이 나면 들려서 차도 마시고 잡담도 하면서 시간을 때우곤 한다. 뇌물이 전해지는 가장 중요한 때는 승진시기다. 이 때가 되면 소위 승진대상이 되는 '요직'을 차지하고 있는 그들도 '총알'이 필요하다. 높은 분들에게 인사를 다녀야 하기 때문이다. 명절이나 그 부서의 체육회, 야유회도 놓쳐서는 안 되는 '시기'다.


지나다 들린 것 처럼, 실무 과장의 책상 옆에 앉아 노닥거리다가 들고 갔던 스포츠 신문을 슬그머니 놓고 나온다. 그리고 밖에서 전화를 한다. 헤헤헤, 과장님! 신문 속에 총알 좀 두고 나왔습니다. 승진하시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헤헤헤. 비굴한 웃음(?)을 흘리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신문 대신 시사 주간지가 이용될 때도 있다. 노련한 친구는 슬쩍 자리를 비켜주기도 한다. 화장실을 가거나 다른 부서에서 찾는다고 자리를 비켜주면, 준비해 간 봉투를 서랍 속에 슬그머니 넣고 나오기도 한다.


성남세무서는 그런 것이 통하지 않았다. 들고간 신문을 놓고 나오려고 하면, 아예 신문을 치우라고 했다. 다른 사람이 보면 의심한다는 거다. 내가 그동안 상대했던 곳이 아마추어라면 세무서는 역시 프로에 속했다. 그는 아무 것도 자신의 책상에 올려놓지 못하게 했다. 준비해간 봉투를 전해주지 못하고 나오다가, 1층 로비에서 숙직을 하는 사람의 명패에 그 담당자의 이름이 있는 것을 보았다. 즉시 전화를 했다. 숙직할 때 찾아가겠다고. 그는 무언으로 승락을 했다. 속으로 '개XX'하며 삼십만 원을 넣었던 봉투에서 이십만 원을 빼냈다.


확인서는 그 다음날 받았고, 모든 숙제를 끝낸 기분으로 자동차를 넘기기 전에 전국을 일주했다. 그렇게 아이들에게 마지막으로 떠나는 한국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후기>

부정부패는 나라를 망하게 하는 첩경입니다. 그리스가 저렇게 된 것도, 조중동이 전하는 '과도한 복지'가 아니라 부정부패가 원인이 되었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예를 들어, 그리스 어떤 섬에 시각장애인으로 등록되어 장애인 수당을 받는 사람들이 400명이 넘는데, 이들 중의 3분의 2가 정상인이라고 합니다. 담당 공무원들이 뇌물을 받고 적당히 처리한 탓입니다. (SBS 스페셜, 10월 28일 방영 '위기의 남유럽' 참조)


20여년 가까이 지난 지금은 그 '뇌물의 기술'도 엄청 발달한 모양입니다. 이번에 문제가 된 부장검사는 차명계좌를 이용했답니다. 차명계좌로 송금한 것을 찾는 모습이 은행 CCTV에 찍혔다는군요. 검사라는 자식 치고는 너무 허술하게 돈을 받은 거지요. 노숙인이라도 매수해서 시켰으면 감쪽같았을 텐데.


저는 이 나라에서 행해지고 있는 부정부패가 너무 싫어서 고국을 떠나 이민을 택했는데, 떠나는 순간까지도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고 공범이 되고 말았던 거지요. 제가 경험한 미국도 그랬지만, 미국세관에서 일을 하신 아톰님 이야기를 들으면 미국은 아직은 깨끗한 나랍니다. 윗물은 몰라도 아랫물은 아주 깨끗하다고 합니다. 적어도 한국에 비해서는.


이글을 쓰다보니, 성남세무서의 음침했던 숙직실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담배연기가 자욱했던 곳, 난로 주변에 모여 잡담을 하던 군상들, 한쪽에서는 고스톱을 치고, 담당자는 사람 많은 곳에 이렇게 나타나면 어떻게 하냐며 나를 쫓아내고 따라 나오더군요. 에고, 다 지나간 이야기를 뭐 하려고 끄집어 내고 있는지……


그 부장검사 놈 때문에 옛날 일이 생각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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