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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나은 세상을 위하여

풍요 속의 불행, 빈곤 속의 행복

이민자라면 누구나 들어본 말이, '재미있는 지옥, 재미없는 천국'이다. 지독한 반어법(反語法)이지만, 그 말에 공감했었다. 이런한 반어법에 '불편한 진실(Inconvenient Truth)'이라는 다큐멘터리가 있다. 클린턴 대통령 시절 부통령이었던 엘 고어의 강연을 위주로 만든 영화다.


많은 부분 공감이 가기도 하는 그 말을 빗댄다면, 이민자들은 재미없는 천국을 찾아 재미있는 한국을 떠난 사람들이다.


그들이 찾는 '천국(天國)'은 어떤 곳이었으며, 이민자들은 과연 천국을 찾았을까?


- 청룡부대로 월남전에 참전해서, 보급품을 담당했었는데 미군의 엄청난 규모의 물자에 놀랐어요. 청구서만 주면 달라는 대로 물건을 내주는 거예요. 그걸 보고 결심했어요. 어떻게 하든지 미국에 가서 살겠다고.


2년 전, 시애틀에서 방문했던 L선생의 이야기다. 그 분이 본 천국은 '풍요'이었다. 1960년대나 70년대, 혹은 80년대까지 이민자들이 본 천국은 물질이 풍요로운 세상이었다. L선생은 풍요로운 세상을 좇아, 한번도 가본 적이 없는 미국행 비행기에 주저없이 몸을 실었다. 명분은 유학이었지만, 공부할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 그리고 실패를 경험하기도 했지만, 궁극에는 목적을 이루어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다.


- 선배, 아무 희망이 없는 한국에서 고달프게 살 바에는 이민 가는 게 낫지 않을까? 웃사람들 눈치나 보느라고 제 시간에 퇴근도 못하고, 부서간 이권다툼에 끼어서 말도 안 되는 일이나 하고 말야, 출퇴근 시간 교통지옥에, 공해에 시달리며 사느니, 차라리 이민가서 가족들하고 시간 보내며 오붓하게 사는 게 행복하지 않을까?


25년쯤 전에, 점심시간에 회사의 정원을 거닐며 동료이자 후배와 나눴던 대화다. 대학 3년 후배이었던 ㄱ과장은, 당시 붐을 이뤘던 뉴질랜드 이민을 내게 소개하며 동의를 구하곤 했다. 구시대적인 발상으로 직급이나 나이같은 권위만 내세워 '까라면 까'라는 식으로 일을 지시하던 선배들 틈에서 우리 신세대(?)들의 합리적 사고는 발을 붙일 수가 없었다.


1980년대 말이나, 90년대 IMF 이전까지의 이민은 '풍요'보다는, 공해없는 환경이나 교통지옥이 없는 세상으로 '보다 나은 삶'을 찾아 떠났다. 가진 것도 없이 몸뚱아리만 갖고 떠난 6~70년대의 이민자들과는 달리, 출장으로 해외로 나가볼 수 있는 괜찮은 직업도 갖고 있어서 미국이 어떤 나라인지 알고 있었고, 재산도 어느 정도 가지고 있었기에 물질적인 풍요보다는 자연환경과 같은 정신적인 풍요에 더 가치를 두었다.


배경과 목적이 달랐을지는 모르지만, 한 가지만은 같았다. 처한 현실에 만족하지 못했기에, 변화를 구한 것이었다. 'Better Life'를 찾아서.


학교에 다녔던 6~70년대로 돌아가 본다. 당시 신문의 해외토픽에는 미국이나 유럽의 소위 선진국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실렸는데, '이혼'이나 '자살'같은 '이해할 수 없는 사건'들이 자주 오르내렸다. 결혼과 이혼을 밥 먹듯이 하는 할리우드 배우들을 '금수만도 못한 것들'로 치부했고, 먹을 것이 부족하지도 않은 잘 사는 나라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행위에는 어처구니가 없어 할 말을 잃었다.


우리는 그만큼 행복한 세상에 있었다. 이혼이나 자살 같은 단어는 사전에만 있는 줄 알았고, 외국의 문제로만 여겼었다. 부족한 것은 물질 뿐이었기에,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큰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세상에서 가장 크고 중요한 문제로만 생각했다.


거지가 문밖에서 각설이 타령을 부르면 기꺼이 밥그릇을 들고 나가서 덜어주었고, 옆집에서 쌀이 떨어져 쌀을 꾸러 오면 주저없이 쌀독을 열어주었다. 집에는 항상 엄마가 있었고, 엄마는 자식들을 위해서 항상 먹을 것을 준비해 두었다. 쌀이 없으면, 감자나 고구마라도. 그것마저 없으면 밀기울로 빵을 만들기도 했고, 쑥으로 빚은 개떡을 만들어주기도 했다. 시커먼 빵이든 꺼칠한 개떡이든 배만 부르면 자식은 만족했고, 자식이 먹는 걸 보는 엄마도 행복했다. 다만, 더 좋은 음식을 해주지 못하는 게 걸렸을 뿐.


세월이 흘러 세상이 변했다는 표현은 차라리 너무 진부하다. 농경사회 3천년, 산업사회 2백년을 합친 3천 2백년 보다도 최근 60년의 변화가 더 크다고 학자들은 말한다. 게다가, 한국은 선진국이 300년에 걸쳐 이룩한 산업화와 현대화를 그 60년 만에 달성한 세계에서 하나 밖에 없는 나라가 되었다. - 1980년대에 산업화를 시작한 중국이 한국의 기록을 깨트릴 지도 모르지만.


거지는 없어졌지만, 폐지를 주으러 다니는 노인들이 생겼고, 쌀을 꾸러오는 이웃은 없지만, 이웃에 누가 사는지 모르는 세상이 되었다. 저녁이 되어야 나타나는 일하는 엄마는 집에 없는 사람이 되었고, 엄마가 만들어주는 먹을 것은 가게에서 사먹는 빵이나 과자로 바뀌었다. 학교가 끝나면 집에 가서 동네 아이들과 뛰어노는 대신, 학원으로 가서 'Cat', 'Horse', 'Cow', 'Giraffe' 같은 단어를 외우거나, 피아노를 배우고 태권도를 익힌다.


그리고 엄마와 아빠는 이혼을 하고, 아이들은 자살을 한다. 이혼율 1위, 청소년 자살률 1위로, 베트남이나 라오스 같은 나라의 신문 해외토픽에 오르내리기는 하지만, 그들이 부러워하는 잘 사는 나라가 되었다.


풍요로운 세상을 더 즐기기 위해서는 더 많은 돈이 필요하다. 차 한 대보다는 두 대가 훨씬 편하다. 아빠만 벌어야 하는 게 아니라, 엄마도 벌어야 풍요를 더 누릴 수 있다. 그렇게 벌어서 사먹으면 되고, 학원에 보내면 된다. 판사는 검사나 변호사와 결혼하고, 선생은 동료선생을 만나 결혼한다. 세대간 계층간 소통과 교류는 단절되고, '끼리끼리' 문화가 지배하는 탓이다.


아빠만 일하던 빈곤의 시절에는 두 가정이 풍요롭게 살았지만, 풍요의 시대에는 두 개의 직업으로 한 가정이 더 풍요로워진다. 대신 다른 가정은 더 피폐해진다. 좋은 직업은 한쪽으로 몰리고, 비정규직, 임시직, 일용직 역시 한쪽으로 쏠린다. '부익부, 빈익빈'은 더욱 심해진다. 피해갈 수 없는 어쩔 수 없는 현상이요, 자본주의와 지식산업화의 피할 수 없는 속성이다.


해결책은 복지 뿐이다. 정부가 풍요를 누리는 사람들에게서 더 많은 세금을 걷어야 하는 이유다.


내 어릴 때, 노인들은 존재 자체로만으로도 존경받았다. 농경사회이었던 탓이다. 언제 파종하고, 언제 김을 매고, 어떻게 거름을 주어야 효과적인지 경험 많은 노인들은 모르는 게 없었다. 배탈이 나면 무얼 먹어야 낫는지도 노인은 알았고, 집안에 어려움이 생겨도 어른들에게서 지혜를 구했다.


요즘 노인들은 아는 게 없다. 스마트 폰은커녕 컴퓨터 사용법도 몇 번이고 알려주었는데도 또 모른다. 초등학교 손주의 눈에 할아버지는 무식한 존재일 뿐이다. 손주 녀석들이 보고픈 제주의 할머니들은 녀석들에게 줄 용돈을 마련하기 위해, 아흔이 다 된 나이에도 밭에 나가 열심히 일한다. 찡그리지 않은 녀석들의 환한 얼굴을 볼 수 있는 것은 용돈을 쥐어줄 때 밖에 없다. 아이들은 예전에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물어야 했던 궁금한 것들을 '구글'이나 '다음'에서 얻는다.


한국에서 65세 이상 노인의 40%가 빈곤 상태에 있다고 한다. 최근 10년 사이에 노인 자살률이 세배 늘었다는 통계도 있다. 한국은 경제적으로 궁핍한 노인이 살 곳이 못 된다.


해결책은 복지 뿐이다. '성장'만이 지상과제인양 추구한 정부의 책임이 가장 크기 때문이다. 그런 정부의 혜택을 가장 크게 입은 사람들이 그로 인해 나락으로 추락한 사람들을 보살피는 것은 당연한 의무이며,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다.


빈곤 속의 행복은 개인의 몫이지만, 풍요 속에 불행한 사람들을 돌보는 것은 국가의 책무이기 때문이다.


<후기>

'Better Life'를 찾아서 떠난 이민에서 우리가 찾았던 것은 과연 무엇이었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제 대답은, 당시에는 무조건 한국이 싫었다는 것입니다. 만연한 부패와 부정은 기대했던 YS의 문민정부에서도 별로 달라진 것이 없이 더 심해져만 갔고, 참담한 마음 뿐이었습니다.


'강 건너 불 구경하듯' 한국에서 터진 'IMF' 사태를 보며, '거 보라는 듯' 내 탁월한 선택(?)에 흐믓해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곳에 다시 돌아온 지금은 편안함을 느낍니다. 못 났어도 부인할 수 없는 내 부모 처럼, 지랄 같아도 내 고국이요 내가 태어난 땅이기 때문이겠지요.


묻고 싶습니다. Better Life를 위해 떠난 이민에서 얻고 싶었던 것을 다 가지셨나요? 삶(Life)를 더 좋게(Better) 해주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물질적인 풍요일까요? 아니면 정신적인 행복일까요?


저처럼 실패한 사람도 많고, 크게 성공한 분들도 있습니다만, 교민들의 도움 없이 자신의 힘만으로 성공했을까요? 아니라고 봅니다. 그런 분들이 나서지 않는다면, 뉴욕 플러싱의 '맥 카페 할아버지' 사태는 언제든 다시 발생할 것입니다. 성공해서 그렇게 많이 가진 분들이, 어렵게 노후를 보내는 교민들을 위한 시설을 마련한다면, 세상은 더 없이 행복한 세상이 될 겁니다.


하하, 저도 성공한 교민이었다면, 저 혼자 잘 나서 그렇게 된 줄 알겠지만요.


여기 국가별 행복지수가 있습니다만, 물질과 행복은 관계가 없어보입니다. 참고하시기를......

(에고, 쓰다보니 글이 길어졌네요. 글이 길면 읽기 거북한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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