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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나은 세상을 위하여

이민자가 보는 한국의 총선

정치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던 사람이 은퇴하고 한국에 돌아와 살면서 5년을 살면서, 투표권도 없는 사람이지만 흥미를 갖게 되었다. 세상풍파를 겪고 연륜이 쌓인 탓인지는 몰라도 정치라는 것이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삶을 지배하고 결정한다는 점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정치에 무관심했던 지난 날에 부끄러움을 느낀다.


2012년 총선에서 MB가 나라를 거의 절단내다 시피해서 다수당이 될 것으로 생각했던 통합민주당은 야권연대에도 불구하고 여당에게 다수당을 내주는 것도 보았고, 그해 말에는 국가정보기관이 대선에 조직적으로 개입하여 민주국가라면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며 박근혜 후보가 당선되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 뿐인가. 경찰총수가 여권 후보에게 유리한 내용을 수사결과라며 밤 11시에 발표하고, 나중에는 정보기관 만이 아니라 군까지 동원된 사실이 드러났는데도, 어물쩡 넘어가기도 했다.


그리고 4년이 지난 다음 달 중순 총선을 앞두고 계파간 이해에 따른 이합집산과 분열을 보고 있다. 일견 복잡해 보이기도 하지만, 따지고 보면 유치할 만큼 단순한 이해관계로 얽혀있다는 것도 흥미있다. 제1야당 대표라는 사람을 나무 위에 올려놓고 여러 사람이 흔들어대며 내려오지도 못하게 한다. '증세 없는 복지는 없다'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말을 한 사람을, 부자들을 위하는 당의 정책에 반한다고 묵사발을 만들기도 하는 것도 기막히지만, 그런 것에 별 반응하지 않는 대중도 참 신기하다.


우리가 2~30대 젊었을 때는 무조건 야당을 지지했었다. 특히 제3공화국의 공화당과 제5공화국의 민자당은 우리 젊은이들에게는 타도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30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50대, 60대가 되자 내 친구들은 공화당과 민자당의 후계자인 새누리당의 지지자가 되어 있었다.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렇게도 혐오했던 군사정권의 암울했던 시대를 거쳐온 사람들이, 어떻게 정경유착으로 재벌과 기득권을 대변하는 정당을 지지할 수 있는지. 그들은 과거를 잊었단 말인가.


부모가 총에 맞아 사망한 것은 인간적인 연민을 갖게 한다. 그러나 그것이 대통령이 되는 이유가 될 수는 없다. 불쌍하다는 것과 대통령이 된다는 것은 아무 관련이 없다. 독재는 어떤 이유로도 미화될 수 없는 것이 민주주의다.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죄 없는 사람을 고문하고 누명을 씌우고 사형장으로 보낸 것은 후손을 위해서라도 역사의 심판을 받아 마땅하고 용서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만이 그런 치욕적인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방지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비록 어리더라도 안철수라는 사람을 한때 존경했었다. 개인용 컴퓨터가 보급되기 시작하던 80년대 후반, 'V3'라는 백신을 만들어 무상으로 배포했던 사람이다. 그는 서울대 의대생이었다. 사람을 고치는 의술을 배우는 학생이 컴퓨터의 병까지 치료하겠다는 발상이 얼마나 신선한가. 그가 박원순 씨에게 서울시장 선거를 양보할 때만 해도, 조국의 미래를 책임질 차세대 지도자로 손색이 없어 보였다.


그랬던 그가 2012년 대선후보로 나서면서 달라졌다.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보여준 그의 행보는 치졸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더니 이번 총선을 앞두고 그의 행동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들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아무 것도 보려하지 않고, 아무 것도 듣지 않으려는 태도로 일관하며 자신의 억지만 고집하고 있다. 세상에 '꼴통'도 그런 고집불통 외곬수는 없다. 금태섭 같은 좋은 사람들이 하나 둘 그의 곁을 떠나는데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최소 내가 알던 안철수는 아니다.


김종인이라는 분이 야당의 총선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분열로만 치닫던 야권을 추스리고 한목소리를 내게하는 모습이 그럴 듯했지만, 막바지에 이르러 공천에 혼선을 초래하고 있다. 당선이 확실시되는 인사들을 뚜렷한 명분 없이 공천에서 배제하고 있다. 그러지 않아도 야성(野性)이 부족해서 문제인 야당에서 그나마 야성이 있는 사람들을 탈락시켜 야당의 색을 탈색시키고 있다.


여당인 새누리당에서도 내분이 심화되고 있다. 그나마 몇몇 있는 괜찮은 사람들을 철저히 왕따시키고 있다. 유승민의 지역구를 마지막까지 발표하지 않고 있는 것은 뻔하다. 선거승리를 위해서는 공천을 주어야하지만, 권력자의 눈치를 보는 것에 급급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권력의 심기를 건들이지 않는 것이다. 공화당과 민자당에서 그랬듯이 무조건적인 아부와 맹종이 그들이 가진 최고의 무기다. '대통령님, 저 여기 있어요!'라고 말한 어떤 국회의원이 이를 증명한다. 서울대 경제과를 나온 수재로 미국에 유학 가서 박사학위까지 있는 사람이니 바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배우지 못했어도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이번 총선은 보나마나 결과가 뻔하다. 야권의 분열로 새누리당은 어부지리를 얻어 더 많은 의석을 확보할 것이고, 그들은 기득권을 보호하는데 앞장설 것이고, 한국사회의 양극화는 더욱 더 심해질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것도 나쁘지는 않다. 4년 뒤에 더 살기 힘들어진 대중들을 각성시키는 계기가 될 테니까.


▼ 자유당, 공화당, 민자당, 민정당, 신한국당, 새누리당은 이름만 바뀌었을 뿐, 한국의 재벌과 기득권층만을 대변하는 정당이다. 아부도 이 정도면 예술(?)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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