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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나은 세상을 위하여

정운호 사건으로 본 인간의 탐욕

내게 한국에 사는 재미 중 하나는 뭐니뭐니해도 나날이 접하는 새로운 뉴스들이다. 미국에서는 아무리 청력을 동원해도 CNN이나 TV에서 전하는 뉴스를 이해하기 힘들었다. 뉴스위크 같은 잡지나 로컬 신문을 정기 구독하면서 애를 써보기도 했지만 읽는데 시간이 너무 걸리고 정독하기가 힘들어 오래 지속되지는 않았다. 한국으로 돌아와 은퇴자로 남는 시간에 뉴스를 보고 들으면서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깨닫고, 그 배경을 보면서 인간의 욕심이 어떻게 움직이고 얼마나 치졸하고 비열한지 관찰하는 것도 역이민 해서 한국에 사는 재미다.


법조계 게이트로 번지고 있는 ‘네이처 리퍼블릭’의 사주(社主) 정운호 사건도 그런 뉴스다. 한국의 부패가 얼마나 심각한지, 사회 지도층이 얼마나 위선적인지, 기득권을 보호하기 위한 그들만의 세상이 여실히 들여다보인다. 먼저 이 사건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건의 핵심 ‘정운호’라는 인물에 대해 알아 볼 필요가 있다.


호남의 가난한 농촌출신으로 중졸이 학력의 전부인 그는 – 성공한 후에 ‘와튼스쿨’이 한국의 부유층을 위해 개설한 6개월 과정의 MBA를 수료한 경력이 있으나 – 20대 초반에 남대문시장에서 과일과 의류를 취급하는 리어카 행상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출처:위키백과) 그는 사람을 끄는 특별한 재주가 있어서 그의 노점 주변에는 항상 손님들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명동의 어느 빌딩 앞에서 바나나 노점상을 하는 그에게 건물주가 화장품을 팔아보라고 했다는 것이, 그가 화장품에 눈을 뜨는 계기가 되었다고 ‘jtbc 썰전’에서 전원책 변호사는 전한다.


저가 화장품 브랜드 ‘더페이스샵’을 창업한 그는 몇 년 후 ‘LG생활건강’에 회사를 넘기면서 2천억에 이르는 시세차익을 남겨 거부의 대열에 오른 후에는, (‘Land of Opportunity’라는 말은 미국이 아니라 한국이 더 어울릴 것 같다) 2010년 다시 창업한 화장품 회사, ‘네이처리퍼블릭’이 화장품 업계 5위에 오르면서, 개인재산만 5천억에 이르는 성공한 사업가가 된다. 전남 함평의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자신의 능력으로 거부(巨富)가 되었으면 모든 ‘흙수저’들의 귀감이 되어야 마땅한 일이다.


한국 같은 학벌 위주의 사회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처럼 학력이라는 커다란 장애물을 거둬낸 정운호 같은 인물이 자주 나타난다는 것은 신선한 감동이다. 요즘 유행하는 표현으로 ‘사이다 맛’이다. 그런 인물이 많아져서 학벌 중심의 문화가 사라졌으면 하는 개인적인 소망에도 부합된다. 중졸 학력의 그가 한국에서 최고 대학을 나온 수재들이 모인 법조계를 온통 벌집처럼 들쑤시는 중심에 있다는 것은 정말 아이러니다. 게다가 서울 법대를 나온 성공한 여자를 폭행까지 했다. 어떻게 그런 일이 벌어졌을까.


마카오에 놀러갔던 것이 시작이었다. 도박에 빠져 돈을 잃는 사람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첫날 그는 바카라 게임에서 십만 불을 땄다고 한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별 수고 없이 쉽게 벌리는 돈의 유혹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일까. 출입이 잦아질수록 그가 잃는 돈은 처음 딴 돈의 수십 배를 넘어 수백 배에 이르게 되었다. 마카오에 온다는 소식만 있으면 카지노에서는 헬리콥터를 공항에 보내 그를 영접했다고 한다.


그가 처음 수사대상이 되었을 때는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난다. 물론 그것은 ‘홍만표’라는 거물급 전관을 변호사로 썼기 때문에 가능했다. 누가 봐도 돈과 권력의 결탁이었다. 그런데 그에게 재수가 없었던 것인지, 아니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국운이 아직은 괜찮았던 것인지는 몰라도 엉뚱한 사건이 터지는 바람에 불똥이 그에게 튀어 다시 번진다. 카지노에 연루된 조직 폭력배를 조사하던 중에 ‘정운호’라는 이름이 다시 등장한 것이다. ‘불충분했던 증거’가 순간 충분해지고 말았다.


작년에도 삼성은 페넌트 레이스에서 우승했다. 5년 연속이었다. 4년 연속 한국시리즈 우승을 5년으로 늘리는 것도 당연해보였다. 정규 시즌이 끝나고 포스트 시즌 중에, 정운호를 조사하던 검찰에 삼성 라이온즈의 핵심 선수들의 도박 사실이 알려지게 된다. 삼성의 핵심 투수인, 윤성환, 안지만, 임창용이 연루된 것이다. 여론을 의식한 삼성구단은 이들을 코리안 시리즈에 제외시키고, 결국 삼성은 두산에게 패하고 만다. 정운호라는 인물이 초래한 부작용이 삼성에 나타났다.


마침내 구속된 정운호는 1년의 실형을 받는다. 홍만표의 힘도 미치지 않았을 만큼 증거가 충분했는지, 아니면 전관의 유효기간이 지났는지는 알 수 없다. 이때 ‘최유정’이라는 또 다른 전관이 등장한다. 잘 나가는 부장판사 출신으로 특히 ‘항소심’에서 특별한(?) 능력을 발휘한다고 소문이 자자한 여성 변호사다. 전북 전주의 넉넉하지 못한 집안 출신인 최유정은 여고시절부터 소문난 수재로 서울 법대를 거쳐 판사가 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특히 문예대상을 받은 적도 있을 정도로 문학적 재능이 뛰어나며, 판결문을 잘 쓰는 진보적 성향의 판사로서 후배 판사들에게 존경을 받았다고 한다.


50억이라는 거액의 수임료를 주고도 풀려나지 못하게 된 의뢰인 정운호와 돈에 집착을 보인 변호사 최유정 사이에 벌어진 치졸한 싸움에서 비롯된 간단한 사건이 암시하는 한국사회의 모습은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았다. 전임 대통령들에 대한 수사를 담당할 정도로 검찰에서 촉망 받았던 검사와 똑똑하고 정의롭다고 소문났던 판사가 정운호라는 한갓 장사치가 만든 ‘돈의 수렁’에 빠져서, 법은커녕 최소한의 양심이나 도덕도 내던진 채 허우적대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곧 한국의 현재 모습이기도 하다.


미국에는 이런 일이 없을까? 내가 살았던 미국을 생각해보았다. 이민해서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미국에서는 ‘O.J Simpson’ 사건으로 온 나라가 들썩였다. 누가 봐도 마누라를 살해한 것으로 보이는 심슨은 돈으로 무죄를 샀다. ‘유전무죄’라는 측면에서 별로 다를 것도 없어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차이도 분명 존재한다. 미국에서는 ‘실력’을 산 것이지, ‘전관’을 산 것은 아니다. 또한 한국처럼 탈세할 수 있도록 수임료가 암암리에 거래되지도 않는다. 심슨 사건이 한국에서 일어났다면 어떻게 될까? 라는 가정도 재미있다. 개인적인 소견으로는 미국처럼 무죄는 어려울 것 같다. 여론몰이를 하면 되니까.


돈이면 다 되는 사회가 바람직한 사회는 분명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바람직한 사회란 어떤 것일까? 정의로운 사회,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한 사회, 정직하고 투명한 사회, 나이, 학력, 성별, 피부색, 사적인 취향이나 가진 것에 의해 차별 받지 않는 사회, 오로지 능력에 따라 대우받는 사회, 능력이 공정하게 평가되는 사회, 약자를 배려하고 보호하는 사회, 그런 사회가 아닐까. 그러나 오로지 ‘황금만능주의’가 지배한다면 그런 사회는 요원하다. 과거에 비하면 이렇게 살기 좋아진 한국에서, 젊은 사람들이 ‘헬조선’, 청년실업, 이태백(이십대 태반이 백수), ‘N포 세대’라고 자학하는 것도 원인은 돈에 의해 지배되는 사회 때문이고, 공정하지 않은 사회에 대한 푸념이요, 한탄일 것이다.


모든 사회적 갈등을 경제적인 문제로 해석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 의문이다. 오히려 정의로운 사회, 공정한 사회로의 변화에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


이 사건이 빌미가 되어 보다 정의로운 사회가 되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해 본다.


<후기>

돈이면 다 되는 한국사회에서 부러울 것이 없어 보이는 정운호는 왜 바보 같은 짓을 했을까? 라는 질문이 사고(思考)의 출발이었습니다. 자신이 원하기만 하면 의·식·주는 물론, 식욕·성욕·명예욕 같은 인간의 모든 본능을 다 충족할 수 있었을 텐데, 부족한 무엇이 있었다는 증거입니다.


‘과유불급’이었을 겁니다. 넘친다는 것은 부족함만 못했을지 모릅니다. 그래서 만족을 못하고 한 판에 수십만 불이 오가는 짜릿한 스릴을 잊지 못했을 겁니다. 마약이나 알코올, 도박에 중독되면 점점 강한 것을 찾게 되고 횟수를 늘리듯이, 쾌락에서 즐거움을 찾는 사람도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타이거 우즈의 바람기, 마이클 잭슨의 죽음도 그렇게 이해하면 쉽습니다. 특히 마이클 잭슨은 집에서 아동 포르노와 같은 중죄에 해당하는 음란물이 발견되었다는 기사를 오늘 보았습니다.


평범한 사람은 능력이 안 되니까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고 포기하지만, 가진 사람들은 그런 제어가 안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자들을 탓하기 전에 스스로를 돌아봅니다. 나도 얼마든지 정운호 같을 수 있는 인간인데, 능력이 없어서 그러지 못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래도 그렇게 한 번 돼보고 싶다고요? 하하하, 어떻게 저와 생각이 그렇게 똑같습니까?


- 2016년 6월 23일 제주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