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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사는 이야기

서울 시티 투어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과 그 부근에서만 40년을 살았기에, 그래서 서울을 잘 안다고 생각했기에 서울을 돌아보겠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러다가 서울을 관광하자는 생각을 했던 것은 작년 동남아를 여행할 때였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했던가? 베트남의 하노이, 라오스의 비엔티엔, 태국의 방콕, 말레이시아의 쿠알라룸푸르를 여행하던 중, 내가 과연 서울을 돌아본 적이 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창경원이나 경복궁, 비원은 초등학교 소풍이나 중학교 사생대회 때 가본 것이 전부였다. 남의 나라는 기꺼이 돌아다니면서 정작 내 나라에는 무심했다는 자각이 뒤늦게 생겼다.


지리산을 걷고 여수를 거쳐 서울로 돌아온 다음날 서울 거리에 나선 것은 그런 생각 탓이었다. 인터넷으로 조사하니 ‘서울시티투어’가 검색되었다. 1코스와 2코스가 있었는데 내가 선택한 것은 1코스였다. 요금은 ₩12,000으로 하루 종일 이용할 수 있다는데, 광화문 지하철 역 6번 출구에서 출발한다고  했다. 광화문으로 갔지만 실제 출발장소와 매표소는 덕수궁 부근으로 시청이 더 가까웠다. 투어버스를 이용하는 요령은 방문하고자 하는 장소에 내려 관람한 뒤에 하차한 정류장에서 다시 버스를 타는 것이다. 버스는 매 30분마다 있으니까 내린 시간을 기억했다가, 시간을 계산해서 정류장에서 다음 버스를 타면 된다.


이용권을 사면 매표원이 승차권에 굵은 매직펜으로 '4월 8일'이라고 날짜를 적어주는데, 이것을 간직했다가 버스에 오를 때마다 기사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코스는 [출발]덕수궁 – 남대문시장 – 서울역 – 전쟁기념관(USO) - 용산역 – 국립중앙박물관 – 이태원 – 명동 - 남산골 한옥마을 – 엠버서더호텔 - 신라호텔, 장충단공원 – N서울타워 – 하얏트호텔 – 동대문디자인플라자 – 대학로 – 창경궁 – 창덕궁 – 인사동 – 청와대앞 - 경복궁, 국립민속박물관, 국립현대미술관(서울관) - 세종문화회관 - [도착]광화문이었다.(서울시티투어버스 1코스)


제일 처음 내린 곳은 삼각지 부근의 전쟁기념관이었다. 하노이에서 갔던 전쟁기념관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규모가 있고 전시도 뛰어났다. 하긴 대한민국을 베트남과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다. 천천히 돌아보다간 반나절은 족히 걸리겠다는 생각이 들어 주마간산 격으로 대충 보고는 한 시간 후에 오는 버스에 탔다. 다음 내린 곳은 용산 가족공원 겸 국립중앙박물관이었다. 전쟁기념관 보다 더 웅장하고 전시물도 훌륭했다. 플래시만 터뜨리지 않으면 사진도 얼마든지 찍을 수 있었고, 미국이나 유럽에서 보았던 박물관 보다 더 뛰어나다는 느낌을 받았다. 태국 방콕의 왕궁을 방문했을 때, 어느 작은 박물관에서 경비원에게 혼났던 기억이 났다. 입구에서 '사진촬영금지'라는 표시판 본 것을 깜빡 잊고 별 것도 아닌 사진을 찍었다가 망신을 당했었다. 너무 덥고 지친 상태라 제대로 대꾸도 못했다. 이곳도 오래 머물 수는 없어서 건성으로 관람할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피곤이 엄습했다. 다리가 천근처럼 무거워지며 몸은 물먹은 솜처럼 느껴졌다. 15일간의 쉼 없는 여행의 뒤끝인가, 아니면 긴장이 풀린 탓인가, 따사로운 봄 햇살에 몸살기운이 찾아온 듯했다. 그래도 고궁 한 곳이라도 들리고 싶었다. 창경원에서 내렸다. 어렸을 때 엄마 손을 잡고 소풍을 왔던 기억이 아슴푸레했다. 동생을 잃어버렸던 기억도 났다. 미아보호소에서 울고 있던 동생 모습도 생각났다.


그때는 동물원이었다. 1960년대 초였을 거다. 그때도 지금처럼 벚꽃이 활짝 피어있었다. 사람이 무척 많았었다. 이곳 어디에서 사람들 틈을 비집고 보자기를 펴고 앉아 김밥을 먹었을 것이고, 칠성사이다를 마시고 사과를 베어 물었을 것이고, 사탕과 양갱이를 벗기며 행복해 했을 것이다. 엄마는 아직 30대의 고운 모습이었을 것이다. 그때 보았던 사자와 호랑이와 코끼리는 모두 죽었을까? 나처럼 살아 있다면 어디에 있을까? 너희들은 절대로 나처럼 이곳에 돌아올 수는 없겠지.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으나 눈에는 눈물이 맺혔다. 


기린이나 하마 대신 한복을 예쁘게 차려입고 사진을 찍는 젊음이 곳곳에 있었다. 그들의 행복한 표정을 슬그머니 과거의 내 행복에 비교하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이제 몸뚱이는 마치 매 맞은 것처럼 쑤셔왔지만, 그들의 행복을 기억 속에 간직하기 위해, 그리고 어린 시절의 행복을 반추하고 싶어서 마구 돌아다녔다. 돌계단도 오르고 연못 주위도 맴돌았다. 더 이상 가고픈 곳도 없었다.


이제 돌아가자! 내 자리로, 내가 있을 곳으로! 과거에서 현실로!


<후기>

투어버스에는 한국인도 적지 않았고 서양인이나 중국인도 꽤 보였습니다. 그러나 서울 지리를 잘 안다면 투어버스를 이용할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날은 몸살 기운 때문에 오후에는 무척 힘들었으나, 이틀을 푹 쉰 것으로 다행히 몸은 정상으로 회복되었습니다.


이번 여행에서 깨달은 것은 오만과 자책이었습니다. 자신이 태어난 조국은 우습게 알았던 것입니다. 그랬기에 고국은 제대로 돌아보지 않았으면서도 다른 나라는 부지런히 돌아다닌 것 아닐까요?


말도 편하고 음식도 잘 맞아서 가는 곳마다 불편함이 없는 나라조차 안 가본 곳이 이렇게 많다는 것을 이번에 깨달았으니 정말이지 멍청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것도 멀리 떨어져 있지도 않고 오밀조밀하게 가까이 있으니 구경하며 다니기에 얼마나 좋습니까? 작은 나라의 장점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하하.


▼ 오른쪽이 강재구 소령의 흉상이다. '짧고 굵게 살자'라는 좌우명을 갖고 살았다고 교과서에서 배웠다.


▼ 건물 내부의 중앙


▼ 거북선이 실제 크기로 전시되어 있다.


▼ 전시물 자체도 그럴 듯해서 손색이 없다. 영어, 중국어, 일본어로 해설을 들을 수도 있다.


▼ 한국전쟁에 참전한 우방국가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않는다는 전시물


▼ 우리 세대에겐 이런 모습이 낯설지 않다.


▼ 60년 전 이런 도움을 받았던 한국이 동남아의 가난한 나라를 돕는 것은 당연하다.


▼ 관람을 끝내고 밖으로 나오자 국방부와 육군본부 청사가 보였다. 1979년 10·26 사태의 한가운데 있던 건물이다. 김재규가 이곳으로 오지 않았다면 역사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겠지.


▼ 건물 입구 양쪽 회랑에는 한국전쟁에서 전사한 UN군 명단이 새겨져 있는 동판이 나열되어 있다.


▼ 국립중앙박물관 겸 용산 가족공원의 전경


▼ 내가 태어나 열살 무렵까지 자랐던 곳도 여기서 멀지 않다. 참 예쁘게도 잘도 꾸몄다.


▼ 맞은편에는 동부이촌동 아파트가 즐비하다.


▼ 동관과 서관으로 이루어진 웅대한 건물 사이로 남산이 보인다.

▼ 세계적 규모인 박물관의 웅대한 모습. 최근에 지어져서 그런지 내가 가본 어느 박물관 보다도 뛰어났다.


▼ 선사시대의 전시물부터


▼ 신라시대의 금관까지 전시물로 손색이 없다.


▼ 박물관 내부뿐만 아니라 바깥에도 소홀함이 보이지 않는다.


▼ 넓은 복도에는 '진흥왕순수비'와 '불국사 다보탑'의 모형이 전시되어 있다.


▼ 단체로 온 학생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과거 우리 시절에는 이런 훌륭한 박물관을 가진 외국만 부러워했다.


▼ 서관에는 거장들의 미술작품이 전시되고 있었으나 이곳까지 들릴 시간도 없었고, 더군다나 이즘에서 몸에 이상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 50년만에 들려본 창경원의 모습


▼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사진을 찍기에 바쁜 젊음이 만개한 벚꽃보다 싱그럽다.


▼ 고궁 곳곳에 피어있는 꽃들이 화사하다.


▼ 봄꽃보다 싱그러운 저 젊음이 마냥 부럽고, 보고만 있어도 행복해진다.


▼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 너무나 친숙한 광경이다.


▼ 주저앉고 싶을 만큼 피곤했지만 돌계단을 올랐다.


▼ 그리고 언덕 위에 서서 내려다 보았다. 


연못 주변도 거닐었다.


▼ 이렇게 친숙한 모습은 세계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다. 미국에서도 캐나다에서도 유럽에서도 동남아에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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