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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사는 이야기

금오도 - 술에 취하고, 정에 취하고

6시간만 자고나면 더 이상 잠이 오지 않는다. 새벽 4시에 눈이 떠졌으나 조금 더 자볼까 하는 생각에 누워있었지만 언감생심이었다. TV를 켜고 애꿎은 채널을 돌리다가 결국 일어났다. ‘경주애인’님과 약속한 6시 20분경에 모텔입구로 내려갔다. 차를 어떤 차가 막고 있었다. 이렇게 남의 차를 가로막고 주차한 사람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 차 앞에 적힌 연락처를 보고 전화해서 차를 빼달라고 요구했다.


백야도에 도착한 것은 7시로 금오도행 첫 배는 7시 30분이어서 충분한 시간이 남아 있었다. 잠시 후 ‘감사함’님과 ‘자수정’님 부부가 도착했다. ‘감사함’님은 7명의 아침으로 팬케이크, 삶은 계란, 우유, 커피까지 준비해 오셨다. 그 치밀하고 섬세한 정성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저녁에 비가 예보되어 있어서 날은 흐렸으나, 선선한 날씨가 나들이에는 적당했다.


약 40분의 항해 끝에 금오도의 함구미 항에 도착하니 ‘금오도’님 부부가 나와 있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오늘 일정에 대해 언급을 하고는 바로 배에 싣고 온 ‘경주애인’님 차와 ‘금오도’님 차에 나눠 타고 섬의 구석구석을 자동차로 돌았다. 섬 일주관광인 셈이다. 가는 도중 금오도에 대한 설명과 질문이 이어졌다. 


- 우리나라의 섬으로서는 21번째 큰 섬입니다. 정확한 통계는 아니지만 3~4천 명 정도가 삽니다. 택시가 두 대, 마을버스가 세 대 있고, 여수항이나 백야도 등 육지로 나가는 배가 자주 있어서 육지로 나가는 데 불편은 못 느낍니다.


설명 끝에 ‘금오도’님이 덧붙였다.


- 이미 글로 만나서 그런지 처음 보는 사람 같지 않고,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사람처럼 친근감이 듭니다.


언덕 위의 집으로 올라가는 길에 눈이 안 보이는 분을 만났는데 차 소리만 가지고도 누구의 차인지 안다며 인사를 건넸다. 아는 체하지 않고 그냥 가면 서운해 한다는 것이다. 이번에는 차가 오는지도 모르고 길에서 밭일을 하는, 듣지 못하는 아주머니를 만났다. ‘금오도’님은 차를 세우고 내려서 아주머니에게 인사한 후에야 차를 몰았다.


‘금오도’님은 처음 와서 빈집이었던 집에 살며 뜯어고치느라 고생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집 주변의 밭이 꽤 넓었다. 이 정도만 농사를 짓더라도 꽤 많은 수고가 필요할 것이다. 여자 분들은 나물하러 가고 남자들은 ‘비렁길’ 트래킹을 나섰다. ‘비렁’은 ‘벼랑’의 전라도 사투리다. 4코스라는 비렁길은 참 예뻤다. 절벽 밑으로 보이는 경치가 일품이었으며, 바다는 제주보다 훨씬 깨끗해 보였다.


바닷가로 내려와서 막걸리로 목을 축이자는 제안에 흔쾌히 가게 앞에 자리를 잡았다. 안주로 나온 해삼이 맛있어서였을까? 아니면 ‘금오도’에서 만든 막걸리 맛 때문이었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이민자로서의 정 때문이었을까? 우리는 목만 축인 것이 아니라 뱃속까지 막걸리와 정으로 가득 채우며 시간을 다소 지체하는 바람에 1시가 넘었다.


‘금오도’님은 자고 갈 것을 권했다. 집으로 돌아가서 4시 배를 타려면 두 시간도 채 못 남았다는 것이었다. 배표는 아는 사람에게 부탁해서 내일 것으로 바꾸면 된다고 했다. 너무 고맙고 송구했지만 그 호의를 차마 거절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날씨가 문제였다. 일기예보에 의하면 오늘 저녁부터 내일 오전까지 비가 쏟아지기 때문이었다. 이때 ‘자수정’님이 냉정하게 나서며 말렸다.


- 형님들, 기분에 치우쳐 결정하면 안 됩니다. 하루 연장한다고 해도 비가 오면 할 일도 없을 텐데 말입니다. 아쉬움을 남겨야지만 다시 또 찾아올 것 아닙니까? 지금 여자 분들이 점심 준비 끝냈다고 하니 빨리 갑시다.


집으로 가는 도중에 ‘금오도’님으로부터 땅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이곳에는 사람들이 땅을 팔지 않는다는 거다. 부모가 늙어서 집이나 땅을 내놓으려고 해도 자식들이 팔지 못하게 말린단다. 그런데 꽤 괜찮은 땅 천오백 평이 평당 십오만 원에 나왔다고 했다. 우리는 그 땅을 지나갔다. 별로 경사지지 않아 좋게 보였다. 이런 곳에 집을 짓고 한적하게 노후를 보내는 것도 나쁘기 않을 것이다. 용적률이 20%이니 한 사람이 3~400평씩 밭농사를 지으며 산다면 말이다. ‘금오도’님은 사려고 대들면 1억 5천에 딜을 해보겠다고 했다.


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삼겹살과 소주가 준비되어 있었다. ‘방풍’이라는 처음 먹어보는 나물도 맛있었다. ‘풍’을 방지하는 효과가 있다고 해서 방풍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이 금오도 지역 농산물로 주민들이 봄철에 꽤 돈을 번다고 했다. 맛있는 음식에 소주가 술술 들어갔지만, 술 보다는 정(情)에 더 취했다. 정에 취하고 술에 취하고. 그 놈의 정 때문에! 금오도에 취하고 벚꽃에 취하고. 그 놈의 정 때문에!


<후기>

마치 꿈속을 헤매다 온 것처럼 느꼈습니다. 오늘 아침에 일어나니 더욱 그런 기분이었지요. 제가 세상에 나와 가장 잘한 것이 있다면, 이 카페를 만든 것이 아닌가 합니다. 전혀 알지 못하는 분들을 서로 연결하는 끈이 되었으니까요.


일사분란하고 일목요연하게 모든 것을 계획하고 준비하는 ‘감사함’ 선배님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합니다. 선상에서 먹었던 아침도 그 어느 음식보다도 맛있었으며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입니다. 헤어질 때는 각종 나물까지 한 보따리 챙겨주셔서 잘 가지고 왔습니다.


여러 가지로 바쁘신 와중에도 시간을 내주신 ‘금오도’님에게도 정말 고맙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고맙다거나 감사하다는 말로는 많이 부족하지만 말입니다. 내년에 꼭 다시 한 번 들리겠습니다. 금오도는 정말 예쁜 곳이었습니다.

‘장어탕’이라는 맛있는 저녁을 사주신 ‘은수’님에게도 감사드리며, 저를 만나기 위해 광양에서 찾아온 아우님에게도 감사드립니다.


오늘로 14박15일의 여행을 끝냈습니다. 지리산에서 10일, 여수에서 5일을 보냈으며 오래도록 간직할 추억을 만들었습니다. 여수에서 있었던 몇 가지 이야기는 다음 기회로 넘기겠습니다.


 금오도에 도착하여 하선하는 '감사함'님과 '경주애인' 내외분. 일흔이 훨씬 넘으신 '감사함'님 포스가 예사롭지 않다.


 그리고 '자수정'님 부부


 '금오도'님을 만나 오늘 일정에 대해 이야기하는 일행


 낚시 천국이라는 금오도의 아름다운 전경


 '금오도'님 집에 도착한 일행. 보이는 차량은 '경주애인'님이 갖고 온 렌트카.


 '금오도'님의 밭을 둘러보고 있다.


 '비렁길' 트래킹에 나선 일행


 그림같은 금오도의 풍경이 눈길을 수시로 사로잡았다.


 저 아래 돌고래의 일종인 '상괭이'가 보였으나 카메라에 잡히지는 않았다.


 해변에 있는 가게에서 해삼을 안주로 막걸리를 마셨다. 막걸리에 '금오도'라는 상표가 보인다.


 '아름답다'라는 표현보다는 '예쁘다'라는 표현이 훨씬 어울린다. 미국처럼 웅대하고 광활하지는 않지만, 한국에는 이처럼 예쁜 곳이 참 많다 라는 것이 이번 여행의 소감이다.


 다음에 다시 올 때는 이곳에서 며칠 지내며 아름다운 풍광으로 머릿속을 가득 채워갈 것이다.


 일명 '출렁다리'로 불리는 다리를 건너고 있다. 비렁길 4코스에 있다.


 다리 가운데서 찍은 절경.


 이번 여행하는 동안 벚꽃은 눈이 시리도록 보았다. 또 한국에 이토록 벚꽃나무가 많다는 것도 새삼스레 알았다.


 '금오도'님이 땅을 소개하고 있다. 와이프만 허락한다면 이곳에 와서 살아도 좋겠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평화롭고 정겨웠다. 밭일을 배워 하면서 글을 쓸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무엔가.


 '금오도'님 집에서 준비한 점심. 산나물에 삼겹살이 어떤 진수성찬 보다 맛있었다. 술에 취하고 정에 취하고.


 금오도 비렁길 안내표시


 이제는 헤어질 시간이다. 작별인사를 하고 있다.


 '경주애인'님이 차를 배에 싣고 있다.


 안녕, 금오도여! See you ag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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