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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의 시선이 머무는 곳

세월호와 국정원 그리고 청와대

국정원의 정식명칭은 '국가정보원'이며, 그 전신은 안전기획부(안기부)와 중앙정보부(중정)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5·16 쿠데타 이후 김종필 씨가 주도하여 미국의 CIA를 모방하여 창설한 중정만큼 한국 현대사에서 많은 사건과 사연은 만든 정부조직도 없을 것이다. 심지어 중정을 만든 장본인인 박정희 대통령까지 시해하는, 현대사에서 가장 큰 역사적인 사건까지 저질렀으니 더 이상의 부연설명을 할 필요조차 없을 테지만, 김형욱과 이후락에서 김재규로 이어지면서 그 조직에서 저지른 사건들은 대한민국을 좌지우지해왔다.


그뿐만이 아니다. 최근의 일로는 2012년 말의 국정원이 조직적으로 대선에 개입한 사건까지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아버지를 시해한 조직이 박근혜 대통령을 만드는데 일조했다는 것에 역사의 아이러니를 본다. MB는 서울시 공무원 출신으로 자신의 심복인 원세훈을 국정원장에 임명했고, 그는 조직을 동원하여 야당 후보를 종북으로 몰고 여당 후보를 지지하는 댓글부대를 조직했다. MB는 왜 국정원이라는 날카로운 권력을 국가의 보편적 이익을 위해 사용하지 않고 자기 집단의 이익을 위해 휘둘렀을까? 무엇이 두려웠을까?


지난 토요일인 4월 16일 세월호 사건 2주년을 추모하여 SBS에서 방영한 '그것이 알고싶다'의 '쎄타(θ)의 경고, 세월호와 205호 그리고 비밀문서' 편에 그런 국정원이 등장한다. 한국 현대사의 굵직굵직한 모든 사건에 중정이 개입되었듯, 역시 세월호에서도 빠지지 않고 등장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사실 방송내용은 금시초문이 아니었다. 침수된 세월호에서 발견된 노트북 컴퓨터의 데이터를 복구했던 2014년 여름, 내가 듣는 팟캐스트에서는 이미 수차례 언급된 내용이었다. - 이렇듯 기존 언론에서 다루지 않는 문제를 다루기에 팟캐스트를 즐겨 듣는다.


칼은 살아가는데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 도구다. 가정주부에게 쥐어주면 가족을 위한 음식을 만들고, 요리사에게 쥐어주면 생선회나 요리를 만드는데 사용되는 칼도 강도에게 쥐어주면 남을 해치는데 사용된다. 권력도 마찬가지다. 공공의 이익과 다수의 행복을 위할 때 권력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역할을 하지만, 사리사욕이나 소수의 이익과 목적에 초점이 맞춰질 때는 흉기가 된다는 것을 지나온 인류역사에서 수없이 본다. 칼이 날카로울수록 요리사에게는 더 좋은 도구가 되지만, 흉기가 되었을 때는 피해가 더 크다. 권력도 그렇다. 국정원 같이 큰 권력을 가진 기관일수록 국민에게 주는 피해는 더 크다.


1987년의 일이다. 내가 일하던 현장에 안기부 보안감사가 나왔다. 본청도 아니고 지방에 있는 지부 요원 두 명이었다. 당시 행정실장은 이들을 접대하느라고 24시간 붙어 다녔다. 나중에 그분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로는, 술을 먹이고 고스톱을 쳐서 밤늦게까지 피곤하게 만들어야 그들이 감사하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게 하려고 그랬다는 거다. 그만큼 그들은 사람들을 피곤하게 했다. 직원이 사적인 용도로 팩스를 보낸 것까지 문제를 삼았고, 그 직원은 결국 징계를 당했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보였던 그 보안감사에서 1직급인 사업소장들이 전부 교체되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들었다. 그들의 권력은 그토록 막강했던 것이다.


'그것이 알고싶다.'를 보는 동안 화가 치밀었다. 꽃다운 나이에 피어보지도 못하고 희생된 단원고 학생 262명을 포함 304명이나 희생된 이유를 보는 듯했기 때문이다. 청와대에서 권력의 달콤함을 누리는, 권력을 가진 자들에게 중요했던 것은 아이들도, 사람의 생명도 아니었다. 그들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그들에게 권력을 준 VIP에게 보고하는 것이었다. 이 얼마나 권위주의의 화신들인가! 그런 권위주의는 인명을 구하러 간 구조함 정장에게 VIP에게 보고하기 위한 사진을 요구하는데 급급했고, VIP 지시사항을 전달하기에만 전념했지 사고현장의 초를 다투는 긴급함과 인명피해의 위중함은 없었다. 결국 그것이 TV로 생중계되는 마당에, 눈앞에서 수많은 인명이 죽어가는 현장을 전 국민이 목격하면서도 골든타임을 놓치게 되는 원인이 되었다는 것을 방송은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왜 청와대가 피해자 가족에게 했던 약속을 헌신짝 버리듯 했는지에 대한 의구심을 해소해주었다.(박근혜 대통령, 이완구 새누리 원내대표, 김한길 야당대표의 지켜지지 않은 약속)(그들은 왜…세월호 침몰 당시 '48시간 골든타임' 추적)


지난 30년간의 직장생활에서도 그랬다.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권위적인 보스 밑에서는 '어떻게 보고할 것인가?'가 먼저 뇌리에 가득했다. '선조치 후보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문제해결은 나중이었다. 문제가 생기지 않기만 바랐다. 그러나 탈권위적인 보스와 일할 때는 달랐다. 문제는 문제가 아니라 일의 한 부분이었다. 문제는 일하는 즐거움이었지 더 이상 골치 아픈 존재가 아니었다. 먼저 조치하고 나중에 보고하더라도 질책은커녕 격려를 받았다. 특히 한국에서 경험한 권위적인 보스는 대부분 일에 대해 무지했고 전문성이 부족했다. (제 글 '탈권위주의' 참조)


이번 총선에서 여당이 패해 국회 과반석 획득에 실패함으로써 '세월호'가 부활하게 되었다. 더군다나 세월호 변호사로 널리 알려진 박주민 변호사가, '세월호 특별법 개정'을 공약으로 당선되었다. 그의 선거운동에 가장 많은 자원봉사자가 참여했다고 전해지며, 서울에서는 유일하게 후보 단일화를 이루었다. 자원봉사자의 대부분은 세월호 희생자의 가족이었다고 한다. 아무쪼록 세월호의 진실이 낱낱이 파헤쳐져 다시는 그와 같은 불행한 사고가 이 나라에서 되풀이되는 일이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또한 그로 인해 대한민국이 가진 잘못된 시스템이 바로 고쳐져서 나라 전체가 업그레이드되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된다면 어린 생명들의 희생이 전혀 무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캡처한 영상이다. 침몰된 세월호에서 발견된 노트북에 있었던 문서다. 이 문서에는 해난사고와는 아무 관련도 없는 국정원에 먼저 보고하도록 되어있다. 물론 국정원은 이 문서가 왜 작성되었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며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 권력자의 눈에는 더 큰 권력자만 보일 뿐, 인명에는 관심이 없는 듯했다.


▼ 이 긴박한 순간에 청와대에서는 구조정 정장에게 대통령 지시사항을 받아적으라고 강요했다.


▼ 대통령의 지시사항을 전달하는 것이 그렇게 중요했을까? 그리고 그 지시사항이 이런 와중에 무슨 역할을 한다는 말인가!


▼ 보고하고 지시 받고 지시하느라 골든타임을 놓친 후에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는 어처구니 없는 사태가 일어난다. 


▼ 이 얼마나 한심한 일인가? 그런데도 처벌받은 사람이 청와대에는 없었다. 보고하라는 권력의 강요에 정신이 없었던 구조정 정장만이 유일하게 처벌 받은 공무원이 되었다. 현장에 출동하지 않았으면 투옥되지 않았을 것을.


▼ 그들이 걱정하는 것은 오로지 단 하나였다.


▼ 청와대에서는 보고용 자료가 중요했다.


<후기>

정치 글을 싫어하는 분들을 많다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 하긴 저도 한 때 그런 마음이었으니 그 분들에게 뭐라 할 말은 없습니다. 다만, 개인적인 견해로는 바람직한 일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미국에서 2008년 경제위기를 거치고 직장에서 짤리면서 깨달은 사실입니다.

현대 민주사회에서 개인의 생활을 지배하는 것은 경제이지만, 그 경제논리를 좌지우지하는 것은 정치입니다. 그리고 모든 국민은 정치에 대한 냉철한 감시자가 되어야만 모든 사람이 행복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단, 내 주장만 하지 말고 상대의 의견도 존중하며 논리와 이성으로 대할 때 가능해집니다.

지난 일주일은 한국에서 벌어진 총선결과를 이해하는데 시간을 보냈습니다. 대한민국의 정치도 발전하고 있으며 그 지긋지긋한 지역구도가 다소나마 해소되는 기미를 보여 즐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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