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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의 시선이 머무는 곳

알파고를 보고

인간은 모방을 통해서 배운다. 보고 듣는 것을 통해 입력 된 것을 흉내 내서 말하고 행동하며 학습한다. 초보 테크니션들은 기술자의 헬퍼로 쫓아다니며 배우고, 신입사원들은 선배들이 작성한 일지나 보고서 따라 작성하면서 일을 습득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기술이나 업무에 익숙해지면 다음에는 의심하기 시작한다. 과연 이것이 최선인지 또는 더 효율적이거나 향상된 방법은 없는지 의심하면서 혁신적인 기술이 나오기도 하고 개선이 이루어진다.


그래서 의심과 질문은 인간문명 발전의 원동력이다. 천동설에 대한 의심이 없었다면, 코페르니쿠스나 갈릴레이에 의한 지동설은 없었을 것이고 아메리카도 미지의 세계로 남아있을지 알 수 없다. 끊임없이 의심하고 질문을 던지며 답을 찾아가는 과정은 인간만이 가지는 고유영역이며, 인류가 나날이 진보하는 원동력이다. 스티브 잡스가 위대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을 뿐, 그의 인간성이 훌륭한 것은 아닐 것이다.


이번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국을 보며 전율이 느껴진 것도, 바로 이런 점 때문이었다.


바둑을 두지 않은 것이 벌써 20년이 넘었지만, 한 때는 직장 바둑대회에서 우승한 전력도 있다. 그런 바둑도 출발은 어른들이 두는 바둑을 어깨 너머로 보고 흉내 낸 것이었다.(바둑과 골프, 그리고 인생 참고) 그런 다음에는 바둑의 조상들이 만들어 놓은 정석을 배우는 과정을 거친다. 정석은 이렇게 두면 어느 쪽도 손해가 없다고 일반적으로 알려진 최선의 수순으로, 일종의 관습이나 마찬가지다. 따라서 바둑을 두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의심하지 않고 이런 정석을 적당히 배합해서 두어 나간다.


하지만 이런 정석은 주변 배석에 따라서 어떤 것을 선택하느냐가 중요하고, 그 변형이 수없이 많기 때문에 바둑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하고 어렵다. 그런데 이런 정석에 의심을 갖고 변화를 가하는 것은, 500년 전 일반인들이 지동설을 상상할 수 없었던 것처럼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천동설에 의심을 품은 코페르니쿠스와 같이 이창호나 이세돌과 같은 천재들에게나 허락되는 능력이다. 이창호는 불리한 것으로 알려져 프로세계에서는 잘 사용하지 않는 정석을 아무렇지도 않게 두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1인자가 되었고, 이세돌은 상식적인 수가 아닌 독창적인 수로 세계를 제패했다.


바로 알파고가 비슷한 방법으로 두 번의 대국에서 승리했다. 그리고 그 과정은 이창호나 이세돌 보다 훨씬 더 혁신적이었다. 기존에 두어진 고수들의 숱한 바둑을 모방한 다음 스스로 학습해서 보다 효율적인 수를 찾아낸 것이다. 상대가 강하면 더 강하게 나왔고, 자신이 유리하면 적당히 두었다. 5선에서 어깨를 짚는 수나 자신이 집을 지어야 할 곳으로 상대편 말을 몰고가는 행마는 바둑의 고수라면 절대로 두지 않겠지만 알파고는 두었다. 그리고 이겼다. 알파고가 나를 상대한다면 아주 쉽게 이기겠지만 승부의 차이는 이세돌과 별로 다르지 않을 것이다. 즉, 누구와 두어도 이기는 것은 분명하지만 상대에 따라 수는 달라질 것이 틀림없다.


인간이 바둑을 둔지 수 천 년이 지났고, 150년 전 일본에서 확립한 현대 바둑이론을 알파고는 불과 몇 년 만에 뛰어 넘었다. 그리고 이것은 이제 시작에 불과할 것이다. 스스로 학습해서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는 알고리즘이 개발되었다는 것은 앞으로 그 적용이 엄청나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아마 무한대일 것이다. 이런 이유로 컴퓨터 구조론과 바둑 논리를 이해하는 사람 치고 이번 대결을 보고 전율을 느끼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이세돌이 알파고와 바둑을 두기로 결정했다는 기사를 보고 상반된 예상을 했었다. 먼저 알파고가 인공지능으로 수만 개의 기보를 입력해서 스스로 학습한다는 기사와 유럽의 바둑 챔피언을 일방적인 스토어 5:0으로 이겼다는 뉴스를 보고, 이세돌이 이기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과 동시에, 그래도 이세돌은 이창호에 이어 한국이 낳은 불세출의 천재 기사이니 내 예상이 틀리기를 바랐던 것이다. 아마도 인간이 이겨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논리적 이성과 갈등을 일으킨 것이리라.


오늘 오후 세 번째 대국이 시작된다. 이세돌은 패배 후 동료들과 함께 알파고를 이길 방법을 밤을 새워 연구하고 몇 가지 전략을 세웠다고 전한다. 바둑에서 가장 어렵다는 패를 만들고 큰 모양으로 대응하겠다는 거다. 두 번째 대국도 정말 흥미진진했지만 오늘 대국도 그에 못지 않을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이세돌은 결코 못이긴다는 것에 베팅한다. 아니 이세돌뿐만 아니라 지구상의 어느 누구도 알파고를 이길 수 없다는 전문가의 의견에 동의한다.(신문기사 보기알파고를 이길 수 있는 상대는 더 빨리 학습할 수 있는 또 다른 인공지능 밖에 없을 것이다.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국에 대한 신문기사를 나름대로 분석해본다. 어느 신문기사에서 이세돌이 1202:1로 불리한 게임이라고 했는데, 이는 컴퓨터에 대한 지식이 없는 사람이 하는 소리일 뿐이다. 알파고는 하드웨어가 아니다. 하나의 알고리즘을 갖는 인공지능인 소프트웨어이기 때문에 얼마나 많은 수의 컴퓨터가 네트웍으로 연결이 되었다고 해도 관련이 없다.


현재 바둑계에서 세계1위는 중국의 커제다. 19살의 약관으로 지금까지 이세돌과 10판을 두어 8판을 이겼다. 이 친구가 자신은 이길 수 있다느니, 이세돌의 바둑을 보고 구토가 나왔다느니 헛소리를 하지만, 철부지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하는 소리일 뿐이다. 그 나이 때 이창호나 이세돌은 더 잘 두었다. 갑자기 나타난 천재라 아직 그의 약점이 연구되지 않았을 뿐이다. 진정한 천재란 자신보다 뛰어난 사람을 알아보고 머리를 숙이며 겸손할 줄 아는 사람이지 교만으로 충만한 사람은 아니다. 이창호가 지금까지도 전세계 바둑인으로부터 사랑과 존경을 받는 이유다.


수 천 년에서 수 백 년 동안 믿어져 왔던 이론이 틀릴 수도 있으며 더 정확한 논리를 추출할 수 있다는 것을, 알파고와 같은 인공지능이 밝혀낸다면 세상은 어떻게 변할까 상상해 보는 것도 재미있다. 즉, 사람들이 진실이라고 믿는 천동설이 틀렸다는 것을 밝혀낸다면 말이다. 천동설과 같은 인간의 무지가 가장 넓게 알려진 곳이 종교다. 창조론과 유일신, 삼위일체를 믿는 기독교나 알라신을 유일신으로 생각하는 이슬람은 논리적으로 어느 한쪽은 틀리게 되어있다. 이슬람들은 마호멧의 후계자가 누구인가에 따라 수니파와 시아파로 나뉘어 서로를 죽이고 있다. 어느 한 쪽은 반드시 틀릴 수밖에 없다.


모든 역사적 증거를 인공지능에게 입력해놓고 학습을 통해 정확한 논리를 밝혀낸다면 종교로 인한 인류의 갈등을 해결할 수도 있지 않을까하는 엉뚱하지만 행복한 상상도 가능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