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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의 시선이 머무는 곳

시스템이 문제다 (7)

4월 16일 이후 지금까지 세월호 여파로 온 나라가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중소업자나 영세상인의 80%가 매출에 타격을 입었다고 매스컴에서 전하는 것을 보면, 많은 국민들이 부끄럽지만 대한민국의 참모습을 얼마나 처참한 심정으로 지켜보았는지 상상이 갑니다.


2010년 말 LA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를 탔었는데, 당시에는 'G20 정상회의'로 '국격'을 높였느니 하면서 떠들썩했습니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매스컴에서 듣는 것은 자화자찬의 일색이었습니다. 생소하기 그지없는 '국격(國格)'이라는 단어를 제일 많이 들었고, 이후에도 '세계 10대 무역국'에 진입한다는 등, '세계 7대 자연경관'에 선정되었다는 등, '아덴만의 여명'이라는 어느 나라도 흉내내지 못한 과감하고 용맹한 작전으로 소말리아 해적으로부터 선박을 구했다는 등, STX라는 조선회사가 유럽의 최대 조선회사를 인수해서 Cruise같은 고부가가치 선박을 제조할 수 있게 되어, 양적인 조선강국에서 명실상부한 질적인 조선강국이 되었다는 등, 끝이 없을 정도로 자랑스런 모습을 쏟아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주에서 살게 된, 저 역시 조국의 좋아진 모습을 감명 깊게 보았습니다. 관공서 일선창구의 공무원이나 경찰의 친절함이 가장 인상적이었고, 잘 정비된 공원과 어디서나 깨끗한 공중화장실, 다양한 취미생활을 즐기는 서민들의 모습, 수준높은 다큐멘터리와 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하는 격있는 시사프로그램들도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4월 16일 이후, 지상파 방송국을 비롯해서 모든 방송들이 세월호가 물에 서서히 잠기는 것을 보도하는 바람에 모든 국민들이 조국의 참모습을 똑똑히 지켜보게 된 것입니다. 300명이 넘는 무고한 사람이, 아들과 딸들이, 바로 눈 아래 뻔히 보이는 곳에 있는데, 단 한 사람의 생명도 구하지 못하는 무능하고 무기력하기만한 충격적인 대한민국의 모습을 지켜봐야 했습니다. 


대통령이 현장에까지 나서서 인명구조에 최선을 다하라고 했지만, 그곳에는 '아덴만의 작전'을 수행했던 영웅도, 세계 최대 조선수주량을 자랑하는 해양강국의 위엄도, 그 어떤 국격도 없었습니다. 대신 조류(潮流) 빠르다는 변명과 날씨가 나쁘다는 구실만 있었으며, 승객구조 사명을 가진 선원들이 제복마저 벗어던지고 팬티차림으로 구조선에 올라타는 부끄러운 어른들과 '가만 있으라'는 어른 들의 말만 믿고 선실에서 기다리는 아이들이 있는 선미(船尾)를 내버려둔 채 선수(船首)에서 선원들을 구조선에 태우는, 자칭 '민중의 지팡이'라면서 지팡이 노릇을 저버린 경찰만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걸 고스란히 지켜본 국민에게 정부는 또 한 번 말하고 있습니다. '가만 있으라'고.


국격을 높였다는 MB는 대한민국 최악의 대통령으로, 자신의 목적을 위해 - 비록 불법이라 하더라도 -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좋은 두뇌를 사람들을 기만하고 속이며 자신의 이익과 목적을 이루는 데에만 쓴 인물이었다는 것이 오늘 증명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민주주의와 언론, 그리고 남북관계를 5년이나 10년쯤 후퇴시키는데 크게 기여한 인물로 역사가 기록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아덴만의 작전에서 생포되어 감옥살이를 하고있는 소말리아 해적은, 배곯지않는 한국의 감옥이 더 낫다며 석방해서 소말리아로 돌려보내지 말아달라고 한답니다. 그런 웃지못할 불쌍한 사람들이 저지른 일입니다. '세계 7대 자연경관' 사건은 온국민이 눈뜨고 당한 사기극임이 만천하에 드러났는데도 책임자들은 아무도 인정하려 하지않고 있습니다. '세계 10대 무역국 진입'은 연간 10%대의 성장률로 세계 최대 무역국으로 등장한 중국과 인접한 지리적, 시기적 잇점 때문이라는 것은, 경제 문외한이 이해하기에도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또 하나의 샐러리맨 신화로 각광받던 STX 강덕수 회장은 3000억에 이르는 횡령 및 배임 혐의로 지난 4월 구속되었고, STX는 작년에 파산했습니다. 유럽의 선박회사를 인수하여 초호화 유람선을 만들게 되었다고 떠들며 자랑하는 동안에도, 한쪽에서는 20년이 다 된 여객선을 수입해다가, 안전을 도외시한 채 사람들을 더 태우기위해서 합법을 가장한 불법개조를 하고 있었습니다.


한국의 IMF 시절을 겪어보지는 않았으나, IMF를 조상들이 후손들을 불쌍히 여겨 내려준 기회라며, 대한민국을 버전 1.0에서 2.0으로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단군 이래 최대의 기회라고 어느 대학교수가 쓴 기막힌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IMF 희생자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그 예상이 적중한 탓인지, IMF를 거치면서 확실히 대한민국의 경쟁력이 업그레이드되었음을 느낍니다. 그러나 그 옛날 나를 좌절시켰던, 전시행정, 과시행정, 권위행정같은 하드웨어 위주의 천박한 시스템 또한 변하지 않은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능력이나 실력과는 관계없이, '형님', '아우' 하며 지들끼리 밀어주고 끌어주는 연줄시스템도 그대로였습니다. 이번 세월호 사건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열 여섯, 열 일곱의 어린 꽃봉오리를 포함한 304명의 무고한 생명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하려면, 이번 사건을 대한민국이 버전 2.0에서 3.0으로 업그레이드되는 기회로 삼아야합니다. 대한민국의 부끄러운 모습을 드러내놓고, 문제점을 낱낱이 밝히고, 시스템이 바뀔 때까지 계속 떠들어야 합니다.


304명의 희생이 시스템을 바꾸는 계기가 되어야 합니다.


<후기>

'빅터 차' 교수의 말을 인용한 Seamaker님의 글처럼, IMF를 비롯한 숱한 위기를 극복한 민족답게 이번 참사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은 꿋꿋하게 역사를 만들어갈 것은 틀림 없습니다. 그러나 쉬 뜨거워지고, 쉬 식는 우리 민족에게 끝까지 교훈으로 남으려면, 슬픔과 아픔을 깊숙이 새겨야 합니다.


무엇이든 겪고나서 과거를 되돌아보면 무엇이 교훈이었는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IMF도 그렇습니다. 지금은 그때의 기억이 거의 없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 때의 아픔을 절절이 기억하고 있었다면, 이번의 사고도 예방할 수 있었지 않았을까요? 6년 전에 작성된 어느 네티즌의 글이지만, 아래 글을 보면 지금의 상황과 비슷한 점들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http://blog.naver.com/OpenMagazineViewer.nhn?blogId=xgkjjviih3&logNo=110046986034&categoryNo=0&parentCategoryNo=14&viewDate=


다행인 것은 각종 시사프로그램에서 한국이 가진 문제점들을 폭로하는 프로를 쏟아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5월 23일 방송한 KBS 파노라마 '부패와 무능의 카르텔, 관료 마피아'는 이 사회가 가진 문제점이 얼마나 심각한지 잘 보여주고 있고, 시사매거진, 추적 60분, PD수첩 등에서 유병언이라는 사람이 얼마나 위선적이고 파렴치한 사람이었는지, 관료들이 어떻게 유착되었는지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런 프로그램들이 계속 나와서, 대한민국이 (문명이 아닌) 문화적으로, (하드웨어가 아닌) 소프트웨어적으로, (nominally가 아닌) Virtually 업그레이드 되기를 바랍니다.


(다음 글부터는 다시 제가 경험한 시스템의 문제들로 계속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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