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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의 시선이 머무는 곳

시스템이 문제다 (6)

- (1998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가방 수출입 사업을 하고 있을 때 폭동이 일어났습니다. 처음에는 사태가 그렇게 커질 줄을 상상하지 못해서 피신할 생각이 없었지요.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사람들이 죽자, 시위는 폭동이 되었고 시위군중은 폭도로 변해서 약탈과 방화로 무법천지가 되고 나서야 피신을 떠나야할지 매우 혼란스러웠습니다. 당시 뉴질랜드 영주권을 갖고 있었지만, 국적은 한국이니까 어떻게 해야할지를 물어보려고 대사관으로 전화를 했었지요.


- 알아서 하라는 게 그들의 대답이었습니다. 전화기 저편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더니 전화를 끊어버리더라구요. 다시 전화를 했더니 전화를 아예 받지도 않는 겁니다. 그렇게 허둥대는 동안에 전화가 왔어요, 뉴질랜드 대사관이라고 하더군요. 지금 당장 귀중품만 간단하게 챙겨서 공항으로 가라는 겁니다. 거기에 뉴질랜드로 떠나는 비행기를 대기하고 있으니 탈출하라는 거지요. 만약 비행기를 놓치면 다음 비행기는 몇 시간 후에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라는 말까지 덧붙였습니다.


키는 작지만 얼굴이 희고 적당히 통통해서 나이보다 훨씬 젊어보이는 ㄱ선생은 아들 녀석의 같은 반 친구 아버지였다. 해외에서 사업을 하느라 집을 자주 비웠던 그가 돌아왔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그 집의 고장난 컴퓨터를 봐주러갔다가 한 달 전 인도네시아에서 돌아온 그를 만났다. 그는 느릿느릿한 말투로 대화를 이어갔다.


- 뉴질랜드 대사관에서 내 전화번호를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겠어요. 아마 공항의 출입국 기록을 보고 알았을 거라고 짐작만 합니다. 한국 대사관은 자기들 국민을 챙기기는커녕, 전화해서 물어보는데도 지들 도망가기 바빠서 어떻게 하라는 지시도 없는데, 뉴질랜드 대사관은 엄격히 말하면 자기들 국민도 아닌 거주자일 뿐인데도 일일이 전화해서 피신하라고 지시할뿐만 아니라, 비행기까지 공항에 대기시켜놓은 겁니다.


그의 기막힌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기가 막히다는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 한국은 IMF를 겪고도 정신을 못 차렸어요! 이번에 왔던 국회의원들만 해도 그래요. 명분이야 교민들 실태 파악한다는 핑계로 왔겠지요. 그런데 그 사람들이 여기 와서 한 일이 뭐예요? 오늘 날 영사관 직원들과 교민들과 어울려 골프치고, 다음날 아침에 골프치고 점심에 교민들 몇 사람 모아놓고 한 두 시간 오찬 겸 좌담회하고, 가는 날 골프치고 떠났으면 그게 골프치러 온 거지, 교민들 생활상 파악하러 온 겁니까? 교민들 사업장이나 가게는 한 번도 안 둘러보고 말입니다.


세월호 사건에서 선내 방송을 통해 승객들에게는 '가만 있으라!'라고 해놓고, 선장을 비롯한 선원들이 가장 먼저 구조선에 올라탔다는 뉴스를 보고, 625 한국전쟁 발발시 이승만 정부가 저질렀다는 행각과 함께 ㄱ선생과의 오래 전 대화가 떠올랐다.


돌보아야할 승객들을 버려놓고 먼저 살 구멍을 찾았던 사람이 이준석 선장만은 아니었다. 그런 대통령도 있었고, 그런 대사도 있었다. 도올 선생의 시국선언을 보니, 조선시대에도 그런 왕이 있었다. 즉, 그것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왜냐하면 시스템의 문제였기 때문이다.


자유에는 책임이 따르고, 권리에는 의무라는 댓가를 치뤄야한다. 그러나 작금의 사태는 자유와 권리만 누리려할 뿐, 책임과 의무는 실종되었다. 항해시 선장에게 모든 결정권과 함께 최고의 권한을 준 것은 승객을 최우선으로 보호하라는 책임 때문이다. 대사에게 나라의 대표권을 준 것은 그 나라에서 살고있는 국민들의 인권과 생명을 보호하고 나라의 이익을 추구하라는 사명이 있기 때문이다. 국회의원에게 입법권을 준 것은 국민의 의사를 대변하라는 것이지 골프치라고 한 것은 아니다.


그래도 이들이 자신의 본분을 망각하고 사명을 게을리하는 것은 그래도 되기 때문이다. 승객의 안전보다는 고용주의 이익이 더 중요하고, 자국민의 이익 지키기와 생명보호 보다는 장관에게 잘 보이고 정권에 아부하는 것이 출세하는데 더 빠르고, 투표권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생색만 내도 충분하고, 자신의 선거구만 잘 관리하면 된다는 것을 잘 알만큼 영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것들이 지금까지 잘 통해 왔기 때문이다.


시스템이 문제다. 시스템이 바뀌지 않는 한, 성수대교, 삼풍백화점, 대구지하철, 세월호로 이어지는 사고는 계속될 것이다. 행정안전부를 안전행정부로 이름을 바꾼다고 안전이 행정보다 우선시되지는 않을 것이다. '국가안전처'를 새로 만든다고 사고가 멈추지는 않을 것이다.


시스템이 바뀌어야 한다. 형식보다는 내용과 실속이 우선되어야 하고, 권위적인 수직적 사고에서 모두가 평등한 수평적 사고로, 학연, 지연, 혈연으로 등용기보다는 능력과 지식이 중요시되는 사회가 되어야한다. 정권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귀 기울이는 너그러움을 보여야하며 종북으로 몰아부침으로서 견제와 감시 기능을 갖는 비판세력을 억압서는 안 된다. 


지금처럼 언론을 장악하고 정권에 아부하는 사람들로만 정부를 채워서는 더더욱 안 된다. 지역감정이나 종북을 언급하며 진실을 호도하며 분열을 조장하는 정치인은 설 땅을 없게 해야한다. 지역감정 조장의 원조이자 유신의 구시대 인물인 김기춘 같은 이들이 국가를 움직이게 두어서는 안 된다. 부정과 부패는 나라를 망하게 하는 첩경이라는 것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감시와 견제를 상실한 끼리끼리 문화에서 자라나는 것은 부정과 부패 뿐이다.


ㄱ선생을 다시 만난 것은 미국으로 이주한 뒤, 뉴저지 덴빌에 살던 때이었다. 폭동으로 인해 인도네시아에서의 사업을 접은 후, 90년대 초 한 때를 보냈다는 미국을 방문해서는 이메일로 연락이 닿아 내 집을 찾아왔다. 우리는 맥주를 들고 덱의 테이블에 앉았다.


- 10여년 만에 왔더니 뉴저지 인심이 많이 바뀌었네요. 이제는 쌀을 다 사먹네요? 옛날에는 쌀은 사먹지 않았거든요. 한아름에서 백 불어치만 쇼핑하면 쌀 10Kg짜리는 그냥 주었는데, 이제는 다 돈 받고 파네요. 하하하, 인심이 어떻게 갈수록 사나워지죠?


하긴 내가 뉴질랜들에서 미국으로 이주한 1998년 9월에만 해도, 한아름에서는 캐쉬어에서 쇼핑금액을 보고 쌀이나 고추장, 김같은 것을 사은품으로 주곤 했었지만, 그런 것은 곧 없어졌다. 사람들을 꼬이게하는 유인책이었을 뿐이었다. 낚시꾼이 낚싯대 주위에 던지는 밑밥이었다. 우리는 밑밥에 현혹되어 밑밥을 먹으로 왔다가 미끼를 무는 물고기와 다름없다.


인격이나 능력, 지나온 삶과 경력을 보고 사람을 평가하지 않고, 지역감정이나 종북몰이에 휩쓸려 생각하고 판단한다. 소수 기득권자들이 던져주는 밑밥에 현혹되어 자신을 죽이려는 미끼를 물고만다. 복지와 분배를 통해 99%를 위하고자하는 사람을 버리고, 성장이라는 말에 속아 - 경제가 좋아지면 자기들에게도 돌아올 게 있다고 믿으며 1% 소수 기득권자를 위하여 표를 준다.


<후기>

오전에 세월호 사고에 대한 박 대통령의 대국민담화가 있었습니다. 1953년에 창설된 해양경찰을 61년만에 해체한다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물론 이번 사고에서 해양경찰이 한 행위는 용서받지 못할 짓이었습니다만, 빈대를 잡겠다고 초가삼간을 때워 없애버리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박 대통령이 의롭게 죽어간 사람들의 이름을 호명하며 눈물을 보이는 장면에서는 마음이 짠했습니다. 그러나 책임지는 사람은 결국 없었습니다. 대통령을 잘못 보좌한 청와대 비서진도,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안전행정부의 장관도 자리보전에 성공했습니다. 인천의 선주(船主)들에게 향응을 받은 뇌물혐의로 해양특공대장을 구속했을 뿐입니다. 세월호 사건만 없었으면 아무 일 없었을 것을, 세월호 때문에 왕년에 받은 뇌물혐의가 들어난 그 친구가 과연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을까요? 재수가 없었다고 생각했겠지요.ㅎㅎ


아래에 밑밥에 현혹된 우리가 어떤 일을 했는지 보여주는 그림이 있습니다.


▼ OECD 모든 국가에서 상위 1%가 차지하는 비중이 지난 20년 동안 크게 늘었습니다.

 

▼ 금융위기 이후 상위 1%는 소득이 31%가 증가한 반면, 99%는 9.4% 증가에 그쳤습니다.


▼ 이로 인한 불평등으로 사회의 불안이 더해지고 있습니다.


▼ 2012년 대한민국은 소득불균형 상승률에서 자랑스럽게도(?) 5위에 올랐습니다. 방글라데시를 눌렀습니다.


▼ 대부분이 미국인인 세계 최고부자 85명이 세계인구의 절반이 가진 부와 맞먹는다고 합니다.


▼ 1%의 부자들이 세계전체의 부 절반을 가졌다는군요. 아직도 낙수효과(Trickle Down Effect)를 기대하며 저들로부터 흘러내리는 물을 기다려야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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