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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의 시선이 머무는 곳

시스템이 문제다 (3)

지난 날 경험한 한국사회의 가장 큰 문제점은 '지켜지지 않을 원칙'을 만들고, '만들어놓은 원칙조차 제대로 지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것은 지금도 변한 것이 별로 없다. 도로 사인이나 신호등같은 사소한 것부터, 정치인 '인사청문회'에서도 그렇다.


국무총리나 장관같은 정부의 주요인사를 임명할 때 시행되는 '인사청문회'라는 것이 있다. 임명직 공무원의 도덕성 여부를 따져 적합성을 따지는 것으로 미국같은 선진국 제도를 도입한 듯하다.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모르지만, 군사정권에서는 없었다. 그 청문회는 주요 공중파 채널과 케이블 뉴스 채널 등에서 생중계되는데, 한결같이 걸리는 문제가 '위장전입'과 '부동산 다운계약서 작성'이다. 자식들이 좋은 학교에 배정받을 목적으로 이루어지는 위장전입은 현행법상 천만 원 이하의 벌금이나 3년 이하의 징역형에 해당되는 불법행위이고, 탈세를 목적으로 이루어지는 다운계약서 작성은 탈루 세액의 3배 정도의 추징금이 부과되는 엄연한 불법행위이다.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도, 법을 집행하는 장관도, 법을 판단하는 대법원 판사도, 청문회 과정에서 이런 탈법과 불법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별로 없었지만, 대부분 목적하는 자리를 꿰차는데 별 어려움이 없었다. '진심으로 사과하고, 잘못을 뼈저리게 뉘우친다'라고 판에 밖힌듯한 말을 반복하고, 청문회 자리에 나와 공손하고 겸허한 모습으로 허리를 90도 각도로 꺾으면 그만이었다. 아니면, 와이프가 저지른 일로 자신은 몰랐다고 끝까지 '오리발'을 내밀어도 통했다. 정말로 '뼈저리게 잘못을 뉘우친다'면 그 자리에 앉지 말아야하는 것 아닐까?


이것을 TV에서 시청하는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자식을 위한 일이니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할까? 자신도 그러고 싶은데, 그럴 수 없는 무능력을 한탄할까? 아니면, 그런 인간들조차도 높은 자리에 앉히는 대통령의 꿋꿋한 의지와 너그러움을 존경할까? 몇 만 원짜리 교통위반 딱지만 떼어도, 겁이 나서 다음날 얼른 내고 오는 자신의 새가슴 준법정신을 탓할까? 수신제가(修身齊家)도 못한 사람이 치국(治國)하려는 코메디를 한낱 코메디로만 치부할까?


이런 사실이 주는 교훈이 있다. '법은 지키는 것이 아니라, 피해가라고 있는 것이다'라는 상식(?)을 갖게 한다는 것이다. 몇 백 만원의 돈을 아끼기위해 아주 쉽게 다운계약서를 생각해내거나, 자식을 위해 떳떳하게 위장전입하는 탈법과 불법을 저지를 정도로 똑똑하고 능력있는(?) 사람들만이 장관같은 고위직을 차지할 수 있다는 현실이다. 


'좌측보행'이 어느날 갑자기 '우측보행'으로 바뀌었다고, 길을 걸을 때마다 신경써서 오른쪽만 택해서 걷는 고지식한 인간은,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현실에 절망하고 좌절하고 만다. 물론 하도 겪어서 무신경해질 정도로 면역은 되었지만.


이보다 훨씬 더 똑똑한 인간군(群)이 있었다. 사진 한 장에 오천 만원에서 일억 원을 받고 자기 회사에 팔았다. 그렇게 사진으로 번 돈이 160억이고 회사는 작년 46억의 당기적자를 기록했다. 그의 둘째 아들은 '세월'이란 상표권을 등록하고, 청해진 해운에 '세월호'라는 이름을 쓰도록해서 1년 남짓한 기간에 상표권으로만 1억 이상을 챙겼다. 대동강물을 팔아먹은 '봉이 김선달'이 무덤에서 뛰어나와 '스승님'하고 무릅꿇을 일이다.


이렇듯 능력있고 똑똑하지만, 정직하지 못한 사람 - 때로는 무능한 사람도 - 들이 공통적으로 택하는 책략(Strategy)이 있다. 권위다. 70년대 군대생활을 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 중에 'x(남자의 성기를 가르키는 속어)으로 밤송이를 까라면 까야할 것 아냐!'라는 게 있다. 나는 이말을 90년 대까지 들었다. 내 상관이었던 ㄴ부장은 내 관점에서는 무능하기 짝이 없는 분이었다. 위에는 꼼짝도 못하고 아랫사람만 조졌다. 일을 시킬 때는 방향도 제시하지 못하면서 결과만 따졌다. 이 분이 가장 좋아하고 자주 내뱉던 말이었다.


이런 권위적인 상관을 모시고 있으면 자기 의견을 제시하거나 창의성이 나오기 힘들다. 괜히 일을 만들어 쿠사리를 듣거나 사서 고생할 필요가 없다. 시키는 일만 군소리없이 하면 된다. 그렇게 시간만 보내는 게 최선이다. 매달 25일만 되면 월급이 통장에 입금되고, 다음 인사 때 상관은 바뀔 지도 모르니, 그때까지만 잘 견디면 된다. 장관은 기껏해야 2~3년이고 대통령도 5년만 지나면 바뀌지만, 나는 정년 때까지 있을 사람이다. 납짝 없드려서 눈동자만 열심히 굴려대면 된다. ㄴ부장 밑에서 일했던 나나, 권위적인 대통령 하(下)에서 일하는 공무원들이나 아마도 비슷한 심정이 아닐까 싶다.


흐린 윗물을 놔두고, 아랫물만 흐리다고 탓할 수 있을까? 어느 한 순간만큼은 맑게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인위적으로 억지로 만든 맑음은 오래갈 수가 없다. 맑지못한 윗물이 흘러내리면 금방 흐려지는 법이다.


교통신호쯤 지키지 않는다고 국민들을 나무랄 수 있을까? 아무도 지나가지 않는 새벽에 빨간 신호등에 그냥 좀 지나갔다고 택시기사에게 손가락질 할 수 있을까? 그 손가락질을 받을 사람은 사납금 채우기에 급급한 택시기사가 아니라, 유병언과 차남 유혁기를 비롯한 그의 일족이고, 기득권을 사수하려는 기득권 층이고, 진실을 감추고 왜곡시키는 보수언론이고, 위장전입같은 불법을 저지르고도 고위직까지 해먹으려는 욕심꾼들이고, 국정원 불법선거개입에 침묵으로 일관하는 청와대다.


지금 한국사회는 능력있는 사람보다 정직한 사람이 필요하다. 능력있는 사람들은 너무나 많다. 원칙을 지키지 않고 법을 피해다니는 유능한 인재보다 원칙을 무엇보다도 중시하는 충직한 사람이 필요하다. 그리고 지켜지지 않는 원칙은 만들지 말아야하며, 있더라도 없애야한다. 재수없어서 걸리는 게 '법'이 아니고, 정해진 원칙은 대통령부터 유치원 코흘리개까지 반드시 지켜야하는 것으로 인식되어야 한다. 그래야, 빨간 신호등을 무시하고 지나가는 택시기사가 사라지고, 유치원 꼬마는 사탕을 까먹는 자리가 사탕껍데기를 버리는 자리가 아니라는 것을 저절로 깨닫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15년 만에 돌아와서 경험한 한국은 부자나라다. 이제는 분배와 복지에 눈을 돌릴 때다. 그런데도 더 욕심을 부려 더 부자가 되기위해 성장을 최우선과제로 둔 채, 수단(?)좋고 능력은 있지만 법을 피해다니는 사람들로 고위직이 채워진다면 제2, 제3의 세월호 사건은 언제든 일어날 것이다.


우리 사회는 지금 정직한 사람이 필요하다. 문제는 시스템이고, 그 시스템을 고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급선무이기 때문이다.


<후기>

세월호는 대한민국이 무엇이 무엇인지 한꺼번에 보여준 종합선물세트이었습니다. 탑승한 학생의 전화를 받은 학부모가 세월호 침몰소식을 전남소방본부에 최초로 접수되었다고 합니다. 선체가 기울어져가고 있는데도, 구조될 때까지 안전하게 가만 있으라고 방송을 하고, 승객들을 구조할 사명이 있는 어른들은 제일 먼저 도착한 구조선에 올라탔습니다.


침몰할 때까지 2시간 20분 동안, 최초 헬리콥터가 도착하고 한 시간 40분 동안 아이들에게 무조건 선실에서 탈출하라는 방송만 했어도, 구조대가 도착해서 기울어져가는 선박의 유리창만 깨고 들어갔어도 수십 명은 더 구했을 거라고 합니다. 대통령이나 총리가 예산에 구애받지말고, 모든 수단을 강구하라고만 했어도 구할 방법이 있었다고도 합니다. 그냥 최선을 다하라고만 하니,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던 거지요.


더 기가 막힌 일은, 새 정부들어 해양수산부가 생기고 해양주권이 강화되면서 해양경찰조직이 방대해졌는데, 일선 경찰보다 간부들이 3배나 더 정원을 늘렸다는데, 막상 구조현장에서는 제대로 지휘하는 간부가 전혀 없어서 우왕좌왕하는 바람에 임명을 구조할 수 있는 소위 '골든타임'을 놓쳐버린 것입니다.


큰 희생으로 얻어진 소득도 있었습니다. 관제 여론이 얼마나 엉터리라는 것을 전국민이 깨달은 것이었습니다. 300명 혹은 500명의 잠수부가 구조에 동원되었다고 뉴스에서는 보도되었지만, 사실 사고현장에는 단 한 명의 잠수부도 볼 수 없었답니다. 사고현장이 막막한 바다 한가운데로 가림막을 쳐서 막을 수 없는 바람에 지나가는 어선들이 보고 증명한 것입니다.


며칠 전에는 KBS의 사내 게시판에는 40대 이하 젊은 기자 40명이 공동으로 사과문을 게재했다고 합니다. 성난 학부모들이 무서워서 현장에 가지도 않고, 마치 간 것처럼 정부에서 주는 기사를 그대로 보도한 것을 사과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나저나, 이제는 아이들에게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요? 어른들 말 잘 들으라고 해야할까요? 목숨이 걸렸을 때는 누구의 말도 듣지 말고 살 길을 찾으라고 가르쳐야할까요?


▼ 이런 상태에서는 창문을 깨고 들어가는 것이 구조의 상식이라는데, 한 개의 창문도 깨지지 않았고, 한 명의 목숨도 구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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