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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의 시선이 머무는 곳

시스템이 문제다 (2)

<끼리 끼리의 문화>


친애하는 미주 xx 고등학교 선후배님,

안녕하십니까? 저는 이번 총동문회장 소임을 맡게 된 △회 김OO입니다.

이렇게 인사를 드리게 되어 큰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수많은 동문 분들이 미국에서 큰 성공을 거두셨다는 얘기를 듣고 가슴이 매우 뿌듯했습니다. 

저도 W주에서 2년, N주 5년, 총 7년 동안 미국에서 생활하면서 미국생활이 힘들고 고단한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선후배님들이 거두신 성공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얼마 전 대한민국을 이끄는 파워엘리트의 출신고 랭킹이 발표되었습니다.

당연히 경기고등학교가 1위를 했겠지요. 그런데 우리 모교인 xx고등학교가 10 위에 들어있다고 발표되었습니다.

게다가 많은 분들이 지금부터 약 10년간 우리 학교 출신들의 황금기가 도래할 거라고 예측들을 합니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문제는 이렇게 훌륭한 동문들끼리 잘 갖춰진 네트워크 형성이 불비해 더 큰 시너지를 발휘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저를 포함한 새로 출범한 총동창회 임원진들은 미약하나마 동문들의 강력한 네트워킹 구축을 위해서 최선을 다할 것을 다짐해 봅니다. 물론 이에는 미주동문회와 총동문회의 네트웍도 가장 중요한 아젠다로 들어갈 것입니다.

아무쪼록 계속 건승하시고, 더욱 성공하셔서 학교의 위상을 미국에서 드높여 주실 것을 부탁드리겠습니다. 또한 저도 한국에 계신 모든 동문들과 함께 미주 선후배님들의 건승과 더 큰 성공을 기원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xx 중고등학교 총 동문회 회장 김OO


얼마 전에 받은 이메일이다.  LA에 살 때, 고등학교 동문회 홈페이지에 등록해 놓았더니 아직도 이런 저런 메일이 오고 있다. 내용으로 보아 새로 총동문회장으로 선출된 친구가 취임인사차 미주 동문회장에게 보낸 메일을 미주동문회에서 내게 포워딩시킨 것이다. 새로 동문회장이 된 후배는 W주와 N주에서 공부를 한 것으로 보인다.


내가 공부한 학교에 보답하기 위해, 장학기금을 모으고 학창시절의 즐거웠던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 친목을 도모한다는 취지에서의 동문회라면 아무런 문제가 없겠지만, 위 문맥에서 보이는 것처럼, 최근에 잘 나가는 동문들이 많으니 능력에 관계없이 서로 끌어주고 밀어주자는 취지라면 문제가 있다. 더구나 이런 사적인 모임이 부정부패에 연관이 된다면 그 결과는 치명적일 수도 있다.


조카녀석에게 들은 이야기다. 이과계통의 과기고(과학기술고등학교)와 함께 문과계 특목고라는 외고(외국어 고등학교)에 다닐 때 영어학원에 다녔는데, 그 강사가 아이비리그 학교의 하나인 컬럼비아 대학출신으로 저널리즘을 전공했다고 한다. 당시 녀석은 유학에 관심이 많아서 유학에 대한 조언을 구했더니 아래와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고 한다.


- 한국에서 살려면 절대 유학가지 마. 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조기유학을 하는 바람에 한국에 학연이 없어. 회사에 취직해도 왕따 당하고, 학교 동문이 없는 서러움이 말도 못해. 결국 나처럼 학원강사 밖에 할 게 없어. 미국에서 살려고 한다면 모를까, 나처럼 한국에서 살고 싶다면, 대학까지는 한국에서 나오고 대학원부터 유학을 생각해.


얼마나 끼리끼리의 문화가 서러웠으면 이런 말을 했을까!


사실 전두환의 12·12 쿠데타도 하나회라는 군부내 사조직에 의해 저질러졌다. 국가와 국민의 생명을 지키라고 쥐어준 총칼을, 하나회 회장인 전두환의 지시에 따라 자신들의 상관과 동료들을 향해 휘두른 것이다.


작년 이맘때는 원자력 발전소 부품비리 사건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했다. 지금은 9개 정도의 대학에 원자력공학과가 있지만, 내가 다닌 70년대는 서울대와 한양대 정도에만 있었다. 그 대학 출신들이 고위층이 되어 후배들을 끌어주고 밀어주며 카르텔을 형성했다. 소위 '원전 마피아'라고 일컬어지는 이들이다. 동창이나 동문들이 이권에 연루되면 인사 - 과도해지면 뇌물 - 를 해야하고, 능력이나 원칙은 무시되고 만다.


만에 하나, 이들이 결탁되어 사용되어진 불량부품으로 방사능 누출사고라도 발생한다면, 세월호 사고로 발생한 몇 백 명의 희생자들은 아무 것도 아닐 수도 있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지만, 끼리끼리 문화 속에서 감시와 견제가 없어진다면 얼마든지 가능한 사고다.


지금의 과기고, 외고와 같은 특목고와는 근본적으로 성격이 다르지만, 옛날에도 특목고들이 있었다. 한국전력은 전기기술인을 양성한다는 취지에서 '수도전기공업 고등학교'를 설립 운영했으며, 철도청은 철도기관사 양성을 위한 '철도고등학교', 그 전에는 체신인력을 위한 '체신고등학교'도 있었다.


내가 잘 아는 '수도공고'에 대한 이야기다. 1977년 9월 한국전력 사원 양성 특수목적 고등학교로 지정되었다. 기숙사 생활과 학비 전액 지원으로 무상으로 학교를 마칠 수 있었던 이 학교에는 전국의 농촌에서 공부 잘하는 가난한 학생들이 몰려들었다. 시골의 중학교에서 1, 2등을 다퉈야 들어올 수 있었고, 이 학교에 들어간 아이의 부모는 자식자랑이 대단했다.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졸업해서, 한전이라는 괜찮은 회사에 취직까지 보장이 되었던 것이다.


3년 동안 같은 학교를 다니며 기숙사 생활까지 한 이 친구들이 회사에 들어오면, 그 선후배 관계가 참 끈끈했다. 회사에서 후배는 선배 이름을 부르는 게 아니라, 비록 한 살이 차이가 나거나, 동갑이더라도 '형'으로 통했고 선배는 후배를 '야'하고 불렀다.  다른 부서의 협조가 필요한 일이 있을 경우에는 부하직원을 불러, '○○부에 자네 후배 있지? 걔한테 가서 협조 좀 부탁하고 오세요!' 하는 게, 협조를 의뢰하는 서류를 작성하는 것보다 훨씬 쉽고 편했다.


1970년대와 80년대, 원자력 발전소가 한참 건설될 무렵, 수도공고 출신들이 대거 현장에 투입되었는데, 그들의 나이가 스무살 전후이었다. 그들은 기능사 자격증을 따면, '특례보충역'이라는 이름으로 군대도 면제받았다. 1986년 초임과장으로 발령을 받아 현장에 내려간 나는 정말 깜짝 놀랐다. 퇴근하면 술집마다 그들로 인해 만원이었다. 그들이 마신 술값 영수증은 공사업체가 매월 기성고를 청구할 때, 현장 소장들에게 한 묶음이 되어 전해졌다. -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다. 30년 가까이 지난 지금, 그들도 '원전 마피아'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뉴스가 간접적으로 전하고 있었다.


- 저는 지금 3개월 정직에다 감봉처분까지 받고 있는 중입니다.


ㅁ차장은 내가 사업부장으로 재직할 때, 대리급 경력직원으로 채용했던 후배로 내가 한국에 오면 연락하던 친구다. 3년 전에 귀국해서 서울에 있을 때, 연락이 닿았다. 어떻게 정직까지 받게 되었냐는 내 물음에 그는 장황하게 설명했다.


- 홍길동이 아시죠? 걔가 지금 서울 ◇◇지점에 부장으로 있거든요. 지난번 추계체육대회를 한다고 찬조금을 달라는 거예요. 그래서 음식점에서 만나 식사를 하면서 백만 원이 든 봉투를 전해주다가, 국무총리실에서 나온 감찰반에게 현장을 잡혔거든요. 그런데 홍길동 부장이 딱 잡아 떼는 거예요, 자기는 봉투에 뭐가 든지도 몰랐다는 거지요. 참, 내가 어이가 없어서. 그리고는 나중에 내가 부탁할 게 있어서 억지로 주었다고 거짓말을 하라고 강제로 시키지 뭡니까? 저는 을이고 걔는 갑인데 할 수 없잖아요! 그래서 하는 수 없이 그렇게 진술서를 썼더니, 국무총리실에서는 그 말을 믿고 저만 징계를 당한 거지 뭡니까! 하하하, 아시잖아요! 그런 말도 안 되는 스토리가 통하는 게 한국 아닙니까?


홍길동은 내가 초임과장을 끝내고 본사에서 근무할 때, 데리고 있던 부하직원으로 수도공고 출신이었다. 하긴 그도 3년 전에 이미 40대 중반을 훌쩍 넘었으니 부장이 되어있을 만도 했다. 똘똘해서 일도 잘했고 승진 욕심도 있었으니까. 그러나 내 시절에는 그 정도는 과장급이나 대리급이 알아서 처리했고, 부장이 돈 봉투 받으려고 나서지도 않았었다. 지금은 다르단다. 꼭 직접 챙긴다는 거다.


<후기>

지난 날을 회상하면서 글을 쓰니 할 말이 참 많습니다만, 글이 너무 길어져 여기서 줄이고 다음 편으로 넘겨야겠습니다. 과거 경험에 비추어볼 때, 세월호가 떠나던 날 감독기관인 한국선급 직원과 청해진 직원과의 대화를 상상하는 것이 별로 어렵지 않습니다.


- 이봐, 오늘 출항한 배가 하나도 없는데, 안개도 끼고 이런 날씨에 출항하는 것 위험한 거 아냐? 게다가 화물도 평상시보다 훨씬 많은 걸 보니 평형수도 100% 채우지 않은 것 같은데.


- 에이, 감독님, 왜 그러실까! 같은 식구끼리. 왜? 꺼림직하면 우리 보스더러 위에다 말해주라고 할까요? 한 두 번 장사하는 것도 아닌데, 이런 날 출항하는 게 처음도 아니고.


이랬겠지요! 아마도 그랬을 겁니다. 명절 때마다 백화점 상품권 몇 장을 선물로 받았을 거고, 한 달에 한 두 번은 고급 술집이나 룸살롱에서 실컷 퍼마시기도 했겠지요. 그리고 웃사람에게 보고해봤자 더 큰 뇌물을 받은 그에게 묵살당했을 겁니다.


청해진 해운의 직원들은 다 구원파 신도라지요. 한 식구끼리 감시와 견제가 이루어질리 만무했을 테고, 공과 사를 구분한다는 것은 불가능했을 겁니다. '정(情)의 민족'이라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특성상, 시스템을 바꾸지 않으면 이런 사고는 얹제나 일어날 것입니다. 


수도공고같은 특목고의 역할이 옛날과 같다면 당연히 없애야겠지요. 수 십 년 전과는 여건과 환경이 많이 틀려졌습니다. 지난 해, 강서구청에서 환경미화원(청소원)을 모집했는데 지원자의 절반 이상이 대학졸업자라고 했습니다. 심지어는 여자와 유학파까지 있었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