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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의 시선이 머무는 곳

시스템이 문제다 (1)

<글을 시작하며>

 

이번 세월호 사고를 보며 많은 것을 생각했습니다.

우선 아이들이 희생된 것에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것도 가난한 동네의 넉넉하지 못한 가정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아이들이 희생되었다는 사실이, 마치 내가 희생자가 된 양 억울하기까지 했습니다. 아마 어른들이 죽어갔다면, 아마 강남에 있는 어느 고등학교 아이들이 희생되었다면, 이렇게까지 억울한 마음이 들지는 않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한국에서 40년을 살고, 이민을 떠났습니다. 부모님을 따라 가족이민을 갔다거나, 유학을 했다거나, 6~70년대 몇 백 불만 손에 쥐고 떠났던 분들과는 많은 차이 - 저는 30만 불이 넘는 적지않은 돈을 갖고 갔으니까 - 가 있지요. 가장 각광받는 신도시에 빚 하나없이 30평대의 아파트도 있었고, 지금은 '신들도 다니고 싶은 직장'이라는 소리를 듣는 국영기업에 간부로 재직하며 당시 환율로 따지면 6만 불이 넘는 수입도 있었지만, 견디기 힘든 부조리와 불합리를 경험하면서, 내 자식들만큼은 이렇게 썩은 나라에 살게하지 않겠다는, 지극히 단순한 생각(?) 하나만으로 이민이라는 일생일대의 결심을 했었습니다.


자의반 타의반, 이제 다시 돌아와 살면서, 옛날과 달리 크게 좋아진 조국에서 그리고 마치 부모님에게로 돌아온 듯한 친근함과 편안함을 느낍니다. 아직 '이중국적'을 신청할 나이가 되지 않아서, 미국 여권을 가진 외국인의 신분 때문에 '미안한 마음(?)'이 없지는 않지만, 사람들과 음식이 친근하고, 언어와 신문과 방송같은 매스컴이 편합니다. 미국에서는 쾌적한 환경, 풍요로운 물질 속에서도 불면증과 악몽에 시달리고, 항상 불안함을 느꼈던 반면에, 고국에서는 여름에 덥고 겨울에는 춥지만 그리고 모든 것을 아끼고 절약하며 살지만, 마음은 편하고 잠도 잘 잡니다. 이래서 사람들은 고향을 그리워하며 사는 걸까요?


그런데, 이번 세월호 사건을 보면서, 20여년 전에 내게 이민을 결심하게 한, 부조리와 불합리가 그대로 존재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말단 공무원이나 일선 경찰들은 상대적으로 많이 좋아진 것을 체험했지만, 기득권층의 그것은 더욱 강화되고 공고해진 것이 너무나 잘 보였습니다. 그리고 지난 젊은 시절 17년 간의 직장과 군대에서 경험한 숱한 부조리들이 떠올랐고, 그것을 기록하고 무엇이 문제인지 따져보고 싶어졌습니다.


이민을 떠났던 주제에, 입 다물고 조용히 살라고 하면 반박할 말은 별로 없습니다만, 항상 대한민국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잊지 않고 살았으며, 회사에서 필요한 컴퓨터나 전자제품을 살 때도, 백화점에서 옷을 살 때도 의도적으로 'Made in Korea'를 구입하려고 노력했으니까, 자격이 아주 없다고 할 수는 없겠지요.


오늘 조간신문에는 해양경찰의 간부가 한국선급(註: 해경이나 해양수산부 고위관리가 퇴직하면 가는 회사로, 엉터리 감사와 감독으로 이번 사고를 야기시킨 공범 중의 하나임)에 검찰의 압수수색에 대비하라고 사전에 귀띔을 주었다고 합니다. 청해진 경영진과 해경과 해수부의 고위관리들이 '한통속'인 것이지요. 제 경험상 아주 당연한 것입니다. 이게 바로 한국의 시스템입니다. 이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세월호 사고'같은 참사가 다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이런 시스템이 깨지는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빨리 시간이 가서 '세월호'가 세인들의 뇌리에서 잊혀지는 것이고, 그리고 시스템이 그대로 유지되는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얼마나 좋은 시스템입니까? 국가공무원으로서 최고직위의 특권을 누리다가, 퇴직하면 감독기능이 있는 회사의 임원이나 사장으로 옮겨가서, 청해진 같은 회사가 정기적으로 갖다주는 뇌물과 향응으로 부와 쾌락을 누리는 겁니다. 이런 훌륭한 시스템이 깨지는 것이야말로 그들에게는 그야말로 '큰일(?)'입니다.


어느 분이 민족의 분열을 야기시키는 불평불만을 더 이상 하지말고, 사고의 수습과 향후 대책 마련에 국론을 모아야한다는 글을 올렸는데, 저는 공감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시스템이 문제라는 것을 계속 떠들어야 합니다. 언제까지? 소수 기득권을 위한 시스템이 다수 국민을 위한 시스템으로 바뀔 때까지, 세월호 사건을 잊지말고 불평과 불만을 말하고 떠들어야 합니다.


더군다나, 우리 이민자들은 선진국에서 그들의 시스템을 보고 경험한 사람들입니다. 유현진의 활약과 추신수의 홈런에만 열광하고 떠들 것이 아니라, 우리가 경험한 훌륭한 시스템이 고국에도 도입되어 보다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지는 사회가 되는데, 아주 적은 기여라고 하게 된다면 역이민자가 되어 고국에서 여생을 보내는 보람이 있지 않을까요?


<후기>

제가 이 글을 몇 번이나 쓸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새벽에 일어나 운동을 하고 돌아와 컴퓨터를 켜고 신문을 보다가, 해경간부가 압수수색에 대한 정보를 누설했다는 기사(http://news.hankooki.com/lpage/society/201405/h2014050721370921950.htm)를 보고 화가 났고, 무언가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것이 분명 전부는 아닙니다. 그러나 일부분은 될 수 있습니다.


LA에서 내가 만난 사람들은 '우물 안의 개구리'식의 분들이 많았습니다. 예를 들어, 뉴저지에는 도로에 스피드 카메라가 없다거나 - 지금은 그렇지도 않지만 - 도로 사인이 틀리다는 이야기를 하면, '거기는 이상한 곳이네, 왜 그렇지?'하고 반문을 합니다. 그 분들에게는 캘리포니아가 미국의 전부로 착각하고, 다른 곳은 이상한 곳이라는 투(?)로 생각하는 듯했습니다.


물론 그런 분들은 일부분이고, 대다수 분들은 그렇지 않겠지만, 저에게 LA에 사는 사람들은 '우물 안의 개구리'라는 생각을 갖게 된 동기가 되었지요. 자신이 본 것이나 알고 있는 것만 갖고 세상을 이해하거나 판단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일까요? 그러나 또한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에 우리의 모순이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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