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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의 시선이 머무는 곳

한국과 미국의 결혼식

제주에 사는 장점 가운데 하나가 경조사에 굳이 참석할 필요가 없다는 거다. 육지에 산다면 결혼식이나 장례식 같은 각종 경조사에 참석해야겠지만, 해외(?)에 사는 덕분에 부조금만 적당히 보내도 크게 탓하는 사람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달에는 그런 경조사에 참석하기위해서 서울에 갔다. 같이 자라서 친구처럼 지내는 친척의 딸이 결혼한다는 연락을 받은 것이다. 내게는 5촌 고모뻘이지만 이북에서 월남한 선친에게는 친척이 없어서 촌수보다는 많이 가까운 사이였으며, 이민을 떠난 후 오랜동안 보지못한 그 형제들과 2세들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3호선 경복궁 역까지 지하철로 갔다. 인터넷에서 미리 보았던 길 안내대로 3번 출구로 나가니, 어떤 아주머니가 xx각에 가세요? 하고 묻는다. 역에서 예식장까지는 셔틀버스가 대기하고 있었다. 열흘 전에 있었던 세월호 사고 탓인지, 차창 밖으로 거리가 한산하게 느껴졌다. 버스가 움직이면서 경찰들이 자주 보이는 것이 좀 이상하게 느껴졌다.


그 전 날, 길을 가다가 지하철 역 근처에서 주민등록증을 주었었다. 그것을 처분하기 위해서 경찰이나 우체통을 찾으려고 두리번 거렸지만, 동생 집까지 가는 동안에 한 명의 경찰이나 단 한 개의 우체통을 볼 수 없었는데, 이곳은 시내라 그런지 도처에 경찰이 보였다. 그러나 그 이유는 금방 알 수 있었다. 근처에 청와대가 있었던 것이다.


결혼식 날짜를 급하게 잡는 바람에 예식장 - 요즘은 '웨딩홀'로 불리웠다. 모든 게 '영어화'다. - 시간이 안나와 오전 11시에 식이 예정되어 있었는데, 오히려 식이 끝나고 점심을 먹기에는 더 편했고 주변이 한산해서 더 좋았다.


오랜만에 친척들을 만날 요량으로 30분 일찍 도착했지만, 하객들 중에서 아는 사람을 만날 수가 없었다. 신부측 부모들과 인사하고, 가져온 봉투를 접수하고 방명록에 기록하고 나자 할 일이 없어 3층에서 오가는 사람들을 물끄러미 쳐다보거나 창밖을 내려다보며 시간을 때우고 있었는데,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보이는 사람들이 대부분 중년이나 노인들이었다. 건물 앞 마당에 도착하는 버스에서 내리는 사람들의 벗어진 대머리(?)들이 내려다 보며 웃었다. 그렇다. 이곳에서 결혼식은 아이들 행사가 아니라 어른들 행사이었다. 젊은 사람들도 있긴 했지만, 행사를 준비하는 사람들이었고, 그들은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작년에 치룬 딸아이 결혼식이 생각났다. 나는 아이들 결혼식의 손님이었다. 내가 할 일은 별로 없었다. 동생들과 함께 지들이 몇 달 전부터 준비했고, 나는 아이들이 시키는 심부름(?) 정도만 했다. 내가 입을 정장도 넥타이도 모두 아이들이 골라주는 대로 입었다. 친척도 없는 나는 초대할 손님도 별로 없었다. 


대학선배 두 분에게만 연락을 한 것은, 친하기도 했지만 내가 그 분들의 아이들 결혼식에 참석한 탓이 컷다. 직장에 다닐 때, 친하게 지냈던 부하직원 하나가 찾아와 참석하겠다고 한 것이 다였다. 아니, 또 있다. '역이민 카페'를 대표해서 하얀물결님이 참석해주셨고, 아라몰라님도 뉴욕에서 성의를 보내주셨다.


물론 3~40년 전에 이민을 와서 친척들이 많은 사돈 댁에는 몇몇 나이 많은 분들이 보이긴 했지만, 대부분 아이들 또래의 젊은이들이 하객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즉, 아이들의 잔치였다. 오히려 행사를 준비하고 안내하는 사람들은 나보다 더 나이가 들어 보였다.


미국의 결혼식은 철저하게 아이들에 의한, 아이들을 위한, 아이들의 결혼식이었던 반면에, 한국에서의 결혼식은 아이들을 위하여, 어른들에 의하여 치뤄지는, 어른들의 결혼식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왔다.


내 느낌이 틀린 것인가?


- 야, 고맙다! 멀리서 참석해줘서. 딸이 하나라 다행이지 두 번은 못해먹겠다, 너무 힘들다. ㅎㅎ


식사가 끝나고 헤어질 때, 신부의 엄마가 내게 한 말이다.


▼ 복도에서 서성거리는 하객들은 대부분 결혼 당사자의 손님이 아니라, 당사자 부모들의 손님으로 보인다.

 

▼ 담배를 피우느라 밖에 있는 하객들의 내려다 보이는 대머리가 웃음을 자아낸다.

 

▼ 특이했던 것은 신랑입장 후, 가수가 'You raise me up' 이라는 노래를 부르면서 신부에게 다가가는 것으로 예식이 시작되었다.

 

▼ 주례는 대학총장을 지내고, 지난 정권에서 교육부 장관 겸 부총리를 지낸 분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