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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의 시선이 머무는 곳

자살하는 사람들

한국으로 돌아와서 가장 많이 듣는 사건 사고 중의 하나가 자살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나 최진실 가족의 비극적인 자살부터, 자살 동호회에서 만난 사람들끼리 강원도 펜션에서 벌이는 집단 자살과 최근의 빈곤 자살까지, 뉴스에서 전해지는 자살은 주요 뉴스에 끼지도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마치 새어나온 연탄가스로 어디서 일가족이 또는 아이들이 사망했다는 1960년대 뉴스를 듣는 듯했다. 어렸을 때 가정에 TV는 없었고, 라디오가 유일한 오락거리였던 시절, 뉴스에서는 매일같이 연탄가스로 인한 사망소식을 전했었다. 서울에서, 인천에서, 부산에서, 대구, 광주에서 연탄가스로 누가 죽었다는 소식처럼, 누가 자살했다는 소식이 거의 날마다 이어진다.

 

자살?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1970년대, 4장짜리 신문 시절, 선진국에서는 무료해진 젊은이들이 마약과 섹스에 절어 생활하다가 결국 자살한다는 해외토픽 기사를 이해하지 못했다. 너무 잘 살아서 부러운 나라 미국에서 일년에 수 십 명 사람들이 골든 게이트 브릿지에서 떨어져 자살한다는 기사가 거짓말 같았다.

 

자살하는 사람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두 가지다. '오즉했으면 스스로 죽었을까?' 하는 동정론과, '죽을 생각이 있으면 그 각오로 살아야지, 오죽 못났으면 죽음을 택할까?'라는 폄하론인데, 폄하론이 일반적인 추세다. 그래서 자살한 사람들의 가족은 그 고통을 마음대로 드러낼 수가 없다.

 

과연, 자살한 사람들은 사회와 가족에게 무책임한 사람들이었을까?

 

그제 단원고 교감 52살의 강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는 유서에서, '200명의 생사를 알 수 없는데 혼자 살기에는 힘에 벅차다. 나에게 모든 책임을 지워달라. 내가 수학여행을 추진했다.'며 '내 몸을 불태워 세월호 침몰 해역에 뿌려달라!'고 했고, 또 '시신을 찾지 못하는 녀석들과 함께 저승에서도 선생을 할까?'라는 글도 적었다고 뉴스는 전한다.

 

1987년부터 교직생활을 시작하여 교감으로 승진한 후, 첫 부임지인 단원고에 지난 달부터 발령받아 근무했다고 하는 그는, 결코 무책임하거나 비굴한 사람이 아니었다. 살아남은 것에 대한 죄책감과 부끄러움을 느꼈으며, 죽어서라도 책임감을 다하고 싶어했다.

 

자살하는 사람들을 옹호하기 위해 쓰는 글이 결코 아니다. 다만, 더 이상의 자살을 방지하고 예방하기 위해서는 그들을 폄하하는 것은 답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들을 이해하려는 노력만이 그들을 죽음으로 내몬 사회와 상황(Circumstance)을 이해하고 고쳐나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지난 3월 25일 방송한 PD수첩 990회 '빈곤자살'에, 최명민 교수(충남 백석대 사회복지학부)의 '충남 자살자 심리사회적 원인조사(부검)와 유가족 지원사업 보고서'를 들여다 보면, 자살자들이 남에게 폐 끼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고, 독립심이 강하며, 책임감이 투철한 착한 사람들이라고 분석되어 있다.

 

자살자들은 일반적으로 인식되는 것처럼, 용기가 없거나 무책임한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을 감싸고 함께 가지 못하는 사회의 모순과 국가의 정책이 있을 뿐이다.

 

 

▼ 자살자에 대한 실제 조사에서 드러난 바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사실과는 달랐다. 죽으면서도 밀린 월세와 공과금을 놓고 가기도 하고, 자살 전에 장례비를 준비해 놓기도 한다. 죽으면서까지 남에게 폐를 주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 대통령부터 일선 구청 실무 책임자까지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르고 있다. 바로 이런 것들이 사람들을 자살로 내몰고 있다.


▼ 현실은 정부나 실무자들이 말하는 것과 너무 달랐다. 일반 국민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을 대통령과 실무 책임자는 몰랐다. 아니 안다고 하기가 창피해서 거짓을 말했나? 어쨋든 말이 안되는 것은 똑같다.

 

▼ 모든 통계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일선 실무자들의 행정은 도둑 - 불법적인 수령(부정수급)을 막는 것이지, 찾아가서 도와주는 행정과는 거리가 멀다. 모든 것을 미국을 따라 하면서 이런 제도는 미국을 흉내내지 않는지. 미국에서는 모든 해당자에게 웰페어를 준다. 한국인을 포함한 일부 사람들이 이런 제도를 악용해서 모든 재산과 현금을 자식들에게 미리 돌려놓고 웰페어를 받는 부정을 저지르기는 하지만.


▼ 도대체 믿을 말을 해야하는 것 아닌가? 말과 행동, 지시와 정책이 다른데도 아무 소용도 없는 립서비스만 한다.


▼ 복지가 줄면, 막다른 골목에 처한 사람들의 선택은 많지 않다. MB 정부에서 한 일이라고는 기초생활수급자들 중에서 제외시킬 사람들 가려내는 일뿐이었다.


▼ 이 사람은 충격(?)만 받았다. 립서비스만 하는, 말고 행동이 다른 이런 부류의 사람에게 투표해서는 절대 안 되는 거였다. 거짓과 진실을 가려내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정직이 최고 가치가 되는 사회로 거듭나야 한다.


▼ 립서비스에만 열중하는 사람들 때문에 죽어나는 사람들은 따로 있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는 힘없는 약자, 실무자들 뿐이다.


▼ '껌값(?)'에 지나지 않는 기초생활비 부정수급자를 가려내는 일이 그들이 하는 주업이었다. 그게 우리 사회의 현주소다.


▼ 누가 사람들을 자살로 내모는가? 그 답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함부로 말할 수 없다. 사회가 집단최면에 걸린 탓이다. '종북프레임'이라는.


경쟁은 사회를 발전시키는 동력임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미국이 부강한 나라가 된 것도, 한국이 짧은 시간 동안 급성장한 바탕도, 중국이 경제대국이 된 배경에도 경쟁시스템이 자리하고 있다. 그러나 경쟁은 승자뿐만 아니라 패자도 필수적으로 나온다.

 

국가가 성장을 위해 자본주의와 경쟁체제를 채택한 탓이다. 따라서 승자와 국가는 패자에게 빚을 지고 있는 셈이며, 이들을 보살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 내 일이 아니라고 모른 채 할 일이 아니다. 그러나 승자들은 이들에게 양보하지 않으려고 국가를 움직이기 위해 국민들에게 최면을 건다.

 

우리 모두는 그들의 기득권 지킴을 위한 최면에 결려있다.

 

<후기>
비굴한 사람은 절대 자살하거나 죽지 않습니다. 세월호 선장이 그렇습니다. 첫 번째 구조선에 탔으면서도 제일 먼저 타지 않았다는 것은 큰 소리로 말합니다. 그럼 제일 늦게 탔느냐는 질문에는 부인을 하지 못합니다. 하의만 약간 젖은 채로 구조되었는데, 구조된 사람들의 인적사항을 적는 설문지의 직업란에 '일반인'이라고 적어 넣었다는 대목에서는 어이가 없어서 웃음마저 나왔습니다.

 

어느 분이 '비난'을 언급하셨는데, 비난과 비판은 철자 하나 차이지만 의미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애정없이 하는 것은 비난이지만, 연민을 갖고 바라보는 것은 비판입니다. 벌어놓은 것이나 쓰고, 사회에서 주는 혜택이나 누리면서 군소리 하지말고 지내라는 분도 있지만, 돈벌이에서 떠난 은퇴자들이야말로 아무 구속없이 자유롭게 사회를 비판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처럼 소신을 말하기 위하여 그만 두어야 할 직장도 없으니까 말입니다.

 

충분히 살아본 인생의 경험을 바탕으로, 애정을 가진 시선으로 사회를 보면 어느 쪽이 바른 길인지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0.1 미리만큼이라도 좋은 방향으로 바꿀 수 있다면, 그래서 우리의 자녀들이나 조카들이, 손주들이 보다 나은 세상에서 살게 하는 것도, 은퇴자들이 할 일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