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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의 시선이 머무는 곳

송파구 세 모녀 자살로 본 한국

송파구에서 벌어진 세 모녀 자살사건은 한국이 어떤 나라인지 여실히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발견된 것은 지난 2월 26일 수요일 밤이지만, 그들이 죽은 것은 경찰에 신고한 집주인이 '일주일 전부터 방 안에서 텔레비전 소리는 나지만 인기척이 없어 의심스러운 생각에 경찰에 신고했다.'는 말로 미루어 며칠 전이었을 것이다.


소치에서 박승희의 쇼트트랙 금메달과 김연아의 은메달로 온 나라가 떠들썩했던 지난 20일 저녁, 1954년생으로 61살의 박씨와 36살, 33살의 두 딸은 그런 소식에 아랑곳하지 않고 동네 슈퍼에서 600원 짜리 번개탄 두 개와 1,500원 짜리 숯을 사서, 반지하 방에서 고통스럽지 않도록 죽음을 준비했다. 준비는 침착하고 치밀했다. 연기가 새어 나가지 않도록 지표면과 맞닿은 창문과 문틈을 청테이프로 막았다.


8년 동안 세를 살면서 월 38만원의 집세나 가스와 전기료같은 공과금을 한 번도 거르지 않았다는 집주인의 말로, 그들이 계획적이고 정직한 사람을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물며 죽어가면서도 집세 50만원 - 작년 1월부터 50만원으로 올랐다 - 포함, 가스, 전기료 70만원을 주인에게 남겼을만큼 올곳고 정직한 사람들이었다.

 

▲ “죄송합니다”… 70만원 든 봉투 생활고를 겪다 자살한 것으로 추정되는 박모씨와 두 딸이 집주인에게 남긴 메모와 70만원이 든 봉투.

정직한 사람들이다. 나라면 죽기로 한 이상, 어디 좋은 음식점에 가서 딸들과 이승에서의 마지막 만찬이라도 가졌겠다.


박씨 가족은 IMF 이전만 해도 한국의 중산층으로 괜찮게 살았다고 한다. 남편의 사업이 어려워진데다 엎친데 겹친 격으로 남편은 방광암에 걸렸고, 막대한 암 치료비로 가산을 탕진하고 빚만 남긴 채 12년 전에 세상을 떠났다. 두 딸이 신용불량자가 된 것도 이 때 카드를 만들어 치료비로 사용한 것을 갚지 못했을 거라고 짐작하고 있다.


박씨는 식당일로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큰 딸은 당뇨와 고혈압을 심하게 앓는 환자이었고, 작은 딸은 신용불량자로 직업을 구할 수 없어 겨우 아르바이트로 일부를 보탰을 뿐이다. 박씨가 빙판에 미끌어 넘어져 팔이 부러지는 바람에 그나마 식당일을 할 수 없게 되었고, 이들은 생을 끝내는 마지막 선택을 하고 만다.


한국의 여러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한국이 의료보험이 잘 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암과 같은 큰 병에는 별 의미가 없다. 국가의료보험제가 있다고 하더라도, 암보험과 같은 사보험을 따로 가져야 안심할 수 있으며, 의료보험이 해당되지 않는 '비급여 진료'가 너무 많다.


- 미국에서는 어중간하게 버는 사람들은 정말 살기 힘들어요. 혜택은 하나도 못 보고, 세금은 다 내야해요. 아예 3만 불도 못 벌든가, 아니면 10만 불 이상 많이 벌어야 그런대로 살 수 있어요.


이민으로 뉴저지에 이사가서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그곳의 수다쟁이 친구 와이프에게 들었던 말이다. 처음에는 그 말이 무슨 말인지 몰랐으나 살면서 알게 되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다르다. 가진 것도 없이 적게 버는 사람은 살 곳이 못 된다. '개똥 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옛말은 말 그대로 옛말일뿐, 지금의 한국에서는 통하는 말이 아니다.


정말 화가 나는 일은 따로 있다. 아래의 신문기사를 보자.


서울 송파구에서 세 모녀가 숨진 채 발견된 비극적 사건과 관련해 보건복지부가 "복지 소외계층을 발굴하고 이를 지원하는 노력을 더 강화 하겠다"고 28일 밝혔다. 복지부는 "이번 일은 숨진 가족이 기초생활보장제도나 긴급지원제도 등 복지 서비스를 신청한 사실이 없어 담당 행정기관에서 사망자의 어려운 사정을 확인하지 못한 안타까운 사건"이라고 설명했다.


마치 박씨 가족이 복지 서비스를 신청했다면 받았을 것이라는 암시를 주고 있다. 이게 사실일까? 내가 살아 본 한국에서는 말도 안되는 천만의 말씀이다. 지난 3년 넘게 살았던 한국에서는 받고 있던 최저생계비도 자식이 있다는 이유로 취소시키기에 바빴다. 자식으로부터 부양을 받기는커녕 어디에 살고 있는지도 모르는데도 정부에서는 규정이라는 이유로 복지를 취소시켰고, 그로 인해 자살했다는 노인에 대한 기사가 한 둘이 아니었다.


MB 정부에서 '선택적 복지'라는 명분으로 예산부족을 핑계삼아 힘없는 서민들을 죽음으로 몰고 있는 것이, 귀국해서 처음 목격한 한국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복지공약은 축소 일변도에 있다. 복지예산 때문에 경제성장이 지장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논리로 합리화시키면서.


한창 나이의 딸이 둘이나 있는데, 그것도 같이 살고 있으며, 일해서 수입이 있는 박씨가 복지 서비스를 신청한다고 꿈쩍이나 했을까?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거짓이고 기만이며 립서비스일뿐이다.


이 정직하지 못한 사회에서 이런 비극은 앞으로도 얼마든지 일어날 것이다.


<후기>

이번 사건은 한국으로 돌아오겠다고 생각하는 분들에게는 좋은 교훈이 될 것입니다.

어떤 처지에 있는 분들이 오면 안 되는지 분명해집니다.

고인의 명복을 빌뿐입니다.


'다음 생에는 더 좋은 곳에서 태어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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